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서명수의 <거대한 뿌리 구미> ①

구미의 뿌리는 영남의 뿌리, 대한민국의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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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동상. 이하 사진=서명수

박정희의 도시 경북 구미는 어떤 도시일까.

어떤 역사적 배경을 지닌 도시일까.


수출입국의 깃발이 높이 들리기 전과 후의 구미를 파헤친 책이 나왔다. 서명수 매일신문 객원 논설위원이 쓴 이 책은 박정희를 다시 기억하고 구미를 찾아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구미의 뿌리는 영남의 뿌리다. 구미 이전에 선산이 있었다. 선산은 선초 성리학의 본산이자 신라 불교의 초전지라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뿌리와도 다르지 않다.

 

현재 구미는 한적한 벽촌인 선산군 구미읍 이었지만 낙동강을 끼고 대규모 인구를 가진 대구를 가까이 두고 있는 최적의 산업입지조건을 갖췄다. 구미산업단지가 본격 가동되고 인구가 집중되면서 1978년 구미읍· 칠곡군 인동면을 통합, 구미시로 승격했다. 1995년 행정구역 개편의 일환으로 구미시·선산군을 통합, 도농통합형 구미시가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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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출판사의 도움으로 이 책을 3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박정희의 도시이자 대한민국의 뿌리인 구미의 만나서 우리의 미래를 그곳에서 찾고자 한다.


저자 서명수의 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박정희 노스탤지어'라는 시대적 감성과 마주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한 개인에 대한 숭배라기보다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던 급성장한 경제신화의 배경에 대한 감사와 공동체적 기억의 그리움이기도 하다.

 

'낙동강은 흐르되 말 없고/ 금오는 묵묵히 그림자를 드리운다 옛 공장은 침묵하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시절을 기억하네'

 

그러나 구미는 이제 박정희 신화에만 기대는 도시가 아니다. 조선 성리학의 본산이자 신라불교의 발자취가 도드라진 사유(思惟)의 땅이자 왕산 허위선생의 의병정신이 깃든 저항의 고장이자, 낙동강과 금오산이 품은 생태와 생존의 터전이며, K-방산과 미래산업이 움트는 혁신의 전초기지다. 구미는 박정희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저자의 말을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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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금오산 케이블카

 

구미는 대한민국의 뿌리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朝鮮人才 半在嶺南 嶺南人才 半在一善)


이중환이 이처럼 <택리지>에서 '조선 인재의 보고는 영남이었고 영남 인재의 절반이 선산에서 나왔다'고 표현할 정도로 고려와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선산은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했다. 택리지의 '일선'(一善)은 선산(善山)의 옛 지명으로 지금의 구미(龜尾)다.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년~1419년)가 선산사람이었고 조선 사림(士林)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김숙자가 길재의 제자였고 김종직 역시 영남 사림문화의 기틀을 닦았다. 사육신 하위지도 선산출신이다. 굳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돼 '한강의 기적'을 거쳐 선진국에 진입하기까지 구미가 배출한 단 한 사람을 꼽는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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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 구미 선산에서 성리학의 토대를 마련한 야은 길재 선생.

 

중국이 차용한 경제개발계획 '박정희 모델'


조선시대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경상도의 한촌(寒村)이 '수출입국'(輸出立國) 산업화의 핵심기지로 탈바꿈하면서 후천개벽이 펼쳐졌다. 어느 날 갑자기 전자산업의 메카로 급성장한 구미.


박정희(아래 호칭 생략)가 없었다면 대한민국 현대사는 오늘날과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MZ를 비롯한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시대는 '보릿고개'를 겪지 않았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이 미국과 일본, 독일 등 'G7'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해 온 잘사는 나라였던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경제대국 중국이 14억 중국 인민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원바오'(温饱)를 해결하는 데 성공한 것이 21세기에 들어와서다. 마오쩌둥 사후 덩샤오핑(邓小平)은 개혁개방에 나섰고 장쩌민(江泽民) 시대에야 굶어죽는 인민이 없는 사회 원바오사회를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이 차용한 경제개발계획이 '박정희 모델'이었다. 이어 시진핑(习近平) 주석은 2035년까지 전면적 '샤오캉'(小康 중산층)사회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18년 대한민국은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국가 중 세계 7번째로 1인당 국민총소득(GNI) 3만 달러를 돌파했다. 박정희가 5.16 군사혁명을 일으킨 1961년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81달러로 당시 세계 125개국 중 101번째였다. 파키스탄과 토고, 우간다, 방글라데시, 에티오피아등과 함께 우리는 최빈국 그룹이었다. 그가 서거한 1979년 1,693달러로 중진국에 들어섰다. 북한은 320달러(1961냔)로 멕시코, 리비아. 포르투갈 브라질 등과 함께 50번 째로 한국에 비해 월등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선전·선동과 다를 바 없었던 '하면 된다, 수출입국, 근면 자조 협동' 등 박정희시대의 구호가 사라진 것이 우리 기억에서 오래되지 않았다. 100억 달러가 목표였던 우리의 수출규모는 1977년 100억 달러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2023년에는 6,327억 달러로 세계 7위에 올랐다. 이 모든 것이 박정희 덕분이었다고 고마워하자는 것이 아니다.


구미는 국내가전산업의 메카


남·북 대결에서 우리는 승리했다. 그 결과가 오늘의 대한민국의 위상이다. 대한민국의 거대한 뿌리는 단군조선과 천년 신라, 고려, 조선왕조가 아니라 구미에 있다고 치부할 수 있는 것은 박정희라는 한 걸출한 영웅이 거기서 태어났고 구미 곳곳에 그의 유산과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화를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박정희가 대한민국의 뿌리였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만일 박정희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추진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더 좋아졌을까? 2차 세계대전 후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신생독립국이나, 당시 우리보다 경제여건이 나았던 아시아와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없다.

 

구미는 국내가전산업의 메카로 자리를 잡았다.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 구미공장은 주로 컬러TV를 생산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컬러TV는 일본 마쓰시다(내셔널)와 합작한 아남산업이었지만 독자적으로 컬러TV개발에 성공한 삼성과 금성사가 국내컬러TV시장을 주도했다. 삼성전자는 구미공장에서 팩스와 키폰 전화기 등에 이어 휴대전화 생산에 나서 '애니콜신화'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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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한 리더십은 창업자의 정신으로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국민들의 의욕과 열정을 하나로 결집, 국민적 에너지로 승화시키면서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계획을 성공시킨 강력한 리더십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존립할 수 없다는 절박한 리더십은 창업자의 정신으로 근대국가 건설에 나선 CEO의 그것이었다.


마오쩌둥을 찾아 그의 고향 후난성(湖南) 샤오산(韶山)의 마오 생가를 방문하는 중국인들이 매년 1천만 명에 이른다. 마오쩌둥이 사망한 지 48년이 지났지만 중국인들은 여전히 그를 신중국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고 있다.


박정희가 서거한 지 45년이 지났다. 그는 어느 진영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를 기억하기 위해 구미를 찾았다. 구미에는 그의 '상모동생가'가 있고 바로 인근에 '박정희대통령역사자료관'과 그 시대에 시작된 새마을운동을 기억하는 '새마을공원'도 있다. 구미에선 금오산이든. 시내 어디를 가더라도 그가 쓴 휘호가 있고 그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처럼 그의 체취가 느껴진다.


우리는 박정희의 '조국근대화'를 넘어서 '세계에 우뚝 선 대한민국'을 만들어냈다. 그가 미뤘던 민주화도 완성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온전하게 박정희 시대의 공과와 명암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뿌리를 잊어버린 백성에게는 미래가 없다. 박정희가 못다 이룬 조국근대화와 통일은 현재진행형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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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명수는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이자 칼럼니스트/작가, 매일신문 논설위원(객원)이다.


EBS세계테마기행을 4회 진행했다. 고려대와 동대학원 불문과를 졸업했다. 중국사회과학원 사회학연구소에서 공부했다.

 

지금까지 〈인민복을 벗은 라오바이싱〉,〈산시 석탄국수〉,〈후난 마오로드〉, 〈제국의 초상 닝샤〉, 〈지금 차이나-신중국사용설명서〉, 〈충칭의 붉은 봄〉, 〈안동에 빠지다 안동홀릭〉 〈천년의 기억 우리들의 경주〉 〈그의 운명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생각〉 〈중국부역자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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