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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했다 이혼하고, 재결합했다 또 이혼 수순 밟는 대우와 GM의 질긴 운명

35년의 긴 역사에 종지부 찍나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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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차와 GM(제너럴모터스)의 인연은 만남과 결별의 반복이었다.

대우그룹의 주력 계열사였던 대우자동차가 국제 시장에 매물로 나온 것은 1999년도다. 대우그룹이 공중 분해되면서 주인을 잃은 대우차는 당시 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관리하고 있었다.
오늘날 골칫덩어리로 전락했지만, 대우차는 국제 시장에서 인기있는 매물이었다. 산업은행이 2000년 2월에 국제입찰을 공고했는데, GM과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피아트가 모두 인수 의향을 밝혔다. 우선 협상자로 선정된 것은 포드(2000년 6월 29일)였다.
 

하지만 이 결정에 대해 GM은 아쉬움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GM은 당시 대우차의 실사를 위해 30명의 인수팀을 국내에 파견하고 있었는데, 우선 협상자에서 탈락한 이후에도 이들 인수팀을 본국으로 불러들이지 않았다. 포드는 석 달간의 실사 끝에 결국 대우차에 대한 최종 인수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딜은 물 건너갔다. 당시 포드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부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우차의 강성 노조가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다시 시장에 매물로 나온 대우차를 GM은 놓치지 않았다. 사실 여기에는 GM과 한국 자동차의 길고 긴 인연이 한몫을 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였다.
GM이 한국 자동차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GM은 GM코리아(자본금 185억 원)를 만들어 신진자동차와 5대 5로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시보레, 레코드 등 승용차와 트럭을 생산했다. 신진이 경영난에 몰리자 산업은행이 신진의 지분을 인수했고, 회사명은 새한자동차로 변경됐다. 다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산업은행으로부터 지분을 인수해 대우자동차로 이름을 바꿨다. 자연스럽게 GM은 대우와 결혼을 하게 된 셈이다. 1983년도의 일이다.

 
하지만 두 회사는 회사 경영 방침을 둘러싸고 갈등이 심했다. 특히 ‘세계 경영’을 내세운 김 전 회장이 대우차의 동구권 진출을 추진하고, GM은 이에 반대하면서 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결국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GM은 1991년 자신의 지분 50%를 전량 대우그룹에 넘기면서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랬던 대우차가 8년 만에 경영난으로 인해 다시 시장에 매물로 나온 셈이다. 우선 협상 대상자였던 포드와의 협상에 실패한 산업은행은 다시 대우차 주인 찾기에 나섰고, GM이 2001년 5월에 인수 의향을 밝혔다. 그리고 넉 달 뒤인 2001년 9월에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다시 재결합에 나섰다.
 
 
GM대우로 이름을 바꾼 회사는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 높이기에 사활을 걸며 제 2의 비상을 꿈꿨다. 하지만 재결합 17년 만에 GM이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하면서 사실상 또 한 번의 이혼 수순을 밟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공장 폐쇄가 아니라 사실상 한국에서의 철수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해 둘의 인연이 종착역에 다다랐음을 시사하고 있다.
 
 
글=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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