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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육각형 축구선수 유상철 끝내 하늘로...

‘2002 월드컵 영웅’...FC바르셀로나, 토트넘 훗스퍼에서 러브콜 받기도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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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전 인천 감독. 사진/ 조선DB(곽동혁 스포츠조선 기자)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중 한명이었던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7일 오후 7시쯤 서울 아산병원에서 영면했다.


유 전 감독은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약점이 없는 대표적인 육각형(축구 게임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모든 능력을 고루 갖춘 축구선수를 지칭) 선수다.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소화한 ‘멀티 플레이어’였다. 미드필드와 최전방은 물론 수비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낸 그는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기도 하다. A매치 122경기에 출전해 18골을 넣었다. 그중 두 골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과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기록했다.


이런 유 전 감독에게 해외 명문 구단의 러브콜이 쇄도했다. 최고 수준의 유럽 클럽 이적설에 숱하게 휩싸인 것은 당연해 보였다. 명실상부한 유럽 최고의 클럽 바르셀로나도 유 전 감독에게 관심을 보냈다. 1998년 국내외 언론은 유 전 감독이 FC바르셀로나로부터 입단 테스트 제의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캄프 누(Camp Nou)를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FC바르셀로나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세계적인 명문 축구단이다. 1899년 창단한 이래 스페인 정규 리그 우승 25회, 스페인 국왕컵(FA컵) 우승 30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5회 등 무수히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유 전 감독의 이야기다.


“바르셀로나 측에서 테스트를 제의했다. 유럽 기자에게 전화가 오기도 했다. 한 에이전트가 중개했는데, 그때 선수들 사이에서는 에이전트에 대한 개념이 정확히 잡혀 있지 않았다.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테스트를 보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면서 무산됐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유 전 감독은 손흥민이 뛰는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의 토트넘 훗스퍼와 협상 타결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막판에 일이 꼬여 최종 결렬되지만 않았다면 한국 축구사 첫 프리미어리거로 박지성이 아닌 유상철의 이름이 새겨질 수도 있었다.


2006년 은퇴한 유 전 감독은 현재 스페인 프로축구팀 발렌시아에서 뛰는 이강인을 배출한 ‘날아라 슛돌이’에서 유소년을 가르쳤다. 2009년에는 춘천 기계공고 감독으로 부임해 청소년들을 이끌었다. 이후 2011년 K리그에 입성, ‘시민구단’ 대전 감독직에 올랐다. 팀을 잔류시키는 데 성공한 유 감독은 2014년 울산대 지휘봉을 잡았다. 2017년 12월 울산대를 떠나 전남 감독직에 오르며 K리그로 돌아왔다. 2018년 8월 물러난 유 감독은 2019년 5월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임명됐다. 


같은 해 11월 시즌 중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시즌 종료까지 팀을 이끌며 1부리그 잔류라는 임무를 완수했고, 시즌이 종료된 뒤에야 치료에 들어갔다. 3년째 치료에 전념한 유 감독은 방송에 출연하는 등 많이 호전된 모습을 보였다. “반드시 그라운드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최근 병세가 악화하며 끝내 눈을 감았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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