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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비틀스, 야드버즈, 롤링 스톤스, 밥 딜런의 등장(1960~79년)

[阿Q의 ‘비밥바 룰라’] 루시엥 말송이 쓴 《재즈의 역사》 ④ 흑인 음악에 영감받다!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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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우상이 된 비틀스
 
[편집자] 25년 전 루시엥 말송이 쓴 《재즈의 역사》라는 책이 국내 번역됐다. 역자는 이재룡씨. 감수자는 재즈평론가 김진묵씨다. 지금은 절판된 이 책에는 19~20세기 재즈 역사에 대한 뿌리가 담겨 있다. 교향악 중심의 유럽음악과 달리 재즈는 색다른 음악세계를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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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엥 말송이 쓴 《재즈의 역사》
헛간에서 대충 제작한 보잘 것 없는 악기, 훗날 공업 연장에서 빌려온, 그래서 필연적으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이런 악기가 재즈에는 존재했던 것이다.
월간조선은 재즈의 원류에 대해 5차례에 걸쳐 요약해 전달한다. 이 책이 재출간되기를 희망하면서...
 
① 뉴올리언스의 영웅들 / 루이지애나 재즈맨의 이동 / 시카고와 뉴욕을 사로잡다
② 대공황과 재즈맨 / 스윙 시대의 미국 / 제2차 세계대전 : 재즈의 휴지기
③ 바퍼들의 혁명 / 냉정을 되찾은 순간
④ 반성의 순간 / 뉴싱, 재즈-록과 리듬 앤드 블루스 / 팽창과 수축
⑤ 재출발의 시대 / 재즈의 세기

1
존. F. 케네디가 1960년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63년 앨라배마의 버밍햄에서는 개학하자마자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이듬해 필라델피아의 로체스터 할렘가에서 폭동이 일어났으며 65년 캘리포니아의 워츠, 66년 뉴어크, 디트로이트, 시카고의 웨스트 사이드에서도 폭동이 일어났다.

상처받고 박해받으며 가끔은 분노에 몸을 떨던 흑인 집단은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의 할렘가에서 숨죽이며 살았다. 어떤 경우에는 그들의 권리 주장을 위해 ‘대장정’을 시도하기도 했다.
 
몇몇 뮤지션들은 미국의 ‘문화 엘리트’를 정복하려 들지 않고 단순하고 감각적 효과의 재즈, 즉 리듬 앤드 블루스, 또는 그 변형 중 하나인 힘에 넘치는 로큰롤을 계속하며 흑인 노동자를 자신의 대화 상대로 삼았다.
 
흑인들만을 위한 이 대중 예술이 인종의 벽을 넘어 백인 청중에 의해 ‘히트 퍼레이드’에 오르는 적도 없지 않았다. 더 슈프림스, 슬라이 앤드 패밀리 스톤, 더 챔버스 브라더스, 더 템테이션스, 더 포 톱스, 초커 캠벨, 리 도시, 론섬 선다운, 베티 에버렛, 바버라 린, 아래사 프랭클린, 에마 플랭클린, 디온 워윅, 디 디 워윅, 커티스 메이필드, 아서 콘리, 카를로스 산타나, 타지 마할, 보비 워맥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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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흑인 대중의 스타들은 흑인 베리 고디가 디트로이트에서 운영하는 음반사 ‘탬라 모타운(Tamla Motown)’에서 취입했다
수많은 흑인 대중의 스타들은 흑인 베리 고디가 디트로이트에서 운영하는 음반사 ‘탬라 모타운(Tamla Motown)’에서 취입했다.
리듬 앤 블루스의 알코올 맛 나는 리듬에 달콤한 바이올린을 섞은 ‘디트로이트 사운드’는 거친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의 비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소프트 음악 팬들을 끌어모았다.
그렇게 찾아낸 뮤지션들로는 글래디스 나이트 앤드 더 피프스, 마사 리브스 앤드 더 벤들러스, 스모키 로빈슨 앤드 더 미러클스, 더 마블리츠, 주니어 워커, 마빈 게이 등이 있었다.
 
2.
남자 가수 한 명이 리듬 앤 블루스를 뒤흔들었다. 그는 조지아 주 출신인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이었다.
그의 인생역정에는 모든 가난한 흑인의 삶이 농축되어 있었다. 오거스트의 목화 농장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블루스 가수였던 아버지 곁에서 성장한 그는 청소년기에 낮에는 구두를 닦고 밤에는 커다란 행운을 꿈꾸며 권투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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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브라운.
브라운의 레퍼토리는 미국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도 알고 있는 ‘Out of Sight’, ‘I Got You’, ‘Papas’ Got a Brand New Bag’(1964) 같은 노래로 구성되었다. 1966년 사람들은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그를 박수로 환호했다.
 
3.
1960년대 초반 젊은 백인 층도 재즈광이나 음악사가, 혹은 존 로맥스, 앨런 로맥스, 폴 올리버 같은 새로운 음의 사냥꾼만이 관심을 가졌던 고전적 블루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매년 가을 유럽인들은 윌리 딕슨이 뮤지션을 선발하여 조직한 아메리칸 포크 블루스 축제를 기다렸다.
 
영국 리버풀의 빈민가에서는 가죽 잠바 차림의 테디 보이스가 들었던 로큰롤이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노동자의 아들이었던 ‘비틀스’는 리틀 리처드, 척 베리를 좋아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오래된 재즈인 ‘스키플’을 연주했고 전통적 테마 ‘When the Saints’, ‘Sweet Georgia Brown’(1961), 그리고 레이 찰스의 히트곡 ‘What' d I Say’ 등을 취입했다.
 
* 스키플(skiffle) : 1920년 시카고의 흑인 간에 행해진 집세 모금 파티ㅡ 즉 ‘렌트 파티’를 말한다. 렌트 파티에서는 처음에 피아노 연주가 하나의 인기물이었다. 그후 위시 보드 등을 더해 재즈와 포크가 뒤섞인 연주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스키플 밴드라고 불리는 로컬 재즈 그룹으로서 흑인들 간에 인기를 모았다.
 
비틀스는 ‘캐스바’ 주위를 떠돌다가 리버풀의 ‘캐번’으로, 그리고 함부르크까지 진출하여 그곳의 분위기를 바꾸었다. 첫 번째보다 더 독창적인 스타일의 두 번째 앨범 《Please, Please Me》는 ‘시렐스(Shirelles)’ 그룹에게 헌정되었고, 그 그룹의 ‘Boys’와 ‘Baby It’s You’(1962)를 편곡, 취입했다. ‘풍뎅이’란 원뜻 외에도 ‘비트’ ‘박동’이란 뜻도 있는 루이스 캐롤 스타일의 합성어 비틀스는 당시 쇼의 분귀기를 바꾸는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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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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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근교에서 또 다른 그룹이 출현했는데 그것이 바로 ‘롤링 스톤스’였다. 복수형의 그룹 명칭은 머디 워터스(Muddy Waters)의 곡에서 따온 것이다. 중산층 출신의 5명으로 구성된 롤링 스톤스는 비틀스보다 더욱 리듬 앤 블루스에 매료되어 경쾌한 분노를 포기하지 않았다. ‘스톤스’는 하울링 울프(Howling Wolf)처럼 기타 줄에 ‘버틀네크’를 달고 ‘Little Red Rooster’(1964)를 연주하거나 리틀 월터(Little Walter)처럼 하모니카를 불기도 했다. 시카고 블루스에도 관심을 가졌으나 보디들리(Bo Diddley)의 로큰롤 ‘Mona’(1965)와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의 리듬 앤 블루스 ‘That’s How Strong My Love Is’(1965)에도 깊이 빠져들었다.

직접 작곡도 시도하여 가스펠 송(복음 성가), 스테이플 싱어스(Staple Singers)로부터 영감을 얻은 ‘The Last Time’(1965)을 작곡했다. 1965년에 발표한 ‘Satisfaction’은 오티스 레딩이 다시 취입하기도 했다.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는 “영국의 뮤지션들은 서로 잘 모르지만 많은 이들이 항상 같은 곡을 연주한다. 수많은 오케스트라가 우리 곡과 비슷한 곡을 연주하는 걸 들으면 기가 찰 지경”dl라고 했다.
 
이는 무슨 뜻인가? 흑인 음악이 그 시대 공기 속에 떠다녔으며 젊은 영국 음악인들은 이를 호흡하고 내뱉었다는 의미가 아닌가.
 
에릭 클랩튼(g.)의 ‘야드버즈(Yardbirs)’, 에릭 버든의 ‘애니멀스(Animals)’, 존 메이올의 ‘블루스 브레이커스(Bluesbreakers)’ 등 수많은 영국 그룹이 미국 흑인 음악에 영감을 받았다. 이들 모두가 레이 찰스(Ray Charles), T-본 워커(Aron T-Bone Walker), B. B. 킹, 엘모어 제임스(Elmore James), 오티스 러시(Otis Rush)의 음악에 매료되었다. ‘더 후(the Who)’나 ‘무디 블루스(Moody Blues)’는 제임스 브라운의 곡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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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크림.

이와 같은 시기 에릭 클랩튼(g.), 잭 브루스(b.), 진저 베이커(dm.)로 구성된 ‘크림(the Cream)’과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가 리드하는 익스피리언스(Experience)라는 이름의 3중주단이 결성되었다.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 아이크 터너(Ike Turner), 윌슨 피켓(Wilson Pickett) 등의 기타 반주를 맡았던 지미 헨드릭스는 1966년 가을부터 런던에 자리를 잡았다. 그가 얻은 명성으로 미루어보아 그의 과격한 음악성은 시기적으로 적절하게 맞물렸다.

그는 ‘피드백’ 효과, 반향 효과, 키를 이용한 쁘라토 조정 효과, ‘와 와’(wah wah) 페달을 이용한 음향왜곡 효과 등 일렉트로-어쿠스틱이 허용하는 여러 가지 효과를 개발했다. 재즈와는 동일시할 수 없는- 불행히도 너무도 거리가 먼-영국 팝 뮤직은 헨드릭스에게서 여러 모델을 찾았으며 ‘광적인 사람들의 병’, 엄청난 육체적 에너지의 분출을 맛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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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5.
한편 대서양 건너편 미국의 백인 로큰롤은 1960년대 초반에 붕괴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영국에서 새롭게 불기 시작한 로큰롤 열풍, 아니 그냥 록이라 불리는 이 음악 열기는 영국에서의 기세를 몰아 미국 로큰롤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965년 백인 블루스맨의 세대가 밥 딜런과 함께 등장했다. 밥 딜런은 리로이 카(Leroy Carr)의 ‘In the Evening’을 부르며 빅 조 윌리엄스(Big Joe Williams) 혹은 맨스 립스콤브(Mance Lipscomb)와 함께 순회공연을 나섰다.
 
아마추어 음악인의 모임인 ‘후트내니’, 포크송을 열렬히 전파하는 신문, 그리고 블루스와 ‘컨트리 앤드 웨스턴 뮤직’에 사운을 건 레코드 회사 덕분에 버즈, 마이크 블룸필드, 배리 골드버그, 스티브 밀러, 찰리 머슬화이트, 코키 시걸, 조니 윈터 같은 열매를 맺었다. 이 정열적인 청년들은 시카고의 웨스트 사이드를 드나들며 원로 재즈맨과 함께 음반을 취입했다. 슬리피 존 에스티스와 함께 음반을 제작한 블룸필드가 이런 경우에 속했다. 영국 팝과 마찬가지로 미국 음악은 흑인 음악을 받아들여 재창조하거나 나름대로 변형시켰다는 의미에서 재즈의 한 흐름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입력 :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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