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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취재-③] ‘성진국’ 일본의 고급문화·B급문화 탐방기!

도쿄 국립신미술관(國立新美術館)에서 느낀 비엔나의 숨결, 아키하바라에서 목도한 '충격'의 현장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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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히에(日技) 신사 전경. 사진=월간조선(조성호)
5월 1일 아카사카(赤坂)의 히에(日枝)신사를 찾았다. 일본의 신사(神社)는 야스쿠니(靖國) 신사 때문에 우리에게 아주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축원(祝願)의 장(場)이자 마음의 안식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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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신사 입구. 사진=월간조선(조성호)
 
히에신사가 위치한 나가타초(永田町)는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중·참의원 의장 공관, 자민당 본부가 있는 일본 정치의 메카다. 히에신사는 정·재계의 인사들을 비롯한 사업가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발원을 하면 번창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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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신사의 원숭이 석상. 사진=월간조선(조성호)
 
이날도 얇은 빗방울이 내리쳤지만, 히에신사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신사를 참배하는 줄, 축원을 드리는 부적을 구매하는 줄 모두 만원이었다. 3대(代)가 함께 나온 광경도 특이했다. 4~5살로 보이는 꼬마를 신사의 단(壇) 위에 데리고 가 참배를 하도록 한 부모도 있었다. 히에신사는 원숭이가 신(神)의 사자이므로 배례전(拜禮殿) 좌우에 원숭이 석상이 안치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 원숭이상에도 고개를 숙이며 예(禮)를 다 했다.
 
레이와 시대의 첫날을 ‘미신’을 향한 간구(懇求)로 시작하는 일본인들에게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한편으론 그들만의 세시풍속이 일본인들을 더욱 일본인답게 만드는 원동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배는 내키지 않아 신사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약수물처럼 물이 흘러나오는 개수대를 발견했다. 데미즈야(手水舎)였다. 데미즈야는 약숫물처럼 생겼지만 음용(飮用)을 위한 게 아니다. 국자를 이용해 물을 퍼 왼손과 오른손을 순서대로 씻고 왼손에 물을 넣고 입안을 헹군 뒤, 남은 물로 국자를 씻는 게 원칙이라고 한다. 이렇게 해야 소원이 성취될 수 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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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신사의 데미즈야. 사진=월간조선(조성호)
 
히에신사의 데미즈야에는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메이지(明治)일왕(1852~1912)의 ‘5월의 말씀’이 써 있다. ‘천황의 빛이 있기 때문에 우리 일본의 위엄은 결코 흐려질 수 없다’ 쯤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이 글들은 메이지일왕이 했던 말들로 매달 새롭게 바뀐다.
 
신사를 나오니 빗줄기가 다시 굵어졌다. 길 건너 TBS 방송국 방향으로 뛰어가다가 한 구석에서 묘한 느낌의 다방을 발견했다.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 있는 이 다방의 이름은 메모리(メムリー·기억). 70대로 보이는 노인이 운영하는 메모리 다방의 역사는 40년이나 됐다.
 
내·외부를 둘러보고 '정말 기억에 남을 다방이겠구나' 싶었다. 일본 식당이나 커피숍은 대개 흡연이 가능하다(단,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곳은 금연 구역). 메모리 다방은 40여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담배 연기에 절어서인지 사방의 벽이 누렇게 변색돼 있다. 의자도 움푹 패인 채 헐어 있었다. 비 오는 날, 다 낡아 빠진 다방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마시는 차 한 잔이 너무도 좋았다. 커피가 특별히 맛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낡은 느낌, 거기서 오는 세월의 정취가 마냥 좋았을 뿐이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표지판 하나에 눈길이 갔다. 롯폰기에 위치한 도쿄 국립신미술관(國立新美術館). 한 나라의 수준을 그 나라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가늠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비도 피할 겸 미술관으로 향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그냥 지나칠 그저 그런 미술관이 아니었다. 일단 규모부터 일본 최대란 점, 그리고 미술관을 설계한 사람이 일본 건축의 거장(巨匠) 구로카와 기쇼(黑川紀章·1934~2007)라는 게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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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국립신미술관의 야경. 사진=월간조선(조성호)

구로카와는 안도 타다오(安藤忠雄·1941~)와 더불어 일본 근대 건축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후쿠오카 은행 본점, 오사카의 소니타워, 나카진(中銀) 캡슐타워 등 그가 설계한 작품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건물들이다. 1980년대 후반 롯데그룹이 잠실에 롯데월드를 지을 때, 설계를 맡긴 곳도 구로카와의 설계사무소였다.
 
천재적인 건축가였지만, 말년은 조금 고달팠던 듯하다. 갑자기 정계에 투신, ‘공생신당’을 창당하고 2007년 도쿄도지사 선거와 제21회 참의원 선거에 출마한 것이다. 물론 결과는 모두 낙선. 갑작스런 정계 투신과 실패는 그의 건강을 좀 먹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07년 10월 12일 구로카와는 급성 신부전증으로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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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카와 기쇼. 사진=위키피디아
그가 부인이자 일본의 유명 배우였던 와카오 아야코(若尾文子)에게 남긴 유언은 일본 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와카오가 구로카와에게 “좋은 부인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고 눈물을 보이자 “무슨 그런 말을”이란 짧은 말을 남긴 채 구로카와는 눈을 감았다고 한다. 애절한 러브 스토리는 아니지만, 완숙한 중년 부부가 생애 끝자락에서 나눈 절제되고 진솔한 배려가 느껴진다. 1983년 재혼한 두 사람은 부부 금슬이 퍽 좋았던 듯하다.
 
약간의 배경을 공부한 뒤 미술관을 바라보니 새롭게 다가왔다. 유리로 된 미술관 외관은 마치 물결이 치는 듯 유려한 곡선으로 형상화돼 있다. 석양이 질 무렵, 미술관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비에 반사된 빛이 더해져 외관은 더욱 고급스럽게 변모했다. 내부는 은은한 조명과 회(檜)나무로 보이는 우드(wood)로 켜켜이 둘러쳐져 있어 편안한 느낌을 줬다.
 
이날 관람한 전시는 Vienna on the path to modernism(근대주의의 길에 오른 비엔나)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에곤 실레(Egon Schiele·1890~1918)의 작품을 일본에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부푼 마음으로 전시회장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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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구입한 도록(圖錄). 사진=월간조선(조성호)

 
에곤 실레도 에곤 실레였지만, 진짜 감동은 바로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오토 바그너(Otto Wagner·1841~1918)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다. 바그너라고 해서 ‘히틀러를 매료시킨 바그너가 비엔나, 그것도 근대 미술과 무슨 관계가 있나’하면서 의아했던 게 사실이다.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혼동한 것이니, 엄청난 무식함(?)을 시연한 셈이다.
 
오토 바그너는 지금의 비엔나라는 도시를 만든 주역이다. 비엔나 곳곳의 건축물들 중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게 없을 정도니 말이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우체국 저축 은행, 카를스플라츠 역(Karlsplatz) 등이 있다. 하나 같이 세계 건축사에 이름을 남긴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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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의 우체국 저축은행. 사진=https://www.vienna-unwrapped.com/otto-wagner-vienna/

 
에곤 실레는 성적(性的)으로 조금 문제가 있는 인물이었다. 여동생에 집착하는 근친 성향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어린 소녀들을 모델로 포르노그래픽적인 그림을 그려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이는 에곤 실레의 개인 성향에 불과할 뿐 그의 소묘(素描), 드로잉 실력은 어릴 때부터 천부적이었다.
 
실제로 에곤 실레의 그림은 적나라하다. 여성의 나신(裸身)은 물론, 성기까지 여과 없이 캔버스에 담아낸다. 섬세한 터치는 느낄 수 없지만, 다소 무규칙한 손놀림에서 그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읽을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우울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인간의 가장 밑바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체면을 벗어던지고, 자신을 타락시킨 욕망까지도 작품에 투영시킨 에곤 실레의 예술가적 기질은 극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에곤 실레의 단명은 세계 미술사의 큰 손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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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의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 사진=월간조선(조성호)
이 전시회에서 유일하게 촬영이 허락된 작품은 한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1862~1918)의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이었다. 클림트는 에곤 실레와 달리 직설적이지 않은 에로시티즘으로 각광을 받은 작가다.
 
2시간 넘게 관람한 뒤, 미술관 밖으로 나오니 이미 한 밤중. 온 사방천지는 비로 새카맣게 젖어 있었다. 대지는 비로 적셔졌지만, 나의 가슴 한 구석은 뿌듯함으로 충만해 있었다. 일본에서 만난 비엔나의 잔상(殘像)이 오랫동안 새겨질 것만 같았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귀국을 코앞에 두고 3일간 내리던 비가 멎었다. 순간 짜증이 솟구쳤지만, 여행은 계속돼야 했다.
 
짐을 싸들고 찾은 곳은 ‘오타쿠(オタク·특정 대상에 집착적 관심을 갖는 사람을 의미하는 일본어)’의 성지(聖地) 아키하바라(秋葉原). 아키하바라에는 오타쿠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일본의 게임, 만화, 장난감이 총집결해 있다. 골든위크 기간이라 그런지 아키하바라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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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하바라. 사진=월간조선(조성호)

기왕 아키하바라에 왔으니 좀 더 참신한 그 무언가를 보고 싶었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이 바로 일본의 성(性)문화였다. 이른바 ‘성진국(性進國· 性의 선진국이라는 신조어)’이라고 불리는 일본에 와 이를 구경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실례가 아닐까.
 
과거 아키하바라에 성인용품점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재빠르게 휴대폰을 놀렸더니 곧바로 검색돼 나왔다. 다른 것엔 굼떠도 이런 분야(?)에서만큼은 권총의 탄환처럼 빨라지는 내 자신이 조금은 한심스러웠다.
 
찾아간 성인용품점은 단층의 조그마한 매장이 아니었다. 6층 전체가 모두 성인용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쑥스러움도 잠시,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니 초만원이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종까지도 다양했다. 젊은 여성이 남자친구와 함께 방문해 이것저것 살펴보는 게 이채로웠다. 심지어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도 당당하게 매장을 돌아보고 있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꿈도 못 꿀 광경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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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간 아키하바라 성인용품점의 층별 안내. 사진=월간조선(조성호)
 
1~6층 어느 곳 하나 놀랍지 않은 곳이 없었다. AV(성인용 비디오) 여배우의 사진이 프린팅된 티셔츠, 베개, 마우스 패드와 같은 상품은 약과였다. 사진과 필설로 옮기기 힘든 남·여성용 자위기구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특히 텐가(Tenga)라고 불리는 남성용 자위기구는 마치 고급 탁상용 스피커처럼 생겨, 일본의 성(性)산업이 얼마나 발달해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지하는 AV DVD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벽면 곳곳에 설치된 태블릿 PC에 AV 작품 몇 개를 샘플로 틀어놓고, 손님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화면은 물론 소리까지 고스란히 매장에 울리고 있어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DVD 몇 개를 꺼내보니 다소 익숙한(?) 여배우들도 눈에 띄었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AV 여배우들은 일본 내에서 스타급으로 대우 받는다. 매년 그해 최고의 여배우를 뽑아 시상식을 개최하기도 한다. 그에 반해 남자 AV 배우 세계는 형편이 없다. 일단 ‘배우 기근(飢饉)’ 현상이 심각하다. 여배우들에 비해 박봉(薄俸)인데다가,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웬만한 남자들은 얼마 못 가 나가떨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AV는 더 이상 '음지의 영역'이 아니다. 최근 유명 여성 AV 배우와 남성 배우가 유튜브를 통해 한국어 자막을 달고, 방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을 상대로 이들은 자신의 근황, 취미 등을 소개하며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초·중·고교생들도 유명 AV 배우 한두 명과 그들이 출연한 작품 번호(흔히 '품번'이라고 함) 몇 개 정도는 꿰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일본 AV 시장 규모의 정확한 통계는 찾기 힘들다. 대략 수천억엔에 달할 것이란 게 업계의 추산이다. 그로 인해 파생된 업종(성매매 등)까지 포함하면 수조엔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고급스러운 일본 문화를 향유하다가 직접 엿본 일본의 ‘섹스문화’는 긴 여운으로 남았다. 상반된 두 개의 장면으로 시작된 일본 여행은, 마지막도 두 개의 이미지로 갈렸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 지닌 표정은 그렇게 다양하고, 심오하고, 또 섹시했다. (끝)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9.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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