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들이 한 회당 받는 돈을 개그맨들은 한 달 내내 고생해도 못 받아. 드라마와 개그의 차이는 드라마에는 아이템 회의가 없다는 점” (개그맨 심현섭)
⊙ 개그맨 월급 70만~80만원, 잘해야 연봉 1000만원
⊙ “개그맨들은 생긴 것도 뭔가 어설프고, 貧해 보여야 하니까 어릴 때부터 힘든 생활을 한 사람들이
개그맨으로 적절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개그맨 김완기)
⊙ “자신이 정말 힘들었던 기억에서 해방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질 때 남을 제대로 웃길 수 있다”
(갈갈이 박준형)
⊙ 우리 코미디 프로 천편일률적으로 어린이에게 눈높이 맞춰
⊙ 개그맨 월급 70만~80만원, 잘해야 연봉 1000만원
⊙ “개그맨들은 생긴 것도 뭔가 어설프고, 貧해 보여야 하니까 어릴 때부터 힘든 생활을 한 사람들이
개그맨으로 적절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개그맨 김완기)
⊙ “자신이 정말 힘들었던 기억에서 해방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질 때 남을 제대로 웃길 수 있다”
(갈갈이 박준형)
⊙ 우리 코미디 프로 천편일률적으로 어린이에게 눈높이 맞춰
- 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뽑힌 2009 MBC 18기 공채 개그맨들.
“진짜 답답하다. 속상해. 내일이 최종인데 긴장 좀 하고, 열심히 좀 해라. 너 몇 년 있었어?”
“5년 있었습니다.”
“야, 5년 회사 다녔으면 돈도 좀 벌고 했을 거 아냐. 열심히 좀 해. 형이 진짜 너희 고생하는 거 안쓰러워서 그래.”
다음날 KBS 희극인실 앞 복도에는 ‘KBS 24기 공채 개그맨 선발대회’ 최종시험을 끝낸 지원자들이 땀범벅, 여자 수험생들은 눈물범벅이 돼서 나오고 있었다. 말끔하게 정장차림을 한 지원자도 있고, 해리포터 분장을 한 지원자도 있었다. 우의를 입기도 하고,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지원자,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도깨비 분장을 한 수험생도 눈에 띄었다.
밖으로 나가는 지원자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제발, 다른 분 해주세요”라며 울먹인다. 가슴에 수험표를 달고 있는 학생을 불러 세워 “시험 보셨죠?”라고 물어도 “아니오, 안 봤어요” 하며 자리를 떴다.
정통 코미디·개그 프로그램은 지상파 방송국 3개사에 각 하나뿐이다. 매주 20%대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KBS의 ‘개그콘서트’를 제외하고는 SBS ‘웃찾사’, MBC ‘개그야’는 시청률 10%를 밑돌고 있다. 그러나 개그맨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끊이질 않는다.
지난 3월 말 최종 선발된 KBS 24기 공채 개그맨은 1173명이 접수한 가운데 6명으로, 196 대 1의 경쟁률이었다. 같은 달 10명을 뽑은 18기 MBC 신인개그맨 공채도 50 대 1의 경쟁률이었다.
개그맨 지망생들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자 개그를 배우고 연습할 수 있는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주변 대학로의 개그극단을 찾는다. 대학로의 개그 극장 ‘갈갈이홀’, ‘웃찾사 전용관’, ‘박승대홀’에는 매일 20~30명의 개그맨 지망생들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하루 식권 두 장이 소득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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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인기코너 ‘DJ변’의 변기수씨(왼쪽). |
공채로 입사한 MBC 신인개그맨의 첫 월급은 70만원. SBS 신인개그맨은 한 회당 26만원, 그것도 자신이 출연한 코너가 편집을 안 당해야 받을 수 있다. 4주간 계속 출연해도 세금을 제하면 70만~80만원 선. 연봉으로 환산하면 10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대학로 개그공연 극단에 소속돼 개그 공연을 하는 준비생들은 월급은 없고, 대신 점심과 저녁에 3500원짜리 식권 두 장이 나올 뿐이다. 이렇게 박봉에도 불구하고 남을 웃기는 일을 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일까.
개그콘서트에서 ‘DJ변’ 코너를 맡고 있는 변기수씨는 2005년 KBS 특채로 데뷔했다. 데뷔하자마자 ‘특종 나불나불’에서 ‘내가 나이트를 갔어’라는 유행어로 주목받았다. 그 후 ‘오빠’라는 코너에서 동대문 의류매장 직원으로 등장해 인기를 얻었다. 그의 말이다.
“제가 ‘나불나불’하면서 TV에 나오니까 친구들이 밥 사달라고 하더라고요. 한 달에 월급 70만원 받는데, 지네들은 첫 월급 200만원씩 받으면서.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게, TV에 나오니까 돈 많이 벌겠다는 건데, 개그맨들은 정말 아니거든요.”
그는 개그맨이 되기 위해 대학로에서 개그공연을 하며 개그맨 공채에 도전했으나 13차례나 낙방했다고 한다. 그의 설명이다.
“지금 ‘개그야’에서 구정표(인기드라마 ‘꽃보다 남자’ 주인공 구준표의 패러디) 역할을 하고 있는 MBC 개그맨 오지헌(30)씨를 ‘수퍼보이스 선발대회’라는 곳에서 만났어요. 성대모사 잘하는 사람들 뽑는 대회인데, 오지헌씨가 1등을 한 거예요. 거기서 친해져서, 같이 개그맨 시험을 준비하자고 했죠. 같이 MBC 공채에 응시했는데 오지헌씨는 바로 붙고, 난 7번째 도전이었는데 또 떨어지고.”
차비 없어 집에 못 간 적도
그는 식당 아르바이트, 신문배달, 청소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개그맨을 준비했다. 그는 대학로 극단에서 먹고 자던 시절의 일화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추석날인 거예요. 일찍 일어났는데 집에 못 갔어요. 차비가 없어서. 주머니에 딱 동전 400원이 있었어요. 지금도 이 극장에서 살고 있는 애들 지하철비 없어서 자전거 타고, 걸어다니고…. 교통비 없어 집에 못 가는 애들 많아요.”
변기수씨는 “개그맨들은 100명 중 10명을 제외하고는 다들 생활이 힘들다”면서 “10명 정도만 밥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이춘복(38)씨가 말했다.
“그래도 그 정도면 낫지. 극단 연습하는 우리는 연봉이 100만원밖에 안되는데.”
변기수씨에게 그렇게 힘든데 왜 개그맨을 계속하는지 묻자, “나는 배운 것도 없고 웃기는 것이 좋으니까”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개그맨이 만만해서, TV에 나오고 싶어서 개그맨을 하는 애들도 있어요. 여자 사귀려고, 혹은 사업하기 위해서 하는 사람들도 있고. 저는 그런 사람들을 증오해요. 다른 목적을 위해서 하는 사람들이 개그맨 공채에 합격하면, 그 사람들 때문에 간절하게 개그맨의 길을 원하는 사람들이 포기해야 한단 말이에요.”
대학로 ‘웃찾사 전용관’ 건물 2층에는 극단에서 개그 공연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생활할 수 있는 방이 마련돼 있었다. 그곳에서 개그맨 지망생들을 만났다.
이춘복(38)씨는 밀양에서 올라와 느지막한 나이에 개그맨이 되기 위해 ‘웃찾사 전용관’에서 개그맨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친동생인 SBS 7기 공채 개그맨 이강복(30)씨와 함께 ‘밀양브라더스’라는 코너를 짜두었다고 한다. 그는 말투가 느긋했다.
동생과 함께 짠 코너로 ‘웃찾사’에 출연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밀양으로 내려가서 소 키우면 됩니다. 나 소 50마리 있어요”라고 했다.
이춘복씨와 대화 도중, 대학로 갈갈이홀에서 매주 개그 공연을 하고 있는 2003년 KBS 18기 공채 개그맨 서남용(30)씨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2003년 KBS ‘폭소클럽’에서 사물개그로 인기를 얻었던 서남용씨지만 여전히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단다. 얼마 전 문구점에서 초를 사고 있는 그를 이춘복씨가 만났다. 자취하는 방에 전기가 끊겨 초를 사용한다고 했다. 전기료가 얼마나 밀렸기에 그러는지 묻자 “10개월 1만8000원 밀렸대요.”
“18만원?”
“아니오, 10개월 다 해서 1만8000원.”
서남용씨는 운동을 좋아하지만, 헬스장 다니기가 부담스러워 집에서 팔굽혀펴기만 하다 보니 상체만 우람해졌다고 했다.
‘웃찾사 전용관’ 무대에서 개그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개그맨 지망생 안정빈(24)씨는 울산에서 옷가게를 하다 2년 전 가수가 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가수를 준비하던 중 개그맨이 되기로 마음을 바꿨다. 생활비는 옷가게를 하며 벌어놓은 돈으로 충당하지만, 그 돈도 거의 떨어져 빚지는 일만 남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어디에 사는지 묻자, “젊음의 메카! 홍대에 삽니다”라고 답했다.
“저희 집 놀러오세요. 0.8층이에요. 반지하보단 높지만 1층은 아닌 그런 곳이죠.”
같은 극단의 현우진(23)씨는 인제대 보건행정학과 휴학 중이다. 대학 3년 내내 경남 창원시에서 이벤트 행사진행, 옷가게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은 돈을 가지고 서울에 올라와 개그를 가르쳐주는 예술원도 다녔고, 지금은 ‘웃찾사 전용관’에서 개그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KBS 개그맨 공채에서 세 차례, MBC 공채에서 한 차례 고배를 마셨다. 월급도 없이 개그 무대에 오르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은가 묻자,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MBC ‘개그야’ 리허설 현장에서 만난 김완기(30)씨는 필자에게 “참치캔에 손 베이면서 소주 들이켜 본 적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는 2003년 폭소클럽을 통해 데뷔했다. 강릉 출신인 그는 대학로에서 강원도 사투리로 개그 공연을 했고 AD 보조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는 2003년부터 2년 동안 고시원에 살았던 이야기를 했다.
“당시 고시원비가 16만원이었는데. 조금 여유가 생겨서 16만원에서 18만원짜리 방으로 옮겼어요. 창문이 있는 방과 없는 방이 2만원 차이가 나거든요. 방을 그쪽으로 옮기면서 너무 기뻐서 펑펑 울었어요. 옥상 올라가서 참치캔에 소주 마시면서.”
힘든 생활로 貧해 보이는 외모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신문배달을 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80부를 돌렸고, 중학교 때부터 노래방 아르바이트, 군고구마 장사, 가스배달, 웨이터 등 안 한 것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가 개그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힘들었던 어린 시절 덕분이라고 했다.
“눈물, 콧물 다 빼고 가장 밑바닥까지 가니까,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더라고요. 긍정적으로 되는 거예요. 남들은 군복무 시절이 가장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그 시절이 가장 편하고 즐거웠어요.”
그는 코미디를 하고 싶은 사람은 ‘깡’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저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어요. 깡밖에 없으니까 자신감 있게 웃길 수 있거든요. 내가 저 사람을 웃길 수 있다는 깡, 자신감이 있으면 개그맨이 되는 거예요.”
그가 농담조로 말했다.
“개그맨들은 외모 영향이 큰 것 같아요. 부유해서 영양상태가 좋으면 얼굴에 윤기도 흐르고 잘생기지 않아도 호감형이 되잖아요. 개그맨들은 생긴 것도 뭔가 어설프고, 빈해 보여야 하니까 어릴 때부터 힘든 생활을 한 사람들이 개그맨이 되기에 적절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중문화 평론가 鄭德賢(정덕현·40)씨도 같은 의견이었다.
오로지 ‘개그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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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린 MBC 공채 개그맨 김경진씨의 대학시절 모습. |
MBC ‘무한도전’의 ‘코리안 돌+아이 콘테스트’편에 출전하여 인기를 얻고 있는 김경진(26)씨는 동아방송예술대 재학 시절 ‘학교의 명물’이었다. 환자복을 입고, 시골에서 할머니가 농약 뿌릴 때 쓰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피아노 가방을 들고 다녔다.
그는 개그맨이 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고시원에서 일주일에 2만원으로 생활하면서 개인기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때는 하루 식사가 김밥 두 줄이었어요. 점심에 한 줄, 저녁에 한 줄. 일단 7~8개를 먹고 남은 건 연습하다 배고플 때마다 하나씩 먹었어요.”
KBS 개그맨 이종훈(27)씨는 유치원 때부터 ‘개그맨’을 꿈꿔왔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개그맨이 되기 위해 이홍렬(55)씨를 찾아갔다. 이홍렬씨는 당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때는 직접 데모 테이프 만들어서 돌아다녔어. 네 힘으로 공채 합격하고, 그 다음에 나한테 와라.”
그때부터 이종훈씨는 혼자서 개인기 연습을 했다.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지하철, 동대문 거리 근처에서 사람들을 모아 보여주기도 했다. 그도 어린 시절 집안이 부유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인천대 체육학과를 다니며 래프팅 강사, 커피숍 점원, 피자 배달도 했다. 모든 아르바이트를 ‘개그를 위해서’ 했다. 돈 벌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이런 경험들이 개그 소재가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했다는 것이다.
2004년부터 개그콘서트에 출연했고, 유세윤(29), 강유미(25) 등 잘나가는 개그맨들과 동기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1974년 TBC ‘살짜기 웃어예’를 시작으로 35년간 코미디 작가로 일해 온 개그작가 1세대 金在和(김재화·56)씨는 개그맨들과 35년을 함께해 많은 개그맨의 생활실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개그맨들 대부분이 저소득층 자녀들”이라고 말했다.
“비극 위에 희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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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갈이 박준형씨. |
서울대 국어교육과 金大幸(김대행·66) 명예교수는 대중문화에 대해 학문적인 연구를 하고 있는 ‘한국웃음문화학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개그맨들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에 대해 “인간론적인 이해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은 고난에 처할수록 용기를 내는 존재”라고 말했다. 그가 장례 풍습을 예로 들었다.
“상갓집에 가면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웃고 도박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주를 웃기는 것을 최고의 問喪(문상)으로 여겨왔어요. 이는 일종의 ‘웃음으로 눈물닦기’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불우했던 개그맨들의 성장기가 웃음에 대한 동기를 강하게 부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코미디계의 원로인 송해씨는 2009년 4월호 月刊朝鮮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희극이라는 건 그냥 웃기는 게 아냐. 웃긴다는 건 슬픔을 알아야 하거든. 눈물을 알아야 즐거움, 슬픔을 알지. 정극이 있어야 되고, 정극 위에 비극이란 걸 알아야 돼. 비극을 알아야 그 위에 희극이 있는 거야.”
MBC ‘개그야’의 ‘박준형의 눈’ 코너를 진행하고 있는 박준형(34)씨는 현재 갈갈이패밀리엔터테인먼트의 CEO이자, 서울종합예술학교에서 개그 MC와 연기를 가르치고 있다. 그 역시 개그맨 공채에서 8번 낙방하는 등 오랜 무명생활을 체험했다. 힘든 과정을 겪어 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후배 개그맨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후배 개그맨들을 하나씩 이야기하며 정말 불우한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후배들을 보면 별별 경력이 다 있어요. 백화점 경리한 애도 있고, 정종철씨는 냉면집에서 일했었고, 시체 닦는 일 하던 애도 있고…. 부모님이 안 계시는 애, 보육원 출신, 이름 대면 다 아는 개그맨이지만 친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총을 쐈던 사건을 경험했던 개그맨도 있어요.”
피 말리는 아이디어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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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야’의 새로운 코너 ‘가슴팍도사’로 4년 만에 다시 돌아온 개그맨 심현섭씨. |
“힘들게 살아온 친구들이 나가는 방향이 두 가지예요. 탈선하거나, 마인드를 긍정적인 쪽으로 바꾸거나. 자신이 정말 힘들었던 기억에서 해방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게 됐을 때 남을 제대로 웃길 수 있죠.”
박준형씨와 동시대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심현섭씨는 2005년 MBC ‘코미디쇼 웃으면 복이 와요’ 이후 오랫동안 개그 프로를 떠났다가 지난 4월 18일 MBC ‘개그야’의 ‘가슴팍 도사’ 코너로 다시 돌아왔다. 그에게 “요즘 全(전) 연령층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말할 수 있는 유행어가 적은 것 같다”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일반인들이 유행어를 말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옛날에 제가 했던 ‘사바나의 아침’이라는 코너에서 ‘밤바야~’ 이런 것은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외치는 거예요. 그러면서 기분도 풀리고. 유행어가 적어지면 삶이 참 각박해지죠.”
그는 요즘 개그코너 중 KBS 개그콘서트의 ‘분장실 강선생님’을 높게 평가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딜 가나 선후배 관계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 코너에 다들 공감을 하는 것 같아요. ‘니들이 고생이 많다’, ‘미친 거 아니야?’ 이런 유행어도 시의적절하고.”
―요즘도 개그맨들 사이에 위계질서가 엄격하나요.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어요. 하지만 개그계에서 군기는 기본으로 있어야 해요. 왜냐하면 개그는 약속이 중요하거든요. 군기가 없으면 방송 들어갔을 때 선배 앞에서 어수룩한 후배가 예정에도 없는 애드리브를 쳐요. 그럼 서로가 당황하고 힘들어지거든요.”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을 제외하면 아무리 웃기는 코너라도 유효기간은 6개월이다. 사람들은 더욱 자극적인 소재를 갈구한다. 코너의 수명이 짧은 만큼 개그맨의 수명도 짧다.
하나의 개그 아이템을 만드는 데는 기한이 없다. 몇 시간의 생각으로 나올 수도 있지만, 1년이 걸릴 수도 있다. 변기수씨가 말했다.
“개그맨들 아이템은 작가들이 써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대본 다 씁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분이 많아요. 디씨갤(인터넷 게시판 커뮤니티 사이트) 가보면 우리가 정말 피땀 흘려서 짜낸 아이템인데 욕하는 분 정말 많아요. 개그맨들 그런 것에 상처 많이 받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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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대기실에서 만난 이종훈씨. |
“개그 프로는 새로운 것을 계속 쥐어 짜내야 합니다. 요즘 시청자들은 금방 싫증을 내요. 한 번 홈런을 친 개그맨이 또 한 번 크게 터트리기를 기대하고. 개그맨들은 그런 것에 대한 부담이 대단합니다.”
극단적으로 새로움만을 추구하다 보니 빠른 템포를 따라가지 못하는 연령층은 자연스레 소외된다. 심현섭씨는 요즘 코미디 프로그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성인 코미디가 없어요. 사람들이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가 나이를 먹었나 보다. 못 알아듣겠다’고 합니다. 정말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코미디가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춰져 있는 거예요.”
그는 “개인적으로는 시사코미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사는 정치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라 문화, 체육 전 분야에서 현재 이슈가 되는 모든 것을 가져다가 할 수 있어요. 과거에는 신문을 안 보면 잘 몰랐지만 요즘은 인터넷에 시사 이슈가 많이 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많은 사람이 알고 있으니 공감대를 형성하기 가장 쉬운 것이 시사입니다.”
그는 “연기자들이 한 회당 받는 돈을 개그맨들은 한 달 내내 고생해도 못 받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개그맨들이 방송국에다가 ‘처우개선을 해 달라’고 하면 ‘개그맨 지망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맘에 들지 않으면 떠나라’ 이런 식입니다. 또 한 가지는 유교사상의 영향 탓인지 예의를 중시하고, ‘하지 말라’ 하는 것이 너무 많아요. 개그, 특히 몸개그를 저질스럽게 보는 시각도 문제입니다. 채플린은 사회의 세태를 몸짓으로 풍자했는데, 채플린 비하하는 사람 있나요?”
김대행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남을 웃기는 직업’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저는 유교문화보다 우리 사회의 가치관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유독 남과 비교해서 우월감과 행복감을 맛보는 것을 삶의 가치로 삼는 사회적 풍토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드라마를 즐겨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충분히 즐거워질 수 있기 때문에 개그 프로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렇게 되니 개그 활동 무대도 좁아지고, 개그맨들의 처우도 좋지 못한 것이 현실이에요.”
정덕현씨는 “개그맨들의 처우가 낮은 이유는 방송에서 이들을 활용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쿨’한 시대, 웃음에 대한 욕구 높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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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을 고치고, 옷매무새 다듬는 분주한 무대 뒤편에서는 긴장감이 감돈다. |
개그맨들의 행사대행 업무를 관장하는 KBS 희극인실 관계자에게 개그맨들이 행사 MC를 맡게 될 경우 그들이 받는 비용에 대해 물었다. 이 관계자는 “신인들이 돌이나 환갑잔치 사회를 볼 경우 회당 100만~200만원, 조금 기수가 올라가면 400만~50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명세를 타고 있는 개그맨들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한민관씨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덕현씨는 지금의 ‘개그’에 대해 이렇게 보고 있었다.
“요즘 트렌드는 비트의 사회, 즉 단 몇 초간의 기다림도 용납되지 않는 사회입니다. 재미없고 좀 지루하다 싶으면 가차없이 채널을 돌려버리는 상황에서 起承轉結(기승전결)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즉각적인 웃음을 이끌어내야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어요. 이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웃음으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변화하고 있는 사회를 되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에 맞는 참신한 웃음의 코드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그는 개그계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더욱 더 ‘쿨’해지면서 사람을 웃기는 직업은 더 어려워질 것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개그의 세계는 더 발전할 것이란 전망이다.
김대행 교수 역시 “인간은 누구나 웃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웃음의 욕구는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이렇게 전망했다.
“방송의 개그가 인간의 웃음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개그맨 각자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개그맨들이 생활 속에서 웃음을 찾고, 스스로 개그 이론을 정립해 나갈 때 우리나라 개그계가 발전할 수 있을 거예요.”
‘웃음’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한국웃음연구소 김명자 부소장은 “현대인들은 계속 웃음에 목말라 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린아이들은 하루에 300번은 웃는다고 하는데 한국 사람은 하루 평균 6번 웃는다고 합니다. 그중 4번은 비웃음, 2번은 기가 막혀서 웃는다는 통계가 있어요.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웃음이 사라지는 이유는 생활이 윤택해질수록 남과 더 비교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해 행복지수가 떨어져 웃음에 인색해지기 때문입니다.”
김 부소장에게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물었다.
“내가 행복해서 자연스레 웃음이 나오면 얼마나 좋겠어요. 내 자아가 행복하다는 증거니까. 그러나 웃을 일이 없을 때는 간지럼을 태워서라도 웃는 것이 더 낫다고 합니다. 억지로 웃더라도 신체 반응은 비슷합니다. 따라서 개그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요.”
억지로라도 웃어야 건강해진다
김 부소장은 “인간의 뇌는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지 못한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부정적인 뇌가 기쁨을 느낄 수 없고, 긍정적인 뇌가 걱정, 근심을 동시에 느낄 수 없어요.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는다면 그 순간만큼은 걱정과 두려움, 근심을 잊을 수 있어요. 저희 남편은 그래서 부부싸움을 한 후에는 반드시 개그 프로를 보면서 웃어요. 그러고 나서 금방 사과를 하더라고요.”
―인위적인 웃음과 자연스레 웃는 것에 차이가 있나요.
“우리 손에 노란 레몬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즙이 뚝뚝 떨어지는 레몬을 한입에 넣고 씹는다 생각해 보세요. 레몬을 먹어봤던 사람이라면 생각만 해도 침이 나와요. 마찬가지로 웃어본 경험이 있으면 인위적으로 웃더라도 우리 뇌는 실상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주인님이 기분이 좋구나’라고 반응을 해요. 인위적으로 웃어도 뇌는 신체에 엔도르핀과 다이도르핀과 통증호르몬 등을 분비해요. 그러면 의욕이 생기고 정신적인 힘이 생기게 됩니다.”
그는 요즘과 같은 힘든 시기를 ‘웃음’으로 극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일본 강점기 암울한 시대를 이기기 위해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많이 웃자’라고 했던 것은 웃음이 가진 긍정적 에너지 때문이에요. 웃음은 가정을 살리고, 문화를 살리고 인간관계를 살리는 신뢰의 도구이기 때문에 불황을 이겨내는 강력한 돌파구라고 생각합니다.”⊙
▣ 코미디와 개그 略史
‘코미디’란 ‘웃음을 유발하는 모든 연극’을 일컫는 말로, 일본 강점기 말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1960~70년대 사람들은 코미디를 보기 위해 극장 쇼무대를 찾았다. 그 시절 신선한 유머감각으로 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낸 이가 구봉서, 서영춘이다.
1970년대에 들어 텔레비전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텔레비전 코미디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코미디 프로그램은 송해가 출연했던 1964년 TBS의 ‘웃음의 파노라마’다. 그 후 1969년에 방영된 MBC ‘웃으면 복이 와요’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 코미디 프로그램의 화려한 역사가 시작됐다.
1980년대부터 기존의 코미디 방식에서 ‘순간적인 입담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형태’의 코미디로 변화하면서 ‘개그’라는 말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개그’는 본래 ‘연극·영화·텔레비전 등에서 관객을 웃기기 위해 끼워 넣는 즉흥적인 대사나 우스갯짓을 일컫는 말’이다. 1972년 당시 연세대 응원단장 출신 임성훈(59)과 홍익대의 송영길, 중앙대의 전유성(60), 성균관대 고영수 등이 클럽 ‘꿀단지’라는 곳에서 활동했다. 그들은 대학가 행사 무대에서 간결하면서도 知的(지적) 언어유희와 사회풍자가 강한 코미디를 했다.
이런 형태의 코미디는 이전의 ‘슬립스틱 코미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함이 있어, 새로운 용어를 정하자고 해서 등장한 것이 ‘개그’라는 용어다. 이때부터 ‘말빨’ 좋은 故(고) 김형곤, 허참(65), 임성훈이 개그계에 등장해 예리한 풍자의 개그 문화가 확산됐다.
MBC에서는 1981년 처음으로 이경규(49), 최양락(47) 등을 공채 개그맨으로 선발했고, KBS에서도 그 다음해 심형래(51), 이선민(47)을 뽑았다. SBS는 1991년 신동엽(38), 정선희(37) 등이 첫 공채 개그맨이다. 올해 KBS는 24기, MBC는 18기가 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 전유성의 제안으로 대학로 극단 중심의 코미디가 시범적으로 방송에 오른 것이 호응을 얻어 ‘개그콘서트’가 탄생했다. 개그콘서트는 ‘스탠드 업 코미디’ 형식으로 대한민국 코미디 문화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스탠드 업 코미디’란 ‘무대에 혼자 나가 재치 있는 말로 관객을 웃기는 형식의 희극’으로 관객과의 호흡이 중요하다. 복잡하고 빨라진 사회 흐름에 발맞춰 관객의 즉각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개그콘서트’의 초기 출연진은 전유성, 김미화(45), 백재현(39), 심현섭(39), 김영철(35) 등이었다. 그 후 ‘사바나의 아침’의 추장 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심현섭이 주축이 돼 개그콘서트의 틀을 잡아갔다.
‘개그콘서트’의 인기로 ‘폭소클럽’, ‘개그사냥’ 등 많은 개그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는 SBS의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가 만들어져 개그맨들의 대거 이동이 있었다. 2008년에는 MBC ‘개그야’가 시작되며 박준형(34), 정종철(32), 오지헌(30)이 MBC로 옮겨갔다.
현재 KBS에서는 일요일 오후 9시5분 ‘개그콘서트’, SBS에서는 금요일 오후 9시55분 ‘웃찾사’, MBC에서는 토요일 오후 11시55분 ‘개그야’가 방영 중이다.⊙
▣ 과거에는 忠淸道 출신이 근래에는 가난한 집 출신이
과거 개그맨 중에는 충청도 출신이 많았다. KBS, MBC 방송에 출연하는 코미디언의 40% 정도가 충청도 출신이었다. 남희석, 서경석, 최양락, 임하룡, 서세원, 이상용, 윤문식, 최주봉, 이영자, 홍기훈, 이창명, 김학도 등 개그계에서 크게 이름을 날렸던 이들 모두 충청도 출신이다.
충청도 출신인 최양락, 서경석, 남희석, 홍기훈 같은 코미디언들은 내성적인 성격에 평소 말수는 적었다. 그러나 신중하게 대본을 체크하여, 무대에 서면 실수 없이 개그를 하는 저력이 있었다. 말을 남발하지 않고 중요한 순간 치고 나오는 개그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겉보기에 차갑고 내성적이지만 일단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끼를 발산하는 사람들이 충청도 출신이다. 또 충청도의 정감 있는 몸짓과 언어는 사람들에게 평안함을 줬다. ‘괜찮아유~’, ‘그래유~’ 같은 충청도 사투리는 편안하고 포근하게 귀에 감겨 들어오며, 유머가 자극적이지 않고 질리지 않았다.
충청도 사람들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행동이나 말투가 느리고 어눌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람들은 ‘아, 내가 쟤보다 낫다’, ‘쟤는 저것도 모르냐’는 생각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교통과 통신, 인터넷의 발달은 한국의 지역별 색깔을 옅어지게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어딘가 자신보다 모자란 듯하고 어눌한 모습에 대리만족을 느낀다. 어릴 때부터 겪은 부족한 생활로 고생의 흔적이 역력히 드러난 개그맨들의 가난하고 어설픈 표정에 사람들은 안도한다. ‘내가 쟤만큼 없어 보이진 않지’, ‘내가 쟤보단 잘생겼지’라며 우월감을 느낀다.
이제는 나보다 더 없어 보이고, 더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가난한 집 출신의 개그맨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