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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취재-②] 일본이란 나라의 형언할 수 없는 ‘부조화’!

한 노인에게 ‘천황은 어떤 존재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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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새벽 0시를 기해 일본에 '레이와(令和) 시대'가 열렸다. 사람들은 새 일왕과 함께 새 연호를 맞이한다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거리로 뛰어나왔다. 사진은 시부야역 앞에 운집한 사람들. 사진=월간조선(조성호)
레이와(令和) 시대를 하루 앞둔 4월 30일 자정 무렵, 도쿄 시부야(渋谷)에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시부야는 긴자(銀座), 신주쿠(新宿), 롯폰기(六本木)와 더불어 도쿄 최대 번화가 중 한 곳이다.
 
시부야역 앞 교차로는 매우 유명하다. 일명 ‘스크램블(Scramble) 교차로’라고 불린다. 직선과 사선으로 복잡하게 얽힌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점등하면, 수많은 인파(최다 3000명 수준)가 일제히 ‘앞 다퉈 건너’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우리 매스컴에도 자주 등장해 익숙한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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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역 근처 도로를 달리는 버스. 이 버스 안에서는 젊은이들이 댄스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사진=월간조선(조성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자정 무렵, 시부야에 많은 인파가 몰릴 예정이라고 했다. 레이와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거란 얘기였다. 긴자에서 저녁을 때우고 시부야로 향했다. 시부야역 플랫폼에서부터 요상한 차림을 한 젊은이들이 많이 보였다. 밖을 나오니 엄청난 인파가 운집해 있었다.
 
비도 오고 해 시부야역 2층 큰 창문 앞에 자리를 잡고 창문 바로 앞 건물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이댔다. 내 뒤, 그리고 좌우엔 수많은 일본인들이 셀카봉을 들고 연신 사진을 촬영했다. 몇몇은 즉석에서 역사적인 순간을 담아내기 위해 유튜브 방송을 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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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의 미츠코시(三越) 백화점. 사진=월간조선(조성호)

 
사실 이날, 우리의 ‘제야의 종’ 타종(打鐘) 행사처럼 카운트다운 이벤트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헤이세이에서 레이와로 개원(改元)하는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비를 맞는 수고를 감내했다. 카운트다운은 내 주변 사람들이 일본어로 ‘고! 욘! 산! 니! 이치!’라고 해준 게 다였다. 역사가 바뀌는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시부야로 가기 전, 황궁(皇居·고쿄)에 들렀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이날은 아키히토(明仁) 천황의 퇴위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경시청 관계자들이 확성기로 ‘천황폐하나 가족 분들께서는 오늘 이 자리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 황궁 앞을 서성거리며 사진을 찍거나 저 멀리 보이는 황궁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런 '이벤트가 없다'는 공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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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황궁 전경. 사진=월간조선(조성호)
   
황궁을 한참동안 지그시 바라보던 한 노인에게 ‘일본인에게 천황은 어떤 존재입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분은 우리의 등대’라고 했다. 모든 의미가 함축된 표현이었다. 전후(戰後) 일왕은 상징적인 군주로 격하됐고, 현재 일본 국민들에게 그 어떠한 시혜(施惠)도 않는 명목상의 군주다. 하지만 아직 일본인들에게 있어 일왕은 그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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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 앞에 운집한 취재진들과 사람들. 사진=월간조선(조성호)
 
황궁을 나와 도쿄 시내를 순회하는 ‘스카이버스’를 탔다. 마침 발매소가 미쓰비시(三菱) 본사 1층에 있었다. ‘경영의 귀재(鬼才)’ 이병철(李秉喆·1910~1987) 삼성그룹 창업 회장은 1970년대 중반, 서울 태평로에 지상 28층짜리 삼성본관(三星本館) 건물을 지을 때 이 미쓰비시 본사 건물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실제로 두 건물은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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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본사 사옥. 사진=월간조선(조성호)
  
무개차(無蓋車)인 버스에 탑승하자 빗방울이 굵어졌다. 우비를 챙겨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빗방울과 함께 몰아치는 강풍도 꽤나 힘들게 했다. ‘휴가를 왔는데 이 뭔 고생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추억을 많이 남기고 싶은 게 여행자의 속성이다. 버스는 일본 유수의 언론사를 많이 지나쳤다. 내가 본 것만 해도 아사히(朝日)신문, 요미우리(読売)신문, 지지(時事)통신, 니혼(日本)TV, 후지(フジ)TV 등이었다.
 
버스는 오다이바(お台場)와 ‘레인보우 브릿지’를 지나 긴자 중심부로 향했다. 긴자의 별칭은 ‘간판의 박물관’이란다. 일본의 초대형 오피스 건물 꼭대기엔 건물을 상징하는 간판이 거의 붙어 있지 않다. 1층 가까이 가서야 이 건물이 어떤 건물인지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긴자는 간판부터 그 화려함이 남다르다. 전세계 명품 브랜드를 비롯해 쇼핑몰, 크고 작은 상점의 간판은 휘황 찬란 그 자체였다. 현대식 건물 사이에 위치한 가부키(歌舞伎) 극장은 일본 전통 양식이라 더욱 눈에 띄었다. 긴자는 일본 국력의 상징이자 선진국 일본의 본산(本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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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의 가부키 극장. 사진=월간조선(조성호)
  
긴자 한 구석 지하 다방에 들어가 담배를 한대 물었다. 그곳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한때 군국주의란 망령(亡靈)이 스며들어 우리 민족의 혼(魂)을 훔치려 했던 그들이다. 원폭(原爆)을 맞아 재기불능일 줄 알았던 일본은, 불과 몇 십년 만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하계 올림픽 두 번(1964년, 2020년), 동계 올림픽 두 번(1972년, 1998년)을 개최한 나라로 등극했다. 특유의 친절함과 상냥함이 몸에 배어 있어, 세계에서 가장 대우 받는 국민이기도 하다.
 
그에 반해 어떤 면에선 매우 권위적이다. 사실상 껍데기에 불과한 군주에게 한껏 예(禮)를 다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정치는 폐쇄적이기까지 하다. 자민당 '1당 집권 체제'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지 않나. 나는 이 형언할 수 없는 ‘부조화’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도대체 이들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계속)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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