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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악단 사라지고 그랜드 오케스트라의 시대… 레스터 영, 빌리 홀리데이의 등장

[阿Q의 ‘비밥바 룰라’] 루시엥 말송이 쓴 《재즈의 역사》 ②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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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 굿맨 오케스트라

[편집자] 25년 전 루시엥 말송이 쓴 《재즈의 역사》라는 책이 국내 번역됐다. 역자는 이재룡씨. 감수자는 재즈평론가 김진묵씨다. 지금은 절판된 이 책에는 19~20세기 재즈 역사에 대한 뿌리가 담겨 있다. 교향악 중심의 유럽음악과 달리 재즈는 색다른 음악세계를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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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엥 말송이 쓴 《재즈의 역사》
헛간에서 대충 제작한 보잘 것 없는 악기, 훗날 공업 연장에서 빌려온, 그래서 필연적으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이런 악기가 재즈에는 존재했던 것이다.
월간조선은 재즈의 원류에 대해 5차례에 걸쳐 요약해 전달한다. 이 책이 재출간되기를 희망하면서...
 
① 뉴올리언스의 영웅들 / 루이지애나 재즈맨의 이동 / 시카고와 뉴욕을 사로잡다
② 대공황과 재즈맨 / 스윙 시대의 미국 / 제2차 세계대전 : 재즈의 휴지기
③ 바퍼들의 혁명 / 냉정을 되찾은 순간
④ 반성의 순간 / 뉴싱, 재즈-록과 리듬 앤드 블루스 / 평창과 수축
⑤ 재출발의 시대 / 재즈의 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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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0~1934년 : 대공황과 재즈맨

대공황이 찾아왔다.

흥청거리는 밤의 문화에서 생업을 잇는 재즈맨들도 일자리를 잃었다. 루이지애나나 시카고 스타일의 악단이 하나둘 사라져갔다. 베시 스미스와 지미 눈이 몇 장의 레코드를 취입했으나 대부분의 소규모 그룹은 스튜디오에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암스트롱과 도즈의 악단도 해체되었다. 테시 메이처의 악단은 1930년 벽두에 허물어졌고 바이더벡, 젤리 롤 모턴도 그해 가을 악단을 해체했다. 술집에서 오밀 조밀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소규모 악단이 사라지면서 점차 그랜드 오케스트라가 대중을 사로잡았다. 대중은 화려한 무대 위에 정장 차림의 수많은 연주가가 등장하였다. 미국은 그들의 고통을 감싸줄 음악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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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레드 앨런
1930년대의 할렘에서 루이스 러셀이 이끄는 한 트럼펫 주자가 돋보였는데 그가 바로 헨리 앨런이었다. 그는 암스트롱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템포를 덜 누르고 레가토에 의거한 유연한 프레이즈를 구사하는 스타일을 창안했다.
 
어둡고 감동적이며 가끔 거칠기도 한 그의 음색은 곧 암스트롱의 모델에서 벗어났다. 1933년 뉴욕에서 ‘레드’ 앨런이라 불리던 그는 플레처 헨더슨 악단에서 갈채를 한 몸에 받았다. 그의 뛰어난 독주곡 ‘Queer Notions’는 이미 로이 엘드리지나 해리 에디슨뿐만 아니라 디지 길레스피 스타일을 풍기고 있었다.
 
플레처 헨더슨 악단의 또다른 재즈맨 콜먼 호킨스도 극적인 연주 스타일을 창안하여 화려한 음색을 자랑하면서 훗날 모든 테너 색소폰 연주자의 귀감이 된다. 걸출한 재즈 개척자인 그의 등장과 더불어 격렬하고 메마른 스타일의 1920년대 연주기법은 이제 유행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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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색소폰이 귀감이 된 콜먼 호킨스
1933년부터 호킨스는 헨리 앨런과 더불어 매우 긴밀한 연주, 수다스럽고 풍부하고 웅변적 재즈 연주의 모범을 제시했다. 재즈 개척자인 그의 등장과 더불어 격렬하고 메마른 스타일의 1920년대 연주기법은 이제 유행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1933년 콜먼 호킨스의 ‘The Day You Came Along’과는 대조되는 아트 데이텀의 ‘Tiger Rag’란 곡은 상상하지도 못할 과감한 스타카토 기법을 과시했다. 테이텀은 손 연주법을 차용했다. 재즈의 3대 대가였던 제임스 P.존슨, 패츠 월러, 윌리 '더 라이온' 스미스 등은 그의 연주에 크게 감명 받았다. 그는 또한 대가다운 화려하고 경쾌한 오른손 연주로 카페 소사이어티에 연주하러 온 호로 비츠의 호기심을 끌었다. 테이텀의 재능과 변주 능력은 많은 음악인의 찬사를 받았으나, 반면 연주 재능은 뛰어나지만 그 이상은 뛰어넘을 수 없는 연주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당시에는 래그타임의 대표적 연주가로 1924년부터 엄격한 연주기법을 구사했던 패츠 월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힘차게 누르는 왼손의 화음부와 대비되는 오른손 연주는 스파크가 튀는 듯한 단순한 메롤디와 박동 넘치는 저음부에 맞추어 화음을 이끌어내는 음률을 교차시키는 것이 패츠 월러의 기법이었다. 월러는 ‘Viper's Drag’(1934)란 곡에서 이 스타일의 가장 뛰어난 기법을 보여주었다. 부드럽게 연결되는 즉흥연주가 훌륭한 이 기법은 논리성에 유머 감각을 더한 것으로 6중주에서 그 진가가 발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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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 베이시와 그의 오케스트라

2. 1935~1940년 : 스윙 시대의 미국

스윙의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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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의 제왕 베니 굿맨
1935년 금주법의 영향으로 침체되었던 재즈는 기지개를 켜고 떳떳한 도락의 하나가 되었다.

베니 굿맨의 대규모 악단은 캘리포니아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리듬 파트에는 제스 스테이시, 앨런 루스, 해리 굿맨, 진 크루파가 있었다. 버니 베리건도 악단에 들어왔으며 지기 엘먼(1936), 해리 제임스(1937)가 차례로 그 뒤를 이었다. 14명으로 구성된 악단은 굿맨이 고감히 고용한 플레처 헨더슨이 편곡한 곡을 연주했다. 그 시기가 ‘Swing Craze’의 출발이었다.

굿맨은 1935년 크루파와 더불어 흑인 피아니스트를 끌어들여 3중주단을 구성했는데 그 흑인이 바로 테디 윌슨이었다. 다음해 또 다른 흑인인 라이오넬 햄프턴이 합류하여 4중주단을 이루었고, 1939년 기타리스트 찰리 크리스천이 들어와 5중주단이 되었다.

악보대로 정확한 연주와 웅장한 소리를 자랑하는 대규모 악단은 유행가 멜로디나 뮤지홀의 댄스곡만을 연주하는 결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악단도 헨더슨과 화이트먼, 그리고 암스트롱과 협연했던 대악단이 연주했던 한심한 레퍼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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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 베이시
1935년 캔자스시티의 리노 클럽에서 연주하다가 뉴욕에 입성한, 구성원이 모두 흑인인, 카운트 베이시 악단도 주목을 끌었다. 이들은 4/4박자를 엄수했다. 피아노에 카운트 베이시, 기타에 프레디 그린, 콘트라 베이스에 월터 페이지, 드럼에 조 존스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무심한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 시대의 리듬 감각을 변하게 만들었다.
 
심장 박동 같은 리듬은 깊이와 유연성을 획득했던 것이다. 어둡고 밋밋하고 끈적거리는 악단 전체의 음색은 찬란하고 폭발적이며 거친 굿맨 리듬과 대조를 이루었다. '리프' 형식으로 표현된 블루스가 주종을 이룬 레퍼토리는 브로드웨이의 싸구려 음악으로부터 가볍게 벗어나 있었다. 중서부의 전통, 캔자스시티 시민의 경쾌한 스타일이 이 ‘리프 턴’ 형식에 담겨 있었다. 이 형식은 베이시 악단에서 생명력을 얻어 예술적 다양성까지 갖추게 되었다. 특히 엘링턴과 마찬가지로 베이시는 뛰어난 연주가를 고르는 안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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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크 엘링턴
 
오직 듀크 엘링턴 악단에서만이 지휘자에 대한 단원의 충성심을 엿볼 수 있었다. 버크 클레이턴, 디키 웰스만이 10년이 조금 못 미치는 기간 동안 단원의 자리를 지켰고 헤리 에디슨, 얼 워런, 잭 워싱턴, 지미 러싱은 10년도 훨씬 지나서까지 남아 있었다. 꽤나 긴 기간동안 그 유명한 리듬 파트에서는 단 한 명도 교체되지 않았다. 리듬 파트는 음색을 억지로 혼합하는 한심한 기법을 배제하고 오로지 두터운 음감, 박진감 있는 둔탁한 음감만을 추구했다. 무한한 기쁨이 담겨 있는 몇몇 작품에서는 이 악단의 전유물로 간주되는 근육질의 힘이 표출되어 있다.
 
1939년 테너 색소폰 연주가도 베이시 악단에 들어갔는데 그가 바로 레스터 영으로, 카운트 베이시를 만난 것도 캔자스시티였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박자에 대해선 자유분방하고 화음을 탐닉하면서 분열된 코드에 만족하는 경향을 경멸하고 나른한 스윙을 좋아하면서 바이브레이션이 배제되어 다소 둔탁하고 밀집된 음색을 선택한 음악으로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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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색소폰 연주가 레스터 영.

레스터 영의 천재성은 아마도 그의 게으른 성격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의 부친은 그가 타악기 주자가 되길 원했다. 그러나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타악기를 들고 다니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았던 레스터는 그의 형이 들고 다니는 악기를 곁눈질하기 시작했다. 몇 년 뒤 색소폰을 들고 다니던 형은 유명한 드럼 주자가 되었고, 원래 드럼 주자였던 레스터는 ‘색소폰의 대통령’이 되었다. 나른하고 게으른 그의 성격을 미학적으로 변용시키면서 그는 간결하고 명쾌한 자신만의 언어, 스타일을 창조했던 것이다.
 
‘I Left My Baby’ 같은 곡만 제외하고 엘링턴의 미학에 대해 카운트 베이시는 무관심했다. 그에 반해 지미 런스포드는 1934년부터 듀크와 마찬가지로 ‘Mood Indigo’와 ‘Black and Tan’ 같은 곡을 편곡하면서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장식음을 추구했다. 1936년에 발표된 ‘Organ Grinder’s Swing’은 화려한 음색에 대한 그의 취향을 드러내는 곡이며 ‘For Dancers Only’는 제임스 크로포드가 첫 번째와 세 번째 템포를 심벌즈로 강조하며 악센트에 변화를 주면서 카운트 베이스의 음악과는 대조되는 성향을 발휘한 곡이다.
 
1935년부터 1940년까지 베이시, 듀크와 더불어 재즈 음악은 안정적이며 균형잡힌 창작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단계를 훗날 영국의 비평가들이 '메인스트림', 프랑스에서는 미들 재즈(middle jazz)라 불렀는데 고전적 재즈와 현대 재즈의 중간단계에 속하는 시기란 뜻이다. 합리적이며 신중한 이 시기의 재즈를 만들어낸 주역이 딱히 대규모 정규악단 뿐만 아니라 조그만 그룹도 이 새로운 미학을 가꾸어 갔다. 아트 테이텀과 마찬가지로 런던에서 체류했던 패츠 월러는 그의 6중주 악단에 세드릭 월러스(b.), 벅스 해밀턴(tp.), 제임스 스미스(g.) 등 3명의 새 단원을 받아들였다. 바이올린의 스터프 스미스와 트럼펫의 조나 존스와 더불어 이 악단은 오닉스 클럽의 밤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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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홀리데이

또 다른 위대한 바이올린 주자 그라펠리와 기타리스트 라인하르트도 유럽인의 찬사를 받았다.
 
3명의 연주가와 여류 가수 한 명이 물질적 어려움이나 재즈의 미학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 이제 막 성년기로 접어든 재즈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시작한 이 시기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지금 언급하고자 하는 재즈맨들은 다름 아닌 로이 엘드리자(tp.), 라이오넬 햄프턴(vib.), 테디 윌슨(p.), 그리고 빌리 홀리데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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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엘드리자
로이 엘드리자는 ‘Wabash Stomp’와 ‘Florida Stomp’(1935) 같은 곡에서는 암스트롱의 전통을 계승하는가 하면 ‘After You’ve Gone’은 그 전통에서 벗어났다.
전폭적이고 길게 늘어지는 프레이즈, 과감한 멜로디, ‘낯선’ 음으로 가득한 ‘After You’ve Gone’은 암스트롱을 계승하면서도 자만에 빠진 재즈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새롭게 태어난 낭만주의를 대표했다.
 
이를 계기로 강렬한 표현과 비브라토를 통한 예민성을 갖춘 격렬한 표현주의가 등장했다.
햄프턴의 리듬섹션은 대단히 섬세해서 다른 사람들의 모델이 된 4박자를 구사했다. 햄프턴 악단에는 굿맨 악단의 기타리스트였던 찰리 크리스천, 피아니스트 클라이드 하트, 콘트라벵스 주자 밀턴 힌턴, 그리고 드럼 연주자 코지 콜이 있었다. 이들 리듬 섹션은 카운트 베이시의 리듬 섹션의 경쟁자로 등장하여 안정적이며 규범적 재즈의 상징적 존재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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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테디 윌슨
피아니스트 테디 월슨은 1935년부터 37년까지 50여 차례의 레코드를 취입한 빌리 홀리데이의 반주자로 활약했다. 또 재즈 황금기의 레스터 영, 버크 클레이턴, 로이 엘드리지, 앨런 루스, 코지 콜, 존 커비 같은 화려한 이름들과 함께 연주했다. 감미로운 터치, 그의 영혼과 지성, 장식음에 대한 경멸, 섬세한 감수성, 그리고 “의도적으로 망설이는 듯 순간적으로 연주를 멈추면서 감미로운 정적감을 자아내는 템포로 스윙하며 창출하는 긴장감” 등이 인상적이었다.
 
레스터 영과 마찬가지로 빌리 홀리데이는 유행가조의 천박한 멜로디를 거부하면서 멜로디를 비틀어서 묘하게도 1937년 베이시 악단의 색소폰 연주를 연상시키는 연주를 추구했다. 빌리는 가사와 테마를 악기 삼아 노래하는 연주가였고, 평론가 자크 B. 에스가 말했듯이 “빌리는 ‘Body and Soul’(1940)이란 곡에서 볼 수 있듯 자신만의 리듬에 맞춰 길게 늘이고 자신의 체험으로 부풀리기도 해서 결국 완전히 다른 곡을 만들어낸다.” ‘짙은 회색’을 띠고 마약처럼 강한 그녀의 목소리에 대해 보리스 비앙은 “이성적 마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눈을 반쯤 감고 발톱을 감춘 도발적 고양이”의 목소리로 평했다.
 
마약이 주는 황홀감과 참담함을 경험한 빌리는 형무소에 몇 차례나 드나들었다. 감옥에 갇혀 극단적 절망에 빠득찬 주위 사람들, 경직된 사법제도, 검은 피부를 가진 것을 저주를 의미한 이 세계에서의 모멸감 등을 감안해야 한다. ‘I Love My Man’, ‘Billie's Blues’ 그리고 앨런 루이스가 작사한 ‘Strange Fruit’ 등이 이러한 체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상하고 매력적인 무관심과 불안한 표정의 빌리 홀리데이는 이 세상 어떤 여자보다도 좌절된 욕망, 일상적 고통, 인간의 존엄성을 전혀 천박하지 않게 표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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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크 엘링턴과 그의 오케스트라

3. 1941~1944년 : 세계2차 대전, 재즈의 휴지기

제2차 세계대전이 절정기로 이어질 때였다. 전쟁은 재즈맨의 생활을 뒤집어 버렸다. 레이 매키리, 글렌 밀러 등 많은 재즈맨이 군복을 입게 되었고 보브 크로스비는 해병대에 입대했다. 레스터 영을 비롯한 많은 재즈맨은 병영생활의 어려움과 군대 내의 인종차별을 겪게 되었다.
 
다른 재즈맨들도 전선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대가 없이 ‘V디스크’(승리의 디스크)를 취입했는데, 어이없게도 상업적 판매를 금지하는 법령 탓에 원판이 파괴되어 훗날 재판을 찍어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암스트롱과 아트 테이텀도 이런 상황에서 ‘Bakc O’ Town Blues’를 취입했고, 베이시는 ‘Taps Miller’, 베셰는 ‘After You' ve Gone’, 킹 콜은 ‘Candy’, 엘링턴은 ‘Things Ain't What They Used to Be’, 햄프턴은 ‘Flyin' Home’, 빌리 홀리데이는 ‘Don't Explain’, 패츠 윌러는 ‘Bouncin' on’을 V디스크로 취입했다.
 

입력 : 202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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