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로고
2012년 10월호

집중추적

부산시와 형제재단의 수상한 동거

형제복지원의 부활에 쏠리는 의혹

글 :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 형제재단은 아직 건재… 부산시에 정기상납 의혹
⊙ 해외부동산 구입, 명의신탁 의혹
⊙ 피해자 가족 소송 준비 중
형제복지지원재단 진입로 전경(왼쪽)과 《현대종교》 1985년 11월 표지사진. 《현대종교》는 박인근 원장 부부를 표지 모델로 선정했다.
  “형제원은 부산에서 복지재벌이에요.”
 
  구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한종선(37)씨는 7월 초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국회 앞에서 “형제원 피해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 달라”며 1인시위를 시작했다. 한씨는 기자에게 형제복지원 피해자라는 증거로 형제원의 ‘신상기록카드’를 제시했다. 신상기록카드에는 한씨가 “6년 전 어머니가 가출하고 아버지마저 3일째 집에 들어오지 않아 84년 10월 16일 인근 주민이 경찰에 신고하여 당일 동광파(동광파출소)의 의뢰로 누나(한신애)와 함께 본원에 보호됐다”고 적혀 있었다. 신상기록카드의 원장 도장란에는 ‘박인근’이라는 이름이 선명했다.
 
  이미 25년이 지났다. 형제원 사건은 대구고등법원에서 1989년 3월 박인근 원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면서 사법처리가 마무리됐다. 한씨는 “영화 <도가니>가 인화학교의 참혹함을 세상에 알린 것처럼 형제원의 인권유린을 취재해 달라”고 부탁했다. 기자는 “너무 오래전 일이고, 이미 끝난 사건이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한씨는 “박인근과 형제원은 아직 멀쩡하고, 박 원장은 복지재벌이 되었다”고 호소했다.
 
  형제원과 박 원장이 건재(健在)하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기자는 7월 말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부산시를 방문해, 여러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청했다. 부산시 담당직원은 해명 대신 형제재단에 “《월간조선》 이정현 기자가 취재를 시작했다”고 알리고, 기자가 부산시에 요청한 자료 목록을 형제재단에 제공했다. 기자는 부산시의 일련의 대응을 취재방해로 느끼고 항의했지만 부산시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해관계인에게 통보했다”며 기자의 항의를 일축했다. 그러나 직접 담당직원을 만나 구두(口頭)로 문의한 내용을 전화로 형제재단에 알린 행위를 정보공개 법률로 정당화하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기자는 부산시와 형제재단의 유착(癒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하자 제보가 쏟아졌다. 그 결과 의혹의 윤곽이 드러났다.
 
 
  형제재단은 아직 健在
 
  부산의 형제복지원이 아직까지 건재한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법인의 이름은 수차례 바뀌어 현재는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지원재단(이하 형제재단)’으로 불리고 있었다. 1929년생인 박인근 원장(이하 직함 생략)은 2011년 4월 7일까지 형제재단 이사로 활동했다. 박인근은 3남4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형제재단은 3남 박천광(37)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부산 형제재단은 목적사업으로 중증장애인 요양원 실로암의 집을 운영하고, 수익사업체로 빅월드 레포츠센터(사하구)·사상해수온천(사상구)·피부과학연구소(사상구)를 거느리고 있었다. 실로암의 집은 이용정원이 80명으로 현재 부산시에 거주하는 18세미만(장애 1급) 중증장애인 47명이 입소해 있다. 대지면적은 9774㎡이고, 건축면적은 1888.59㎡이다. 철근콘크리트, 드라이비트 외벽으로 지었고, 지하 1층 지상 4층이다.
 
  수익사업체인 사상해수온천은 5층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1층 일반목욕시설(886.46㎡), 2층 일반목욕시설(2099.52㎡), 3층 일반목욕시설(2100.27㎡), 4층 체력단력장(2084.82㎡), 5층 수영장(776.27㎡)을 갖추고 있다. 또 다른 수익사업체 빅월드 레포츠센터는 찜질방, 불가마, 사우나, 헬스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1층 999.79㎡, 2층 928㎡, 3층 941.76㎡, 4층 941.76㎡, 5층 325.27㎡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부산시의 지원도 계속되고 있다. 형제재단은 생계급여, 교육급여, 운영비, 인건비 등을 부산시로부터 보조받고 있다. 액수는 2007년 9억원, 2008년 9억7000만원, 2009년 9억4000만원, 2010년 10억1000만원, 2011년 11억원 등이다. 매년 10억원의 정부 예산이 형제재단에 지원되고 있는 것이다.
 
  비록 20년이 흘렀지만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산 시민들에게 충격적인 기억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형제재단이 운영하는 사상해수온천과 빅월드 레포츠센터에서 형제재단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이에 대해 부산시 관계자는 “과거 언론보도로 형제원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매우 좋지 않아 수익시설이 형제재단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아직 형제원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란

 
  《부산일보》는 1998년 형제복지원 인권유린 사건을 ‘영남권 10대 사건·사고’로 선정했다. 국가기록원 나라기록 검색데이터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산시 진구 당감동의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인권유린 사건이다. 형제복지원은 전국 최대의 부랑아 수용시설로, 이곳에서 1987년 3월 22일 원생 1명이 구타로 숨지고 35명이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형제복지원의 실체가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조사 결과 형제복지원은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을 끌고 가서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켰으며,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 살해하여 암매장까지 하였다. 이렇게 하여 12년 동안 무려 531명이 사망하였고, 일부 시신은 300만~500만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 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원장 박인근은 매년 20억원의 국고지원을 받는 한편, 원생들을 무상으로 노역시키고 부실한 식사를 제공하여 막대한 금액을 착복하였다. 또한 자신의 땅에 운전교습소를 만들기 위해 원생들을 축사에 감금하고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시켰다.>
 
  1987년 6월 박인근 원장은 징역 10년과 벌금 6억8178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87년 11월 1차 항소심에서 벌금형이 사라진 징역 4년을 선고받았고, 1988년 7월 2차 항소심에서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결국 1989년 3월 3차 항소심에서 2년6월형이 확정됐다. 처음 형량에 비해 4분의 1에 불과한 처벌이었다.
 
  당시 사건 주임검사였던 김용원 변호사는 저서 《브레이크 없는 벤츠》에서 “대법원은 원장이 오로지 순수 부랑인들만 데려다 내무부 훈령이 정한 넉넉한 대우를 다 해 주었다는 엉터리 전제 아래서 원장의 행위를 내무부 훈령에 따른 적법한 행위라고 판단했다”고 비판했다.
 
  25년이 지났지만 형제원 피해자들은 아직까지 고통 받고 있다. 형제원 피해자 한종선씨는 이렇게 말했다.
 
  “누나와 형제복지원에서 인간으로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아버지 역시 형제원에 끌려왔습니다. 형제복지원에서 받은 정신적 충격 때문에 그 후 제대로 된 직장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함께 수용됐던 아버지와 누나는 현재 정신병원에 있어요. 형제복지원을 나온 이후 박인근 원장이 다시 잡으러 올 것 같아서 무서웠습니다. 복지원 출신임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작년에 영화 <도가니>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가니>의 무대가 된 광주 인화학교는 형제복지원에 비할 수도 없어요.”
 
  최근 들어 형제원 피해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들의 경험담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과거를 숨기고 살았지만 영화 <도가니>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자 형제원의 참상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며 인터넷에서 모이고 있다. 피해자들은 “정부와 형제재단으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일부는 형제원의 참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방치한 국가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형제재단이 유지하는 배경
 
형제복지원 피해자 한종선씨의 형제원 신상기록카드. 박인근(朴仁根) 원장의 도장이 보인다.
  국가기록원 나라기록 검색데이터는 형제원 사건으로 ‘12년 동안 무려 531명이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건이 공개된 이후 언론은 형제복지원 인권유린 사례를 수년간 집중 고발했다. 당연히 90년대 초반 2년6개월의 형을 살고 부산에 돌아온 박인근 원장을 바라보는 부산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부산지역에서 활동했던 변호사는 이렇게 증언했다.
 
  “90년대 초중반으로 기억합니다. 박인근 원장이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형제원에 대한 기억 때문에 변호사들이 사건 수임을 꺼린다면서 사건해결을 부탁했습니다. 저도 조금 망설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기독교 신자로 도와달라고 간청해서 사건을 맡았습니다. 경찰 단계까지 제가 처리했고 그 후는 전관(前官)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受任)했습니다.”
 
  그렇다면 위기에 처했던 박 원장이 어떻게 재기(再起)할 수 있었을까. 이와 관련해 박 원장이 부산시 공무원과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서 가능했다는 주장이 있다.
 
  기자는 과거 형제재단에서 간부로 근무했던 A씨를 만났다. A씨는 “형제재단이 아직까지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부산시와의 유착 때문이다”며 “박 원장은 부산시에 수도 없이 돈을 건넸지만 평생 돈 준 사람의 이름을 발설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A씨는 “돈 준 공무원을 끝까지 보호한 덕에 형제원은 유지될 수 있었다”며 형제재단과 부산시의 유착을 고발했다. A씨와 나눈 대화이다.
 
  ―형제재단이 아직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요.
 
  “부산시와 유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박인근 원장은 다양한 혐의로 수도 없이 경찰,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한 번도 돈을 준 공무원 이름을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박 원장 스스로도 살기 위해 이름을 불지 않았던 것이죠.”
 
  ―구체적인 사례를 들 수 있나요.
 
  “박 원장이 ‘500만원을 만들어 놓고 기다려라’고 지시를 하면 어김없이 부산시 사회복지과 직원이 재단을 찾았습니다. 가끔 ‘이 돈은 빌리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돈을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보통은 아무 말 없이 돈을 가져갔습니다. 대략 한 달에 한 번 꼴로 돈을 받으러 온 것 같습니다.”
 
  ―돈은 어떻게 마련했나요.
 
  “보관금(保管金)을 사용했습니다. 보관금은 주로 백만원짜리 수표였습니다. 박 원장이 돈을 마련할 것을 지시하면 여직원이 나가서 현금으로 바꿔 왔습니다.”
 
  ―어떻게 전달했나요.
 
  “일단 신문지로 싼 다음에 검은색 비닐봉지에 넣어서 전달했습니다.”
 
  ―돈을 받은 공무원의 인상착의를 말해 주세요.
 
  “키가 작고 빼빼했습니다. 나이는 50대로 보였습니다.”
 
  부산시 공무원의 뇌물수수 의혹에 대해, 부산시는 “부산시 공무원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라며 “의혹을 제기하는 측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시의 수상한 인·허가
 
  사회복지법인에 소속 지방자치단체는 명백한 갑(甲)이다. 사회복지사업법 제23조는 ‘사회복지법인이 기본재산을 매매·증여·교환·임대·담보제공 또는 용도변경 하기 위해서는 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同) 규정은 법인이 은행 등 금융권에서 운영경비를 장기차입(長期借入)할 때에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도록 강제한다. 뿐만 아니라 자치단체는 사회복지법인을 관리·감독하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사회복지법인은 지방자치단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부산시는 형제재단을 제대로 관리·감독해 왔을까. 이와 관련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사례가 있다.
 
  부산시는 2009년 4월 6일 형제재단이 “부산저축은행을 통해 110억원을 빌렸는데 (부산저축은행이) 담보제공을 요청하고 있으니 허가해 달라”며 요청한 장기차입허가 신청을 허가했다. 부산시는 차입금 118억원(차입금 108억6800만원, 이자 9억3200만원)을 허가하고, 이를 2011년 12월 31일까지 상환하라고 지시했다.
 
  여기에는 조건이 있었다. 부산시는 “차입금을 사상해수온천 리모델링 사업비로 사용하고 기본재산 매각을 통해 원리금을 상환하되, 전체적으로 기본재산이 감소되지 않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형제원은 상환기간을 8개월 이상 넘긴 지금까지도 빌린 돈을 갚지 않고 있다. 형제재단은 110억원의 차입을 요청하면서, 재단 소유 부동산을 팔아서 빚을 갚겠다고 약속했다. 형제재단은 차입허가를 신청하며 “부동산에 대한 정책이 변경되는 2009년 초반기 이후가 바로 매매의 적기로 판단되는바 이때에 판매가 가능하도록 실제 협상중인 대지에 대하여 가격을 재산정해 협상을 끝내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채널(부동산, 매스컴 등)을 가동해 매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형제원이 매각을 약속했던 부동산은 ▲부산시 북구 덕천동 1필지 ▲부산시 강서구 대저1동 7필지 ▲울산시 북구 정자동 3필지 ▲울산시 북구 산하동 2필지 ▲경주시 양남면 1필지 등 전체 19필지 14만5790㎡이다. 형제원은 부산시 대저동 땅을 제외한 부동산을 아직까지 매각하지 않고 있다. 대저동 매각대금 역시 빚을 갚는 데 사용하지 않았으며, 아직까지 110억원을 전혀 상환하지 않고 있다.
 
 
  차입금 전용 의혹
 
형제재단이 수익사업체로 운영 중인 사상해수온천(왼쪽)과 빅월드 레포츠센터.
  차입금을 리모델링에 사용했는지도 의문이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은 “새로 지어도 100억원이면 충분한데 리모델링에 110억원을 썼는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부동산 관계자들은 “상당액이 다른 용도로 전용(轉用)되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부산시가 상환기간 8개월이 지나도록 형제재단에 어떠한 행정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아가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부산시가 목적사업에 충실해야 하는 사회복지법인에 고도의 경영판단이 필요한 스포츠레저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해 준 것 자체가 문제다”고 지적한다.
 
  부산시는 차입을 허가하면서 “추후 법인의 장기차입 허가 시에 부채의 누적현상 등으로 인한 법인 재무구조의 악화방지를 위하여 차입금액에 관계없이 주무관청에 사전 사업계획과 상환계획에 대해 협의 받을 것”을 지시했다. 부산시는 또 “조속한 시일 내 공인회계사의 회계감사를 받고 감사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함께 지시했다. 그러나 형제재단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당시 부산시가 형제재단에 보낸 공문을 보면 “시(市)의 지시를 어길 경우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엄중 경고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부산시는 기자가 문제를 지적할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부산시 관계자는 관련 의혹에 대해 “관리 감독이 되지 않은 점은 인정한다”며 “철저한 점검으로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복지사업이라는 것이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사회에 기여해야 하는데, 이런 것을 강제하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며 “비록 의무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지도·점검해서 복지법인의 설립목적에 맞도록 철저히 지도· 점검하겠다”고 덧붙였다.
 
 
  “억울하다”
 
  이에 대해 형제재단 박천광 대표는 9월 초에 부산에서 기자를 만나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대출 받은 돈은 모두 시설 리모델링에 사용했습니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있습니다. 은행이자 때문에 은행에서 돈을 더 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는 부동산을 매각해서 부산저축은행의 빚을 갚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부산저축은행이 경영위기로 작년에 무너지면서 일이 틀어졌습니다. (돈을 빌려 준) 부산저축은행은 (상환일이 오지 않았음에도) 저희 부동산을 가압류 조치 했습니다. 2011년 11월 한국감정원을 통해 감정까지 받았습니다. 90억원에 매각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재산을 넘겨받은 예솔저축은행은 매각액이 적다는 이유로 가압류를 풀어 주지 않았습니다. 현재 예솔저축은행과 소송 중입니다. 원래 대출 이자가 8%였는데, 작년 11월 말부터 21%가 됐습니다. 이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부산시는 2010년에 특별 지도·점검을 시행했습니다. 그 당시 부산시는 이와 관련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와서 문제를 제기하니 억울합니다.”
 
  형제재단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2010년 사회복지법인 특별 지도·점검은 당시 구덕원 등 부산시 산하 사회복지법인 비리가 부산지역 언론을 통해 밝혀지면서 시작됐다. 당시 특별 지도·점검은 “부산에서 사회복지법인을 이용해 나쁜 짓 하는 자들을 뿌리 뽑으라”는 부산시장의 지시에 따라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의욕적으로 실시됐던 특별 지도·점검에 형제재단 역시 포함됐지만 논란이 되고 있는 대출 의혹은 전혀 규명되지 않았다. 부산시는 형제재단 정관에 기본재산 현황 등기기재 누락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형제재단 점검을 마쳤다.
 
  이에 대해 부산시는 “당시 특별 지도·점검은 부산시 소재 사회복지법인에 대한 일제점검으로서 각 구·군에 통보하여 기장군에서 점검한 내용이다”며 책임을 기장군에 넘겼다. 일련의 의혹에 대해 부산시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8월 27일부터 9월 7일까지 특별 지도·점검을 실시했다”며 “현재 점검결과에 대하여 검토 중이며 그 결과에 따라 위법·부당한 사항에 대해서는 관련법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해외 부동산 취득 의혹
 
박인근 원장이 2010년 셋째 사위에게 물려준 호주 시드니 소재(所在) 골프연습장. 구글지도 캡처.
  박인근 원장은 현재 중풍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제재단 관계자는 “가까운 친척을 제외하고는 누군지도 못 알아볼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후계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박 원장은 자신의 재산을 자식들에게 넘겨주고 있다. 기자는 박 원장 재산을 폭넓게 확인했다.
 
  9월 초 기자는 다음과 같은 제보를 받았다.
 
  “박인근 원장은 해외에도 부동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주에 골프연습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호주 골프연습장은 한국과 달리 규모가 엄청납니다. 규모는 만 평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 원장은 셋째 사위에게 호주 부동산 소유권을 넘겼습니다. 부동산 구입과 운영을 위해 상당한 돈을 호주에 송금했습니다. 한 사람 이름으로 천만원 이상 송금하지 못해 직원들 이름을 빌려서 돈을 보냈습니다. 주로 외환은행을 이용했습니다.”
 
2010년 박인근 원장이 호주 시드니 골프연습장을 셋째 사위에게 물려줬음을 알 수 있는 부동산 거래 정보.
  기자는 문제의 부동산 주소를 확보했다. 부동산은 호주 시드니에 위치해 있었다. 항공사진으로 볼 때 상당한 규모임을 알 수 있었다. 기자는 골프연습장에 박 원장 사위가 일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구체적인 증거도 확보했다. 기자가 입수한 해당 호주 부동산의 거래정보(land and Property information)에 따르면 박인근(In Kuen Park) 원장은 골프연습장을 2010년 12월 24일까지 소유했다. 문서 내용으로 볼 때 호주 부동산은 이미 박 원장 셋째 사위에게 넘겨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재산의 경우 셋째 아들 박천광씨가 형제재단을 물려받았다. 사상온천 등 수익사업체는 박씨가 사장으로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큰딸이 대표이사로 있는 사회복지법인 신양원이다. 박 원장은 2008년 8월 김해 신영중·고등학교를 운영하는 신양원의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박 원장은 2010년 12월 첫째 딸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줬다.
 
 
  사회복지법인 매입, 명의신탁 의혹
 
  사회복지법인을 사고파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복지법인 신양원은 2008년 8월 박인근 원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이사회를 열었다. 당시 회의록은 전임(前任) 대표가 “당뇨와 고혈압으로 업무를 수행하기 힘이 들어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사회복지계를 대표할 정도의 능력과 여력을 갖춘 박인근 대표를 선임한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형제재단 관계자의 주장은 다르다.
 
  “누가 법인을 아무런 조건 없이 넘겨주겠습니까. 박 원장은 신영중·고등학교를 오래전부터 인수하려 했습니다. 사상온천 리모델링을 위해 부산저축은행에서 대출 받은 돈의 상당 부분이 학교 매입에 쓰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혹은 더 있다. 형제재단의 주요 법인 재산을 살펴보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거래가 발견된다. 그 가운데는 부동산 명의신탁(차명)이 의심되는 경우도 있다. 형제재단은 2003년 2월 법인 소유의 울산시 울주군 청량면 삼정리 부동산 267만8354㎡(8만평)를 이모(55)씨와 김모(59)씨에게 매매했다. 이씨와 김씨는 부동산 지분을 반으로 나눠 가졌다. 등기부 등본을 보면 이씨와 김씨는 자신의 돈으로 땅을 구입하지 않고 부산저축은행에서 약 30억원을 대출 받아 부동산을 매입했다. 취재 결과 이씨는 형제재단 이사였고, 김씨는 박인근 원장 첫째 사위의 누나로 확인됐다. 이씨는 2006년 10월 자신의 부동산 지분을 박 원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첫째 사위에게 넘겼다. 사위는 신영중·고등학교 교장직(職)을 맡고 있다. 해당 부동산은 최소 100억원으로 평가 받고 있다.
 
  부동산 중개사들은 해당 부동산 거래가 여러 면에서 석연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명백한 위법인 명의신탁(차명)이 의심된다고 말한다. 명의신탁이란 부동산을 마치 파는 것처럼 위장해 시세차익을 얻는 방법을 말한다. 예를 들어 형제재단이 해당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가격이 오르기 전에 거짓 거래를 통해 부동산을 판 것처럼 위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시세차익을 챙길 수 있다.
 
  “과거 해당 부동산이 시장에 나왔다는 소문을 듣고 부동산 가치를 산정해 봤다”는 공인중개사 B씨는 “지분을 쪼개서 구입해 상대방의 동의 없이 함부로 팔지 못하도록 했고, 매매의 상대방이 형제재단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며, 자신의 돈이 아닌 은행 대출을 통해 부동산을 구입했다는 점에서 명의신탁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B씨는 “검찰 조사를 통해 부동산 매매대금이 어떻게 이동했는지 확인하면 명의신탁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투기자본감시센터의 공동대표인 이대순 변호사는 “형제재단에 제기된 의혹을 볼 때 횡령, 외환관리법 위반, 관세법 위반, 배임수재, 상속세 회피 등이 의심된다”며 “하루빨리 검찰 조사를 통해 자금의 흐름을 밝혀 의혹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부산시는 일련의 의혹에 대해 “내용의 성격상 수사기관에서 수사할 내용이다”며 “사회복지법인 운영에 대한 투명성 제고와 복지사업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앞으로 보다 면밀하고 세밀한 지도·점검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형제복지원의 ‘감금’은 무죄
 
  부산 지역 종교 매체인 《교회복음신문》은 2008년 8월 다음과 같은 사설을 기고했다.
 
  “박인근 장로는 1980년대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언론에서는 ‘지옥의 사자’라는 칭호까지 붙여 줬다. 사회복지사업에 처음 손을 댄 것이 1961년도이다. (중략) 경찰과 시의 협조 속에 형제복지원 수용은 포화상태까지 갔다. 시와 경찰은 연신 고마움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난폭한 수용자들이 군데군데 있음에도 설립자 가족들은 원생들과 함께 생활했다. 이러한 삶과 복지 마인드는 지금까지 변함없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중상과 모략이 한꺼번에 닥쳐 왔다. 권력의 힘이 대단했던 한 검사에 의해 지금까지 희생해 온 복지사업이 깡그리 무너지는 위기를 맞았다. 설립자는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무죄를 끝까지 주장했다. 설립자는 불사조와 같았다. 다시 일어섰다. (중략) 부산 최대의 헬스장과 수영장을 갖춘 사상해수온천과 새롭게 리모델링해서 문을 다시 연 빅월드 레포츠를 통해 활발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중략) 이 땅에 가난한 자와 소외받는 자들을 위해 나눔의 선교를 펼치는 박인근 장로가 하늘에 상금을 차곡차곡 쌓아 가고 있는 셈이다.”
 
  《교회복음신문》은 김성원(53) 사장이 운영 중이다. 박인근 원장은 2006년부터 2007년 8월까지 약 1년8개월 동안 신문사의 발행인으로 신문 경영에 참여했다. 김 사장은 2006년 8월부터 2011년 4월까지 형제재단 이사였다. 김 사장은 박 원장과 함께 2008년 8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사회복지법인 신양원 이사로 등기되어 있다. 이런 관계로 볼 때 김 사장은 박 원장의 측근으로 보인다.
 
  신문 사설에 등장하는 ‘권력의 힘이 대단했던 검사’는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김용원 변호사이다. 김 변호사는 자신의 수사가 중상모략이라는 주장에 허탈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수사검사로서 권력을 행사한 적이 없습니다. 범죄를 조사하고 처벌했을 뿐이죠. 오히려 처벌이 미흡했다고 생각합니다. 법원에서 감금 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부분이 특히 그렇습니다. 법원이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수사를 위해 형제원을 방문했는데, 인간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교도소보다 비참했습니다. 그런데도 감금이 아니라니 할 말이 없습니다.
 
  수사 당시 박인근 원장은 전혀 잘못을 반성하지 않았고, 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검찰 상부의 압력 때문에 원칙을 100% 고수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횡령 액수를 축소하라는 압력에 굴복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건 자체가 공중분해될 것 같았습니다. 수사 검사가 손을 떼면 사건이 흐지부지되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이 박인근 원장이 형제원 사건으로 법의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논란이 됐던 인권유린 부분은 ‘무죄’로 결론 났다. 박 원장이 대구고등법원에서 1989년 3월 최종적으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 받은 것은 외환관리법 위반 등 인권유린 의혹과는 상관없는 죄목(罪目)이었다.
 
  김 변호사는 수사 당시 외압을 받았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수사 당시 상부에서 자꾸 수사를 못하게 해서 사표를 써서 제출했습니다. 검사장은 ‘사건 하나로 영웅 되려고 하지 마’라고 말했어요. 차장검사 역시 수사 방향을 바꾸려 했어요. 매일 아침에 보고하러 오라고 했어요. 울산지청 소관인데 부산까지 오라고 했어요. 보따리를 싸 들고 찾아가면 내일 다시 오라고 했어요. 그분 나중에 법제처장까지 했죠.”
 
 
  《교회복음신문》 부산시장 4촌 형 영입?
 
  2008년 부산 종교계에는 “비신자(비기독교인)가 《교회복음신문》 회장이 되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당시 《교회복음신문》은 건설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허모씨를 회장으로 영입했다. 부산 종교계에는 “허 회장은 허남식 부산시장의 4촌(寸) 형이다”라는 소문이 퍼졌다. 관련 내용을 취재했던 부산주재 기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사실 지방 종교지 경영상황이 열악한 것이 사실 아닙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돈 많은 스폰서를 영입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허씨의 경제력은 별로였습니다. 기독교계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허씨가 불교신자라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즈음 허씨가 허남식 부산시장의 가까운 4촌 형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종교계에서는 허씨가 허남식 시장과의 친분 덕분에 회장으로 영입됐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기자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허남식 시장의 족보를 입수했다. 허 시장 할아버지대(代)에서 자식까지 3대에 걸친 8촌 범위 친척을 모두 확인했지만 허모씨의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교회복음신문》이 허씨를 영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는 허씨와 친분이 두터웠던 C사장을 만났다. 부산에서 건설업에 종사하는 여러 관계자는 “과거 C사장은 허 회장이 부르면 다른 일을 제쳐놓고 만나러 갔으며, 허 회장 가방까지 들고 다닐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고 증언했다. C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허 회장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부산 명문 동래고(高)를 나왔습니다. 허남식 시장과는 고향이 같습니다. 좋게 말하면 로비스트, 나쁘게 말하면 브로커였습니다. 야망이 크고 배짱이 있었습니다.”
 
  ―허 회장과 부산시장은 어떤 관계였나요.
 
  “나이가 70세 정도 됐습니다. 허남식 시장은 65세죠. ‘시청에 가 봐야겠다’고 자주 말했습니다. 허 시장을 자주 만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허 시장을 만나러 가면서 국장들도 만나고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장을 자주 만나니 국장들도 예사롭게 보지 못했어요. 친해지려는 공무원도 있었고요. 둘 사이가 ‘사촌관계다 집안관계다’라는 소문도 있고 해서 공무원들의 마음이 쏠릴 수밖에 없었죠.”
 
  ―주로 어떤 일을 했나요.
 
  “허 시장을 잘 안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부탁이 들어왔을 것입니다. 인허가 부탁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맨입으로 왔다 갔다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최소한 거마비(車馬費)라도 받지 않았나 싶어요.”
 
  ―허씨는 기독교 신자인가요.
 
  “사실 불교 쪽에 가까운 것이 맞습니다. 사업상 중요한 일은 조계종 D스님과 상의했습니다. 다만 부인이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일에 부인과 함께 S교회에 다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는 허씨가 다닌다는 S교회 장로를 만났다. 그는 “허남식 시장이 S교회를 방문하면 허씨가 곁에서 안내했다”며 “친분이 있는 것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허씨와 교류했던 사업가도 “유세 등을 목적으로 S교회를 방문한 허 시장을 허씨가 안내하고 친밀하게 행동했다”며 “많은 사람이 둘 사이가 가깝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S교회는 교인수가 3000명 정도로 부산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크다.
 
 
  허 회장은 부산시 로비용?
 
  2007년 8월 박인근 원장이 표면적으로 《교회복음신문》에서 물러나고 허모씨를 새롭게 회장으로 영입할 무렵 형제재단은 부산시와 기장군의 은행 대출 허가에 목을 매고 있었다. 부산시와 기장군이 대출액이 많고 상환 능력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은행 대출 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 2월 5일 박 원장은 재단 이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06년 7월 19일 임시이사회의 결의로 장기차입을 신청하기로 하고 부산시에 장기차입 허가를 신청했으나 2006년 8월 16일자로 기장군수 명의로 된 반려서를 받았습니다. 장기차입금의 총액이 기본재산 총액에서 차입 당시의 부채총액을 공제한 금액의 100분의 5 이하이므로 이는 장기차입 허가 신청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확인 결과 2006년부터 부산시와 기장군은 형제재단의 지나친 은행 대출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형제재단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부산시가 대출을 허가해 주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즈음 허모씨를 영입했습니다. 그 당시 《교회복음신문》에 박인근 원장, 허남식 시장, 허 회장이 함께 기념식에 참석하는 사진이 실렸습니다. 부산시 로비를 위해 허씨를 영입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기적으로 허씨를 영입한 이후 허가 문제가 많이 해결됐습니다.”
 
  8월 초 기자가 허 회장 관련 의혹을 취재하자, 기자에게 《교회복음신문》 김성원 사장이 해명을 하겠으니 만나자는 전화 연락이 왔다. 기자는 9월 초 부산 서면 롯데호텔에서 김 사장을 만났다. 김 사장은 이렇게 해명했다.
 
  “제가 부산시 로비를 위해 허 회장을 영입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2008년 즈음 허 회장은 서울에서 자금을 끌어와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허 회장은 당시 사업에 성공하면 신문사에 투자를 해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허 회장의 사업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신문사 월세를 내 준다고 했는데 5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내 준 적이 없어요. 《교회복음신문》 회장이 되면서 신앙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 전에는 나이롱 신자였죠. 그 사람은 껍데기였습니다. 사람들이 이제 회사에서 회장 이름 빼라고 합니다. 그냥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모시고 있습니다.”
 
  김 사장은 회사에 아무런 경제적 지원도 하지 않고, 뚜렷한 사회적 명성도 없는 허씨를 5년 동안 신문사 회장으로 앉혀 놓은 이유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 또 관련 취재를 계속했던 지방지 기자 역시 “《교회복음신문》 기자도 허씨가 허남식 시장의 4촌 형으로 알고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어 김 사장의 해명은 여러모로 의문이 남는다.
 
  부산시장 로비 의혹에 대해 부산시는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의혹은 부산시 공무원과 부산시장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며 의혹을 제기하는 측에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관련 의혹에 대한 허남식 부산시장의 해명을 듣기 위해 부산시에 허 시장과의 전화통화를 요청했지만 부산시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 소송준비 중
 
9월 4일 경남 고성군 고성정신병원에서 부산형제복지원 피해자 박복달(왼쪽)씨의 친척들이 박씨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형제재단 피해자 가족을 만났다. 부산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박광수(54)씨는 괴로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1980년대 여동생이 부산시 연지동 집 앞에서 추리닝을 입고 바람을 쐰다고 밖에 나갔다가 형제원에 잡혀 갔습니다. 가족들이 수소문해 일 년 만에 여동생이 형제원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가족에게 돌아온 동생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형제원에서 나온 이후 정신병원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동생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정말 힘들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기자는 박씨의 여동생 복달(47)씨가 입원해 있는 경남 고성군 고성정신요양원을 9월 초에 방문했다. 박씨는 정상이 아니었다. 박씨는 자신의 오빠도 누군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만 이런 말을 반복했다. “형제원에 봉고차를 타고 갔어요. 형제원에서 맞았어요.”
 
  기자가 형제원에서 벌어진 일을 묻자 극도의 심리불안 상태를 보였다. 더 이상은 물을 수 없었다. 오빠 박광수씨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국가와 형제재단에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헝제원 원생들의 피해 규모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피해자와 가족들 상당수는 피해 사실을 숨기고 가슴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담고 살아왔다. 이런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해 형제재단 박천광 대표는 “법적 자문을 해 봐야겠지만 그런 부분이 있으면(형제원에서 피해를 입었다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형제재단 문제는 부산저축은행 피해자 보상과도 관련이 있다. 부산저축은행 김옥주 비상대책위원장은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 받아 형제재단이 빼돌린 돈은 평생 모은 피 같은 돈을 날려 버린 소액 피해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소액 피해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소송까지 고려 중이다”고 말했다.
 
  형제재단에 피해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피해 상황을 조사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피해 상황을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부산시는 형제재단과 유착되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부산시는 현재 내부감찰, 재단감사 등을 통해 의혹을 해소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유착의 당사자로 지목을 받고 있는 부산시가 제대로 의혹을 풀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루빨리 검찰 조사가 시작돼 진실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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