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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 열풍이 지나고 쿨 재즈의 시대(1945~59년)

[阿Q의 ‘비밥바 룰라’] 루시엥 말송이 쓴 《재즈의 역사》 ③ 재즈→블루스→R&B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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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파커(왼쪽)와 디지 길레스피

[편집자] 25년 전 루시엥 말송이 쓴 《재즈의 역사》라는 책이 국내 번역됐다. 역자는 이재룡씨. 감수자는 재즈평론가 김진묵씨다. 지금은 절판된 이 책에는 19~20세기 재즈 역사에 대한 뿌리가 담겨 있다. 교향악 중심의 유럽음악과 달리 재즈는 색다른 음악세계를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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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엥 말송이 쓴 《재즈의 역사》
헛간에서 대충 제작한 보잘 것 없는 악기, 훗날 공업 연장에서 빌려온, 그래서 필연적으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이런 악기가 재즈에는 존재했던 것이다.
월간조선은 재즈의 원류에 대해 5차례에 걸쳐 요약해 전달한다. 이 책이 재출간되기를 희망하면서...
 
① 뉴올리언스의 영웅들 / 루이지애나 재즈맨의 이동 / 시카고와 뉴욕을 사로잡다
② 대공황과 재즈맨 / 스윙 시대의 미국 / 제2차 세계대전 : 재즈의 휴지기
③ 바퍼들의 혁명 / 냉정을 되찾은 순간
④ 반성의 순간 / 뉴싱, 재즈-록과 리듬 앤드 블루스 / 평창과 수축
⑤ 재출발의 시대 / 재즈의 세기
 
1.
 
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 흑인들의 사회적 위치는 빠른 속도로 개선되었다. 많은 흑인들이 북쪽으로 이주하여 군수산업, 기계산업에 종사하면서 그중 2/3은 대도시 시민이 되었다. 1940년에 비해 1944년에는 농업 이외의 산업에 종사하는 흑인 근로자 인구가 27%에서 38%로 증가했다.
 
루즈벨트 정부의 진보적 공약, 저냉 중 흑인들의 참여와 민주주의를 위해 그들이 흘린 피, 공장 노동자 계급의 증가 등이 흑인들의 사고방식, 특히 젊은 음악가들의 생각을 바꾸어놓았다.
 
비록 전국에 예전의 블루스 전통이 남아있었지만 이 전통 또한 보 들리, 에디 존스, 비비 킹, 에디 커클런드, 윌리 매본, 리틀 주니어 파커, 지미 리드, 닥터 로스, 스모키 베이브 등에 의해 변혁된다. 곧 사라져 버렸지만 ‘레이스 레코드’라는 군소 상표의 레코드가 1945년부터 흑인 노동자 및 농민 계층을 위한 음악을 일리노이 주에서 캘리포니아 주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전파했다.
 
* 레이스 레코드(race-record) : 흑인들의 레코드를 지칭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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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의 대가 찰리 파커
1945년 5월 11일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가 투하한 음악계의 2개의 핵폭탄이라 할 수 있는 ‘Hot House’와 ‘Salt Peanuts’를 이해하려면 민턴스 플레이하우스의 연주자들의 미학적 태도를 변화된 사회배경 속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Hot House’와 ‘Red Cross’처럼 리프 테마이며 아름다움을 배격했다. 이제 케니 클라크의 드럼과 그의 제자들이 합류하면서 새로운 유파가 할렘의 ‘잼 세션’에서 탄생된 음악적 형식을 주창한다.
 
* 리프(riff) : 두 마디에서 네 마디 정도의 짧은 멜로디 라인. 전체의 코드 전개와 주제 등이 함축되어 있다.
 
* 잼 세션(Jam Session) : 악보없이 즉흥연주로 이뤄지는 재즈 앙상블.
 
* 비밥(Be-Bop) : 스윙 후기에 그 형식적인 정돈 상태를 타파하고 새로운 주법을 개척, 혁신적인 사운드 스타일. 리밥(Re-Bop), 밥이라고 한다. 특정한 뮤지션, 그룹에 의해 개척되어 형식적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며, 상업주의에 영합하여 속화되고 형식, 주법에도 정돈상태를 보여주던 1940년대 전후의 재즈, 재즈계의 반성, 저항으로 싹튼 혁신운동의 표출이었다.
 
1945년에는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11월 26일 길레스피, 파커, 컬리 러셀(b.), 맥스 로치(dm.) 등 이 카운트 베이시가 성공시켰던 레이 노블의 ‘Cherokee’를 원작과는 전혀 다르게 편곡하여 ‘Koko’라는 제목으로 취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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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의 시대를 연 디지 길레스피
이 곡은 비밥이 리듬이나 멜로디, 하모니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고전적 원칙에 대해 반발하여 가장 멀어진 예이다. 로치의 복합적인 드럼이 경련과도 같은 난타와 균형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고 파커 스타일의 프레이즈가 일시적인 광란의 느낌을 주며 일상적인 것을 철저히 거부한다. 이 탁월한 작품은 한 음악비평가에 의해 가장 훌륭한 재즈 음반 중의 하나로 꼽혔으며 비밥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비밥의 특징은 과연 무엇일까? 우선 멜로디 악기 주자에게서는 약한 템포에 악센트를 주고 셋잇단음표를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리듬 악기 주자에게 많은 자율성이 주어진다. 반면 파트가 해체되어 콘트라베이스와 심벌즈 나아가서 베이스 드럼만이 규칙적인 비트를 매기고 피아노, 기타, 그리고 사이드 드럼은 자유롭게 움직인다.
 
재즈가 달콤한 유행가나 연애 노래 같은 저속함에 빠져들지 않았던 것은 앙드레 오데르가 지적했듯이 “멜로디와 화음에 있어서 진정한 재즈의 혁신”인 블루스 덕분이었다. 물론 블루스가 없다고 재즈가 살아남지 못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백인 음악을 차용하면 재즈의 분위기가 대개의 경우 우스꽝스러워지고는 했다.
 
5년 동안 무수한 재즈 음악이 나타났는데, 예를 들면 ‘Memphis’, ‘Dallas’(1912), ‘Saint Louis’(1914), ‘Frankie and Johnny’, ‘Weary Blues’(1915), ‘Beale Street’(1916), ‘Dippermouth’, ‘Livery Stable’(1917), ‘Royal Garden’(1919), ‘Aunt Hagar's’(1920), ‘Wabash’(1921), ‘Basin Street’, ‘Shoe Shiner’s Drag’(1923), ‘West End’(1925), ‘Honkey Tonk Train’(1927), ‘How Long’(1928) 등이 있었다.
 
경제 공황기에는 발라드가 블루스를 대신했는데 베이시 악단이 1937년 ‘One O'clock’이나 ‘Sent for You Yesterday’ 같은 곡으로 블루스를 다시 유행시켰고, 그후 햄프턴 악단, 딕시랜드 리바이벌 그룹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비밥 음악인들이 1945년대에 블루스의 패시지의 반음계 화음을 도입하고 주변 마디의 톤을 차용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도입부 4박자에서 I, IV, I과 I7의 자리에 단음 모듈레이션을 대체하기도 했다). 블루스의 전통적 분위기는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도 중요했지만 그들의 선배와 마찬가지로 4도, 5도의 화음계를 유지함으로써 보존되었다.

1945년의 ‘Billie's Bounce’, ‘Now's the Time’은 과거에 충실하면서 새로움을 추구한 완벽한 모델이다. 또한 암스트롱 음악 이후 20년 만에 아름다움이나 엄밀성에 있어서 뛰어난 ‘West End Blues’의 도입부를 연상시키는 파커의 ‘Parker's Mood’(1940) 같은 곡도 그런 예이다.
 
20년이란 세월의 간격이 있지만 찰리 파커는 당시 음악인들을 훨씬 능가하는 당당함이나 천재적 위력을 발휘하여 모든 이가 기다리던 추진력을 재즈에 불어넣었다.

일은 전쟁 기간 동안 확고하게 정립되었다. 언뜻 보면 논리성의 해체 같지만 그 너머에 숨겨져 있는 감탄할 만한 일관성이 존재해 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효과를 지닌 파커의 연주는 해석을 필요로 하는 음악이다. 우선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단속적인 도약, 고뇌에 빠진 사색, 단절과 멈춤 같은 효과이다. 재즈 역사상 최초로 파커의 연주는 멜로디의 일부를 정지시킨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파커는 언뜻 보기에는 끊겨진 듯한 요소들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서로 소통하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처럼 은폐된 음악 논리를 파악하려면 편견을 버리고 전통적인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퍼즐 조각이 재구성되며 갈가리 찢겨진 이야기가 형태를 갖추고 나누어지고 분리된 것이 전체적인 일관성으로 제자리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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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의 창시자 찰리 파커

재즈에는 과거의 것을 반복하는 충동이 내재한다는 우리의 믿음과는 달리 파커는 1945년 암스트롱의 권위에 대항하는 길을 취했다. 그는 암스트롱처럼 5중주 악단형식을 택했지만 ‘Moose the Mooche’, ‘Yardbird Suite’, ‘Ornithology’(1946), ‘Ah Leu Cha’, ‘Chasin' the Bird’(특히 나중의 두 곡은 색소폰과 트럼펫의 대위법을 사용한 점이 예외적이다.

‘Scrapple From the Apple’, ‘Crazeology’, ‘Dewey Square’, ‘Bongo Bop’, ‘Bird Nest’, ‘Bird of Paradise’, ‘Quasimodo’(1947) 같은 개성적인 테마를 들려주고는 했다. 얼 하인스를 자신에게 걸맞은 파트너로 생각했던 암스트롱처럼 파커는 위대한 트럼펫 주자 디지 갈레스피와 짝을 이루었다.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버드’ 파커는 현대 재즈의 쌍생아, 비밥의 대가이다. 1941년 사보이 볼룸에서 만난 그들은 민턴스, 몬로스에서 연주했고, 얼 하인스 악단 빌리 엑스타인 악단 그리고 마침내 52번가의 스리 듀스에서 나란히 연주생활을 했다. 길레스피는 회화적인 ‘Night in Tunisia’과 희극적인 ‘Oop Bop Sh'Bam’ 등을 작곡했다.

두 사람은 성격이 다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반대인데도 불구하고 기막히게 잘 어울렸다. 내성적이고 불안감에 시달렸던 파커는 마약과 술에 빠져 외로운 삶을 살았던 반면 디지는 사교적이며 충동적인 성격이라 쇼 비니지스의 세계, 그리고 연예인이란 자신의 입장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디지 길레스피는 단순한 유머리스트만은 아니었는데, 그는 파커처럼 위대하고 창조적이며 심오한 예술가였다. 뛰어난 테크닉을 지닌 그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 않고 가장 난해한 패시지를 정확하게 연주할 줄 알았다.
 
또한 화음의 대가로서 그는 숨가쁠 정도로 연속적 화음을 연주하는가 하면 리듬에 대해서도 능란한 즉흥 변주를 해냈다. 파커가 음역 면에서 암스트롱을 떠올리게 한다면 디지는 뉴올리언스의 위대한 트럼펫 주자의 카리스마를 지녔다. 디지는 청중을 즐겁게 하는 배우와 가수의 재간을 발휘했고 신랄한 개그를 하고 낭낭한 음성이 울려퍼지는 노래도 즐겨 곁들였다. 이러한 면은 얼마 후 유럽, 아시아, 남아메리카를 순회공연하며 얻었던 새로운 ‘사치모’, 일종의 월드 스타란 별명을 미리 예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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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디의 폭포수로 변환시키는 마력을 지녔던 엘라 피츠제럴드

1928년 코튼 피커스의 ‘Four or Five Times’, 1939년 칙 웨브와 엘라 피츠제럴드가 부른 ‘Tain't What You Do’에 이미 비밥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엘라 피츠제럴드는 길레스피가 가사 없는 노래를 우물우물 부르던 시기에 ‘Flyin' Home’(1945)에서 ‘Lady Be Good’(1947)에 이르기까지 이 테크닉을 능숙하게 구사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엘라 피츠제럴드는 국제적 스타가 되었다. 그녀는 소녀 같은 음성을 간직한 가수(이 점이 칙 웨브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솜털처럼 가볍고 자연스럽게 춤을 추는 댄서이자 “고마워요”라고 말할 때조차도 스윙 리듬을 느낄 수 있는 천부적인 음악인이었다. 황금색 꽃무늬나 줄무늬의 드레스 차림에 손가락 사이에 손수건을 끼고 눈을 반쯤 감은 채 마치 고통과 슬픔을 떨쳐버리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지긋이 누르고 노래를 부르던 그녀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감동이 아니면 미소라도 자아낼 줄 알았다.
 
‘발라드풍’ 이라는 딱지가 붙어다녔으나 그녀는 시나트라와는 달리 싸구려 음악을 절제된 힘과 간간이 파격도 곁들이며 그 묘미를 살려냈다. 또한 여전히 시나트라와는 달리 그녀는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인용구, 애드립, 동료 가수의 흉내를 동원하여 팝송을 멜로디의 폭포수로 변환시키며 블루스와 테마 뮤직을 완벽하게 해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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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파커(왼쪽)와 마일스 데이비스

2.
1948년 흑인 노동자와 공장 노동자, 영세 농업 노동자는 대통령 선거에서 해리 트루먼을 지지했다. 트루먼은 강력한 고용 정책을 추진했고 6.25 전쟁에 참전, 전시 경제체제를 꾸려갔다. 전시에서 평화 체제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미국 동부지역이 상대적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자동차 공업, 석유산업이 이룬 호황에 힘입어 겨울 휴양지였던 산타모니카와 롱비치가 활력을 얻었고 할리우드와 컬버시티도 활발하게 움직였다. 한마디로 캘리포니아 지역의 경기가 좋아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이 잔뜩 희망에 부풀어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재즈맨들도 그 뒤를 따라왔다. 다운 비트, 행오버, 티파니, 자디스 등의 카바레가 새로이 문을 열었다.
 
이후 색소폰 주자들은 새로운 재즈 감각을 재정립했다. 이제는 과거 베니 카터가 확고부동하게 정립한 그랜드 오케스트라의 현악기 모델은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레스터 영이 확립한 학파의 영향 아래 허먼 악단의 독주자들이 연주한 테너 색소폰의 묵직한 음색도 사라졌다.
 
호킨스나 파커 스타일의 과격한 성향이 사라진 ‘쿨 재즈’는 여러 가지 두드러진 특징으로 인해 ‘핫 재즈’와 구별된다. 쿨 재즈는 우선 포르타멘토 효과 같은 하소연조의 음색을 거부하고 바이브레이션이 거의 없는 미끈하고 가벼운 음색을 추구하며 긴장을 풀고 느긋한 방식으로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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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 재즈의 선구자 레스터 영
쿨 재즈의 선구자는 단연코 레스터 영이며, 1948년 혹은 그 이후 캘리포니아에 온 흑인 테너 색소폰 워델 그레이, 그리고 그들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에르모사 해변의 라이트하우스에 연주하던 테디 에드워즈도 파커가 떠받들었던 선배와 유사한 음악의 길을 택했다.

* 쿨 재즈(Cool Jazz)와 핫 재즈(Hot Jazz) : 초기의 재즈에서부터 스윙, 밥 시대에 이르는 재즈에 공통된 뜨거운 감정을 폭발시킨 것 같은 연주를 재즈의 매력과 특색으로 보고, 핫 음악, 핫재즈라고 불렀다.
 
1947~48년경 바퍼들간에 지나치게 열정적인 밥 스타일에 대한 반성, 반동으로 연주한 음악을 ‘쿨’이라고 표현한 것이 쿨 재즈의 시초였다. 이 ‘쿨’이라는 개념은 1950년대 이후 재즈의 커다란 기반이 되었다.
 
‘These Foolish Things’(1945), ‘Lover Come Back To Me’(1946),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1947) 등은 레스터 영의 음악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곡들이었다. 레스터 영의 후반기 경향은 음색이 더욱 가벼워지고 자유분방하고 야성적인 프레이즈는 전반기보다 더욱 빈번하게 박자를 무시했다. 쿨 재즈맨들이 레스터 영을 마치 아들이 아버지를 대하듯 애정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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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 게츠의 대표적인 음반 《Plays》
또 쿨과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의 대표적인 연주자인 스탠 게츠의 대표적인 음반 《Plays》도 주목을 받았다. 그는 쿨 재즈맨 중 가장 큰 거목인 찰리 파커와 콜먼 호킨의 음악을 분석해 레스터 영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독창적이며 아름다운 재즈 언어를 창안했다.

10년이란 기간 동안 스탠 케츠의 색소폰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프레이즈가 보다 단호해지고 악센트가 굳어지면서 색소폰의 음색은 화려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억눌린 듯한 감정으로부터 정열적인 스타일이 탄생한 것이다. 서정적이며 정열적이지만 고도의 테크닉에 의해 절제된 감정이 흐르는 물처럼 유연한 멜로디와 정돈된 화려함과 어우러지는 스타일이었다.
 
쿨 재즈의 원조가 오로지 레스터 영의 예술이라거나 그 고향은 아름다운 하늘의 동부 해안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쿨 재즈의 부드러움은 조 스미스나 빅스 바이더벡에게서 찾아 볼 수 있으며, 그것이 면면히 이어져 마일스 데이비스에 이르러 구체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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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쿨 재즈의 시대를 연 마일스 데이비스
멀리건이 편곡한 ‘Godchild’와 ‘Early Autumn’은 3주 간격으로 각각 취입되었다. ‘Godchild’는 패시지에 음성이 섞여 있는 다성적 의도의 9중주곡이다. 재즈 역사의 획을 긋는 이 기법은 3개월 후 존 캐리시가 작곡한 ‘Israel’에서 다시 나타난다. ‘Early Autumn’에 의해 미지근해졌던 재즈의 분위기가 마일스 데이비스가 지휘한 앙상블에 의해 청량함을 되찾았다.
 
동부 지역에서는 파커와 길레스피 스타일의 비밥 돌풍이 지나간 후 재즈는 다시 차분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차분하고 사색적이지만 심각한 척은 하지 않는 재즈 언어는 비밥을 잠재웠던 것이다. 돌풍은 가라앉았다. 차분한 재즈맨들이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다.
 
빌 에번스는 음반 《Portrait in Jazz》를 통해 3중주의 예술미를 가장 잘 드러낸 연주자였다. 걸출한 베이스 주자 스콧 래 패로가 합류하여 만들어진 첫 번째 3중주 음반으로 그의 활동기간 중에 황금기를 구가하던 단초를 제공한 음반이다.
 
이 무렵 재즈계의 활력을 증언하는 수많은 신인의 등장했다. 레이 찰스, 헬렌 메릴, 오데타 펠리우스 고든(일명 오데타), 다코타 스테이턴, 에타 존스, 에타 제임스, 어니스틴 앤더슨, 니나 사이먼, 그리고 블루스 계열로는 척 베리, 모조 버포드, 에디 번스, 앨버트 콜린스, 얼 후커, J.-B, 후토, J.B. 르누아르, 로이드 프라이스, 론섬 선다운, 오티스 스팬, 주니어 웰스 등이 있다.

1948년 라디오 역사상 최초로 멤피스에서 오직 흑인들을 위한 음악을 들려주는 방송국(WDIA)이 창설되어 B.B.킹이 그 방송의 사회를 맡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성공을 거두어 대중적 재즈는 일부 사람만이 즐기는 음악에서 벗어나 널리 퍼지게 되었다. 재즈 레코드는 이제 더 이상 ‘레이스 레코드(흑인 음악인의 음반)’가 아니었다. 1949년 6월 25일 《빌보드》지는 이 용어를 버리고 덜 인종차별적인 리듬 앤드 블루스라는 용어를 썼다.
 

입력 : 202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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