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면서도 주위의 시선 때문에 떳떳하지 못할 때 가장 힘들어”
⊙ 한국의 동성애자 현재 10만~50만명 선. 드러나지 않은 性 소수자가 훨씬 더 많아
⊙ 남자에게 상처 받고 동성을 만나는 여자들 많아
⊙ 레즈비언들끼리 성생활은?
⊙ 한국의 동성애자 현재 10만~50만명 선. 드러나지 않은 性 소수자가 훨씬 더 많아
⊙ 남자에게 상처 받고 동성을 만나는 여자들 많아
⊙ 레즈비언들끼리 성생활은?
- 지난 6월 13일, 퀴어문화축제(KQCF, Korea Queer Culture Festival)의 일환인 퀴어퍼레이드가 서울시 베를린광장과 청계광장 부근에서 진행됐다. 2000년부터 시작된 국내 퀴어문화축제는 올해 10회째다. 일주일 정도 열리는 축제기간에는 퀴어영화제, 퀴어파티, 사진전 등이 열린다.
필자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찾아간 곳은 여자 동성애자들이 찾는 ‘이반’(異般, 일반의 반대말로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을 일컫는 말)이라는 바(bar)였다. 인터넷 검색창에 ‘레즈비언 바’라고 입력하자 10여 개의 바 이름과 위치가 검색됐다.
컴퓨터 앞에 앉아 몇 번의 클릭으로 얻은 한 줄짜리 정보를 믿고 무작정 찾아간 곳. 어둡고 굽이진 골목에 위치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바는 서울 홍대 거리 한복판에서 불을 밝히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입구 없이 바로 술집이 나왔다. 바텐더를 바라보게 앉는 ‘ㄱ’자 모양의 바와 자주색 쿠션 의자, 붉은 빛 조명, 벽에 붙은 대형 LCD TV 등이 보였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카페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자 흰색 벽면에 키스를 하고 있는 두 여자의 그림이 있었고, 그림 아래 ‘Only For Ladies(여자만 출입 가능)’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왼쪽을 바라보자 바의 전면 유리벽 밖으로 홍익대의 강의실 불빛들이 반짝였다.
비가 내린 후 바람이 차가웠던 날씨 탓인지 오후 10시쯤, 술집에는 단 한 명의 손님도 없었다. 필자는 쭈뼛대며 바텐더를 마주보고 앉았다. 바텐더 뒤쪽 벽에 붙어 있는 전광판에는 ‘매주 금요일 D-time(댄스타임)’ ‘이반 업계 최초’ ‘여기 물 좋아요 우왕 굳!’ 등의 문구가 흘러가고 있었다. 필자가 찾은 곳은 이반 업계 최초의 술집으로 13년째 운영되고 있다.
커트 머리의 바텐더가 “왜 혼자 왔느냐”고 묻더니 “맥주나 한 잔 하고 가라”고 했다(바를 운영하는 사장과 직원은 모두 동성애자다). 바텐더에게 맥주를 따라 줬다. 서로의 나이를 묻고 동갑인 것을 확인한 뒤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바텐더는 필자를 ‘당연히’ 레즈비언이라 생각하고 “애인 없어?”라고 질문을 했다. 순간 머릿속으로 남자친구를 떠올렸지만 그가 묻는 애인은 동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인지했다. 없다고 했다.
“너 팜므(femme)지? 버치(butch) 많이 있는 술집 소개해 줄까? 거기는 솔로들이 많이 오거든.”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나는 긴 머리의 팜므가 좋다”는 말을 듣고서야 ‘팜므는 여성성이 강한 레즈비언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했다.
레즈비언 사이에서 性(성)역할 구분, 남성적, 여성적인 것에 대한 특징을 나타낼 때 다이크(dyke)와 버치(butch), 팜므(femme) 등의 용어가 사용된다. 보통 다이크나 버치는 남성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사용되고, 팜므는 그 반대의 경우에 사용된다. 이러한 단어가 성 역할을 고정시키고 이성애 제도를 모방해 표현한다는 이유로 단어 사용을 거부하는 레즈비언들도 있다.
한두 잔의 술잔이 오고 가면서 그는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꺼냈다. 고등학교 동창인 애인과 3년째 교제하고 있고 일곱살 때 유치원 여선생님을 좋아하면서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정이 가까워져 이제 일어나야겠다고 하자 그는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면서 “매주 금요일에는 ‘댄스 타임’이 있으니 그때 친구들과 함께 오라”고 했다.
레즈비언과 친구 되다
그 주 금요일 다시 바에 들렀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던 여자 4명이 모두 8층에서 내렸다. 처음 왔을 때와는 달리 가게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문득 ‘이반 바에 금요일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면 전국의 이반들은 몇 명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홍대와 신촌, 이태원 등에만 수십 개의 이반 바가 있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한국의 동성애자가 현재 10만명”이라 발표했지만 필자가 취재를 하며 만났던 한 이반 인터넷 커뮤니티 운영자는 “50만명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보신당 성정치기획단의 崔賢淑(최현숙) 후보는 “사회에 드러나지 않은 性(성) 소수자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그 수를 파악하는 것은 힘들다”고 말했다.
며칠 전 얼굴을 익혔던 바텐더와 인사를 나누고 바의 한쪽에 앉았다. 옆자리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에게 “혼자 와서 심심한데 같이 이야기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검은색 긴 머리와 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진 미인형이었다. 그는 흔쾌히 자신의 옆자리로 오라고 했다.
그로부터 “말 편하게 놓고 친구 하자”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를 바에서 만난 이후로 두 달 동안 8번 정도 만나 식사를 했다. 만날 때마다 그는 애인과 사랑하고 다투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소수자라는 동질감 때문일까. 일반인들이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이들끼리는 더 쉽게 가까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필자를 모두 동성애자로 생각했다. ‘이반 바’에는 ‘이반’이 간다는 인식 때문인지 한 번도 필자에게 同性愛(동성애)자인지, 兩性愛(양성애)자인지 등을 묻지 않았다. 의도치 않게 동성애자로 속이며 친구를 만났다. ‘다음에는 꼭 異性愛(이성애)자임을 밝히고, 취재를 하고 있는 중이라 말해야지’를 다짐했지만 그가 느낄 배신감이 무서워 매번 그냥 돌아섰다.
하루는 소심하게 ‘할 말이 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후 레즈비언(이반) 친구를 만났다. “애인이 생겼다”고 말하자 “축하한다”면서 어떤 사람인지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애인이 남자야. 남자를 만나고 있어”라고 말한 후 그의 반응을 살폈다.
“상관없어. 내 주변에는 동성도 좋아하고 이성도 좋아하는 양성애자가 80%야. 완전한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는 각각 10% 정도밖에 안되는 것 같아. 남자한테 상처를 받아 동성을 만나는 여자들이 많아. 친구 중에 낙태를 한 후부터 남자를 못 만나는 여자도 있어. 양성애자들은 다시 이성애자가 될 가능성도 있지. 그런데 직접 남자도 만나 보고 여자도 만나 봐야 자신의 성향이 어떤지 확실하게 알 수 있어.”
필자는 자취하고 있는 그의 집에도 놀러가고 그의 애인도 만났다. 레즈비언 친구의 생일날에는 초대를 받아 이반 바에서 열린 생일 파티에도 참석했다. 필자 외에 초대된 사람들은 모두 동성애자였다.
룸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던 세 명 중 두 명은 짧은 커트머리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대학생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버치(남자 성향의 레즈비언) 같았던 그들은 “오늘은 예쁜 팜므가 많아서 좋다”고 말했다.
술을 마시고 음악이 나오면 무대로 나가서 춤을 췄다. 음악도, 분위기도 홍대의 여느 클럽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다만 모두가 여자였다. 맞은편 테이블에서는 짧은 커트머리를 한 여자가 긴 생머리를 한 여자의 허리를 한 손으로 감싼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자정쯤 술집의 2층에도 사람들로 가득 찼고, 아직도 입구에는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레즈비언 친구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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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알리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언제부터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게 됐어? 처음에 혼란스럽지는 않았어?
“초등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아. 내가 예쁜 여자애들을 좋아하니까 엄마가 ‘넌 여자만 좋아해서 어떡하니’라고 하시더라고. 그때는 여자 친구를 좋아하는 감정이 친구에 대한 집착이라고 생각했어. 그런 고민을 초등학교 5학년 때, 네 살 많은 동네 언니들에게 털어놨더니 ‘여자가 여자를 사랑해도 괜찮다’고 말해 줬어. 그때 ‘이반’이란 단어도 처음 들어 봤고 나의 행동과 감정 등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
―중·고등학교 때도 주위에 동성애자 친구들이 많았어?
“중학교 때는 한 학년에 열 명 이상이 이반이었던 같아. 양성애자는 수없이 많았지. 당시에는 ‘팬픽’(fan fic은 fan fiction의 약자. 만화, 소설, 영화 등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작품을 팬들이 자신의 뜻대로 내용을 재창작한 것-편집자 주)이란 것이 유행이었거든. 중학교 때 인기가 많았던 연예인들이 팬픽 대상이었어. 예를 들면 남자 가수 A랑 B가 사랑을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동경했지. 고등학교 때 성 정체성이 생기면서 그 수가 많이 줄지만 학창시절에 같은 성끼리 좋아하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레즈비언 친구는 초등학교 때 친언니와 쌍둥이 여동생에게 커밍아웃(coming out,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을 했다. 그의 언니는 중학교 때 여자를 사귀어 봤지만 좋지 않게 헤어져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쌍둥이 여동생 중 한 명은 가장 친한 여자 친구에게 고백을 받아 본 후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게 돼 그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인터뷰에 동석한 A씨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는 2년 전 어머니에게 동성애자임을 밝혔다가 한동안 외출을 할 수 없었어요. 부모님의 완강한 태도에 못 이겨 ‘잠시 동성애자로 착각했었다’라고 말씀 드렸죠. 지금도 부모님은 여자와 통화를 하면 ‘누구냐’며 긴장을 하세요.”
레즈비언 친구는 “일주일 전쯤 회사에서 강제로 아웃팅을 당했다”고 말했다. 친하게 지내던 회사 언니에게 동성애자임을 밝혔는데 그 언니가 퇴사를 하면서 직원들에게 ‘누구는 동성애자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내가 ‘왜 그랬느냐’고 물어봤더니 그 언니는 ‘아무 생각 없이 말이 나왔다’고 했어. 정말 배신감 느꼈어. 아무 생각 없이 말할 정도로 나의 상황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 화가 많이 났어. 앞으로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졌지.”
“나의 꿈은 현모양처”
그는 “그 후 사람들이 일주일 정도 말을 걸지 않았다”고 했다. 호모포비아(homophobia, 동성애나 동성애자에 대해 두려움과 혐오감을 갖고 있는 것. 동성애 혐오증, 동성애 공포증이라고도 한다-편집자 주)인 한 선배와는 관계가 어색해졌다고 했다.
레즈비언 친구는 가끔 점심시간에 필자에게 “회사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데 같이 먹자”는 전화를 했다. 이 친구의 회사는 필자가 있는 곳과 가까운 곳에 있다. 인터뷰는 계속 이어졌다.
―배우 홍석천을 봐도 알 수 있듯이 게이들이 커밍아웃을 하는 경우는 많잖아. 그런데 레즈비언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맞아. 커밍아웃을 했을 때 득이 되는 건 하나도 없어. 그리고 사회에서 게이보다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힘들어. 동성애자들 중 가장 살기 힘든 사람들이 레즈비언 중 남성적인 성향이 강한 버치들이야. 여자의 몸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하거든. 그런 능력이 없으면 사랑하는 여자를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남자에게 뺏긴다는 피해의식이 있어. 아직까지 사회에서 남자보다 여자가 돈을 버는 것이 더 힘든 것은 사실이잖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나도 일을 하고 있는 거고.”
―주위에 결혼을 한 레즈비언들도 있어?
“평소 알고 지냈던 동성애자가 결혼한다고 연락이 왔어. 성당이나 교회에서는 결혼식을 못해. 식장을 빌려 하기보다는 주로 동성애자들이 이용하는 야외 카페나 식당 등에서 하지. 술집(필자와 친구가 만났던 술집) 사장님은 사장님 가게에서 결혼식 올렸어. 정식으로 결혼 절차를 밟아서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곳은 찾기 힘들지. 나도 처음에는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는데 주위에서 하는 것을 보니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는 올해 10월부터 동거하고 3년 안으로 결혼할 거야.”
하지만 인터뷰를 하고 난 한 달 후쯤 레즈비언 친구는 애인과 헤어졌다. “결혼을 해도 아이를 가질 수 없지 않으냐”라고 묻자 동석했던 A씨가 대답했다.
“아이를 갖지 않고 평생 둘이 같이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저는 초등학교 때 난자끼리 수정해서 착상하는 의술도 발명됐다고 들었어요. 인공수정이기 때문에 성공률도 굉장히 낮고 비용이 비싸겠지만 돈만 있으면 여성끼리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으로 알아요.”
난자끼리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봤다. 2001년 영국 BBC 방송과 데일리 텔레그래프 등의 언론이 ‘호주 과학자들이 정자 없이 난자를 인체세포 내의 염색체를 이용해 수정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는 기사가 발견됐다. 그러나 이는 정상적인 수정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화학적 기술을 이용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수정과정을 거친 배아가 그 이후 생존능력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레즈비언 친구와 A씨는 “우리들은 믿음과 사랑으로 事實婚(사실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동성애자를 가리킬 때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A씨의 말이다.
“요즘은 이성끼리 결혼해도 쉽게 이혼하잖아요. 법적으로 부부가 아니라고 해서 그 관계가 더 가볍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제 주위에 10년 동안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이반도 있어요. 자식이 없을 뿐이죠. 저도 동거하고 있는 애인과 결혼할 생각이 있고요.”
레즈비언 친구는 “나의 꿈은 현모양처”라며 “내 애인에게 정말 좋은 부인, 자식이 생긴다면 정말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여자가 남자로 性 전환 수술
―한국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사랑을 하면서도 주위의 시선 때문에 떳떳하지 못할 때 가장 힘들어. 이런 감정은 팜므보다 버치가 더 많이 느끼지. 주위에서 남자들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고, 연락처를 물어볼 때 옆에 있는 애인이 ‘제 여자친구인데요’라는 말을 할 수 없잖아. 한 번은 남자가 연락처를 물어봐서 내 옆의 사람이 애인이라고 말했거든. 그랬더니 거짓말하지 말라고, 그럼 내 눈 앞에서 키스해 보라고 했던 사람도 있었어.”
이성애와 동성애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레즈비언 친구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물어보는 질문 자체가 이상하다”며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거잖아. 남녀가 연애하는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도 연애하고 사랑하는 거지. 친한 친구들에게 동성애자인 것을 밝힐 때 제일 먼저 ‘잠자리는 어떻게 해?’라고 물어봐. 비밀스러운 이야기라 대답하기 난감할 때가 많지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이라는 것은 이해하지. 우리는 서로가 남녀의 신체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 그거 하나만 제외하면 사랑하는 마음은 다 똑같아.”
필자는 “같은 질문을 해서 미안한데 잠자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기구를 이용해서 하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 커플은 손을 사용한다”고 했다.
레즈비언 친구에 이어 이번에는 여자가 여자를 사랑해 남자로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을 만나보았다.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밝힌 박모(47)씨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술집을 운영하고 있다. 필자가 찾아가자 박씨는 의자에 담요를 깔아 주더니 앉으라고 했다. 곧 허브차와 과자를 조금 꺼내 왔다.
필자는 계속 서 있는 그에게 “혼자 앉아 있어서 미안하니 마주보고 앉으라”고 권했다. 그는 “몸이 불편해서 서 있는 것이 편하다”며 “성전환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작년 1월에 연예인 하리수씨가 수술했던 부산 동아대학 병원에서 수술했어요. 지금은 호르몬제를 맞으면서 회복 중이에요.”
그때까지도 필자는 박씨가 남자에서 여자로 수술을 한 것인지, 여자에서 남자로 수술을 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외모와 목소리는 남성적이었지만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모습과 가게를 청소하는 모습 등은 섬세했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의 말이다.
“남자에서 여자로 수술하는 경우는 많이 보편화됐어요. 인터넷에 수술 장면의 동영상도 올라와 있고. 그런데 저처럼 여자에서 남자로 수술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수술 전에 정보를 구하느라 굉장히 힘들었어요.”
외국으로 가서 수술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수술 후 6개월 정도는 병원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부담됐고 ‘에이에스(AS, After Service)’가 되지 않는 불편함이 있어 한국에서 수술을 하기로 결심했단다. 늦은 나이에 수술을 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대학을 다닐 때 한 여자를 사랑했어요. 여러 가지 문제로 헤어지게 되면서 온전한 남자로서 여자를 사랑하고 싶었어요. 생각은 그랬지만 죽을 때까지 나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내고 싶었고, 수술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뒤늦게나마 가정을 갖고 싶더라고요. 사랑하는 여자와 아이를 갖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수술하게 됐어요.”
박씨에게 동성애에 관한 질문을 하자 “나는 이제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이며 남자다”라고 대답했다.
性 전환자 호적 변경도 가능
박씨는 현재 戶籍(호적) 변경을 신청한 후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연예인 하리수(본명 이경은)씨는 2002년 호적 변경을 받았다. 일반인 중 호적 변경을 승인받은 경우도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6년 6월 성전환 수술을 한 여성 李(이)모씨가 ‘남성’으로 호적을 바꿔 달라며 청주지법에 낸 호적 정정신청이 불허된 사건에 대해 원심을 파기함으로써 사실상 성전환자의 호적 변경을 허용했다.
대법원은 그해 9월부터 성전환 허가기준 마련 등의 내용을 포함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을 제정해 실시했다. 대법원 공보관실 자료에 따르면 성전환 허가 기준이 마련된 2006년 이후 수락된 성별 정정건수는 작년까지 총 54건이다. 2006년도 10건, 2007년도 15건, 2008년도 29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남자에서 여자로의 성별 정정건수는 48건, 여자에서 남자로의 성별 정정건수는 6건이다.
호적 정정을 하려면 정신과 의사로부터 性轉換症(성전환증) 진단을 받아야 한다. 1990년 7월 대한비뇨기과학회 학술위원회가 발표한 ‘성전환증 수술 적응증’에 따르면 성전환증은 근본적으로 정신과 질환이기 때문에 정신과의 진단이 있어야 한다.
성전환 수술을 하려면 2년 정도 정신과 진료를 했을 때 성 정체성의 변화가 없어야 하며, 21세 이상으로 사춘기가 지나야 한다. 신체 외형도 원하는 성에 어울려야 한다. 그 외에 犯法(범법) 기록이 없고 범죄 이용 가능성이 적다는 판단이 정신과 치료로 입증돼야 한다.
성전환자 박씨를 통해 호적 변경에 필요한 서류에 관한 자료를 받았다. 호적 변경을 신청하려면 총 6가지의 자료를 서면으로 제출해야 한다. 지방법원마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의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박씨가 수원가정법원에 제출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가족관계 등록부의 기본증명서와 가족관계 증명서 및 주민등록표 등본 ▲신청인이 성전환증 환자임을 진단한 2명 이상의 정신과 전문의사의 진단서와 감정서 ▲신청인이 성전환 수술을 받아 현재 생물학적인 성과 반대되는 성에 관한 신체의 성기와 흡사한 외관을 구비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성전환 시술 의사의 소견서 ▲신청인에게 현재 생식능력이 없고 향후에도 생식능력이 발생하거나 회복될 가능성이 없음을 확인하는 전문의사 명의의 진단서나 감정서 ▲신청인의 성장환경진술서 및 2명 이상의 증서 ▲부모의 동의서 등이다.
性 전환 수술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이런 서류가 제출되어야 서류 심사에 통과된다. 필자는 ‘모 대학 교수가 성전환 수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깊이 생각해 보았지만 사회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은 대단히 사적인 문제라 취재에 응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자가 여자가 되고, 여자가 남자가 되는 성전환 수술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국내 성전환 수술의 80% 정도를 담당하고 있는 부산 동아대 의대 金碩權(김석권)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는 연예인 하리수의 성전환 수술을 담당했다.
1986년에 국내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시도한 김 교수는 현재까지 230여 명을 수술했다. 남성에서 여성(MTF, Male Toward Female)으로의 수술이 150여 건, 여성에서 남성(FTM, Female Toward Male)으로의 수술이 80여 건이며, 1989년 이후 매년 10~15명을 수술하고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이러한 수술 경험을 바탕으로 ‘성전환증 환자의 질 성형술’ ‘직장S상결장을 이용한 질성형술’ ‘전완부유리피판술을 이용한 음경재건술’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김 교수는 “성전환자는 ‘성 정체성 장애자’이며 동성애자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성애자는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성전환자는 정신과 육체의 성이 달라 성전환 수술을 통해 성을 바꾼 사람이라고 한다. 동성애자 중 성전환 수술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1986년 부산대 의대 전임강사 시절, 고환과 음경을 절단한 사람이 김 교수에게 찾아와 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당시 김 교수의 전공은 두개안면성형으로 얼굴 기형 치료가 주 분야였다. 처음에는 “그런 수술에 관심도 없고 모른다”며 돌려보냈다. 두 달 후쯤 성기를 절단한 다른 사람이 찾아왔다. 그때부터 성전환 수술을 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고, 미국과 유럽 등의 외국 논문을 찾아봤다. 당시 스웨덴과 독일, 프랑스 등은 성전환 수술을 합법적으로 시행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외국 논문 내용을 읽어보니 성형수술 기법을 이용하면 질을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피부 이식을 해서 질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산부인과에서도 무질증 환자에게 피부를 이식하여 질을 만들어 줬다. 김 교수는 “관련서적을 읽는 중 ‘싱가포르 피판(skin flap)술’을 접했다”며 “이후 나는 국내 최초로 피판술을 통해 질을 만들었고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 일문일답.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전환 수술은 어떤 방법으로 이뤄지는가.
“두 단계를 거친다. 우선 유방과 난소, 자궁, 난관 등을 제거한다. 다음으로 팔뚝 피부를 이용해 남자의 성기를 만든다. 팔뚝피부의 동맥, 정맥, 신경분포 등이 음경의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동맥과 정맥, 신경 등이 들어 있는 팔뚝의 피부를 말아 성기처럼 원통 모양으로 만든 뒤 팔뚝에서 떼어낸다. 성기 모양을 유지시키기 위해 팔뚝의 요골과 척골 부분에 있는 뼈를 잘라내어 넣는다. 성인이 발기된 크기보다 약간 작은 크기로 만든다. 이것을 음부의 동맥, 정맥, 신경과 연결한다.”
―수술 후 성생활은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가.
“2개월 정도 후에는 정상적인 성생활이 가능하다. 수술을 해도 타고난 성적 쾌감은 바뀌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은 사정은 하지 않은 채 성적 접촉과 흥분을 통해 여성의 오르가슴을 느낀다. 그러나 정자와 난자가 없기 때문에 여성 성전환자는 임신을 할 수 없다.”
―시술 시간과 비용은 얼마나 드는가.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는 경우 1차 때 900만~1000만원, 2차 때 1800만~1900만원이 들어 총 30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수술 시간은 1991년에는 보통 13시간 정도가 걸렸다. 요즘에는 수술 방법은 같지만 숙달돼서 10시간 내외로 단축됐다.”
―수술이 실패할 수도 있나.
“성기를 만들어 음부와 연결하는 것은 혈관을 잇는 수술이기 때문에 수술 후 혈관이 막혀 혈전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피가 흐르지 않아 피부 조직이 썩는다. 정맥의 피를 흐르게 하기 위해 거머리를 이용해 3일 정도 시술한다. 수술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매우 좋다’는 답변이 72%였고, ‘괜찮다’가 20%, 나머지 8%가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성전환 수술은 수술 전 최소 6개월 이상, 보통 1~2년 동안 호르몬 치료를 한다”고 말했다. 6개월 이상 호르몬 치료에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아야 수술할 수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의 시술 중 수술 후 원래의 성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찾아온 사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수술을 했는데 다시 남성으로 바꿔 달라고 한 경우라고 한다.
인간은 왜 동성애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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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본부의 2007년도 자료에 따르면 국내 남성 에이즈 감염자의 43%가 동성과 성관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
채 교수는 “동성애의 원인을 규정지을 수 있는 정확한 이유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며 “양성애자이거나 이성애자이지만 동성애 성향을 갖는 사람 등이 있는 것처럼 성에 대한 정확한 정체성을 나누지 않는 것이 요즘 학자들의 견해”라고 말했다.
진화심리학자인 경희대 전중환 교수는 “種(종)이 생식을 하기 위해서는 암수가 만나 짝짓기를 해야 하는데 동성애는 번식의 성공률을 떨어뜨리는 행위”라며 “자연선택에 의해 도태되어야 하는 동성애가 왜 계속 발생하는지에 대한 것은 풀기 힘든 진화적 문제”라고 말했다. 전 교수 역시 “동성애의 원인을 무엇이라 규정짓기보다는 다양한 원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의학 클리닉·연구소 姜東佑(강동우) 원장은 의학적인 관점에서 동성애를 분석했다. 강 원장은 “1991년에 영국의 신경과학자인 사이먼 리베이 박사는 남성 동성애자와 남성 이성애자의 뇌구조의 차이를 처음으로 발견했다”며 “생물학적인 분석을 볼 때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는 뇌의 구조에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 원장은 “차이가 나는 뇌 세포의 역할은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 원장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적은 남성이 여성성을 띠게 되면서 게이가 된다는 분석도 있다”고 소개했다.
강 원장은 “가장 주목을 받는 학설은 심리·사회적인 원인”이라고 꼽았다. 그와 관련된 것으로 ‘친절한 삼촌 게이(Kind uncle gay)’ 이론이 있다. 남성성이 강한 아버지, 형이 많을수록 게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감옥과 같은 특수한 환경에서 동성애가 많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환경적인 영향이 크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성적 주체성을 결정하는 시기는 주로 청소년 후기에서 성인 초기입니다. 사춘기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은 동성애적인 성향을 갖고 경험을 하게 됩니다. 동성애 단체는 ‘동성애는 선천적이다’라고 하지만 이런 사고는 고쳐야 합니다. 사춘기 시절에 동성애 경향을 갖는 사람들 중 성인이 됐을 때까지 동성애자인 경우는 3분의 1로 줄어든다는 미국의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는 “동성애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성에 관한 주체성을 정확히 설립해 일시적인 동성애라면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시적인 동성애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자라온 가정환경 등 성장배경을 보고 심리치료와 성치료를 한다고 한다. 강동우 원장의 말이다.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들에 비해 약물중독과 정신적 질환 빈도, 자살률이 높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임상 의사들은 성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동성애자가 건강히 살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노력이 아직은 부족합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
부산대학교 물리학과 吉源平(길원평·53)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2006년 7월 국무총리에게 권고한 차별금지법안 상정을 막고자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장한 차별금지법안의 차별금지 대상 중에 ‘性的(성적) 지향’이 있으며 이는 이성애·동성애·양성애로 규정돼 있다. 동성애도 다른 차별금지 대상과 동일한 조항으로 차별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길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2007년 3월까지 차별금지법안 상정을 요구했다는 기사를 읽고 그해 2월부터 주변의 대학교수들에게 ‘동성애 차별금지법안’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해 달라는 메일을 전송했다.
“한 달 동안 전국 29개 대학에서 200여 명의 교수들이 서명운동에 동참했습니다.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동성애자들이 부각돼 그 수가 많아 보이지만, 대다수 사람은 동성애가 비윤리적인 성행위라 생각합니다. 동성애 차별금지법안에 대해 한국의 7대 종단이 반대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그는 서명을 모아서 국무총리에게 제출했고, 법무부는 2007년 10월 2일 동성애를 포함한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의견접수 마지막 날인 10월 22일에는 동성애 차별금지법안 저지 의회선교연합이 출범해 천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동반국)도 10일 22일부터 매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오전 8시부터 저녁까지 일인 릴레이 시위와 궐기대회를 진행했다. 반대 여론으로 인해 현재 차별금지법안은 상정되지 않은 상태다.
동반국 회원인 李容喜(이용희·51) 교수는 “동성애는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한 기본 요건인 건강한 가정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나라 망치는 차별법안을 계속적으로 내놓는다면 앞으로는 범국민적·범종교적 연합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길원평 교수는 “동성애를 다른 차별금지 대상과 동일한 조항으로 묶고 같은 수준의 차별금지를 적용하려는 것 자체가 동성애가 정상임을 전제하는 것”이라며 “법은 국민의 윤리의식이 반영돼야 하는 것인데 동성애가 정상이라는 윤리적 잣대를 모든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길 교수와의 대화 내용이다.
―동성애 차별금지법안이 통과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십니까.
“차별금지조항 중 제22조와 제23조에는 ‘동성애란 이유로 전학·자퇴를 강요하거나 퇴학 조치 등을 할 수 없다’ ‘교육목표·교육내용·생활지도기준에 동성애에 대한 혐오나 편견을 교육내용에 포함하거나 이를 교육할 수 없다’ 등이 있습니다. 교사가 동성애를 하는 학생을 불러 상담하거나 징계하면 처벌을 받게 되죠.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 동성애는 쉽게 확산되고, 그 결과 결혼율 감소, 저출산, 에이즈 발생률 증가 등의 사회병리 현상까지 심각해질 수 있다고 봐요.”
―동성애를 비윤리·비정상이라고 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체 구조는 남자와 여자의 성기관이 결합해 성행위를 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같은 성끼리 성행위를 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요. 남성 동성애자는 배설기관인 항문을 통해 성행위를 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치질과 장질환(직장암), 성병 등이 생기며, 출혈로 인한 에이즈 전염성도 높습니다. 동성애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난 비정상적 행위임은 자명합니다.”
2007년 질병관리본부 자료에 따르면 에이즈에 걸린 남자 감염인 중 43%가 동성 간의 성관계로 인한 것이었다. 유엔은 2006년에 중남미 지역의 약 160만명의 에이즈 환자 중 절반 정도가 동성애를 통해 감염됐으며,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보다 3~4배 많은 성적 파트너를 갖고 있다고 발표했다. 길 교수는 “동성애로 인한 에이즈 환자가 많은 이유는 항문성교와 무질서한 성관계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성애자가 사회적 약자라는 견해 때문에 언론에서도 균형을 갖추지 못한 보도를 내보내고, 동성애를 다루는 영화·드라마 등이 방영되면서 동성애가 미화될까봐 걱정”이라면서 “동성애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 흐려지지 않는 조건으로 동성애자의 인권보호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