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새워 시를 쓰고 시집을 펴낸 시인의 정성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다.
누군가 함께 시를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리뷰를 쓴다.
詩人
-안세환
詩人이 되는 것은
말言로 사寺가 되는 일이라.
사寺는 곧 시寺라
세종 때 내자시(內資寺) 공노비인
열세 살 청주 김씨가
얼마나 일을 잘 하는지
대비 원경왕후의 마음에 쏙 들어
소헌왕후의 궁녀가 되었다가
세종의 총애를 받아
신빈으로 봉직되었지.
남을 잘 섬기는 것이 시寺라면
말로 시하는 것이 시詩라.
사물을 섬기고 자연을 섬기며
세상의 가장 작은 것들을
정성을 다해 섬길 때
시寺의 본분이고
그 열매가 시詩라네.
내가 시寺가 되어야 하리.
남을 잘 섬기는 시寺가 되어
시詩를 만들고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그런 시寺가 되어야 하리.
내 마음에 시寺가 자리 잡는다면
굳이 시詩 쓸 일이 있을까?
시寺가 시詩가 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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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시인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을 보고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느끼고
가지 못하는 곳을 간다.
신비한 것을 보며
신비한 곳을 찾아 돌아다닌다.
비밀의 장소까지 드나든다.
하늘을 휘젓고 다니며
땅속까지 가서 두더지가 된다.
깊은 바닷속까지 들어가
물고기인 양 돌아다닌다.
태풍이 다가오면
태풍의 눈까지 숨어 들어가 몰래 엿보기도 한다.
또한 눈알을 부라리며 온 세상을 감시하기도 한다.
우주라 한들 가지 못하며
죽음의 세계라 한들 가지 못할까
염라대왕과 한 잔 술을 마시며
신선들과 노닥거리기도 한다.
조물주와 같이 노닐기도 하는
그대는 진 정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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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복이네집2
대복이가 살던 집은 별채 행랑
고지기나 마름
행랑 직인들이 거처하는 곳
대복이 어멈 또한 푸네기
가느실 동네 최을축 아낙이었다가
조중지에게 몸을 붙여 산다
술고래요 투전꾼으로 막된 인생이
비복살이를 한다.
패랭이 쓰고 사랑 심부름꾼을 자처한다.
가끔 옹잼이와 실강이 하며
우리집을 저잣거리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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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사람들
온 세상이
물에 잠긴다고
산꼭대기에
배를 만드는
이상한 사람들
그들을 보고 수군수군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왜 만드는지도 모르고
그저 손가락질만 하는
이상한 사람들
그러거나 말거나
온 힘을 쏟아
땀 흘리며 방주를 만든
이상한 사람들만
살아남았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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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락서산
- 이문구 관촌수필
세모에 찾아가는 할아버지 산소길 시골길
그리움이 옛날을 향해 간다
갈머리 관촌부락이 왜 이렇게 변했누
한내에서 사십리길 고만이 종산이라
고향 땅 언저리에 올라 보니 감개무량
저 건너 왕소나무는 토정선생 지팡이라
눌자리 찾아가는 할아버지 거친 숨길
원하는 잔디찰방 어디서 찾을소냐
두어라 칠성바위가 사구일생 한 몸이라
대천땅 관촌부락 송방가게 채씨 부부
맞은편 풀무집엔 원애꾸네 대장간이라
옴팡집 장중철네가 시끌벅쩍 주막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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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 찬시
-이문구 유자소전
타고난 총명함이 또래 중 으뜸이라
심성이 깔끔하고 사려가 침착이라
오롯이 따뜻한 마음 아픔을 나누도다
학교는 지각대장 선생님 불호령에
끊어진 사리마다 이서주다 늦었네
꾸러기 골목대장이 마음은 천하태평
이문구 유자소전 유재필 인생여정
겉으론 남 얘기가 실상은 제 얘기라
아서라 저 왕소나무 내 마음에 있느니
할애비 가르침에 잔디찰방 가슴 묻고
까그매 이리저리 머리 위 맴돌 적에
두어라 도당위원장 내 가슴에 있노니
유재필 개갈안나 입맛을 다실 적에
물괴기 한 사발에 쌍욕은 두어 사발
아뿔싸 허벅허벅한 별맛 웂는 비단잉어
황금불 항마촉지 파리똥 웬말이뇨
침으로 닦아내니 총수호통 벼락이라
오호라 대자대비로 노선상무 최상급
유재필 십년과장 웬일인가 살펴보니
붉은 줄 조상계보 연좌제 묶였어라
두어라 명천 속마음 피눈물 흐르네
문인과 친밀함이 책과 술 한 몸이라
선후배 문인들이 애틋이 챙겼어라
애닯다 북망산천길 유자를 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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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믿음
-모리아산 가는 길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로 쓸 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웅 하나님이 준비해 주실 거야!
이삭은 아버지의 말을 진심으로 믿었노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셨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말한 대로!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제물은?
모리아 산까지 오는 동안
제물은 오직 이삭뿐이었는데!
또 다른 제물이 있다고?
아니!
아버지 말을 굳게 믿은 이삭은?
아버지보다도 이삭의 믿음이 더 큰데!
안세환 목사가 펴낸 첫시집 《내 방에는 커피향이 흐르고》
충남 보령의 흥덕교회 안세환 목사가 펴낸 첫시집 《내 방에는 커피향이 흐르고》를 읽었다. 1~5부에 걸쳐 완성된 시들의 색깔이 조금씩 달랐다. 다만 시의 결은 한결 같이 단아했다.
영혼을 다독이는 목회자여서일까. 평범한 시어 같으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마음의 꺼풀을 한뼘씩 벗겨낸다. 시를 읽다 보면 속살과 마주하게 된다.
시집 중반부를 지나면서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향토성도 묻어나는데 아마도 충남 지역 방언을 활용해 소설을 썼던 보령 출신 소설가 이문구(李文求, 1941~2003년)의 영향을 받은 듯 하다.
이문구의 구수한 소설에 등장하는 인명과 지명, 심상들을 그대로 인용하여 시를 창작했다. 마치 근대 시인 백석(白石, 1912~1996년)의 평안도 방언이 가득한 시를 읽듯 따스한 울림으로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세환 시인의 고향은 충청도가 아니라 경기도 용인이다. 충청 지역에서 목회자로 일하며 그곳 교인들과 눈높이를 맞추려 향토성을 익힌 탓이리라. 혹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이자 실학자인 안정복(安鼎福, 1712~1791년)의 후손 답게 책 읽기를 통해 학습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안 시인은 다른 시인들보다 훨씬 이점이 많아 보인다. 앞으로 써야 주제들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다음 시집에는 보다 향토성이 짙은 시가 나올까. 아니면 종교색이 더 짙어질까.
그는 유신고와 목원대 신학과, 한신대 신대원을 거쳐 한남대 학제신학대학원 신학석사와 한남대 일반대학원에서 구약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보령 흥덕교회 담임목사와 사단법인 보령기독교역사문화선교사업회 상임이사, 보령시기독교연합회 귀츨라프 위원장으로 수고하고 있다.
또한 사단법인 한국순례길 충청남도지부 이사와 순례길 보령지역장을 맡고 있다. 최근 제16회 〈인산문학상 수필상〉을 수상했다. 저서 《창세기 여행 이야기》 , 《사랑방에서 듣는 욥기 이야기》를 펴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