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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2024년부터 지폐 속 인물 바꾼다

1만엔권 인물은 시부사와 에이이치...500개의 기업과 600개의 공익단체 설립한 메이지 시대의 기업인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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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레이와(令和) 시대의 개막과 함께 지폐 속 인물들을 교체하기로 했다. 아소 다로 일본 재무장관은 9일 각의를 마친 후, 새 지폐 디자인을 공개하고 2024년부터 새 지폐를 유통시겠다고 밝혔다. 1만엔권 속 인물은 메이지시대의 계몽사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에서 기업인 시부사와 에이이치로, 5000엔권 속 인물은 여류작가 히구치 이치요에서 여성교육가 쓰다 우메코로 바뀔 예정이다. 1000엔권 속 인물오 병리학자인 노구치 히데요에서 역시 병리학자인 기타사토 시부사부로로 바뀐다. 

이에 대해 국내 언론은 “새 지폐를 장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은 모두 지금의 일본을 만든 토대를 제공했지만, 동시에 제국주의 시절이 주요 활동 시기인 인물들”이라면서 “일본 정부가 이처럼 메이지 시대에 주로 활동했던 인물들을 새 지폐의 인물로 고려하고 있는 것은 식민지 지배와 전쟁 등 과거의 잘못에서 눈을 돌리고 근대 일본을 찬양하는데 집중하는 아베 정권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메이지 시대에 활동했던 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다 그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제국주의를 위해 복무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 1840~1931) 같은 이는 그런 말로 비난할 정도로 간단한 인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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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막부 말기에 농업과 상업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1867년 도쿠가와 막부의 사절로 파리만국박람회를 시찰하면서 서구 자본주의의 발전상을 목격했다. 메이지정부가 들어선 직후에는 대장성에서 조세국장 등을 지내며 조세-화폐-은행-회계 제도 개혁에 이바지했지만, 33살이던 1873년 돌연 사표를 내고 실업계에 투신했다. “왜 관직을 그만 두느냐”는 상사에게 그는 “상업이 부흥해야 나라가 산다”고 말했다.
이후 그의 발자취는 글자 그대로 일본 근대 자본주의의 역사 그 자체가 됐다. 미즈호 은행, 도쿄가스, 도쿄해상화재보험, 태평양시멘트, 데이코쿠호텔, 치치부철도, 도쿄증권거래소, 기린맥주, 세키스이 건설 등등 500개의 기업 설립에 관여하며 ‘일본 최초’라는 기록을 수없이 많이 남겼다.
그는 이윤보다는 기업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기업가였다. 일본을 위해 필요한 사업이 있다고 생각하면 깃발을 들고 나서서 해당 사업을 일으켰다. 그 사업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역할을 넘겨줬다.
상인에게도 고등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히토쓰바시대학, 도쿄게이자이대학, 와세다대학, 도시샤 대학 등의 설립에 힘을 보탰다. 도쿄양육원, 일본적십자사, 세우루카국제병원 등등 600여 개의 공익단체의 설립과 활동을 주도했고 미국-중국-인도 등과 민간외교 활동에도 힘썼다. 

그가 단순히 눈앞의 이윤을 넘어 기업가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던 것은 《논어》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그는 공자(孔子)가 이(利)를 천시했다고 보는 주자학적 관점을 비판하면서 정당한 부(富)는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재부(財富)를 증진시키는 근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단호하게 ‘인의도덕(仁義道德)’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도리로 얻는 부가 아니면 그 부는 아름답지도 않고 영원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동떨어진 채 놓여 있는 ‘<논어>와 주판’을 일치시키는 게 오늘날 우리들이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임무인 것입니다” 

“금전은 결코 무조건 천시 받아야 할 악(惡)의 뿌리이지만은 않습니다. 그렇다고 금전이 곧 선인 것은 결코 아니지요. 중요한 것은 인의도덕과 금전, 즉 ‘<논어>와 주판’은 반드시 일치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치국제민(治國濟民)을 잘하기 위해서는 도덕이 없어서는 안 되는 만큼 ‘경제와 도덕의 조화’야말로 정치의 기본이지요.” 

“부자일수록 빈민 구제 사업과 공공사업에 솔선수범해야 하는 게 당연한 도리입니다. 이렇게 가진 사람이 도덕상의 의무를 잘 지킬수록 그 사회는 튼튼하고 건전해지기 마련입니다.” 

“정말로 이재(理財)로 밝은 사람은 동시에 돈을 잘 쓸 줄도 아는 사람입니다. 돈을 잘 쓴다는 것의 의미는 정당하게 지출을 해야 한다는 의미인데요, 즉 좋은 데 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돈은 귀하기도 하고 천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돈을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것이 귀해지기도 하고 천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돈의 귀천은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의 인격, 그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요.” 

“만약에 품격이 높은 인격과 정의, 그리고 도리가 없이 제아무리 큰 재부와 지위를 얻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절대로 완전한 성공일 리가 없습니다. 단지 ‘욕심의 충족’일 뿐이지요. 욕심이라는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붓는 거나 진배없습니다.”

“저는 한 개인의 이익에만 멈추는 사업보다도 다수의 사회구성원에게 이익을 주지 않으면 진짜 사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수의 사회구성원에 이익을 주는 사업을 견고하게 발전시키고 번창시키지 않으면 그것도 진짜 사업가로서는 자격미달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뢰(信)는 도덕의 중심입니다. 그런고로 공자는 ‘안연(顔淵)’편에서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정치는 성립될 수 없다(民無信不立)’고 가르쳤고, 그밖에도 ‘신뢰’에 대해 말한 게 <논어> 안에 15군데입니다. 신뢰의 효용은 사회가 진보해감에 따라 점점 그 가치가 커지고 그에 상응하는 범위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한 개인으로부터 한 마을로, 한 마을로부터 한 지방으로, 한 지방으로부터 한 나라로, 한 나라로부터 전 세계로 ‘신뢰의 위력’은 그야말로 국가적, 세계적 가치로 확장됐습니다. 회사경영도, 상업거래도, 행정운영도, 재판효능도, 외교행사도 죄다 신뢰에 기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처럼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왼손에는 건전한 부의 윤리를 강조하는 《논어》, 오른 손에는 화식(貨殖)의 ‘주판’을 들고 당당하게 경제활동을 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하면서 《도덕감정론》을 통한 제어를 주장했던 아담 스미스를 연상시킨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이런 자신의 철학을 ‘공익을 전제로 한 부(富)는 다수의 부’라는 ‘합본주의(合本主義)’라는 말로 표현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주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오늘날 사회분위기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기업인들에게도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기업의 경제논리에 더 충실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정경유착도 서슴지 않았던 미쓰비시그룹의 이와사키 야타로와는 대조적인 입장에서 일본 자본주의의 한 유형을 만들어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쓴 《논어와 주판》은 ‘일본 상인의 나침반, 일본을 굴기시킨 비즈니스의 《상경(商經)》’으로 불리고 있다. “서양의 경영학에는 피터 드러커, 동양의 경영학에는 시부사와 에이치”라는 말까지 있다. 사카이아 아이치는 《일본을 이끈 12인물》이라는 책에서 그를 쇼토쿠 태자, 미나모토 요리토모,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쿠보 도시미치 등과 함께 일본의 원형질을 만들어 낸 인물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그의 이름을 딴 시부사와에이이치재단은 지금도 미국을 비롯한 대외 민간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기업인들을 죽이고 있을 때, 일본에서는 기업인을 지폐 속 인물로 넣겠다고 한다. 시부사와라고 해서 왜 흠결이 없겠는가? 하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시부사와 에이이치 같은 인물을 지폐 속 인물로 부활시키려는 것을 보면서, 결코 여기서 주저앉지 않겠다는 일본인들의 결기를 읽는다.  단지 ‘과거에 대한 반성의 부재(不在)’로만 이해할 일이 아니다. 
5000엔권 인물로 유력시 되는 쓰다 우메코도 일본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여대라고 하면 ‘이대(이화여대)’를 꼽는 것처럼, 일본에선 그가 설립한 ‘쓰다’를 꼽는다.
우리나라의 지폐 속 인물들은 여전히 조선시대 인물들이다. 우리는 언제나 조선의 주박(呪縛)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입력 : 201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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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lt;박정희 바로보기gt;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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