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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한철용 장군―『36년만에 맞는 편안한 週末』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goms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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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7일자 SI를 뺀 사람은 반역행위로 조사받아야』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다윗」 전 5679부대장인 韓哲鏞(한철용ㆍ56) 장군에게 지난 10월 한 달은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을 겁니다. 지난 10월4일 한 장군이 국회 국방委 국정감사장에서 「블랙 북」(주요 부대에 배포되는 북한첩보 관련 1일 보고서)을 들어보이며 군 수뇌부의 적 도발 가능성 묵살 의혹을 「폭로」하자 신문과 방송이 연일 대서특필했고, 이어 국방부의 진상조사가 숨가쁘게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일련의 사건 속에서 한 장군을 네차례 만났습니다. 성남시 분당의 요셉성당과 서울 잠실의 그의 아파트에서 만났을 때, 그는 허름한 점퍼 차림에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습니다. 국감장에서 지휘관 녹색견장에 찬란히 빛나는 별 두개를 붙인 모습과는 분명 거리가 있었죠. 이때 받은 느낌은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다윗」과 같았습니다. 지난 11월3일 일요일 저녁, 한 장군을 만났을 때 그는 36년 동안 입은 정복 대신 감색 니트 조끼에 밤색 콤비 정장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역 신분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10월31일자로 강제 전역을 당했기 때문이죠. 그는 기자에게 『요즘 운동을 안 하니 몸무게가 늘었다』며 『36년 만에 맞는 모처럼 편안한 주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정보장교로 죽 근무했지만 1994년 보병 8사단장 시절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修道(수도) 생활」하듯 營內(영내)에 주로 머물면서 병사들과 축구도 하고, 천막속에서 宿食(숙식)을 함께하면서 철조망 보수공사를 하는 등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다고 회고하더군요. 1개월 정직의 중징계 처분 지난 10월23일, 국방부 중앙징계위원회는 北 도발징후 묵살의혹을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던 한 장군에게 정직 1개월의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보통 공무원의 징계는 경고=>근신=>견책=>감봉=>감급=>강등=>정직=>파면 등으로 나뉘는데, 한 장군은 罷免(파면) 직전의 停職(정직)이란 중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한 소장은 현역복무 부적격 심의대상이 됐고 명예전역이 불가능하게 됐던 것이죠. 그러나 한 장군은 국방부의 10월31일자 전역 조치에 대해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정해진 수순대로라면 한 장군은 계급정년에 따른 전역일자인 11월30일 전역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한 장군은 국방부에 대해 『국방부 징계委에서 징계를 한다면 계급정년에 따른 전역을 할 것이고, 만약 징계를 안 한다면 10월18일자로 전역할 수도 있다는 조건을 달았었다』고 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한 장군은 지난 7월 서해교전 직후 기무사의 관련부대 조사시 전역지원서를 내 놓은 상태였습니다. 돌연 한때 유보됐던 전역지원서가 수리, 갑자기 강제 전역을 당하게 됐던 것입니다. 丁亨鎭 정보융합처장(준장)은 근신, 權寧載(권영재) 국군정보본부장(중장)은 전역을 조건으로 징계를 받지 않은 것에 비하면 한 장군만 무거운 벌을 받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는 『연금 일부의 손해와 명예 퇴직수당 등을 못 받게 됐다는 사실보다도 나를 이런 식으로 물러나게 하는 현 정권이 문제가 있다. 청와대에 밉보여 청와대에서는 나를 「파면」까지 시키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파면이면 연금혜택은 전혀 못받는 것은 물론이고, 명예를 존중하는 군인으로서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무등병」 전역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내게 철저히 앙갚음을 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쨌든 한 장군은 지난 10월31일 전역했습니다. 장성들이 으레 그렇듯 1997년부터 6개월 간 자신이 사단장을 지낸 8사단 연병장에서 군악대의 팡파르 속에 군생활을 마감하고 싶었을 겁니다. 후배들의 축하를 받는 전역식 「세리모니」도 없이 그는 쓸쓸히 군 생활 36년을 마감한 것입니다. 「블랙북」은 비밀이 아니다 한 장군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현 정부의 비굴한 對北 정책에 一針(일침)을 가한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는 평가에서부터 『존재자체가 비밀에 부쳐졌어야 할 극비 정보부대장으로서의 군 기밀인 블랙북을 흔들어보인 것은 본분을 망각한 경솔한 행동』 『지휘체계를 어기고 軍 기강을 무너뜨린 사람』 등등 極과 極을 오갑니다. 그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일반 국민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많다』고 하더군요. 그중에 하나가 「블랙북」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는 『블랙북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블랙북은 새로운 사실이겠지만 블랙북은 비밀이 아니다. 또 블랙북으로 인해 軍의 기밀이 漏泄(누설)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5679부대(일명 스리세븐부대)를 노출시켰다는 비난에 대해 「NSA」(National Security Agencyㆍ미국 국가안전보장국; 1952년 대통령령으로 설치한 미국 국방부 소속 정보기관. FBI·CIA와는 별개이며, 세계를 무대로 전자첩보활동을 하는 방대한 국가안보기관이다.-편집자 注)는 건물까지 일반에 노출시킨다. 현대전에서는 부대의 노출 여부보다는 情報力(정보력)의 싸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정보부대의 정보수집 업무가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라는 우려에 대해 『내가 블랙북을 보였기 때문에 적이 암호와 주파수체계를 바꾼 것이 아니라, 서해교전이 발발하고 나서 우리 국방부의 발표와 럼즈펠드 美국방장관의 「北의 도발징후에 대한 증거를 갖고 있다」는 발언을 통해 적들은 암호와 주파수 체계를 바꿨다』고 말하더군요. 한 장군은 『나는 서해교전에서 논란이 된 「15자」와 「8자」의 SI(special intelligenceㆍ특수정보)도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SI란 우리측이 감청한 정보에 대해 情報源(정보원)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출처를 삭제하고 핵심 내용만 애매하게 처리한 특이한 정보를 말합니다. 일반인이 보면 엉뚱한 소리처럼 들립니다. 『「어떻게 북한의 도발이 분명한 이런 정보를 갖고도 묵살시킬 수 있는가」하는 것을 일반 국민에게 보여줘 경각심을 주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 북한의 노동당 작전부 소속 공작선의 격침도 이들의 활동에 대해 통신 감청을 통해 알아냈다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았는가. 1983년 소련의 대한항공기 격추시 일본 北海道(북해도)의 와카나이(稚內) 기지에서 잡은 조종사간의 대화내용 정보도 SI였다. 그러나 反인류적 범죄에 대해 일본은 자신들의 정보수집 역량이 드러나더라도 공개해야 한다고 결정했던 것이다』 문제의 SI인 「15字」가 궁금해 한 장군에게 『15자라는 것이 「큰놈 옆에 있냐-------」는 것 아닌가』하고 묻자 그 내용에 대해선 역시 끝까지 함구했습니다. 정보부대장을 지낸 사람 답게 미묘한 질문이 나오면 답변을 피해가는 「개인기」가 대단하더군요. 그는 『우리가 정보본부에 보고한 「15자」 「8자」의 SI는 결정적 挑發 文句(도발 문구)를 의미한다. 「큰놈 옆에 있냐-------」는 것은 부수적으로 따른 상황 정보였고, NLL 어선 단속에서 이런 정도의 감청은 수 없이 많이 된다. 기무사와 이번 국방부 조사에서는 그런 상황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문제를 삼은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휘부에 보고한 「진짜 정보인 15자」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15자는 누구 들어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장군은 『전시가 아닌 평시에는 북측이 「허위통신」을 안한다. 그런 점에서 平信(평신)은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정보 중에서 영상정보보다 통신정보가 더 정확하다고 하는 것이 이런 이유다』라고 말하면서 『국군정보본부와 장관의 안일한 판단으로 적의 NLL침범에 대해 마음을 놓고 경계근무를 섰기 때문에 24명의 젊은이들이 死傷(사상)당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정보 보고 삭제 권한은 장관』 『6월27일 5679부대의 「15자」 보고를 보면 윗선에서는 「더 이상징후가 없냐?」고 물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단도리」를 해야 할 사람들이 마음을 놓으니 이런 일 발생한 것이다. 정보보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팩트」를 손대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 부대는 팩트는 손대지 않은 것이다. 「단순침범」이라는 「판단」은 차후문제로 판단이 잘못되면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8자」, 「15자」를 빼버리니까 문제가 생긴 것이다. 집 대문에 불독(팩트)이 사진이 있는데, 사진 밑에 「이 불독은 순하다(판단)」라고 씌어 있다면 사람들은 불독이 순하다라는 판단은 믿지 않는다. 당연히 불독이라는 팩트를 보고 조심을 할 것이다. 이번 6월27일자 단순침범 보고도 이와 똑같은 상황이다. 정보본부에 파견돼 있는 윤영삼 대령이 우수한 군인이라 우리 부대의 의도를 알아채고 [단순침범]이라는 판단에다 정보보고에 특별한 징후를 적어넣었다고 한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9ㆍ11 테러, 6ㆍ25전쟁도 일선에서 올라온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정보본부는 6월13일 강조한 내용에 대해 「소 닭 쳐다보듯」 했다. 내가 6월5일부터 부대를 지킨다고 하며 그렇게 좋아하는 골프도 안치겠다고 했더니 위에서는 무슨 헛소리냐는 분위기더라』 한 장군은 『이번 국방부 조사에서 6월27일 「15자」의 결정적 정보를 누가 뺐는가 하는 것이 누락됐다』고 말하면서 『이것은 반역 행위로 수사해야 한다. 이 특수정보(SI)를 손댈 수 있는 자리는 정보본부장과 국방장관밖에 없다. 국방부의 조사결과대로 정보융합처장이 장관의 「意中」을 미리 파악해 적의 결정적 SI를 누락시켰다손 치더라도 이것에 대한 최종 결재는 정보본부장과 국방부장관이 해야 하기 때문에 책임은 두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만약 단독으로 정형진 정보융합처장이 정보를 뺐다면 이건 「근신」 정도의 간단한 처벌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도 上命下服하는 사람』 한 장군은 국방부의 조사결과가 예상보다 전직 장관의 「허물」을 상당부분 밝혀낸 데 대해 놀랐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조사결과를 밝혀내고보니 「이러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한철용에게 뒤집어 씌우자」고 해서 징계를 한 것이다. 김동신 장관이 김승광 장군을 만나 「나 만났을 때 이런 말 안하더니 웬 조사결과가 이러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전임장관에 대한 발언은 군기법 위반이 아니다. 김 전 장관이 유임하기 위해 정보보고를 묵살한 것을 나는 「책임 회피」라고 완곡하게 표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내가 정의를 잃었다면 감옥에 있지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조사결과도 사실무근이 아니라 「과장」으로 나오지 않았는가. 이번 5679부대 정보보고 묵살 사건의 핵심은 장관과 정보본부 담당자들이 원하는 대로 정보보고를 받아 묵살해놓고 쾌재를 부르다가 서해교전이 발생해 당하니까 내게 덤터기(징계)를 씌우려고 해서 도덕성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한 장군은 都日圭(도일규) 전 육군참모총장이 전화를 걸어 『용기 잃지 말라』고 격려도 해주더라면서 『비망록 마지막에 쓴 「정의」와 「진실」 「하나님」이 나의 「백」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장군은 이런 이야기도 털어놓더군요. 『나도 상명하복, 위계질서를 따르는 사람이다. 6월27일 「단순침범」으로 양심에 반하는 「판단」을 한 것도, 내개 「15자」라는 결정적인 정보(팩트)를 올리면 올바른 판단을 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기무사령관이 서해교전 이후 나를 조사한다길래 조사하면 오히려 장관에게 큰일이 난다고 했다. 기무사령관도 장관이 묵살한 것을 안다. 그러나 끝내 조사해서 징계를 했고, 끝까지 상명하복한 죄 없는 사람에게 올가미를 씌우려는 것에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햇볕정책을 비판한 장성에게 준 美공로훈장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최근 한 장군에게는 좋은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오는 11월22일 용산에 있는 주한미군사령부에서 미국 정부가 수여하는 「美 공로훈장」(Region of Merit)을 받기로 돼 있기 때문이죠. 국방부는 한 장군이 정보 보고와 판단상의 과실로 징계를 받아 「受勳(수훈) 부적절자」라고 美측에 통보했지만, 美軍측은 징계와 관계없이 이번 수훈이 정기적으로 한국군 장성들에게 주는 포상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美 공로훈장은 전역하는 대장 등 한국군 고위관계자들에게 주로 수여돼 왔다는 점에서 수여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15명이 거쳐간 5679부대장으로서도 처음으로 받는 것이라고 하네요. 美측이 햇볕정책을 비판한 한 소장에게 이례적인 훈장을 줌으로써 우리 정부와 군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의미가 있지 않느냐는 추측도 가능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1946년 1월17일 제주에서 출생한 한 장군은 제주 오현고를 졸업하고 육사 26기로 1970년 3월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그는 이듬해 5월 백마부대 소대장(중위)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합니다. 靑雲(청운)의 꿈을 품고 육사를 나온 그는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할 무렵 큰 시련에 부딪히고 맙니다. 朴正熙(박정희) 대통령 시절, 北으로 넘어간 먼 친척 때문에 緣坐制(연좌제)의 피해자가 될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육사출신이라면 신경쓰지 않아도 당연히 소령 진급이 되는 것임에도 그는 두 번이나 누락됩니다. 육사 출신으로는 이변이었죠. 그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朴대통령에게 편지를 씁니다. 「저는 베트남전에 소대장으로 참전했으며, 일선 GOP(general outpostㆍ一般前哨) 중대장도 지냈습니다. 연좌제 때문에 제 뜻을 펴지 못하고 있으니 선처를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띄었답니다. 朴대통령이 편지를 읽었는지 그는 1978년 소령으로 진급합니다. 한 장군은 朴대통령을 자신의 군 생활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도 10ㆍ26 전날이면 부모님 묘소를 찾듯 연례행사처럼 朴正熙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다고 합니다. 현역 최고위 장교부부 기록 세워 한 장군은 전역전까지만 해도 현역 최고위 장교부부였습니다. 1994년 노총각 대령과 현역 여군 중령의 결혼은 軍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장군 진급을 앞둔 48세의 현역 육군대령이었던 한 장군은 당시 38세의 현역 여군 중령인 秋順三(추순삼ㆍ여군사관 27기) 현 국방부 여군발전단장과 그해 12월28일 결혼해 사상 최고위 장교 결혼 기록을 세웠던 것입니다. 한 장군의 군 후배의 소개로 만난 두사람의 첫만남에서 한 장군은 만난 지 45분만에 「탐색」을 마치고 『결혼합시다』라고 請婚(청혼)했다고 합니다. 지금 한 장군은 여섯 살인 딸 「은비」에게 「아빠의 인생」을 들려주기 위해 군 생활과 성장과정을 글로 정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1981년 미국 펜실베니아대에서 국제관계학(러시아語 전공)을 공부한 한 장군은 이번 사건이 마무리되는 대로 대학에서 북한학을 가르치며 제2의 인생을 살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그의 행동이 「용기」인지 「경솔함」인지는 앞으로 성장할 그의 딸이 평가해줄 것 같습니다.●

입력 : 200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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