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령 박사의 주장
“한수원은 우리가 제3국에 원전기술 수출 시 웨스팅하우스의 사전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는,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훌륭한 계약(1987년, 1997년 한전-웨스팅하우스 계약)을 스스로 포기하고 원전 수출을 제한하는 굴욕적인 내용의 계약을 새로 추진 중이다. 이런 불합리한 계약이 체결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 “웨스팅하우스의 사전 동의 없이도 제3국에 원전 수출 가능. 양측에 異見 있을 땐 한전 측 의견이 우선”
⊙ 한수원 측 입장 : “실무에 들어가면 반드시 사전 동의를 받아야 제3국에 수출 가능. 사전 동의 안 거치면 천문학적 배상금 물어야”
⊙ 이병령 前 본부장 “1989년 美 原電 사업체 직원, 한국형 원자로 개발 포기 대가로 큰 것(10억 원 혹은 100억 원) 한 장 제시”
“한수원은 우리가 제3국에 원전기술 수출 시 웨스팅하우스의 사전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는,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훌륭한 계약(1987년, 1997년 한전-웨스팅하우스 계약)을 스스로 포기하고 원전 수출을 제한하는 굴욕적인 내용의 계약을 새로 추진 중이다. 이런 불합리한 계약이 체결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 “웨스팅하우스의 사전 동의 없이도 제3국에 원전 수출 가능. 양측에 異見 있을 땐 한전 측 의견이 우선”
⊙ 한수원 측 입장 : “실무에 들어가면 반드시 사전 동의를 받아야 제3국에 수출 가능. 사전 동의 안 거치면 천문학적 배상금 물어야”
⊙ 이병령 前 본부장 “1989년 美 原電 사업체 직원, 한국형 원자로 개발 포기 대가로 큰 것(10억 원 혹은 100억 원) 한 장 제시”

- 이병령 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원전사업본부장.
이런 주장을 제기한 인물은 이병령(61ㆍ이병령) 前(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원전사업본부장이다. 이병령 전 본부장은 “현재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社(사)와 굴욕적인 원전사업 협력 계약을 진행 중”이라며 “이를 막지 못하면, 한국형 원자로의 중국 등 해외 수출이 원천적으로 막히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 전 본부장은 원자력공학 박사로 한국 표준형 경수로 1호기인 울진 원전 3ㆍ4호기 개발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 프로그램에 의해 1994년 북한에 경수로를 공급할 때, 러시아나 미국형 대신 한국형 경수로가 채택되게 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 전 본부장은 현재 공석 중인 한국전력 사장 공모에 응모한 상태다.
한수원은 지난 2004년 9월 중국 정부가 발주한 중국 원전 4기 건설공사 국제입찰에서 배제됐다. 중국은 웨스팅하우스(2006년 미국에서 일본으로 소유권 넘어감), 프랑스의 프라마톰, 러시아의 국영원자력수출회사 세 곳에만 입찰 초대장을 보냈다.
자체 원전 개발에 실패한 중국은 2020년까지 모두 30여 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외국 기업의 기술로 건설키로 하고, 지난 2004년 9월 총 사업비 100억 달러(약 1조 원) 규모의 신형 원전 4기 건설공사를 국제입찰 방식으로 발주했다.
보통 원전 1기 건설 비용은 20억~30억 달러다. 따라서 중국의 원전 건설시장은 적게는 수백 억 달러에서, 많게는 수천 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이 분야를 선점하기 위한 국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한수원이 보낸 ‘문제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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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형 원전의 표준 모델인 울진 5·6호기 기공식 장면. 뒤에 보이는 돔 건물이 울진 3호기다. |
이 편지 사건에 대해 이병령 전 본부장은 “한수원과 경쟁 관계에 있던 웨스팅하우스는 승인 권한이 없는 자신들에게 한수원이 사전 동의 요구를 하는 편지를 받자 어리둥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웨스팅하우스는 중국 원전의 입찰 참가자가 결정된 후인 2004년 10월, 한수원에 “원칙적으로 협조할 용의가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이병령 전 본부장의 이야기다.
“세상에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습니까? 입찰 경쟁자에게 ‘내가 입찰에 참여해도 됩니까’라고 물어보니까 경쟁자는 입찰 시간을 넘긴 후에 ‘그래, 너도 한번 참여해 보든지’라고 답한 상황입니다. 이 코미디 같은 상황을 지켜보던 중국이 아예 한국을 입찰 대상자에서 제외시켜 버린 겁니다.”
한전과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1987년 웨스팅하우스(ABB-CE가 前身이다. ABB-CE는 지난 2004년 웨스팅하우스에 합병됐다)와 10년간 기술도입계약을 체결했다(웨스팅하우스와의 계약 당사자는 한전인데, 2001년 한전에서 한수원이 분리되어 현재 원전 관련 업무는 한수원이 담당하고 있음-편집자 주). 10년 후인 1997년 기술도입계약이 만료되자 양측은 기술사용협정을 체결했다. “이 계약에 따라 한국이 제3국에 원전을 수출할 경우 웨스팅하우스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는 게 한수원의 입장이다.
“사전 동의 얻으라는 문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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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4월 26일 폭발 사고가 난 러시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당시 누출된 방사능 물질은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350배였다. 러시아 원전은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2004년 중국 원전 입찰에서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
한전과 웨스팅하우스가 체결한 기술사용협정서 3.3조에 ‘재실시권’이라는 조항이 있다. 재실시권은 기술적인 용어로, 한전이 웨스팅하우스에서 도입한 기술을 제3자에게 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재실시권 조항의 3.3.2 d)항에는 ‘한전이 (제3자와의 원전 기술 수출) 계약 서명 예정일 60일 전에 웨스팅하우스에 통보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한수원은 지난 2004년 중국 원전 4기 입찰에서 배제될 당시, 이 문구를 근거로 “웨스팅하우스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병령 전 본부장의 해석은 전혀 다르다. 이 전 본부장의 주장이다.
“통상 원전 판매 협정은 적어도 2년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계약서의 문구를 잘 보세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통보해야 한다’라는 부분이 아니라, ‘60일 전’이라는 부분입니다. 서명 예정 60일 전이라면, 이미 원전 판매 계약 협상은 사실상 종결된 상태입니다.
원전을 수입하는 나라들은 국내법에 따라 정부나 의회에 보고하고 결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서명 두어 달 전에 사실상 계약을 끝냅니다. 따라서 계약이 모두 끝난 상태에서, 웨스팅하우스에게 어떻게 사전 동의를 받습니까?”
―사전 동의를 받는 것이 아니라면, 왜 60일 전까지 웨스팅하우스에 통보를 해야 합니까.
“웨스팅하우스에 돈을 주고 기술을 샀으니까요. 이 기술을 바탕으로 우리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최신형 원전을 만들었다 해도, 웨스팅하우스 기술이 들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제3자에게 수출할 때, 이에 대해 통지를 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이는 명백히 ‘통지’, 즉 누군가에게 수출을 했다는 그 사실 자체를 웨스팅하우스에 알려주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이병령 전 본부장은 “한수원 측이 이 조항의 내용을 확대 해석해서, 웨스팅하우스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 조항 어디에도,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
“‘어느 계약이든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면 계약서에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문구가 필수적으로 들어갔겠죠. 계약서는 어떤 경우에도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법이 없어요. 특히 이번처럼 웨스팅하우스가 동의해 주지 않으면, 한전이 다른 나라에 기술 수출을 할 수 없는 계약을 할 때는 더욱 구체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이병령 전 본부장에 따르면, 한수원은 지난 2005년 이 전 본부장이 처음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는 앞서 살펴본 3.3.2 d) 항을 사전동의의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이 전 본부장이 계약서 문구를 들어 한수원 논리를 반박하자, 사전동의의 근거를 슬그머니 다른 조항으로 바꿨다. 이 전 본부장의 얘기다.
“2005년 9월 30일 청와대 경제보좌관 회의에 저와 산자부, 한수원 측이 참석해 사전동의 문제에 대해 舌戰(설전)을 벌였어요. 이때 한수원은 기존의 주장과 다른 주장을 들고 나오더군요. 이른바 ‘수출통제법’ 문제예요. 한수원이 주장하는 논리는 이렇습니다.
‘중국에 원전을 수출할 경우, 미국의 수출 통제법에 걸릴 수 있다. 따라서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 기업인 웨스팅하우스가 대신 수출 승인을 받아 줘야 한다. 결국 웨스팅하우스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계약서에 보면 웨스팅하우스는 한전 측을 대신해서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으면 반드시 서면으로 동의를 해줘야(must agree) 한다고 돼 있어요. 수출 통제법은 미국 국내법이기 때문에, 미국 기업인 웨스팅하우스가 파트너인 한전을 위해서 행정업무를 대신 처리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다른 나라면 몰라도, 중국은 미국의 수출 통제법에 걸리는 건 아닌가요.
“한수원의 주장은 자신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겁니다. 미국 수출 통제법은 미국 기업에게도 적용됩니다. 뿐만 아니라 서방 국가들 모두 적용돼요. 중국이 수출 통제법에 걸리는 나라라면, 지난 중국 원전 4기 입찰에서 프랑스 기업과 웨스팅하우스가 어떻게 입찰에 참여할 수 있었겠습니까. 미국의 수출 통제법은 원전의 중국 수출에 전혀 장애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한수원 측이 갑자기 말을 바꾼 이유가 뭣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자신들이 지금까지 했던 거짓 주장이 들통날까 해서겠죠. 당시 회의에서 한수원 측이 말을 바꾸자 丁文秀(정문수ㆍ59) 당시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한수원 측이 지금까지 거짓 보고를 한 게 아니냐”고 질책했어요. 한수원의 감독 기관인 산자부는 ‘자세히 알아보고 보고하겠다’고 했어요. 그러고 나서는 감감무소식이에요. 제가 산자부 쪽에 경과를 알아보려고 했지만, 별다른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異見이 있을 때 한전의 해석이 우선
이병령 전 본부장은 이어 기술사용협정 계약서의 20조, 21조인 준거법과 해석을 보여줬다. 그는 “이들 두 조항이 결정적으로 본 계약서가 한전에 유리하게 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본부장은 두 조항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 2004년 중국 원전 4기 입찰 건을 예로 들어 봅시다. 한전이 중국 원전 4기 입찰에 참여해서, 한수원이 원전 입찰 계약을 사실상 따냈다고 가정해 보죠. 그러면 한전은 기술사용협정 계약서에 따라 중국과의 원전 수출 계약서에 서명하기 60일 전에 웨스팅하우스에 ‘재실시권을 행사한다’는 편지를 보내야 됩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전의 편지를 받으면, 한전과 중국의 원전 계약서 체결 30일 전까지 답장을 보내야 합니다.
이때 웨스팅하우스는 입찰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어떤 꼬투리를 잡아 ‘異見(이견)이 있다’는 불합리한 내용의 답장을 계약서 체결 30일 전까지 보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웨스팅하우스가 이런 편지를 보내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기술사용협정의 제21조 해석에 따라, ‘한전 입장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는 서면 해석을 한전이 다시 내리면, 한전의 해석이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웨스팅하우스가 한전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공은 우리나라 기관인 대한상사중재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대한상사중재원은 양측의 의견을 들어 서로의 입장을 조율해야 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환영이죠. 계약서에서도 한전의 의견이 우선이라고 나와 있는데, 대한상사중재원에서 다른 중재 의견을 낼 가능성은 높지 않아요. 게다가 대한상사중재원은 우리 기관이에요. 그리고 설혹 다른 중재안이 나온다고 해도 이미 원전 계약은 끝난 상황일 겁니다.”
─중재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다른 나라와 원전 계약을 지속할 수 있습니까.
“그럼요. 기술사용협정 계약서에 중재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재실시권을 허가할 수 없다는 조항은 없습니다.”
─만약 상사중재원에서도 결정이 안 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우리 법원의 판결을 받으면 됩니다.”
계약서의 제20조 준거법에 따르면, 양측 간 이견이 있을 경우 한국 법에 준거하여 한국 법원의 판결을 받도록 되어 있다.
이병령 박사의 주장에 대한 한수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 한수원의 김동철 해외사업처 신재생에너지 사업실장 등 6명의 관계자들을 만났다. 김 실장은 오랫동안 원전 사업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재실시권 조항인 3.3.2에 대한 한수원 측의 입장이다.
“지난 2005년 10월 법무법인 태평양 등 4개 법무법인이 모두 기술이전을 전제로 한 해외수출의 경우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이병령 전 본부장처럼 계약서 조항을 기계적으로 해석할 경우 사전 동의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실무에 들어가면 반드시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수원 측은 이날 지금까지 사전 동의 근거로 제시하지 않았던 조항인 3.3.2 c)의 보상문제를 강조했다. c)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수원 측 입장 : “사전 동의는 필수적”
‘한전과 웨스팅하우스는 재실시권 許與(허여)에 대해 웨스팅하우스에 대한 보상에 상호 합의해야 한다.’
한수원 측은 “이 조항을 근거로 보상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한전이 재실시권을 행사할 수 없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3.3.2항에 따르면, 한전은 이 조항 내의 a)~g)까지를 모두 충족시켜야 재실시권을 가질 수 있다고 되어 있어요. 따라서 보상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한전은 재실시 권리 자체가 없습니다. 재실시가 안 되면 원전 입찰 계약에 참여해도 기술 이전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중국 입찰 시 웨스팅하우스에 사전 동의를 구한 겁니다.”
─계약서에는 양측의 異見(이견)이 있을 때 한전의 서면 의견이 우선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또 여의치 않을 경우 우리나라 상사중재원, 법원에서 판결을 받도록 되어 있더군요. 이렇게 유리한 조항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웨스팅하우스의 처분만 기다려야 합니까.
“앉아서 계약서만 들여다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보상에 대한 합의가 없으면 상사중재원이고 법원이고 갈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이걸 무시하고 재실시권을 행사했을 경우, 웨스팅하우스가 나중에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제시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원전 계약 자체가 의미가 없어집니다.”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이 그 정도로 비싼 기술입니까.
“삼성전자와 퀄컴의 관계를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삼성전자가 퀄컴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는 이유가 뭡니까. CDMA(디지털 이동통신 방식으로 코드분할 다중접속 방식)에 원천 기술이 있는 퀄컴과 로열티 계약이 이뤄지지 않으면, 삼성전자는 知的(지적)재산권 침해로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국가 간의 무역 분쟁이 생길 수도 있어요.”
이병령 전 본부장은 한수원 측이 웨스팅하우스 사전 동의의 근거로 새롭게 제기한 보상금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것의 의미를 절대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계약서를 체결했다’는 것은 양측이 서로 합의해서 어떤 물품이나 기술을 사고팔기로 이미 결정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계약 체결 당시에 모든 계약 조건과 상황에 대해서 정해 놓을 수는 없잖습니까.
예를 들어 한전과 웨스팅하우스가 맺은 계약처럼 계약 기간이 10년이고 계약 당시 한전이 재실시권을 행사할지 안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재실시권의 보상 금액을 정해 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c)항 같은 조항을 만들어 놓고, 만약 이런 상황이 올 때는 보상금액을 합의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얘기를 한 겁니다. 이건 한수원 측이 주장하는 사전동의 부분과 전혀 상관이 없어요. 상식적인 얘기 아닙니까?”
이 전 본부장은 “나중에 보상을 해야 한다는 규정을 놓고,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한수원이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고 정부를 속이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웨스팅하우스 기술 낡아 보상 규모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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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는 1995년 6월 13일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긴급이사회를 갖고 북한에 공급할 원자로 모델로 울진 3ㆍ4호기를 채택하는 데 합의했다. 로버트 갈루치 美 핵대사, 최동진 경수로기획단장과 엔도 데쓰야 일본 경수로 대사(왼쪽부터). |
“어느 산업 분야든 기술 이전과 관련해서는 보상금 규모의 국제 관례가 있습니다. 한수원의 주장처럼 기술 수준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액수를 함부로 달라고 할 수 없어요. 이는 계약을 스스로 파기하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웨스팅하우스가 계약을 파기하면 한전은 아무런 구속 없이 제3국에 원전 기술을 팔 수 있는 거죠.”
─한수원 측은 웨스팅하우스 기술이 원자력의 원천 기술이며, 퀄컴의 기술처럼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말하던데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웨스팅하우스처럼 세계 최초로 원전을 개발하지는 못했지만, 외국 기술을 토대로 20기의 원전을 지었고, 현재 6기를 건설 중이기 때문에 현재 우리 기술이 웨스팅하우스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웨스팅하우스 기술은 이제 너무 오래되고 낡았어요. 미국이 지난 1960년대 초 애리조나에 원전 2기를 건설한 후 원전을 건설하지 않았어요. 自國(자국) 정부에 납품을 못한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30년간 기술 개발을 전혀 못했어요. 이 때문에, 한전이 재실시권을 행사하기 위해 보상을 한다 해도 몇 백 만 달러에 불과합니다.”
한수원은 지난해, 10년마다 갱신할 수 있는 기술사용 협정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즉 우리가 제3국에 원전기술을 팔려고 할 때 웨스팅하우스의 사전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는,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훌륭한 계약(1987년, 1997년 한전-웨스팅 하우스 계약)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계약 연장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한수원 측은 “기술사용 협정을 연장해도 재실시권 행사 때 여전히 웨스팅하우스의 서면 동의를 필요로 하며, 재연장은 불필요한 보상 비용을 수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로비 의혹은 사실무근”
하지만 이병령 전 본부장은 “기술사용 협정서를 연장하지 않은 것은 한수원 측이 지금까지 저지른 反(반)국가적인 범죄행위 혐의를 은폐하기 위해서다”라고 비난했다. 이병령 전 본부장의 얘기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1997년의 기술사용 협정서는 우리가 제3국에 원전기술을 팔려고 할 때 웨스팅하우스의 사전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리한 계약은 포기하고, 한수원은 현재 웨스팅하우스에 우리의 재실시권을 제한해 결국 원전 수출을 제한하는 굴욕적인 내용의 계약을 새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2005년부터 산자부, 한수원 등에 사전동의가 필요 없다는 점을 지적했고, 지난 2006년 5월 16일자 조선일보 1면에 저의 주장이 기사화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수원 측은 6월 내에 굴욕적인 새 계약을 체결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이병령 전 본부장은 인터뷰 말미에 자신이 웨스팅하우스의 전신인 ABB-CE社(사)의 금품 제의를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1989년 이병령 전 본부장은 울진 3ㆍ4호기를 국내 주도로 설계, 건설하기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이때 평소 알고 지내던 ABB-CE社(사)의 직원 A 씨가 그에게 찾아왔다. A 씨는 그에게 자꾸만 사우나를 가자고 해서 몇 번 거절하다 어쩔 수 없이 함께 사우나에 갔다. 어색하게 욕탕에 앉아 있던 그에게 A 씨가 뜻밖의 이야기를 던졌다. 이병령 전 본부장의 얘기다.
“이 직원이 갑자기, ‘이 박사님이 한국 원자력 기술진 주도로 울진 3ㆍ4호기 설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면, 큰 것 한 장을 줄 수 있다’고 제안하는 겁니다. 그 직원은 ‘회사 고위층의 제안이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깜짝 놀라 ‘무슨 소리냐’며 사우나에서 나왔어요. 나중에 생각하니, 왜 자꾸 사우나에 가자고 했는지 알겠더군요. 내가 도청할지도 모를뿐더러, 자신도 도청하고 있지 않으니 편하게 선택하라는 뜻이었겠죠.”
이병령 전 본부장에 따르면, 당시 원전 업계에서 ‘큰 것 한 장’은 10억 원이나 100억 원을 뜻하는 隱語(은어)였다고 한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원자력 업계에서 일하며, 미국 원전 회사들이 우리 원전 업계에 엄청난 로비 공세를 펴고 있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다”고 했다.
한수원 측은 이병령 전 본부장의 미 원전 업계의 로비 가능성 언급에 대해 “로비說(설)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로비설을 제기한 사람은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 전 본부장은 “한수원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훌륭한 계약(1987년, 1997년 한전-웨스팅하우스 계약)을 왜곡 해석하여 원전 사업을 망쳤다”면서 “그 배경이 무엇인지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져 이 같은 의혹이 해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프랑스, 일본(웨스팅하우스)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기술은 프랑스,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가격과 제작 인프라 분야에서 많이 앞서 있어 경쟁력이 막강합니다. 앞으로 우리 민족의 거대한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원전 사업을 한전과 한수원 일부 간부들이 망치고 있어요. 관계자들이 모두 나서서 현재 한수원 측이 웨스팅하우스와 추진 중인 굴욕적인 원전 수출계약을 막아 주시길 기대합니다.”
▣ 1997년 한전과 웨스팅하우스가 체결한 계약서 가운데 재실시권 조항
● 계약서의 3.3.2의 a) 조항
“ABB-CE는 예정된 재실시권 협정이 제18조 수출통제를 충족하며 미국 정부로부터 필요한 승인이 취득되었을 경우, 그 실시권 계약의 서명 또는 정보의 공개 및 이전을 書面(서면)으로 동의해야 한다.”
● 3.3.2 d) 조항(괄호 내용과 번호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넣은 것이다).
1. 한전이 재실시권을 許與(허여ㆍ허가한다는 뜻)하기 전(한전이 제3국에 기술을 이전하기 전) 계약 서명 예정일 60일 전에 웨스팅하우스 측에 통보해야 한다.
2. 웨스팅하우스는 한전이 제공한 재실시권과 재실시 사용자(한전이 기술을 수출할 제3국)에 관한 모든 정보를 30일 동안 검토하고 한전에 서면 소견서를 전달해야 한다.
3. 웨스팅하우스가 재실시권과 재실시 사용자가 본 협정 규정을 충족시키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한전과 웨스팅하우스 측은 한전이 재실시권을 부여하기 전 웨스팅하우스 의견에 대해 논의, 해결해야 한다.’
● 계약서 21조 해석
‘본 협상에서 규정이나 본 협정서에 사용된 정의의 해석에 있어서 서명사들(한전을 포함한 관계사들)과 웨스팅하우스 간에 의견이 불일치할 경우, 제15조에 기술된 대한상사중재원에 의하여 결정될 때까지, 한전(자신과 서명사들을 포함하여)이 명시한 서면 해석이 우선한다.’
● 제20조의 근거법
‘본 협정은 대한민국의 법률에 의하여 지배되고 동법에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내에서 본 협정으로부터 또는 이와 관련하여 일어나는 불법행위에 기인한 모든 법률적인 분쟁과 클레임은 대한민국의 법에 의하여 지배된다. 웨스팅하우스 그의 직원 및 하도급 계약자는 본 협정상의 그들의 의무를 이행함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모든 적용 가능한 법, 규칙 및 규정을 준수해야 하며. 이에 대한 위반에 대하여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