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친 원주민 때문에 美·日이 진출 실패한 ‘세계 最古 환초’ 축(Chuuk), 후발주자 한국엔 기회의 섬
⊙ 섬나라까지 전파된 한류 열풍…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와 인지도 역대 최고”
⊙ 60여 년 전 核실험으로 초토화됐던 마셜제도, 이젠 기후변화로 인한 수몰 위기
⊙ “스페인은 神을 위해(for God), 독일은 돈을 위해(for Gold), 일본은 그네들의 영광을 위해
(for Glory), 미국은 영원히(for good) 머물려고 이 섬에 왔다. 한국은 뭘 위해 올 건가?”
⊙ “한·태평양 도서국 외교장관회의에 큰 기대… 태평양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 필요”
(알릭 알릭 마이크로네시아연방 부통령)
⊙ “기후변화는 태평양 도서국뿐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 여러 국가가 함께 논의해야”
(크리스토퍼 로에악 마셜제도 대통령)
⊙ 섬나라까지 전파된 한류 열풍…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와 인지도 역대 최고”
⊙ 60여 년 전 核실험으로 초토화됐던 마셜제도, 이젠 기후변화로 인한 수몰 위기
⊙ “스페인은 神을 위해(for God), 독일은 돈을 위해(for Gold), 일본은 그네들의 영광을 위해
(for Glory), 미국은 영원히(for good) 머물려고 이 섬에 왔다. 한국은 뭘 위해 올 건가?”
⊙ “한·태평양 도서국 외교장관회의에 큰 기대… 태평양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 필요”
(알릭 알릭 마이크로네시아연방 부통령)
⊙ “기후변화는 태평양 도서국뿐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 여러 국가가 함께 논의해야”
(크리스토퍼 로에악 마셜제도 대통령)
- 마이크로네시아연방 축(Chuuk)주 태평양해양 연구센터에서 바라본 초호(礁湖)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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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는 축을 떠나며 “나는 헛살았다!”는 문구를 방명록에 남겼다. |
소설가 김훈(金薰)이 웨노(Weno)섬을 다녀가며 남긴 말이다. 지난해 2월 마이크로네시아연방 축주(Chuuk州)의 섬들을 7일간 여행한 그는 웨노섬에 자리한 한국 태평양해양연구센터 방명록에 “평생 처음 보는 아름다운 자연”이란 글귀와 함께 열대 밀림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을 한 문장으로 논했다.
명망(名望) 높은 작가의 인생을 ‘헛삶’으로 표현하게 한 섬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태평양 2만5000여 개 섬 중 가장 거칠다는 주민들의 삶 속에서 그가 발견한 깨달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는 여행 후 기록한 글에서 “내 느낌은 대부분 언어화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대양 가운데 자리한 섬을 언어화하는 것은 탁월한 작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인 모양이다. 거대한 환초(環礁)에 둘러싸인 축의 섬들은 더욱 그렇다.
‘축’이란 이름은 현지어로 ‘산’이란 뜻이다. 과거 독일 지배 당시의 영향으로 꽤 오랜 시간 트럭(Truk)섬으로 불렸다. 이집트의 홍해(紅海), 말레이시아의 시파단(Sipadan)과 함께 세계 3대 스쿠버다이빙 코스로 유명한 이 섬들을 많은 다이버는 지금도 ‘축’이 아닌 ‘트럭’으로 부른다.
축을 비롯해 폰페이(Pohnpei), 코스라이(Kosrae), 얍(Yap), 총 4개 주로 구성된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의 인구는 약 11만명이며, 이 중 7만여 명이 축주에 산다. 축 주민 중 약 4만명이 주도(主島)인 웨노섬에 거주하고, 나머지 3만여 명은 290여 개의 섬들에 흩어져 산다. 공항이 자리한 웨노섬은 축에서 유일하게 전기가 들어오는 곳이다.
마이크로네시아연방
각 주별로 1명씩 4년 임기의 의원을 선출하고 2년 임기 의원은 주 인구에 따라 축 5명, 폰페이 3명, 코스라이 1명, 얍 1명 등 총 10명이 있다. 대통령과 부통령은 4년 임기 의원 중 서로 다른 지역 출신 의원 1명을 각각 선출한다. 임마누엘 모리(Mori) 현 대통령은 축 출신으로 연방 최초로 연임에 성공했다. 미국과 자유연합협정(Compact of Free Association)에 따라 군사·안보는 미국이 담당하며, 외교와 행정은 연방 정부가 맡고 있다. 정부 재정은 연간 2억 달러 규모의 미국 원조와 한·미·일·타이완 등으로부터 받는 연간 2000만 달러 규모의 입어료 수입 등으로 충당한다. 1인당 GDP는 약 3000달러 수준이다. 한국과는 1991년 수교해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양국의 교역 규모는 2010년 기준 약 870만(수출 812만·수입 60만) 달러다. |
‘가장 낙후된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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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웨노섬 도로는 빗물이 고인 노상 곳곳에 ‘포트홀’이 자리 잡아 초행길에 차를 운전하다간 바퀴가 구멍에 빠지기 일쑤다. |
“특별한 목적이 있어 공항에 온 게 아니라 그냥 신기해서 구경 나온 사람들이에요.”
태평양해양연구센터의 김한준(金翰駿) 연구원이 이들의 ‘정체’에 대해 설명해 줬다. 하루 한 번 들어오는 비행기 시각에 맞춰 외지인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현지인들의 ‘진풍경’은 반세기 전 한국의 시골장터를 떠올리게 했다.
공항 밖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대리석으로 세워진 번듯한 공항 표지판 앞은 섬을 찾은 방문객들을 환영하기 위한 꽃 목걸이를 파는 노파들로 가득했다. 한 노인은 금이 간 조개껍데기를 내주며 연방 “파이브 달러”를 외쳤다. 집요하게 돈을 요구하는 그에게 물건을 사는 대신 1달러를 건넸다. 얼마 후 그가 축을 처음 찾은 외국인들만 대상으로 구걸하는 꽤 유명한 노인이란 사실을 전해 들었다.
태평양 주요 섬 중 ‘가장 낙후된 환경’으로 알려진 축은 웨노섬 북서쪽 공항을 중심으로 깔린 4km 도로를 제외하곤 대부분 비포장길이다. 빗물이 고인 노상 곳곳에 ‘도로 위의 지뢰 포트홀(pothole)’이 자리 잡아 초행길에 차를 운전하다간 바퀴가 구멍에 빠지기 일쑤다. 축에서 “길을 안다”는 말은 “포트홀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피해갈 수 있다”는 의미와 같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서 세운 태평양해양연구센터는 웨노섬 동북쪽 끝에 자리 잡았다. 공항에서 약 8km 떨어진 곳으로, 축에서도 가장 거친 주민이 사는 사푹(Sapuk) 지역에 속한다. 한국에선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30분이 넘게 이동했다. 그나마 한국인들이 길을 보수해 줘서 과거 1시간이 넘던 시간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거친 성향의 원주민들
사푹 주민들은 외지인들에게 배타적이다. 몇몇 주민은 웅덩이가 파인 집 앞 도로를 보수해 주겠다는 한국인의 제안에 오히려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 길은 현재 가장 거대한 포트홀을 형성해 운전자들을 괴롭힌다. 외국인의 자금을 들여 집을 새로 짓게 하고선 쫓아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운전자를 위협하는 장애물은 포트홀만이 아니다. 밤낮 가리지 않고 길 한가운데로 불쑥 튀어나오는 주민들을 피하지 못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술에 취하거나 마약에 중독돼 어슬렁거리는 이들은 주변의 자동차나 사람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거친 성향의 주민들에 대한 주 정부의 통제력도 약해 축은 마이크로네시아 섬 중 가장 치안환경이 열악한 곳이다.
도로변 곳곳엔 온갖 쓰레기들과 함께 폐차들이 방치돼 있었다. 고철 처리와 운송이 쉽지 않은 태평양 섬나라에선 흔한 광경이지만, 축은 유독 버려진 차들이 많아 보였다. 문명의 도입과 함께 게을러진 주민들은 짧은 거리도 차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고, 새 차를 사면 기존 차량을 집 앞에 쌓아뒀다. 폐차는 모두 개인 또는 부족 소유이기 때문에 정부가 마음대로 관리할 수 없다.
자동차 부품을 구하기 쉽지 않은 섬이기 때문에 폐차는 자연스레 부속 덩어리가 됐다. 집 앞에 폐차가 몇 대 있느냐에 따라 그 부(富)를 측정하는 풍습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폐차는 그들에게 ‘자존심’과 같은 존재였다.
폐차를 보면 최근 중국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보인다. 사실상 미국과 일본의 영향력 아래 있던 이 섬에 중국이 고철처리 시설을 세운 것이다. 이들은 섬 곳곳에 방치된 차들을 거침없이 수집하기 시작했다. 주민의 반발과 비용 때문에 어느 외국인도 섣불리 도전하지 못했던 사업이었다.
‘태평양 영향력’에 뒤늦게 도전장을 내민 중국은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섬나라들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축의 공항과 활주로를 증축하고 주 정부청사 공사까지 완료했다. 인구 1만여 명의 얍엔 4000실 규모의 대형 리조트를 짓기 시작해 “사실상 얍을 독립시켜 섬 전체를 점령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다금바리 1kg보다 귀한 ‘못 먹는 식물’ 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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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태평양해양연구센터 부지에 설치한 위성 관제 안테나 기지. |
30여 분 동안 축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태평양해양연구센터에 도착했다. 센터엔 현재 19명이 상주하고 있다. 이 중 연구원 2명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파견했고, 2명은 현지교민이다. 현장 작업과 경비 등을 맡은 15명은 모두 축 현지인이다. 13년 전 설립 당시엔 한국인 사업가가 운영하던 리조트 일부를 임차해 운영했지만, 숙박 사업 철수로 현재는 6500m2(약 1980평) 규모의 리조트 전체를 연구 거점으로 운영 중이다.
주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한국 연구진은 ▲기초생태계 모니터링 ▲환경정보 확보 ▲해조류 등 유용 생물 소재 확보 등 기반 연구를 수행하며 ▲스피룰리나 대량 생산 ▲흑진주 항체기술 개발 ▲자생식물 씨앗 대량 확보 등 현지 연구 지원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 90여 종의 천연물을 분리하고 400여 종 생물의 시료를 확보하는 등 연구 성과를 거뒀다.
설립 초기부터 현재까지 연구센터 운영에 참여한 박흥식(朴興植) 센터장은 “224km 둘레의 환초 안팎으로 4000여 종의 어류가 존재하는 ‘해양의 열대우림’인 축은 2000년 당시 미국 외엔 선진국의 연구 결과가 전무할 정도로 미지의 섬이었다”며 “주요 선진국들의 각축전으로 이미 레드오션이 된 태평양에서 축은 몇 남지 않은 블루오션”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엔 생물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눴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오로지 ‘먹을 것’을 위해 바다를 연구했고, 못 먹는 것은 모두 폐기처리 했죠.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어요. 먹을 수 없는 것에서 더 다양한 가능성이 발견됩니다. 의약품이나 기능성 소재로 주목받는 물질이 산호초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예전엔 그냥 버렸던 ‘못 먹는 식물’ 1g이 항암제로 알려지면서 다금바리 1kg보다 더 가치가 큰 시대가 됐죠. 저희도 이곳에서 먹을 것을 생산하기보단 여러 성분을 놓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바다 中層 정복하는 국가가 바다 지배”
태평양의 평균수심은 약 4300m다. 이 중 어업이 이뤄지는 깊이는 약 200m에 불과하다. 해양연구는 주로 표면과 저층을 목표로 실행되는데, 심해 저층은 이른바 ‘쌍끌이 작업’을 통한 수집으로 연구가 가능하다. 표면과 저층을 제외한 중층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박 센터장은 “결국 깊이 1000m 이상의 중층을 가장 먼저 정복하는 국가가 모든 바다를 지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환초를 보유하고 있다. 항공사진으로 보면 크고 작은 수백 개 섬을 거대한 목걸이 모양의 환초가 넓게 두른 모양새다. 산호초로 구성된 환초의 폭은 보통 100m에 이르며, 넓은 곳은 300m를 훌쩍 넘긴다. 화산과 산호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이 ‘작품’은 태평양 섬들의 과거와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섬과 환초의 거리는 섬의 ‘수명’에 따라 다르다. 화산섬 해안을 따라 거초(裾礁·fringing reefs)가 두른 코스라이는 가장 젊은 섬이다. 가운데 화산섬이 가라앉아 연안에 초호(礁湖·lagoon)가 형성된 폰페이는 어느 정도 ‘섬의 진화’가 시작된 곳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 축과 같이 화산섬의 꼭대기만 남은 모양이 되며, 화산섬 전체가 수면 아래 가라앉고 환초만 남은 마셜제도의 마주로(Majuro)나 콰잘렌(Kwajalein)과 같은 섬은 화산섬의 마지막 단계인 셈이다.
태평양해양연구센터 연구진과 함께 축의 바닷속에 뛰어들었다. 세계 3대 스쿠버다이빙 명소에 걸맞게 형형색색(形形色色) 산호초와 열대어가 눈앞에서 장관을 연출했다.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작은 상어 한 마리가 기자를 따랐지만, 큰 위협은 되지 않았다. 환초 안쪽의 평균 수심은 40m, 최대 수심은 80m다. 환초를 넘어서면 곧바로 1000m가 넘는 심해가 펼쳐진다.
축 해역의 수온은 평균 28~29℃다. 25℃ 이상이 되면 수중의 인(燐) 함량이 적어진다. 유기물이 필요한 플랑크톤은 인을 확보하기 위해 산호 안으로 들어가고, 이들이 배설한 포도당은 산호의 먹이가 된다. 공생(共生) 관계는 바닷속 플랑크톤을 산호 속으로 모으는 구조로 진화하면서 투명한 열대바다가 완성된다.
“나와 결혼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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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왼쪽)과 폰페이 섬 곳곳에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방치된 전차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한국의 축 진출은 전쟁의 상흔(傷痕)에 방치된 역사와 현재를 바꾸고 있다. 일제의 잔혹함을 경험한 주민들은 지금도 일본엔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다. ‘대양의 틈새’로 들어온 한국 과학자들은 각종 현지 연구 사업과 시설 지원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거친 성향으로 외지인을 배척했던 사람들을 채용하고 설득한 결과, 약 6600m2(2000평) 규모의 신축 연구센터 매립 부지까지 완성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박흥식 센터장의 설명이다.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은 태평양 도서국 중 세 번째로 큰 바다를 보유한 ‘해양대국’입니다. ‘주인 없는 바다가 없다’는 태평양에서 축과 같은 틈새시장을 고른 건 큰 행운이자 도전이었죠. 1999년 연간 예산 1억원으로 이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정말 막막했습니다.”
태평양해양연구센터는 1999년 한·일 어업협정 때 ‘졸속체결’이란 비판으로 악화한 여론을 만회하기 위해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이었다. 구체적 방안 없이 간판만 걸린 센터를 짓기 위해 박흥식 센터장을 비롯한 연구진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해야 했다.
“전기수급이 불안정하고 지적도도 제대로 된 게 없었습니다. ‘세 번째 나무에서 네 번째 바위까지’라는 식으로 표기됐더군요. 정부에 뭔가 요청해 봐야 불가능하단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됐죠. 결국 이 지역 지적도는 저희가 GIS(지리정보시스템)를 동원해 직접 측정했습니다.”
축 현지 교민 김도헌(金度憲)씨는 한국 연구진에 큰 힘이 됐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1996년 한 사업가의 권유로 축에 건너왔다. 2~3년 동안 요트 만드는 일을 하다 귀국할 예정이었는데, IMF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섬에 눌러앉았다.
정착 당시 그가 리조트 주방에서 일하던 원주민 여성 3명을 앉혀놓고 “나와 결혼할 사람?”이라고 차례로 물어 “예스”라고 답한 세 번째 여인과 사흘 만에 결혼한 일화는 지금도 연구진 사이에서 ‘축 인간극장’으로 자주 회자된다.
최고 인기 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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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과학기술원 송한주 팀장이 축 현지 어린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술과 마약만 들이켜면 난동을 부리는 현지 젊은이들을 상대하며 김씨는 ‘국가재산’을 지켜냈다. 불안정한 전력 사정에 자체 발전기까지 멈추면 그는 양초를 켜고 버텼다. 고졸 출신인 그는 “우수한 박사님들과 일하는 자체가 영광”이라고 했고, 연구원들은 “김 과장이 축에 미리 정착한 자체가 국가적 행운”이라고 했다. ‘축 인간극장’을 만난 지 한 달 후, 서울에서 재회한 박 센터장은 김씨의 KBS <인간극장> 출연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주 정부에서 고위 공직자로 근무하다 은퇴한 카스터 시삼(Sisam) 씨는 김씨와 사돈관계다. 축에 정착한 한국인의 이미지에 대해 묻자 그는 “한국인과 가족관계인데 나쁜 말을 할 순 없지 않으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한국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모습은 ‘열심히 한다’는 점입니다. 이곳 젊은이들에게 ‘열심’이란 없는 개념이었죠. 게으르고 방황하던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기술은 물론 책임감까지 배웠습니다. 예전엔 고장 난 차는 그냥 버렸는데, 이젠 장비와 부품을 구해 와 고치는 모습을 보고 놀랐어요. 축의 주요인사들은 모두 한국과 관계가 잘 지속되기를 바란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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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론소 촐리메이 축 상원의원(왼쪽)과 카스터 시삼 씨. |
사푹 지역의 추장이자 현직 상원의원인 알론소 촐리메이(Cholymay)는 한국인들의 든든한 협력자다. 현재 연구센터가 자리 잡은 토지의 소유주로, 주 정부와 관련된 각종 민원을 해결해 준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초청으로 수차례 방한 경험이 있는 그는 “한국의 빠른 국가발전 속도와 친절한 사람들과의 인연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아시아에선 일본이 유일하게 발전한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가보고 오판이란 걸 깨달았죠. 잠수함까지 자체 생산하는 광경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축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죠. 한국인들이 우리를 친구나 동료처럼 대해 주는 것에도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 속담에 ‘탁자 안에 숨겨둔 것을 내주는 친구’란 말이 있는데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게 한국에선 ‘정(情)’으로 불린다더군요.”
고립된 섬과 에이즈
한국과 축은 과거 식민지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김도헌씨의 장모 시삼은 어릴 적 어느 나라가 무슨 이유로 싸우는지도 몰랐던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인 노무자들로부터 들었던 ‘아리랑’ 선율을 지금도 흥얼거릴 수 있다.
자본과 문명은 주요 섬의 생태와 문화를 변화시켰지만, 멀리 떨어진 한적한 섬은 여전히 야만의 경계 선상에 놓여 있다. 축 환초에서 약 110km 거리에 있는 놈윈(Nomwin)이란 이름의 산호섬엔 2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박흥식 박사는 10년 전 진주조개를 조사하기 위해 이 섬을 방문한 바 있다.
“환초를 벗어나면 파도가 거세집니다. 작은 보트가 크게 흔들려 GPS를 확인하기도 벅찰 정도였죠. 도중에 놈윈에서 축으로 향하는 원주민들을 만났는데, 천진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던 그들은 GPS 장비 없이도 망망대해를 자유롭게 오가더군요. 그들 말로는 구름을 보고 뱃길을 알고, 풀 냄새를 맡고 100km 떨어진 섬을 찾는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섬에서 한국 연구진은 5일 동안 머물렀다. 이들을 200여 섬 주민이 신기해하며 종일 따라다녔다. 아이들은 모두 이른바 ‘언청이’로 알려진 구순구개열 증상을 보였고, 치아 상태도 엉망이었다. 고립된 섬에서 이뤄진 근친혼의 영향인 것으로 판단됐다고 한다. 그런 섬에 에이즈가 들어온 것은 역설적이다. 한국 연구팀이 해양 수집에 한창일 때,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온 팀은 에이즈 역학조사를 하고 떠났다.
놈윈섬은 환초다. 가운데가 뚫린 둥근 도넛 모양으로 섬 안과 밖이 모두 바다다. 큰 해일이 몰려오면 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 역사가 기록되기 전 이미 섬은 주인을 수차례 바꿨을지도 모른다. 태평양의 섬들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인터뷰 | 존슨 엘리모 축 주지사![]() 그는 당선 일성(一聲)으로 “에코투어리즘(eco-tourism·생태관광) 활성화”를 주창했다. 생태계를 보호하는 친환경 여행을 뜻하는 말로, 최근 세계 각국에서 각광받는 추세다. “축에는 자원이 많지 않습니다. 한국과 비슷하죠. 가장 큰 자원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자연인데, 에코투어리즘을 활성화해 이를 보호하고 활용하는 게 임기 중 가장 큰 목표입니다. 어업도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진행될 경우 어느 순간 쇠퇴할 수밖에 없어요. 섬의 잠재력을 위해선 새로운 대안이 필요할 때입니다.” —태평양해양연구센터를 중심으로 한국 연구진의 진출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데요. “잘 알고 있습니다. 축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가진 얕은 지식으로는 해저(海底)에 어떤 생물이 사는지 알 수가 없어요. 수면 가까이에 있는 물고기는 잡을 수 있지만, 본격적인 연구엔 한계가 있죠. 해양생태계를 이해하려면 한국의 태평양해양연구센터와 같은 기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국을 방문한 적은 있습니까. “예전에 제주도를 방문해 양식기술을 본 적이 있는데 아주 감명받았어요. 그런 뛰어난 기술이 이곳 정부와 잘 연계돼 섬 곳곳으로 잘 전파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축 주민은 한국과 지금처럼 밀접한 관계가 계속 유지되길 희망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G2 구조를 형성하며 전 세계를 무대로 경쟁 중인데, 축도 비슷한 상황인가요. “축을 비롯한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은 지금도 미국에서 오는 원조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미국의 경제 사정에 따라 지원규모가 영향을 받기 때문에 민감하게 관찰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최근 정부 차원에서 공항과 주 정부청사를 증축하는 등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죠. 이뿐 아니라 폐차를 처리하는 고철회사와 같은 민간자본도 속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곳도 G2 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죠.” —거대자본을 무기로 한 중국의 진출이 부담스럽지는 않습니까. “주지사로서 이곳에 중국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경제적 지원과 함께 진출하는 것은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는 중국뿐 아니라 모든 국가에 해당하겠죠. 정치적 의도나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엘리모 주지사는 질문 중 강대국(powerful nation)이란 단어가 나오자 “요즘 가장 강한 나라는 북한 아니냐”며 농을 던졌다. 마침 인터뷰를 한 시기가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며 전 세계를 상대로 도발하던 때였다. |
<2> 태평양의 잊힌 유적, 폰페이
폰페이는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의 수도가 자리 잡은 섬이다. 섬 이름은 “돌로 만든 제단(pehi) 위(pohn)”란 뜻이며, 과거엔 ‘포나페(Ponape)’로 알려졌었다. 345km2의 면적에 약 3만4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마이크로네시아의 사실상 유일한 유적인 ‘난마돌(Nanmadol)’이 있어 관련 연구를 하는 학자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태평양에서 보기 드물게 나름 전통을 가진 수도이지만, 한국에서 이 섬까지 오는 길은 만만치 않다. 괌과 축을 경유해 오든, 하와이에서 마셜제도와 코스라이를 거쳐 오든, 적어도 두 차례 이상 환승을 해야 한다. 일반 한국인 관광객은 거의 찾기 어려우며, 그나마 보이는 이들은 대부분 원양어선 선원들이다. 섬을 돌며 만난 현지인들은 기자 일행에게 “피셔맨(fisherman)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답하니 대부분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만큼 어업과 무관한 외지인을 보기 어려운 곳이다. 한국인 상당수는 폰페이를 이탈리아의 고대도시 ‘폼페이(Pompeii)’와 혼동한다.
이런 곳까지 한류(韓流) 열풍이 부는 현상은 문화의 힘이 지리적 한계를 넘어선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섬 주민 대부분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물론, 한국 드라마와 배우 이름을 줄줄 꿴다. 현지 여성 버지니아 이지키아스(Ezekias)에게 요즘 어떤 한국 드라마가 폰페이에서 가장 인기 많은지 물으니 예상 못 한 답변이 돌아왔다.
“한국에서 한국인들에게 어떤 드라마가 가장 인기 많은지 물어보세요. 각자 다른 답변이 돌아오겠죠. 이곳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사실상 모든 드라마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각자 취향대로 선택하죠. 굳이 하나 고르라면 제가 가장 최근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는 <다모>입니다.”
이곳에서 참치 어획 쿼터를 정하는 핵심인사가 한국인이란 사실도 의외였다. 해양수산부 국제교섭관을 역임한 소성권(蘇聖卷) 박사는 2004년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WCPFC) 초대 과학위원회 의장을 거쳐 2006년부터 과학관으로 선정돼 7년째 폰페이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함께 만난 교민이 “2년 동안 폰페이 살면서 기자가 온 것은 처음 본다”고 하자 “나는 7년 살면서 처음 본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많은 이가 ‘태평양시대’라고 호언하지만, 제대로 이곳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태평양은 일주일 둘러보고 안다고 할 수 없는 곳이에요. 최소 3년은 살아봐야 대충 이해가 됩니다.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한국은 기획의 수명이 짧아요. 예전에 해양수산부에 근무할 때 장관이 8번 바뀌니 업무보고 하다가 시간이 다 가더군요. 뭐든 장기적으로 꾸준히 추진하지 않으면 효과를 볼 수 없는 곳이 태평양입니다.”
소 박사는 “한국에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수박 겉핥기식으로 둘러보는 게 문제냐”는 질문에 “수박 겉핥기마저도 안 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답했다.
“세계 13위 경제대국에서 거창하게 와서 자동차 몇 대, 컴퓨터 몇 대 주고 갑니다. 그리고 수익과 효율을 따지더군요. 태평양에 대한 무지가 빚은 결과입니다. 일본인들은 이곳에 한 번 오면 5년 이상 머무릅니다. 섬을 돌면서 연구지원, 감시·감독, 기술이전 등을 추진합니다. 그리고 공항을 짓고 섬 일주도로도 닦아주죠. 중국은 정부청사를 짓고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습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란 개념이 폰페이엔 없다. 산과 바다엔 먹을 게 넘쳐나고 추위가 없어 난방을 위해 돈을 모을 필요도 없다. 소유가 없어도 생존이 가능한 ‘낙원’에선 ‘기획’과 ‘경영’이란 말이 무의미하다. 자동차가 필요하면 몇 년 바짝 일하고 차를 산 후 일을 그만둔다. 소 박사의 설명이다.
“한국 정부와 일부 기업이 태평양 도서국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정책과 사업을 시도합니다. 한국인은 약속은 많이 하는데 정작 이행을 하지 않아요. 섬 주민들도 이제 알 만큼 다 압니다. 긍정적인 계획은 발표되는데 결과물이 안 나와요. 그나마 한국기업이 대체로 잘 해왔는데, 이젠 이곳 사람들이 기업을 넘어 정부 차원의 교섭을 원하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입니다.”
티 내는 日, 묵묵한 中, 아무것도 안 하는 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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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타이완은 아무리 작은 지원이라도 흔적을 반드시 남긴다. |
“대국이라 스케일이 다른가 봅니다. 중국인들은 자기들이 뭘 지원했는지도 잘 모릅니다. 이곳에선 중국 방식이 더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어요. 원조에 대해 홍보하는 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제가 근무하는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 건물도 알게 모르게 중국이 지었죠. 그런데 한국은 지원도 제대로 안 하면서 티부터 내려고 하니 역효과가 나는 겁니다. 고생하던 시절 원조도 받아본 나라가 왜 당시 입장을 생각 못 하는지 모르겠어요. 한류로 좋게 키운 이미지를 전혀 활용 못 하고 있는 셈이죠.”
소 박사는 태평양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부터 원조가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키리바시(Kiribati)나 마셜제도와 같은 환초는 식수가 항상 부족하고, 태평양 대다수 섬은 전기가 절실하다. 비싼 전기료 때문에 폰페이의 경우 도심에 사는 4000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전기 보급이 되지 않는다. 소 박사는 “대충 한 번 둘러보고 지피지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지(奧地)같이 보이지만, 한류 열풍이 엄청나 한국인에 대한 감정은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어떤 사안이든 전략을 철저히 세우고 책임감, 계획성, 지속성을 갖고 추진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소 박사가 일하는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는 UN해양법(UNCLOS) 이행협약에 따라 설립된 수산관리기구로 총 43개국이 220만t의 고도회유 어종을 두고 쿼터를 정한다. 이는 태평양 전체의 80%, 전 세계의 55% 규모로 도매가 기준 총 55억 달러의 가치다. 과거엔 월별 또는 잡은 양만큼 금액을 계산했지만, 지금은 날수로 정한다. 국가별로 보유한 연간 6000일이나 8000일 정도의 배당량을 두고 하루 6500달러부터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어업 협상은 정부가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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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산업 폰페이사무소의 박태선 소장(왼쪽)과 유정희 주임. |
유정희(兪靜熹) 주임은 “원양협회가 주도하는 한국과, 국가 차원에서 나서는 일본, 중국, 타이완은 경쟁이 되기 어렵다”며 “한국도 협회의 베테랑과 정부의 엘리트가 함께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유 주임은 6월 초 한국에 복귀했다가 한 달 후 아프리카 동부의 세이셸(Seychelles) 기지로 떠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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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희씨의 복싱 나눔은 폰페이 현지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로 청소년들의 ‘복싱 열풍’을 불러왔다. |
“1년 전만 해도 농구와 소프트볼 외엔 다른 스포츠가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수업 끝나면 길거리에 모여 담배 피우고 잡담하는 게 전부였죠. 이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주기 위해 시작했는데, 마이크로네시아연방 올림픽위원회 측에서 정식으로 가르쳐달라는 요청이 왔고 정부에선 체육관 시설을 지원해 줬습니다. 결국 한국 본사에 연락해 각종 복싱기구를 후원받아 여기까지 오게 됐죠.”
‘신도쿄(新東京)의과대학’은 적도 태평양에서 유일한 의과대학이다. 학교를 지어 운영하는 사람은 엉뚱하게도 일본인이 아니라 크리스천 홍(Hong)이란 이름의 재미교포 출신 한인이었다. 홍 원장은 국내 한 의과대학 재직 시절 폰페이 진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가 학교 측 사정으로 중단했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 대학과 계약을 맺었지만, 그마저도 원활하게 추진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미 ‘신도쿄’란 대학명을 걸게 된 후라 일본과 관련 없는 일본식 이름의 대학을 세운 것이다.
태평양 最古 해양문명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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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태평양에서 유일한 의과대학인 신도쿄의과대학의 크리스천 홍 원장(앞줄 오른쪽)과 교수 및 학생들. |
“폰페이 정도의 인구라면 400명 정도의 의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정식의사는 딱 3명뿐입니다. 폰페이뿐 아니라 대다수 태평양 도서국의 상황이 비슷합니다. 현재 학생 정원 20명에 교직원 5명이 1기생으로 학기가 진행 중입니다. 첫 기수 선발 때 축과 팔라우 등까지 소문이 나서 38명이 지원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이들이 졸업할 때쯤이면 이곳 의료 환경도 많이 좋아지겠죠.”
교포들과의 만남을 마친 후 폰페이섬을 한 바퀴 돌았다. 4시간 정도면 일주할 수 있을 만큼 도로 사정은 꽤 좋았다. 일주도로는 일정 간격마다 일본인이 건설했다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폰페이의 도심 콜로니아에서 동쪽 길을 따라 1시간 정도 가면 태평양 최고(最古)의 해양문명 유적인 난마돌이 등장한다. 사각형 모양의 93개 인공섬이 바닷가에 배치돼 ‘태평양의 베니스’로 불린다. 주강현(朱剛玄) 제주대 초빙교수는 저서 《적도의 침묵》에서 난마돌에 대해 “구전 역사의 판타지와 진실이라는 파트너가 만나는 곳”이라며 “왕들이 바뀌면서 난마돌 전통을 차츰 쌓아갔으며, 축조 자체가 역사가 됐다”고 표현했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육각의 돌기둥들, 빈틈없이 채워나간 돌기둥의 숨 가쁜 밀도, 사람의 힘으로 옮기려면 엄청나게 힘들었을 기단의 장중한 거석들, 날렵하게 올라간 성곽의 꼭대기, 빈틈없이 미학적으로 교차시켜 쌓아올린 모퉁이, 그리고 무엇보다 물가에 비친 옛 왕조의 그림자가 복잡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큰 기대를 안고 도착한 유적의 현장은 초라하고 복잡했다. 도로변 단출한 표지를 따라 비포장도로에 들어서면 더 이상의 표식이나 간판은 찾을 수 없다. 갈림길에서 운이 안 좋으면 엉뚱한 해변까지 한창 역주행을 해야 한다. 30여 분을 헤매다 작은 민가 앞에 선 여성에게 길을 물었다.
난마돌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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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최고(最古) 해양유적 ‘난마돌’의 ‘난다우와스 무덤’ 모습. |
유적 길목엔 작은 집 몇 채가 있었고, 주민 10여 명이 나무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입구에 한 노파가 앉아 있었다. 3명 입장료로 10달러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자, 노파는 악수까지 하며 연방 ‘생큐’를 반복했다. 안내지나 입장권이 없는 곳이라 실제 ‘정가(定價)’가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관행이 현행법을 앞서는 섬에선 유적의 관할권이 사실상 추장에게 있다.
기념품 상점 하나 없는 입구를 지나 천연의 유적 속에 들어서면, 입장료 몇 달러가 전혀 아깝지 않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유적은 거대한 돌과 백산호(白珊瑚)의 조합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웅장함을 드러냈다. 울창하게 우거진 맹그로브(mangrove)숲 사이로 펼쳐진 인공 운하를 15분 정도 건너다 보면 유적의 ‘절정’인 난다우와스(Nandauwas)의 무덤에 다다른다.
거대한 석조 건축물 앞엔 때마침 물때를 맞아 바닷물이 들어왔다. 허리까지 차오른 물을 건너 유적 안으로 들어섰다. 현대적 안내판이나 관람로가 따로 없는 곳이라 모든 것을 상상에 맡겨야 했다. 담 너머 바다를 보기 위해 미로같이 얽힌 통로를 헤매다 결국엔 맨발로 담을 넘었다. 대략 5세기부터 약 1000년 동안 이곳을 다스렸다는 난마돌 왕조의 전사(戰士)가 된 느낌이었다.
난마돌에 대해 과거 현지에서 기록된 문헌은 없다. 난마돌이란 말이 폰페이 말로 ‘사이의 공간’, 즉 운하를 뜻한다는 것 외엔 모든 것이 추측이다. 난마돌의 원래 이름인 ‘소운 난-렝(Soun Nan-leng)’을 두고 연구자에 따라 ‘천국의 암초’란 뜻과 ‘하늘의 지붕’이란 뜻이 엇갈린다. 작게는 1t, 큰 것은 50t에 이르는 정교한 돌들은 섬 반대편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불가사의 같은 건축물 자체가 문자를 넘어선 기록인 셈이다.
“정부청사 담 넘으면 다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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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마돌 유적지에서 만난 제이(Jay) 군과 그 가족들. 폰페이의 청소년과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상당히 적극적이다. |
‘미지(未知)의 유적’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주도로를 따라 섬을 마저 돌았다. 도심인 콜로니아에 이를 즈음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의 수도인 팔리키르가 나타났다. 잘 정돈된 숲 속에 미국식 디자인으로 넓게 지어진 연방정부청사 건물들은 섬나라의 여유와 연대를 상징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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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린 로버트 마이크로네시아연방 외교장관. |
연방정부의 특성상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은 국가 기반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섬마다 추장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8개 언어와 30여 개의 방언이 존재하는 섬들을 국가로 유지하기 위해선 힘을 분배할 수밖에 없다.
“이곳 중앙 정부를 작게 만들고 정치적 힘은 지역에 나눠주는 방식입니다. 물론 지역마다 정치적·사회적 이슈가 다르죠. 이를 적절하게 조절해 중앙과 지방의 문화를 모두 보전하는 게 정부의 역할입니다. 섬나라에선 이런 국가 운영 방식이 가장 적절하다고 봅니다. 중앙 정부가 워낙 작으니까, 저희끼리 농담으로 ‘청사 담만 벗어나면 다른 나라’란 농담을 합니다.”
로버트 장관은 현재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의 가장 큰 외교적 화두로 미국과의 자유연합협정을 꼽았다. 2023년 이후 미국의 원조가 불확실해지면, 10년 동안 연방정부가 어떤 외교·경제 정책을 펼쳐야 할지에 대해 논란이 크다고 했다. 최근 태평양의 새로운 패권으로 급부상한 중국의 가능성을 물었지만, 아직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정도는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은 쌍둥이 국가”
“미국과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의 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1945년부터 76년까지 이곳을 신탁통치했죠. 86년 독립 후에도 2023년까지 경제적 원조를 하기로 계약해 지금까지 막대한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습니다. 이를 한번에 버린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로버트 장관은 서구 문명의 도입 이후 마이크로네시아 섬들을 점령했던 강대국들을 두고 그 성격을 ‘4G’로 설명했다.
“처음 이곳에 온 스페인은 신(神)을 위해(for God) 왔고, 그다음 독일은 돈을 위해(for Gold) 왔죠. 일본은 그네들의 영광을 위해(for Glory) 왔고, 미국은 그냥 영원히(for good) 머물려고 왔습니다. 그만큼 역사상 미국이 가장 큰 역할을 이곳에 했죠.”
현재 미국이 가장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중국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은 적도 북쪽 태평양 도서국 중 중국과 수교한 유일한 국가다. 다른 나라들은 모두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로버트 장관은 “급속도로 성장하는 중국의 경제력과 최근의 정치적 변화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앞으로 이곳에 가능한 원조 규모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는 것은 이곳에서도 잘 압니다. 하지만 외교 방향이 크게 틀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중국의 급변하는 정치·경제적 환경은 대중(對中) 외교를 더욱 발전시킬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미국은 국방을 담당할 정도로 가장 특별한 존재죠. 한국도 상당히 특별한 관계가 됐으면 합니다.”
로버트 장관은 대뜸 “한국과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은 쌍둥이 국가”라고 했다. 같은 해에 UN에 가입했다는 이유였다. 양국은 1991년 수교 이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특히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은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왔다. 그는 2011년 ‘제1차 한·태평양 도서국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서울을 방문했는데, 비슷한 점을 많이 봤다고 했다.
“원조를 받던 한국이 자유민주주의를 통해 원조를 주는 경제 대국이 된 것은 여러 태평양 도서국들에 큰 귀감이 됐습니다. 우리와 한국은 비슷한 시기에 일제의 통치를 받고, 전쟁터가 된 경험이 있습니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한국의 도움이 큰 의미가 있는 이유입니다.”
인터뷰 | 알릭 알릭 마이크로네시아연방 부통령![]() 알릭 부통령은 여느 태평양 도서국과는 달리,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국가로 엮인 연방국임을 강조했다. 그는 4개 주 중 가장 작은 섬인 코스라이 출신이다. 608개의 섬을 함께 묶어 소통하는 게 어렵지만,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경제수역을 보유한 나라로서 자부심도 있다고 했다. 잘 정돈된 연방정부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2023년에 미국의 원조가 끝나는데, 그 후 국가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마침 지난주 정부 고위인사들로 특별자문위원회가 구성됐습니다. 2023년 이후를 논하기 위해서였죠. 물론 미국에서 오는 모든 지원자금이 끊기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장 큰 부분 중 하나가 종료되는 것이죠. 이제 막 시작한 협의 단계이긴 하지만, 자문위원회를 통해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구상하고 구체적 계획을 세울 예정입니다.” —어떤 방안이 있을까요. “미국 의회가 결정하는 여러 방식의 원조를 세분화하고 다양화하는 것이죠. 국내 지출도 줄이고, 미국 이외 나라들의 투자도 적극 유치할 계획입니다. 특히 한국 투자자들에게 이곳을 고려해 보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제 고향인 코스라이 공항도 한국 기업이 지은 것으로 압니다(1983년 공영토건이 건설).” —한국은 2011년부터 외교장관회의 개최 등을 통해 태평양 도서국과의 관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양국관계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습니까. “과거 8년간 주(駐)피지 대사를 수행한 경험이 있어 국제사회에 관심이 많습니다. 당시 한국 대사와도 친분이 두터웠죠. 지구온난화와 수산업은 한 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외교장관회의는 아주 새로운 시도라고 봅니다. 한국에 특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지도자로서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의 비전을 설명해 주십시오. “경제 발전이 가장 큰 과제입니다. 신흥국가이기 때문에 정치 수준도 초기단계이지만, 그보다 우선이 경제입니다. 2023년에 끝나는 기금 해결도 큰 화두입니다.” |
<3> 핵실험의 상처에서 피어난 환상적인 꽃, 마셜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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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로 환초의 내해 전경. 마셜제도를 구성하는 대부분 환초의 최고도는 해발 3m 정도다. |
길게 이어진 섬의 폭은 대부분 300~400m 정도다. 넓어야 1.2km, 좁은 곳은 50m밖에 안 된다. 사실상 도로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택시를 타더라도 미리 목적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길로 가다가 목적지 앞에서 세워달라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동북부에 자리한 마주로 종점(終點·End of the island of Majuro)에서 출발해 서쪽 끝 로라(Laura) 해변까지는 약 50km 거리로, 넉넉잡아 2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두 종점 사이를 고리 모양으로 촘촘히 이은 작은 섬들에 가기 위해선 수상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마셜제도에 사람이 처음 정착한 시기는 약 2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과거 역사에 대해선 기록이 없지만, 유력 가설에 따르면 중국의 남동쪽과 타이완에서 기원전 3000년경 뉴기니(Guinea)섬 쪽으로 이주한 이들이 멜라네시아와 폴리네시아 섬들을 거쳐 마이크로네시아의 마셜제도까지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원주민들은 코코넛과 조개껍데기로 ‘작대 항해도(Stick Chart)’를 만들어 카누를 타고 섬을 옮겨다녔다. 항해도를 만드는 이마다 방식이 모두 달라, 제작자만 해석이 가능했다고 한다.
서구인들이 섬을 발견한 것은 1520년경이다. 스페인 탐험가 알론소 데 살라사르(Salazar)가 섬 일부를 목격했고, 1788년 섬을 방문한 영국 선장 존 마셜(Marshall)의 이름을 따 마셜제도가 됐다. 이후 독일과 일본이 차례로 섬을 매입했다가 태평양전쟁 때 미국이 섬을 점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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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7월 25일 마셜제도 비키니 환초에서 실시된 미국의 공개 핵실험 모습. |
마셜제도 29개의 환초로 구성된 도서국이다. 이 중 23개 섬에만 사람이 거주하며, 나머지는 무인도다. 약 194만km2 바다에 펼쳐진 섬들의 면적 총합은 약 181km2이며, 인구는 약 6만3000명이다. 수도는 마주로, 공식언어는 마셜어다. 1986년 UN의 신탁통치에서 독립한 후 대통령제 공화국이 됐다. 자유연합협정에 따라 미국이 국방, 재원, 사회공공서비스를 지원하며, 행정과 외교는 자국이 담당한다. 국가정부구조는 입법, 사법, 행정부와 함께 최고족장위원회가 있어 ‘사권(四權)’으로 운영된다. 1979년 자치정부가 세워진 후 현재까지 선출된 6명의 대통령 중 5명은 전통 최고족장 출신이다. 총 24개의 선거 지역구는 대부분 환초들로 구분되는데, 마주로(약 2만7800명)와 콰잘렌(약 1만1400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700~800명 정도의 인구다. 1954년 미국의 핵실험으로 낙진 피해를 입었던 롱겔라프(Rongelap) 환초의 경우 현재 7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국가를 구성한 대다수 환초의 최고도(最高度)는 3m밖에 안 된다. 한국과는 1991년 수교해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양국 교역 규모는 2009년 97억 달러, 2010년 46억 달러에 이르나, 대부분 대미(對美) 수출 물량이 마셜제도를 경유하면서 나온 ‘통계상 교역량’이다. |
태평양 한가운데 한국 경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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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찰차에 문양만 바꿔 단 마셜제도의 경찰차. |
“폰페이에서 떠나기 직전까지 마셜제도 정부와 이메일 연락이 되지 않아 인터뷰 일정에 차질이 생긴 줄 알았습니다. 제대로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곳이 바로 태평양이기 때문이죠. 주(駐)피지 한국대사관이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운이 나름 따랐나 봅니다. 작은 섬나라지만 대통령 인터뷰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하와이와 가까운 지리적 특성상 미국의 영향을 더 받아서인지 섬 전체가 마이크로네시아연방보다 깔끔한 이미지였다. 특히 도심 반대편 주거지는 잘 정돈된 정원과 집들이 마치 미국 서부의 한 지방에 온 듯한 느낌을 줬다.
마셜제도 도로를 달리면 가장 눈에 띄는 게 한국 자동차다. 다른 마이크로네시아에선 찾기 어려웠던 현대차가 도로를 가득 메웠다. 택시 중 상당수는 엘란트라 모델을 사용하고 있었고, 경찰차는 아예 한국 경찰차에 문양만 바꿔 달았다. 한국 경찰차가 마셜제도까지 오게 된 이유에 대해 마셜제도 정부와 한국 외교부 양측에 문의했지만, 정확한 연유를 알지 못했다.
마셜제도엔 산이 없다. 마주로 환초의 경우 가장 높은 곳이 해발 3m에 불과하다. 23개 섬 전체에서 가장 높은 곳은 해발 6m의 리키에프(Likiep) 환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봉착한 태평양 도서국에서 마셜제도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마셜제도의 수몰을 막는 유일한 방벽은 산호초다. 만약 기상이변이 자주 일어나거나 심해질 경우, 마셜제도는 초기 환경난민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마셜제도 정부는 기후변화 이슈와 관련해 자국을 ‘최전선국가(front line state)’로 지칭하며 UN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적극 참여 중이다.
對美의존율 높아 자립 어려워
마셜제도와 한국은 1991년 수교했다. 90년대 말 한 종교단체의 교주가 주한 명예영사로 임명된 후 관광개발사업을 추진하다 사기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명예영사에서 해임됐으나 양국관계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최근 여수박람회와 한·태평양 도서국 외교장관회의 등을 통해 양국 교류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자국이 적극적으로 한국 유치를 지원한 2012년 여수박람회에 맞춰 필립 뮬러(Muller) 외교장관을 비롯한 대표단이 방한해 김성환(金星煥) 당시 외교장관과 만났다. 기자가 마셜제도 대통령을 만난 지난 4월 18일엔 케조 비엔(Bien) 주한 마셜제도 대사가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장을 받았다. 올여름 열리는 제2차 한·태평양 도서국 외교장관회의 개최지로 선정돼 양국관계 분위기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작은 섬나라인 마셜제도의 산업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 고용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곳은 국가다. 노동인구의 30~40%를 정부가 고용하고 있다. 국가생산의 60%는 미국의 자유연합협정에 따른 기금이며, 대부분의 생필품, 식량, 유류는 모두 수입한다.
다른 마이크로네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국가 경제는 대부분 미국에 의존한다. 올해까지 매년 5770만 달러를 지원받았고, 2023년까지 연간 6270만 달러를 추가로 지원받을 예정이다. 추가 원조는 콰잘렌 미사일 기지 임대료와 핵실험 보상금에서 나오고 있다. 미사일 기지에 고용된 국민은 1318명으로, 마셜제도 전체 고용인력의 13%를 차지한다. 2023년 이후엔 신탁통치기금(trust fund) 원조가 이뤄질 예정인데, 현재 마셜제도의 산업구조상 경제적 자립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마셜제도 정부는 관광산업 확대와 해외투자 유치를 통해 난관 극복을 시도 중이다. 비교적 안정된 정치환경과 산업기반은 이들의 큰 자산이다. 2011년 세계은행(World Bank)의 조사에 따르면, 마셜제도는 ‘사업하기 좋은 나라’ 108위, ‘사업 시작에 유리한 나라’ 39위, ‘건축허가 받기 용이한 나라’ 6위로 평가됐다.
모계사회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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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과학기술원 김선욱 연구원이 로라 해변에서 만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모든 마셜인들은 부족의 구성원으로서 토지 소유의 권리가 있다. 각 섬의 모든 땅은 ‘이로이지(Iroij)’로 불리는 족장이 소유하며, 구성원들에게 거주권을 주는 대신 식량 등을 받는다. 이로이지는 땅의 소유권뿐 아니라 자원의 활용과 분배, 분쟁 해결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 모든 구성원은 족장에게 충성을 다하며, 조직 지휘는 ‘알라프(Alap)’라 불리는 감독이 수행한다.
서구 문명이 도입되면서 문화의 사회구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통적으로 허락되던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가 선교사들이 활동하면서 금지됐다. 도시화가 진행된 후 가정불화와 폭력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마주로나 콰잘렌을 제외한 다른 지방 환초에선 여전히 전통문화가 강해 남편은 식량을 구해 오고 아내는 음식을 만드는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산업화 이후 남자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토지에 대한 권한도 강화됐다. 우젤랑(Ujelang)과 에네웨타크(Enewetak) 환초에선 현재 여자뿐 아니라 남자에게도 토지가 유산으로 대물림되고 있다.
유럽인이 섬을 발견하기 전까지 원주민들은 ‘에넨키오(Enenkio) 왕국’으로 불린 환초로 여행을 다녀와야 했다. 고대 마셜제도에선 족장이 문신을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인간의 뼈로 문신을 팠다. 에넨키오 왕국에 있는 큰 새의 날개 뼈를 가져오면 ‘인간제물’에서 제외됐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대다수 원주민이 날개 뼈를 얻기 위해 섬을 방문했다고 한다. 현재 에넨키오 왕국은 웨이크(Wake) 환초로 불린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제작한 자료에 따르면, 마셜제도 주민들은 대부분 서로 혈연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에 대규모 소요사태나 흉악범죄 발생률이 낮다. 전반적인 치안 상황도 양호한 편이지만, 주민의 실업률이 높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절도가 종종 발생한다.
種의 다양성만큼 다른 생각들
가장 위협적인 것은 대마초와 코카인 등 마약이다. 수년 전 미군기지가 자리한 콰잘렌을 중심으로 대량의 코카인이 발견되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일각에선 중남미 바다에서 유실된 마약이 떠내려온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 해군해양학연구소의 해류 분석 결과 불가능 결론이 났다. 현재 정부는 중남미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항로를 따라 대량의 마약이 유통되는 것으로 파악했지만, 크게 손을 못 쓰고 있다.
취재 일정을 마치며 마주로 환초를 한 바퀴 돌아봤다. 자유롭게 뛰어노는 아이들은 물론 느긋하게 움직이는 어른들까지 카메라 렌즈를 보면 모두 환한 미소를 보였다. 마셜제도는 핵실험의 상처에서 피어난 환상적인 꽃과 같았다.
바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환초는 ‘통찰(洞察)’이란 개념 자체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생물학적 종(種)의 다양성만큼 이들의 생각도 저마다 모두 달랐다. 그들에겐 무언가를 통합하고 분석하는 이해가 부족했다. 아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원시’와 ‘문명’의 경계 선상에 선 그들은 스스로 혼동하지 않는 법을 터득한 듯했다. 이념적 대립이나 사회갈등은 일부 위정자들의 몫이다. 전쟁과 침탈을 수없이 당했음에도 상대국을 욕하지 않았다. 자국민 서로를 탓하는 문화도 없었다. 섬나라 주민 대부분은 순수했다. 환초 끝 해변에서 뛰어놀던 어린아이들의 맑은 눈처럼.⊙
인터뷰 | 크리스토퍼 로에악 마셜제도 대통령![]() —마셜제도의 현안은 무엇입니까. “다른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첫째 국가목표입니다. 현재 일본, 중국, 타이완, 호주, 한국, 미국 등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중 미국이 가장 중요한 나라입니다. 2023년까지 경제적 원조를 하고, 국방을 책임지며, 자유로운 통행을 허가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국가적 위기는 무엇인가요. “기후변화입니다. 이는 마셜제도에 국한한 사안이 아니라 전(全) 지구적 문제입니다. 이미 산호가 파괴되고, 어획량이 줄어들며, 농작물 수확이 감소했습니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해수면 상승으로 국민이 주거지를 잃을 수도 있죠. 이미 현실화한 문제를 두고 여러 국가가 함께 논의하며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과는 어떤 관계를 갖고 있습니까. “이런 인터뷰를 하는 것부터 좋은 관계를 설명한다고 볼 수 있겠죠. 한국의 투자 및 외교활동은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이 짧은 기간에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룬 것을 잘 압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주요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 이를 달성한 한국인의 근면성과 교육열이 놀랍습니다.” —유럽, 미국, 호주 등 과거부터 태평양 지역과 관계를 유지해 온 나라들과 한국, 일본, 중국, 타이완 등 비교적 최근 떠오른 동아시아 국가들을 비교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일단 모든 협력관계는 좋다고 봅니다. 태평양 도서국들은 전쟁을 겪으며 여러 나라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각 나라에 서구열강이 들어왔죠. 지정학적으로 봤을 때는 동아시아 국가, 특히 한국과 가깝기 때문에 더욱 교류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지정학적 요인 외에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인식은 어떻습니까. “문화적으로 보면 서구와 다르게 가족을 중심으로 사회가 이뤄지는 모습을 봤습니다. 작은 사회구조가 모여 국가 문화를 이루죠. 이곳도 비슷합니다. 이런 연관성이 양국에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