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비서실장이 전화로 통보
지난 1·13 개각에서 洪淳瑛(홍순영) 외교통상부 장관은 왜 落馬(낙마)했을까.
외교부의 고위 간부들이 「충격」이라고 표현하기를 서슴지 않을 정도로 洪장관의 낙마는 예상 밖이었다.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에다, 포용정책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를 이끌어내 최소한 4·13 총선이 끝날 때까지는 유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외교부는 洪장관의 유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1월24일부터 2월3일까지 예정된 洪장관의 러시아, 모로코, 코트디부아르, 남아공화국 순방을 착착 준비해 가고 있었다. 宣晙英(선준영) 전 외교부 차관(유엔대사 내정자)은 개각 발표 바로 전날 한 모임에서 『洪장관의 유임을 100% 자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각설이 나오자,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들은 洪장관이 유임할 것으로 보고, 취임한 지 2년이 다 돼가는 韓悳洙(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이 어떤 자리로 옮기느냐에 취재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洪장관의 경질 직후 외교부 주변에서 나온 분석은 당시 현안이던 「7인의 탈북자」 문제를 적절히 다루지 못한 데 대한 문책인사라는 것이었다. 탈북자 문제에 대한 부적절한 대처로 인해 총선을 앞두고, 야당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으니 화근을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차츰 이러한 분석은 여권에서 洪장관 경질에 대한 뒷얘기가 흘러나오면서 설득력을 잃었다.
외교부 주변에서는 洪장관의 경질은 여권 실세들과 불편한 관계였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洪장관은 林東源(임동원) 국정원장과 함께 정부의 포용정책을 몸으로 체화시켜 말할 수 있는 有二(유이)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여권의 핵심과 마음을 트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변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洪장관은 1월13일 개각 발표를 불과 22분 앞둔 6시38분에야 자신의 거취를 알 정도로 전격적으로 경질됐다. 洪장관이 이날 오후 6시 정부중앙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총리 이취임식에 참석한 후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청와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청와대 韓光玉(한광옥) 비서실장실에서 걸려온 전화는 洪장관이 있는지를 확인한 후, 李廷彬(이정빈)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의 핸드폰 번호와 자택 전화번호를 물었다. 전화를 받은 여비서는 직감적으로 장관이 경질되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洪장관이 장관 집무실로 들어가 韓光玉 실장으로부터 경질을 통보받은 후 굳은 표정으로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洪장관은 외교부의 고위 간부들이 놀란 표정으로 회의에 참석한 후 신임 외교부 장관으로 임명된 李廷彬 국제교류재단 이사장과 통화를 했다. 李장관에 따르면, 서울법대 동기 사이인 洪장관은 『당신, 장관되는 줄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며 『축하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인사 청탁마다 거절
실제로 洪장관은 유임이 되면,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기로 하고, 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외교부 대변인실은 이 언론사와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예상 질문지를 미리 받은 후 각 실국별로 「모범답안」을 준비할 정도였다.
朝鮮日報 정치부가 洪장관이 경질된다는 사실을 알고, 이날 오후 5시30분 洪장관을 독대했을 때도 洪장관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후임 장관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그런 것을 나에게 취재하면 어떡하느냐, 기자가 취재해서 알려줘야지』라며 불쾌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전격 경질된 洪장관에 대해 청와대는 朴晙瑩(박준영) 대변인의 공식브리핑을 통해 개각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洪淳瑛 외교부 장관의 교체배경에 대해 차관급 인사와 탈북자 처리미숙 등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으나 洪장관은 능력 있는 분으로 특별한 흠이 없다. 기본적으로 외교부가 개혁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고, 새 시대를 맞아 새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점이 교체의 배경이다. 해외공관은 더욱 개혁돼야 한다』
朴대변인의 말을 뜯어보면, 洪장관이 능력은 있으나, 국민의 정부 개혁에 다소 소극적이었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진다. 이 때문인지, 새로 부임한 李廷彬 장관의 취임 첫 마디는 외교부의 인사시스템과 제도를 대폭 개혁하겠다는 것이었다.
외교부에서는 朴대변인의 브리핑이 절반은 진실을 얘기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외교부의 한 중간 간부는 『洪장관이 능력있고 특별한 흠이 없는데 경질됐다면 권력층과의 불화밖에 더 고려될 것이 있느냐』고 말했다. 이 중간 간부의 말대로 적어도 외교부에서는 「인사문제로 인한 권력층과의 불화설」이 洪장관의 경질을 설명하는 키워드라고 믿고 있다.
외교부 주변에서는 洪장관이 구체적으로 권력 실세들과 불화를 맺은 이야기들이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명해서 나돌고 있다. 그중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는 세 가지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여권 실세 A씨가 지난해 洪장관에게 외교부 고위 간부인 B씨를 승진시켜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B씨는 A씨의 자녀가 외국에 있을 때 현지에 근무하면서 가끔 A씨의 자녀를 돌봐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A씨는 직접 洪장관을 만나 B씨의 승진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 洪장관은 굉장히 거센 어조로 A씨의 부탁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후 A씨는 洪장관에 대해 상당히 불괘하게 생각해왔던 것으로 정가에는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여권 실세인 C씨도 외교부 고위 관리인 D씨의 大使(대사) 진출 문제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C씨는 『D씨가 현직을 마치고 난 후 다음 보직을 선진국으로 가게 해 달라』고 洪장관에게 요청했었다고 한다. D씨의 경우, 이 정도 직책을 마치고 나면 C씨가 말한 곳의 대사로 나가는 것이 그렇게 무리한 인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洪장관은 역시 『인사원칙상 불가하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그후 사적인 자리에서 C씨가 『洪장관이 너무 오만하다』고 말한 것이 洪장관에게 전달돼 洪장관과 C씨를 모두 잘 아는 외교부 고위 간부가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똑똑하면 데려다 써라』
또 다른 여권 실세 E씨도 비슷한 인사청탁을 하다 거절당했다. E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외교부內의 F서기관에 대해서 洪장관에게 인사청탁을 했었다. 소위 외교부內에서 핵심부서가 아닌 외곽부서에 있던 F씨를 좀더 좋은 자리로 옮겨달라는 내용이었다. E씨가 『F서기관이 똑똑하니 좋은 자리로 옮겨달라』고 부탁하자, 洪장관은 『그렇게 똑똑하면 데려다 써라』며 아예 말을 잘라 버렸다고 한다.
일련의 사건 후 여권에서는 洪장관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다고 오만하다는 평이 나돌기 시작했다. 평소 국회에서나 黨政(당정)협의회에서 여당 국회의원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됐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말 洪장관이 자신의 충주고 후배인 潘基文(반기문·외시 3회) 오스트리아 대사를 차관에 기용한 것이 권력핵심부와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洪장관은 사실 처음부터 潘차관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당초 洪장관은 李在春(이재춘) 러시아 대사 내정자(당시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를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李대사가 외무고시 1회 선두주자라는 상징성이 있는데다가 그 전에 이미 제1차관보를 역임,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한다. 李대사내정자는 일본 1등서기관-동북아1과장-미국참사관-일본참사관-아주국장-일본공사 등 화려한 경력으로 외교부內에서는 차관 0순위였다.
그러나 여권에서 李연구위원에 대해서 부정적 사인을 보내왔다고 한다. 李대사는 1995년 외교문서 변조사건으로 당시 야당이던 국민회의가 수세에 몰려 있을 때 외무부 제1차관보를 맡아 국민회의의 「블랙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특히 동교동계는 李차관보를 뉴질랜드 대사 소환 등의 강경대응을 주도한 인물로 파악,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정권교체후 李차관보를 아끼는 원로 외교관들은 당시 李차관보가 어쩔 수 없이 총대를 멨을 뿐이라며 李대사를 옹호했지만 그 앙금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여권에서는 이런 이유로 목포고-서울법대 출신의 崔成泓(최성홍·외시 3회) 영국대사를 차관후보로 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崔대사는 金大中 대통령과 같은 고향인 하의도 출신으로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金恒經(김항경·1970년 입부) 캐나다 대사도 차관후보로 거론한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洪장관은 崔대사와 金대사가 차관이 되는 것이 외교부의 인사원칙에 어긋난다고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洪장관은 고민 끝에 「潘基文 차관」안을 직접 金대통령에게 들고가 재가를 받아버렸다. 마침 朴柱宣(박주선) 법무비서관의 사임으로 민정기능이 마비된 상태여서, 미처 여권에서 이를 스크린할 틈도 없었을 정도로 전격적이었다. 여권의 보이지 않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李在春 연구위원을 러시아 대사에 기용했다.
탈북자 사건은 결정적 이유 못돼
여권 일각에서 洪장관에 대해서 분노하는 사이 지난해 말 터진 「7인의 탈북자 사건」도 洪장관의 낙마에 영향을 미쳤다.
권력 핵심도 아니면서 권력 실세들의 사소한 청탁을 모두 거부할 정도로 「단호한」 洪장관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洪장관은 자신이 金대통령으로부터 강한 신임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당당했다는 것이 유력한 분석이다. 洪장관의 측근들이 권력 핵심부와 관계개선을 충고하고 이런저런 자리를 만들려고도 했으나 洪장관이 이를 야단친 것으로 전해진다.
洪장관은 좋게 말하면 내 할 일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른 장관들이 중시했던 권력 실세들과의 관계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외교부는 이런 洪장관을 소신을 지키다가 단명한 장관으로 기억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부 고위 간부들은 洪장관의 낙마를 다르게 해석하기도 한다. 洪장관을 선배 외교관으로 존경한다는 한 고위 간부는 그를 「무책임한 원칙주의자」로 평가했다.
이 간부는 「현실론」을 들면서 『洪장관의 지나친 원칙주의는 결국 외교부 조직을 위해서 좋지 않다. 장관 한 번 바뀌면 대외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다. 2년 동안 3명의 외교부 장관이 들어선 현실을 과연 외국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외국에서 아예 우리를 상대하려 들지 않는다. 洪장관은 정치력을 길러서 개인 차원이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 권력 실세들을 상대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洪장관이 고향인 충주에서 출마할 경우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고사한 것은 洪장관 자신이 정치판에 발을 들여 놓고 싶어하지 않은데다 실세들과의 불편한 관계도 어느 정도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洪 전 장관은 퇴임 후 칩거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의 落馬를 애석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전화라도 해서 만나려고 하면 대부분 『다음에 보자』며 거절하고 있다. 기자가 그의 경질 이유를 물어보기 위해 전화했을 때 그는 딱 부러지는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재직중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직무상 있었던 일에 대해 일체 이야기 않겠다』●
외교부의 고위 간부들이 「충격」이라고 표현하기를 서슴지 않을 정도로 洪장관의 낙마는 예상 밖이었다.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에다, 포용정책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를 이끌어내 최소한 4·13 총선이 끝날 때까지는 유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외교부는 洪장관의 유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1월24일부터 2월3일까지 예정된 洪장관의 러시아, 모로코, 코트디부아르, 남아공화국 순방을 착착 준비해 가고 있었다. 宣晙英(선준영) 전 외교부 차관(유엔대사 내정자)은 개각 발표 바로 전날 한 모임에서 『洪장관의 유임을 100% 자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각설이 나오자,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들은 洪장관이 유임할 것으로 보고, 취임한 지 2년이 다 돼가는 韓悳洙(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이 어떤 자리로 옮기느냐에 취재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洪장관의 경질 직후 외교부 주변에서 나온 분석은 당시 현안이던 「7인의 탈북자」 문제를 적절히 다루지 못한 데 대한 문책인사라는 것이었다. 탈북자 문제에 대한 부적절한 대처로 인해 총선을 앞두고, 야당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으니 화근을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차츰 이러한 분석은 여권에서 洪장관 경질에 대한 뒷얘기가 흘러나오면서 설득력을 잃었다.
외교부 주변에서는 洪장관의 경질은 여권 실세들과 불편한 관계였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洪장관은 林東源(임동원) 국정원장과 함께 정부의 포용정책을 몸으로 체화시켜 말할 수 있는 有二(유이)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여권의 핵심과 마음을 트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변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洪장관은 1월13일 개각 발표를 불과 22분 앞둔 6시38분에야 자신의 거취를 알 정도로 전격적으로 경질됐다. 洪장관이 이날 오후 6시 정부중앙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총리 이취임식에 참석한 후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청와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청와대 韓光玉(한광옥) 비서실장실에서 걸려온 전화는 洪장관이 있는지를 확인한 후, 李廷彬(이정빈)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의 핸드폰 번호와 자택 전화번호를 물었다. 전화를 받은 여비서는 직감적으로 장관이 경질되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洪장관이 장관 집무실로 들어가 韓光玉 실장으로부터 경질을 통보받은 후 굳은 표정으로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洪장관은 외교부의 고위 간부들이 놀란 표정으로 회의에 참석한 후 신임 외교부 장관으로 임명된 李廷彬 국제교류재단 이사장과 통화를 했다. 李장관에 따르면, 서울법대 동기 사이인 洪장관은 『당신, 장관되는 줄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며 『축하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인사 청탁마다 거절
실제로 洪장관은 유임이 되면,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기로 하고, 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외교부 대변인실은 이 언론사와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예상 질문지를 미리 받은 후 각 실국별로 「모범답안」을 준비할 정도였다.
朝鮮日報 정치부가 洪장관이 경질된다는 사실을 알고, 이날 오후 5시30분 洪장관을 독대했을 때도 洪장관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후임 장관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그런 것을 나에게 취재하면 어떡하느냐, 기자가 취재해서 알려줘야지』라며 불쾌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전격 경질된 洪장관에 대해 청와대는 朴晙瑩(박준영) 대변인의 공식브리핑을 통해 개각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洪淳瑛 외교부 장관의 교체배경에 대해 차관급 인사와 탈북자 처리미숙 등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으나 洪장관은 능력 있는 분으로 특별한 흠이 없다. 기본적으로 외교부가 개혁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고, 새 시대를 맞아 새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점이 교체의 배경이다. 해외공관은 더욱 개혁돼야 한다』
朴대변인의 말을 뜯어보면, 洪장관이 능력은 있으나, 국민의 정부 개혁에 다소 소극적이었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진다. 이 때문인지, 새로 부임한 李廷彬 장관의 취임 첫 마디는 외교부의 인사시스템과 제도를 대폭 개혁하겠다는 것이었다.
외교부에서는 朴대변인의 브리핑이 절반은 진실을 얘기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외교부의 한 중간 간부는 『洪장관이 능력있고 특별한 흠이 없는데 경질됐다면 권력층과의 불화밖에 더 고려될 것이 있느냐』고 말했다. 이 중간 간부의 말대로 적어도 외교부에서는 「인사문제로 인한 권력층과의 불화설」이 洪장관의 경질을 설명하는 키워드라고 믿고 있다.
외교부 주변에서는 洪장관이 구체적으로 권력 실세들과 불화를 맺은 이야기들이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명해서 나돌고 있다. 그중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는 세 가지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여권 실세 A씨가 지난해 洪장관에게 외교부 고위 간부인 B씨를 승진시켜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B씨는 A씨의 자녀가 외국에 있을 때 현지에 근무하면서 가끔 A씨의 자녀를 돌봐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A씨는 직접 洪장관을 만나 B씨의 승진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 洪장관은 굉장히 거센 어조로 A씨의 부탁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후 A씨는 洪장관에 대해 상당히 불괘하게 생각해왔던 것으로 정가에는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여권 실세인 C씨도 외교부 고위 관리인 D씨의 大使(대사) 진출 문제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C씨는 『D씨가 현직을 마치고 난 후 다음 보직을 선진국으로 가게 해 달라』고 洪장관에게 요청했었다고 한다. D씨의 경우, 이 정도 직책을 마치고 나면 C씨가 말한 곳의 대사로 나가는 것이 그렇게 무리한 인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洪장관은 역시 『인사원칙상 불가하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그후 사적인 자리에서 C씨가 『洪장관이 너무 오만하다』고 말한 것이 洪장관에게 전달돼 洪장관과 C씨를 모두 잘 아는 외교부 고위 간부가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똑똑하면 데려다 써라』
또 다른 여권 실세 E씨도 비슷한 인사청탁을 하다 거절당했다. E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외교부內의 F서기관에 대해서 洪장관에게 인사청탁을 했었다. 소위 외교부內에서 핵심부서가 아닌 외곽부서에 있던 F씨를 좀더 좋은 자리로 옮겨달라는 내용이었다. E씨가 『F서기관이 똑똑하니 좋은 자리로 옮겨달라』고 부탁하자, 洪장관은 『그렇게 똑똑하면 데려다 써라』며 아예 말을 잘라 버렸다고 한다.
일련의 사건 후 여권에서는 洪장관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다고 오만하다는 평이 나돌기 시작했다. 평소 국회에서나 黨政(당정)협의회에서 여당 국회의원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됐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말 洪장관이 자신의 충주고 후배인 潘基文(반기문·외시 3회) 오스트리아 대사를 차관에 기용한 것이 권력핵심부와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洪장관은 사실 처음부터 潘차관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당초 洪장관은 李在春(이재춘) 러시아 대사 내정자(당시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를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李대사가 외무고시 1회 선두주자라는 상징성이 있는데다가 그 전에 이미 제1차관보를 역임,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한다. 李대사내정자는 일본 1등서기관-동북아1과장-미국참사관-일본참사관-아주국장-일본공사 등 화려한 경력으로 외교부內에서는 차관 0순위였다.
그러나 여권에서 李연구위원에 대해서 부정적 사인을 보내왔다고 한다. 李대사는 1995년 외교문서 변조사건으로 당시 야당이던 국민회의가 수세에 몰려 있을 때 외무부 제1차관보를 맡아 국민회의의 「블랙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특히 동교동계는 李차관보를 뉴질랜드 대사 소환 등의 강경대응을 주도한 인물로 파악,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정권교체후 李차관보를 아끼는 원로 외교관들은 당시 李차관보가 어쩔 수 없이 총대를 멨을 뿐이라며 李대사를 옹호했지만 그 앙금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여권에서는 이런 이유로 목포고-서울법대 출신의 崔成泓(최성홍·외시 3회) 영국대사를 차관후보로 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崔대사는 金大中 대통령과 같은 고향인 하의도 출신으로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金恒經(김항경·1970년 입부) 캐나다 대사도 차관후보로 거론한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洪장관은 崔대사와 金대사가 차관이 되는 것이 외교부의 인사원칙에 어긋난다고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洪장관은 고민 끝에 「潘基文 차관」안을 직접 金대통령에게 들고가 재가를 받아버렸다. 마침 朴柱宣(박주선) 법무비서관의 사임으로 민정기능이 마비된 상태여서, 미처 여권에서 이를 스크린할 틈도 없었을 정도로 전격적이었다. 여권의 보이지 않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李在春 연구위원을 러시아 대사에 기용했다.
탈북자 사건은 결정적 이유 못돼
여권 일각에서 洪장관에 대해서 분노하는 사이 지난해 말 터진 「7인의 탈북자 사건」도 洪장관의 낙마에 영향을 미쳤다.
권력 핵심도 아니면서 권력 실세들의 사소한 청탁을 모두 거부할 정도로 「단호한」 洪장관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洪장관은 자신이 金대통령으로부터 강한 신임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당당했다는 것이 유력한 분석이다. 洪장관의 측근들이 권력 핵심부와 관계개선을 충고하고 이런저런 자리를 만들려고도 했으나 洪장관이 이를 야단친 것으로 전해진다.
洪장관은 좋게 말하면 내 할 일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른 장관들이 중시했던 권력 실세들과의 관계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외교부는 이런 洪장관을 소신을 지키다가 단명한 장관으로 기억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부 고위 간부들은 洪장관의 낙마를 다르게 해석하기도 한다. 洪장관을 선배 외교관으로 존경한다는 한 고위 간부는 그를 「무책임한 원칙주의자」로 평가했다.
이 간부는 「현실론」을 들면서 『洪장관의 지나친 원칙주의는 결국 외교부 조직을 위해서 좋지 않다. 장관 한 번 바뀌면 대외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다. 2년 동안 3명의 외교부 장관이 들어선 현실을 과연 외국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외국에서 아예 우리를 상대하려 들지 않는다. 洪장관은 정치력을 길러서 개인 차원이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 권력 실세들을 상대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洪장관이 고향인 충주에서 출마할 경우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고사한 것은 洪장관 자신이 정치판에 발을 들여 놓고 싶어하지 않은데다 실세들과의 불편한 관계도 어느 정도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洪 전 장관은 퇴임 후 칩거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의 落馬를 애석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전화라도 해서 만나려고 하면 대부분 『다음에 보자』며 거절하고 있다. 기자가 그의 경질 이유를 물어보기 위해 전화했을 때 그는 딱 부러지는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재직중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직무상 있었던 일에 대해 일체 이야기 않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