[인터뷰] 申斗柄 駐홍콩 총영사

『홍콩의 강점은 서구인과 호환성이 있다는 것. 한국의 신용이 다시 떨어지고 있다』

  • : 함영준  jmedia21@naver.com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한국인들은 대체적으로 홍콩을 만만하게 생각한다. 며칠 쉬면서 맛있는 중국음식을 먹고 쇼핑하고, 밤에는 다채로운 유흥을 즐길 수 있는 곳 정도로만 생각한다. 더구나 홍콩 사람들은 돈버는 데만 관심 있을 뿐 거창한 국가 개념이나 이데올로기로 무장돼 있지 않아 한국인들로서는 상대적으로 대하기가 쉬운 사람들로 인식된다.
 
  물론 이런 시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단편적인 것일 뿐이다. 이미 4년 가까이 홍콩에서 살아온 기자로서도 홍콩은 매우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으며 특히 150여 년간의 영국 식민통치하에서 뿌리를 내린 시스템과 국제성은 단시일 안에 한국이 따라잡기가 매우 어려운 强點(강점)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개개인 홍콩인을 만나보면 그저 그러한데 시스템 홍콩을 생각하면 우리 한국이 훨씬 뒤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 번 실감했다.
 
 
  베테랑 외교관인 申斗柄(신두병·64) 駐홍콩 총영사는 『홍콩이 비록 인구 680만명의 도시국가지만 그 영향력이나 잠재력은 경제 大國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우선 수치상으로만 비교해 봅시다. 680만 인구의 교역량(작년 미화 3515억달러·이하 달러)이 13억 중국(미화 3606억 달러)과 맞먹는 무역대국입니다. 또 세계 최대의 중계 무역항이자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굴지의 국제금융센터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아시아를 움직이는 경제활동의 중심지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면.
 
  『歐美 자본가, 투자가들의 對 아시아 투자본부가 바로 홍콩입니다. 일본을 제외한 모든 아시아국가에 대한 투자결정이 바로 홍콩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세계 100大 은행 중 79개가 홍콩에 진출해 있으며 요즘 부각되는 벤처자금도 111개 펀드에서 年 144억 달러를 이곳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換亂(환란)을 겪어서 국제금융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는데 지금 사회는 자본의 이동이 대량으로, 순식간에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흐름을 모르면 낙후되고 이 흐름을 주도해야 선진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데 홍콩은 바로 주도하는 곳입니다』
 
 
  홍콩인의 장점은 세계적
 
 
  ―우리가 3년 전 IMF 위기를 맞이한 것도 이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결과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지금은 원자폭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자본의 흐름입니다. 들어왔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몰려나가면 하루아침에 國富(국부)의 반토막이 절단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겪지 않았습니까. 당시 한국에 투자한 돈들을 회수해 간 주역들이 바로 홍콩의 금융인들입니다. 물론 뉴욕 월스트리트 본부나 조지 소로스 같은 큰 손들의 원격조정이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이 금융계 高手들이 보는 견해는 과거 전통적 방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우린 그들이 어떤 경우에 돈을 집어넣고 언제 돈을 빼내는 것인지를 잘 몰라, 한마디로 무식해서 당했던 것입니다. 물론 다른 요인들도 있었지만요』
 
  일반 국민들은 잘 모르지만 홍콩은 수출한국의 제1의 孝子시장이다. 연간 100억 달러 상당의 무역흑자를 거두어 들이는 곳이 바로 홍콩이다. 작년 한국의 對 홍콩 무역흑자는 81억 달러. 우리나라 전체 무역흑자(239억 달러)의 34.1%나 차지하는 최대 흑자시장이다. 그런데도 홍콩은 다른 나라들처럼 물건을 더 사가라 말라고 귀찮게 하지 않는다. 그저 누구나 와서 교역을 하도록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교역에서 오가는 구전이나 커미션을 먹겠다는 것이 홍콩인들의 계산이다.
 
  『단돈 200~300달러만 있으면 회사를 설립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얼마나 까다롭습니까. 극도의 자본주의와 자유주의가 결합된 곳, 세계에서 제일 경제활동이 자유로운 도시 1위가 홍콩 아닙니까. 한국은 28위든가 하던데』
 
  작년 현재 홍콩에 상주하는 외국기업은 1만2868개. 이중 다국적 기업 1000여 개사는 亞洲(아주)지역본부를 이곳에 두고 중국·동남아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홍콩이 이렇게 발전하게 된 배경이나 强點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선 뭐니뭐니 해도 뛰어난 商術(상술)을 들 수 있겠지요. 중국에서 은행이 제일 먼저 생긴 곳이 바로 청나라 때 인근 廣東(광둥)이었지요. 우린 중국 하면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등 철학자를 먼저 생각하는데 중국 남쪽사람들은 철저한 장사꾼이었지요. 거기선 유교가 안 통하죠. 이들은 장사꾼 집안으로 몸에 상술이 배어 있습니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양반이다 계급 명분 체면 따지고 괜히 중국 상인들을 낮춰보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 어디가 더 경쟁력이 있습니까』
 
  ―이왕 식민지배를 받으려면 시스템과 법 교육을 중시하는 영국인에게 받는 것이 낫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영국 식민지배의 모델 케이스가 홍콩과 싱가포르라고 하던데요.
 
  『홍콩 사람들은 죄다 영어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 1세대들은 무식한 피난민들이었지만 2세대부턴 좋은 학교를 다니고 외국 유학파들도 많죠. 생긴 것은 동양인이나 사고방식은 서양인들입니다. 때문에 이들은 서구인과 互換性(호환성)이 있습니다. 즉 홍콩에서 월 1만 달러를 버는 월급쟁이는 뉴욕 런던에서도 그 봉급을 받고 채용이 됩니다. 바로 세계성이죠. 영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그 나라 문화에 익숙한 것이죠. 한국에서 알아주는 변호사 의사 중에서 이런 호환성을 갖고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요. 우린 아직 폐쇄적이지만 홍콩의 엘리트들은 全세계 四通八達(사통팔달) 어디 가서도 대접받고 일하며 살 수 있습니다.
 
  저도 미국 유럽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근무해 보았지만 홍콩 사람들, 특히 엘리트들의 영어 실력은 대단합니다. 董建華(둥젠화) 행정수반이나 앤손 찬(陳方安生) 정무장관의 영어는 일류입니다. 한국의 VIP나 고관들 중에 아직도 리셉션장에서 쉬운 대화도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인 양 제자리에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富者가 존경받는 사회
 
 
  홍콩에 오래 산 사람일수록 홍콩의 시스템이 좋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이곳 세무서는 한국처럼 권력 기관이 아니다. 간단하고 현실적인 과세 제도가 정착된 탓에 한국 기업들도 대부분 자진 신고로 세무행정을 마치며 세무서에 불려가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이곳 경찰은 1970년대 초까진 뇌물도 많이 받고 사회적 지탄도 받았지만 이후 엄청난 自淨(자정)노력과 대우 향상을 통해 지금은 시민의 신뢰를 받는 경찰로 탈바꿈했다. 높은 대우 탓에 엘리트들이 해마다 경찰로 몰리고 있다. 이같이 뇌물이 안 통하는 행정관서, 정책결정이나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시스템, 법과 질서가 강조되는 사회로 발전돼 온 것이다.
 
  『홍콩 사람들, 참 실리적이잖아요. 한국에선 富者가 존경받지 못하지만 이곳에선 부자가 가장 존경받는 사회입니다. 우린 만나면 혈연·학연·지연부터 따지는데 홍콩 사람들은 경제적 능력부터 봐요.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은 그만큼 본인의 능력과 노력이 출중했다고 보고 존경합니다. 아무튼 이런 점에선 한국 사회와 매우 달라요』
 
  ―1997년 7월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와 불안을 나타냈습니다. 공산주의의 획일주의적 통치로 홍콩의 경쟁력이 추락할 수도 있다고 본 것입니다.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생각보다 중국의 영향력은 크지 않았습니다. 제가 부임한 것이 1998년 5월인데 2년반 가까이 지켜보면서 중국이 사려 깊게 행동한다고 느꼈습니다. 과거 홍콩을 떠났던 사람들의 3분의 1이 돌아왔다고 하지 않습니까. 홍콩은 앞으로도 괜찮을 겁니다』
 
  그는 홍콩이 갖고 있는 금융기술·정보·통신에서의 우월성을 한국이 잘 활용해야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때문에 한국에서 구조조정 등의 이유로 인원을 줄이더라도 홍콩에는 더 우수한 人材들을 내보내 정보를 빼내와야 될 중요 포스트라고 말했다.
 
 
  외무부 의전장 출신
 
 
  申총영사는 1960년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뒤 이듬해인 1961년 외무부에 들어와 사이공, 시드니, 워싱턴, 자카르타 공관들을 두루 거치고 정보문화국장, 美洲국장을 역임했다. 1990년 유고연방 대사로 발령을 받은 뒤 한국 정부 인권대사, 의전장, 이탈리아 대사를 거쳐 1998년 5월 홍콩 총영사로 부임,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83년 美 하버드大 행정대학원(케네디스쿨)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도 받은 실력파이다.
 
  ―우리나라는 늘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强만 쳐다보느라고 주변 국가들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예컨대 동남아 국가들이라면 우리와 부담 없는 친구 사이가 될 수 있을 텐데 우린 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정부 차원에선 동남아와 관계가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강대국 옆에만 있다보니까 강대국만 쳐다보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는 지적은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린 친구가 없는 편이죠. 강국은 우릴 많은 약소국 중의 하나로 볼 뿐이죠. 친구로서 동남아가 필요합니다.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가 약합니다. 설령 교류를 해도 간혹 일부 한국인들은 마치 「점령군」처럼 뻣뻣하고 오만하게 행동해 현지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 인도네시아, 베트남에서 근무하면서도 여러 번 느낀 점입니다』
 
  ―화제를 한국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요즘 홍콩 금융계에서 한국을 보는 눈이 다시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3년 전 외환위기를 맞기 전 상황과 유사한 여론이 형성되지 않는가 걱정도 됩니다. 결국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입니다. 말로만 외쳐왔던 재벌·금융계 구조조정이 결국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죠.
 
  『1998년 11월 金大中 대통령이 한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홍콩을 방문했을 때 기대가 컸습니다. 때문에 홍콩 비즈니스 엘리트들이 한국에 가서 투자할 곳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한국을 쳐다보고 있으면 국내시각과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구조조정(Restructuring), 개혁(reform), 투명성(transparency)이라는 말들은 우리나라에서 나온 단어가 아니라 서구 경영학에서 나온 단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도 그 말들의 진정한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고 서양도 우리의 노력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구조조정은 어디까지나 당사자들 간에 이뤄지는 것인데 여기에 官權이 개입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또 은행개혁을 한다면서 정작 은행장 人事는 官에서 정한 대로 선출되는 방식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죠.
 
  결국 국제금융계에선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구조조정·개혁이 진행됐는데 도대체 그 결과가 뭐냐고 따지는 형국이 지금 상황입니다. 서구는 엄격한 증거주의를 요구합니다. 한국의 은행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말은 무성한데 실제 은행 부실은 늘어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 국제금융계의 지적입니다. 이런 데 대해 한국 정부나 관계자는 명쾌하게 대답을 못하고 있는 거죠』
 
 
  2중 국적이 문제될 것 없는데 국내에선 너무 따져
 
 
  ―홍콩에 나와 있는 한국 금융기관이 IMF 위기 이후 사실상 홍콩 금융기관들로부터 자금을 조달받지 못해왔는데 아직도 그렇습니까.
 
  『네. 우리 금융기관은 아직 돈을 빌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한 신용도가 회복되지 못한 상태죠』
 
  ―왜 우린 구조조정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걸까요.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다가는 3년 전과 같은 상황이 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정부에서 구조조정 방향은 잡았는데 실천방법에서 혼선이 있는 것 같아요. 동·서양 접근방법의 차이라고 할까요. 예컨대 은행장 인사도 우린 학교, 지역 등을 따져서 안배형 인사를 하는 데 반해 서구는 무자비할 정도로 실적주의 인사죠.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나이도, 이중국적자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게 서구 관행인데 우린 따져야 될 것이 너무 많아요. 그러다보니 시간이 흐르고…』
 
  ―정말 빈말이 아니고 밖에 나와 세계를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 급변하는 상황이라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인데 정작 국내상황을 보면 왜 우린 늘 그 모양 그 꼴 舊態(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나 하면서 한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중 하나가 우리의 유교사상과 거기서 비롯된 사고방식 때문이 아닐까요. 우린 예전부터 科擧 등의 시험제도를 통해 엘리트를 충원해 왔습니다. 즉 주어진 문제에 주어진 해답을 쓰는 사람이 엘리트로 인정받아 왔을 뿐입니다. 반면 서양에선 주어진 문제에 예상대로 반응하는 「모범생」보다는 새로운 문제에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창의력 있는 사람들이 보다 대접을 받아왔습니다. 새로운 사태를 만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의 소유자가 지금 국제화시대에 필요한 人材들입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이 국제적으로 호환성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창의력 없는 한국의 엘리트 시스템』
 
 
  ―요즘 남·북한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으로 높이 평가받을 만하지만 그 추진방식은 역시 舊態, 舊式(구식) 그대로 아닙니까. 이런 국가적 중대사가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그 밑의 관료들은 그저 쫓아가기 바쁜 식으로 일반인들에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우리 왼편엔 세계 제일 의 13억 인구대국 중국이, 오른편엔 세계 경제 2위 대국 일본이 위치해 있고 여기에 미국과 러시아가 잔뜩 지켜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의 머리는 엄청나게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며 촉각은 사통팔달해야 합니다. 그저 우리 식대로 보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고, 주어진 문제에 주어진 해결방식을 취하는 것으로선 위기관리가 안 되죠.
 
  구조조정 문제만 봅시다. 구조조정이란 조직에 이익을 가져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되는가 라는 개념(concept)부터 정해놔야 하는데 우리 구조조정은 그저 사람 자르는 일뿐입니다. 그것도 나이순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은 개인을 중시하는 것인데 우리 조직은 획일주의에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외국 기업에서 長을 맡는 사람은 그 회사에 몇 %의 이익을 내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하시라도 나가야 되는 것도 불문율이죠. 우리는 학력 좋고 고향 좋으면 長이 될 수 있습니다. 주어진 답안지 작성에 익숙한 우리나라의 엘리트들은 자신이 長이 되면 후배들은 자기 의견을 집행하는 卒兵(졸병) 정도로 생각하고 부리게 됩니다. 이런 악순환이 문제입니다』
 
  ―홍콩 금융계에선 現代사태를 매우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혹시 제2의 기아, 대우 사태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現代를 지금 상태로 끌고 간다면 시간이 갈수록 손해만 커진다는 견해가 주류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옛말이 있듯이 수지가 안 맞으면 그만둬야 합니다. 아마도 홍콩 금융계에선 현대그룹 계열사 중 손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가망 없는 기업들은 빨리 정리해야 현대그룹의 신용도나 경쟁력이 되살아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나라 기업들의 原價계산방식이 서구처럼 정확하다면 이처럼 부실기업들을 장기간 방치하진 않았을 겁니다. 안 되는 회사는 망하게 하는 것이 순리 아닙니까』
 
  ―한국의 내셔널리스트들은 한국 기업들을 망하게 한 뒤 외국 기업들이 들어와 헐값에 「기업사냥」을 할 것이라고 걱정하는데.
 
  『어느 나라나 애국심이 과잉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보십시오. 왜 全세계가 美 연방준비위 의장 그린스펀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어야 합니까. 왜냐하면 바로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힘의 질서하에선 우리로선 최대한 현실적으로 빨리 적응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래서 상황을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고 가거나 아니면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제국주의나 대국의 횡포라는 등 감정을 내고 분노한다고 일이 해결됩니까. 이런 상황에서 어떤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국제관계는 본질적으로 弱肉强食
 
 
  ―소위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하에서 新금융질서는 금융경쟁력이 뛰어난 미국 등 서구자본가들이 낙후돼 있는 기타 나라 자본가들을 윽박질러 공정한 경쟁이란 명목하에 게임을 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예컨대 핸디 싱글 국가가 핸디 두 자릿수 국가들과 함께 골프게임을 벌인다면 승자가 누가 되겠습니까. 되돌아보면 서구국가들은 지난 18세기 때 식민지 쟁탈전 때도 항상 그럴 듯한 명분과 논리를 내세워 자신들의 非行(비행)을 합리화했습니다.
 
  『외교관 생활을 오래하면 할수록 인간 세상은 근본적으로는 동물과 다름없는 弱肉强食(약육강식)의 세상이란 점을 실감하게 됩니다. 외교관은 실용적으로 사물에 접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골프 핸디 3이고, 咸기자가 핸디 10이라면 워낙 실력차가 나는 관계이므로 내가 친절하게 가르쳐 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이 핸디 3이라면 그것은 철저한 경쟁관계입니다. 만약 100만 달러가 걸린 게임이라면 상대방을 철저히 쓰러뜨리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 인간세상사요, 국가 對 국가 관계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고생을 덜해서 그런지 세상을 너무 낭만적으로 보는 견해가 많더군요.
 
  독일에서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달릴 때 벤츠 200, 300 승용차는 벤츠 500이나 페라리 스포츠카가 뒤에서 달려오면 주행선에서 양보하는 것이 불문율로 돼 있습니다. 이것이 힘의 윤리이자 질서입니다. 상대방도 살고 나도 사는 방법이죠.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힘을 소유하고 있는 나라인지, 또 약점과 강점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려고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린 마음과 몸을 닫지 말고 적극적으로 우리 이웃과 외국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원로 외교관으로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우린 머리로 살아야 하는 민족입니다. 아시다시피 부존자원도 별로 없고 강대국에 둘러싸인 나라 아닙니까. 교육만이 살 길이죠. 이제 全세계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는 21세기에서 우리는 서로 도와줄 수 있는 많은 외국 친구들을 사귀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신용이 중요합니다. 제 신용을 키우기 위해선 정직해야 합니다. 좋은 인상을 주고 약속을 지키며 겸손하게 처신해 나갈 때 친구가 생기며 자연히 힘도 커지게 됩니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