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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개막일에 발표한 연금개혁안... 추락하는 '러시아 황제'

연금개혁 반대했던 푸틴, 13년 만에 말 바꿔... 80%대였던 지지율, 60%대로 급락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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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안'으로 푸틴 대통령이 위기에 처했다. 지지율도 급락하고, 야당의 반발도 사고 있다.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푸틴 대통령이 국제 무대에서 외교성과를 내, 국면 전환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그중 하나가 '한반도 문제' 개입이다.
2013년 11월 13일 방한 중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6회 한-러 비즈니스 다이얼로그에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21세기판 러시아 차르(황제)’라 불리며 지지율 고공행진을 구가하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이코노미스트>(한국어판)는 ‘충격적인’ 연금개혁안을 내놓은 러시아 정부에 대한 자국민(自國民)들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며 그에 관해 자세히 보도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각) 의회에서 통과된 연금개혁안에 서명, 이날부터 연금개혁안이 발효됐다.
   
러시아 월드컵 개막일에 전격 발표
 
연금개혁안을 둘러싼 러시아 내부의 진통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연금개혁안의 발표 시기와 발표자를 둘러싸고 ‘꼼수’ 논란이 일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개막일인 지난 6월 14일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국민들의 눈이 온통 축구에 쏠렸을 때였다. 개막전에서 러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를 5대0으로 대파(大破),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게다가 연금개혁안 발표자는 푸틴 대통령이 아닌 그의 ‘오른팔’로 불리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였다.
 
영국 BBC방송은 메드베데프 총리가 이날 발표한 은퇴와 연금 수령 연령 연장 방안은 ‘현대 러시아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연금개혁 조치로 꼽힐 정도로 과감했다’고 전했다. 연금 개혁안의 골자는 현행 60세인 남성들의 퇴직과 연금 수령 시기를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65세까지 미룬다는 것이다. 현행 55세인 여성들의 퇴직과 연금 수령 연령은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63세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퇴직 연령을 연장해 일하는 기간은 늘리고, 연금 수급 시기는 뒤로 미루겠다는 게 이번 조치의 핵심이다. 러시아가 연금개혁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연금 수령 대상인 고령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2014년부터 연금기금의 ‘세입’보다 ‘세출’이 커졌다. 연금 운용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특단의 대책이 없을 경우, 자칫 연금 재정이 파탄날 수도 있다는 게 러시아 정부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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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2012326일 청와대 세종실에서 한러 정상회담을 하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푸틴의 '말 바꾸기' 논란
 
과거 푸틴 대통령은 이번 연금개혁의 방향과 정반대 입장을 취했었다. 2005년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는 데 반대하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당시 푸틴은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절대 이런 결정(연금 수령 연장-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나라에서 퇴직 연령을 늦출 필요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나는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는 데 반대한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 연설은, 연금개혁안 발표 이후 러시아 언론 홈페이지에 동영상으로 게재되기도 했다.
 
러시아 대통령궁인 '크렘린'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그 당시와는 상황이 바뀌었다”며 푸틴이 13년 만에 '말 바꾸기'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페스코프는 “당시 발언은 이미 13년 전에 했던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물론 그동안 우리는 인구 구성이 크게 변하는 상황을 오랫동안 지켜봤으며 경제 상황과 국제시장도 변화해 왔다”며 “어떤 나라도 변화 없이 진공(眞空) 상태에서 존재할 수 없다”고 연금개혁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페스코프는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연금개혁안 마련에 개입하지 않았으며 메드베데프 총리의 내각에서 마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누가 봐도 연금개혁에 대한 푸틴의 책임론과 이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교묘하게 피해나가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사기꾼과 도둑들의 집단’이라고 비난 받는 푸틴 정부
 
매체는 러시아가 '이원집정부제' 국가지만 “연금개혁안처럼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민심을 동요시킬 가능성이 크며 정치적인 책임을 져야 할 주요 정책이 대통령의 개입이나 허락 없이, 또는 묵인이나 방조 없이 총리와 내각이 독단적으로 마련해 국민 앞에 발표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이어 “푸틴이 정말 연금개혁안에 대해 전혀 개입하지도 않고, 몰랐다면 그게 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크렘린'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연금개혁안은 반발을 사고 있다. 푸틴의 위세에 눌려 있던 야당도 들고일어났다. 러시아 야당 '진보당'의 지도자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7월 1일 러시아의 20개 도시에서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러시아 변호사로 미국 예일대에 유학했던 나발니는 반(反)부패 운동에 앞장서면서 푸틴 대통령을 반대해 왔다.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를 ‘사기꾼과 도둑들의 집단’이라고 직설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현 정부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러시아에서도 아랍의 봄 같은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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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세이 나발니. 사진=위키피디아

 
지지율도 80%대에서 60%로 급락... 정부는 언론 동원해 푸틴 홍보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도 급락하고 있다. 푸틴은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 반도를 빼앗아 병합한 이후 내내 80%를 넘는 고공행진을 이어왔다. 지난 3월 대선에서도 80%를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연금개혁안을 발표하면서 푸틴의 지지율은 일시에 60%대로 급락했다.
 
러시아의 취업 사이트 ‘헤드 헌터’는 긴급 여론조사 결과 53%의 러시아인이 은퇴와 연금 수령 연령을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연금개혁안을 지지하는 사람은 6%에 지나지 않았다. 러시아의 여론조사 기관인 로미르 리서처도 연금개혁안 반대 여론이 92%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 여론이 심상치 않음을 방증했다.
 
여론이 악화하자 러시아 정부는 언론을 동원해 푸틴 홍보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 국영 텔레비전은 9월부터 ‘모스크바, 크렘린, 푸틴’이라는 프로그램을 신설해 매주 일요일 황금 시간대에 내보내고 있다. 주로 푸틴 대통령의 동향과 공적을 상세히 보도하는 일종의 친(親)정부 홍보 프로그램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국영방송의 전파를 푸틴의 정치광고에 쓰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지적했다.
 
위기에 처한 푸틴, '한반도 문제' 개입해 국면 전환?
  
지금의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푸틴 대통령의 결정적 ‘한 방’이 필요하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푸틴 대통령이 국제 무대에서 두드러진 외교 성과를 내놓을 가능성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모스크바 센터의 콘스탄틴 가제 연구원은 NHK에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세계적인 지도자임을 증명하는 외교적 승리를 거두고 국민 앞에 내세우는 방안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푸틴이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 문재인 대통령이나 북한의 김정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전격 방문하거나 모스크바로 초대해 '중재 외교'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덧붙였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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