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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남재준 전 국정원장, “이 나라의 주인은 대한민국 위해 피와 땀 흘린 사람들”

지난 4월 29일, 트루스포럼 강연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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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트루스포럼

지난 4월 29일 박근혜 정부 초대 국가정보원 원장(2013~2014년)을 지낸 남재준(南在俊·80, 예비역 대장, 육사 25기) 전 국정원장이 트루스포럼(대표 김은구)에서 ‘우리의 역사 인식과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번 강연은 2017년 4월 14일 이후 7년 만이다.


남 전 원장은 “육사 입학 후 참모총장이 될 때까지 41년 동안 북한을 관찰했다. 변함없는 무력 적화 통일 야욕을 갖고 있다”며 “전쟁에서 무기(장비)보다 중요한 것은 의지”라며 “아무리 장비가 많아도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남재준 전 원장은 “(가치관이 달라) 노무현 정부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당초 참모총장을 맡지 않으려고 했으나 후배들을 위해 그 자리에 갈 수밖에 없었다”며 이라크 파병, 군 정신교육 폐지 거부, 군 인사권 개입 차단 등을 두고 당시 청와대와 충돌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남 전 원장은 국정원장으로 취임한 후 2013년 6월 이른바 ‘NLL 대화록(노무현-김정일 회담(2007년 10월, 평양)’을 공개했다. 앞서 노무현 정부에서는 ‘남북 군사 충돌 방지’라는 명분으로 NLL 일대를 ‘평화수역(공동어로구역)’으로 설정하려고 시도했다.


남재준 전 원장은 “평화수역은 ‘NLL을 포기하겠다’는 뜻”이라며 “이에 대한 실체를 알리고자 국정원장으로서 대화록을 공개한 것”이라고 밝혔다.


2017년 20대 대선에 출마한 배경에 대해 남 전 원장은 “당선이 목적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과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리고자 출마했었다”며 “후회하지 않는다. 문 후보가 당선되면 정치 보복을 당하리라 예상도 했다”고 했다.


남재준 전 원장은 좌파 세력이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를 두고 자신이 수감됐던 ‘구치소’를 예로 들며 비판했다. 보편적 복지는 곧 하향 평준화를 의미하고 결국 자유는 사라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남 전 원장은 “6‧25전쟁, 베트남전 등에 참전해 산화한 젊은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의 주인은 나라 위해 피 흘린 사람들이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생명과 맞바꿨다.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국민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주인”이라고 했다.


이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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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남재준 전 국정원장의 강연 원고 전문(全文)이다.


우리의 역사인식과 대한민국의 미래(2024년 4월 29일)


나는 41년간의 군 생활, 특히 합참 작전본부장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근무를 통하여 북괴의 적화통일 기도와 유사시 한반도에서 싸울 적과 아군의 능력과 장단점을 비교적 정확히 인식하고 있던 중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근무 시 효선이·미선이 어린 두 소녀의 비극적 사건을 통하여 이 땅의 좌파들의 실체를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초기 육군참모총장 내정 연락을 받고는 이를 거절 하였지만 몇몇 후배들이 “‘조국을 위하여 죽어야 할 때와 장소에서, 죽어갈 수 없다면 결코 군인이 아니다’라고 평소 입버릇처럼 가르치던 선배님이 정작 정부와 군의 충돌이 불가피해 보이자 혼자 살자고 도망치는데 이것이 원래 선배님의 본모습이었습니까?”하는 협박에 밤새워 고민하다가 총장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참모총장직 2년은 적과 싸운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정부와 싸우느라 참모총장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아쉬움이 짙게 남아있지만 그러나 그 당시 청와대 내의 좌파 세력들에 의하여 결정된 이라크 불 파병 결정을 노무현 대통령을 설득하여 파병토록 번복함으로써 한미동맹의 파탄을 막았던 것과 그들의 군 인사 개입을 철저히 차단하는 한편 군의 대적관 교육을 대폭 강화하여 군의 좌경화를 막아낸 것은 그나마 조그만 위안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이 어디 있느냐”는 공언과 더불어 대령 때부터 18년간의 내 과거를 샅샅이 파헤치는 동시에 남 재준 쿠테타 음모설, 육군 장군 진급 인사 비리설 등 온갖 혐의를 다 뒤집어 씌우며 수사에 광분하였음에도 아무런 혐의를 찾지 못하고 내가 전역하게 되자 그들은 ‘쿠데타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군인 놈’의 전역을 소주 파티로 경축하였습니다. 


그 후 나는 약 10년 가까운 세월을 대학 교수로 재직 하다가 국정원장에 취임하여서는 이미 상당하게 좌경화가 진행된 우리나라의 현실에 전율하면서, 서해 5도서의 영토와 국민과 영해를 북에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포기한 ‘남북대화록’을 공개하였고, 이어서 통진당의 실체를 밝혀내 이석기를 구속하고, 통진당의 해산을 추진하다가 국정원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2017년 대선에 임하여서는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만일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결코 나라를 되돌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며칠 밤을 새워 고민하다가, 40여 년을 공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마지막 조국에 대한 충성은 조국의 현실을 국민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다닌다면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될 것이 뻔함으로 선거법과 무관하게 전 국민에게 이를 알리기 위하여 아내의 동의하에 내 전 재산 7억의 반을 내고 대통령 후보로 입후보하였던 것이며 이후 선거운동 전 기간 오직 “문제인 공약대로 되면 대한민국은 망한다”라고 외치고 다녔고, 그 결과 나는 대한민국 적폐 제1호가 되어 4년 6개월의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여러분에게 우리나라 제일의 명문대학이 어느 대학이냐 하고 묻는다면 서울대생들이거나 졸업생들인 여러분들은 당연히 우리 서울대학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제일 명문대학은 건국 이후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과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등 다섯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서울구치소대학입니다. 내가 이 대학에 재학 중일 때의 동창들은 부총리를 비롯한 행정부 각료들과 대통령실 수석 비서들 검사들 국회의원 그리고 대법원장과 판사들을 비롯한 입법, 사법, 행정부와 국정원과 군 장교 등 200여 명의 고위직들이었으며, 이들의 공통적인 죄목은 감히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반시대적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막상 구치소에 들어가 보니 그곳은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무상교육, 무상 치료에 세금도 안 받는, 오직 한 가지 ‘자유’가 없을 뿐인, 문자 그대로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보편적 복지가 시행되는 인민들의 지상낙원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세상 어느 나라의 어느 좌파 집단이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이곳 이상의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수 는 없을 것인데 그곳의 복지는 현실적으로 극단적 하향 평균화가 이루어진 보편적 복지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구치소에 있을 때 평양을 다녀온 모 정당의 정치인이 평양은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는 인민들의 지상낙원이라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이곳을 잘 모르고 한소리로 그렇게 목메어 평양을 그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곳보다는 우리의 구치소가 훨씬 더 좋은 인민들의 지상 낙원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북한처럼 자기가 번 돈을 감춰놓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고 평양처럼 수시로 정전이 되어 엘리베이터가 멈춰서는 불편할 일도 없으며 불평하거나 김정은 욕했다고 처형당할 위험도 없습니다.



옛날 학교에 다닐 때 역사를 공부하면서 당시의 많은 선비들이 귀양살이하는 동안 쓰신 책 이름들을 외우면서, 평시에는 무엇하시다가 꼭 귀향을 가서야 책을 쓰셨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었는데 나 자신 구치소 있다 보니 하릴없이 80이 넘으신 내 누님을 위로하기 위해서 쓴 편지가 책이 한 권 되어 <옥중에서 쓴 군인 남재준이 걸어온 길>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출옥하는 날, 그 안에서라면 4시간 정도면 쓸 수 있는 분량을 못 써서 가지고 나왔었는데 집에서는 아무리 쓰려고 하여도 써지지 않았습니다. 한 달을 컴퓨터 앞에 앉아 씨름하다가 한 줄도 나아가지 않아 답답해진 나는 나도 모르게 한 달만 더 있다가 나왔으면 좋았을 걸 하고 혼자 말을 한 것을, 하필 아내가 옆에 있다가 들어서 이를 무마하느라 싹싹 빌다시피했습니다.


내가 구치소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소위 이 나라의 좌파들이 부르짖는 완벽하게 보편적 복지가 완성된 곳, 그러나 자유가 결여된 곳, 극단적 집단의 패거리들이 힘으로 그들과 다른 개인의 사상을 말살시키고자 하는 곳, 그곳이 바로 다름 아닌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임을 여러분들에게 확실히 일깨워 주고 싶어서입니다.


일반적으로 적폐란 누적되어 쌓인 잘못된 폐단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가장 긴 세월 누적되어 쌓이고 쌓여 곪을 대로 곪아 터진 폐단이야말로 북의 붉은 사상에 동조되어 우리 대한민국의 건국 자체를 부정, 북은 인민민주주의 공화국 건국이고 남은 이승만 괴뢰정부의 수립에 불과하며 그나마 이승만 정부는 친일파들에 의한 미제 식민지라는 인식 기반하에 6·25는 북침이고 이승만 독재 박정희 군부 독재, 전두환 노태우 정부는 군사정권으로서 이 기간을 빼고 나면 그나마 국민이 살만했던 시간은 오직 김대중 노무현 문제인 정권 15년뿐이라며 이 나라의 주인행세를 하는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과 자유민주의 정체성을 부정하여 자유대한을 지도상에서 지우고자 하는 적폐 중의 진성 적폐들입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시절, 헌법전문의 자유 조항을 삭제하기 위한 개헌논의가 있다는 신문 보도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자유”가 모자란 민주주의는 바로 북에 있는 인민민주주의와 같은 것으로 이는 “독재”의 다른 이름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헌법전문의 자유 민주적기본질서라는 문장에서 자유 두 글자를 삭제하는 순간 여러분들의 대한민국은 대한 구치소 민국으로 간판을 바꾸어 달게 될 것이며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구치소의 수감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오늘 누리고 있는 이 “자유”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6·25전쟁 중 여러분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의 군인‧경찰 109만여 명 및 미군 178만여 명을 비롯한 UN군 장병들 모두 386만9816명이 적에 맞서 싸웠으며 이중 국군 13만7899명, 미군 3만6574명을 포함 20만5447명의 젊은이 들이 숨져갔고 부상 82만여 명 과 실종과 포로 10여만 등 100만 명에 가까운 인명이 피의 희생을 감수하였고 휴전 이후에도 DMZ에서 GOP에서 해‧강안에서 하늘에서 월남 땅에서 1만여 명의 젊은이 들이 피 흘려 쓰러지며 여러분들의 자유를 지켜 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간혹 어떤 넋 나간 사람들은 그간 수없이 적의 위협을 이야기하였지만, 전쟁은 일어나지 않지 않았느냐 하는 소리를 합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민족애에 입각한 관대함의 결과가 아니라 바로 이 땅의 젊은이 들이 피를 흘리며 적들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김일성은 살아생전에 두 번 남침을 심각하게 고려하다가 포기한 것을 말년에 후회한 바 있는데 당시 남침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월남전 참전으로 인한 한국군 간부들의 월등한 전쟁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비상식적으로 민주화하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이상한 논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인민민주주의의 세 종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헌법에서 자유라는 문구를 삭제하려 하였던 것으로 보아 그들이 지향하는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유대한의 헌법에 반하는 반헌법적 민주화 투쟁을 한 것이 될 것이고, 더 나아가 만일 이들이 인민민주주의 또는 민중에 바탕을 둔 민중민주주의운동을 한 것이라면 이들은 바로 자유대한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반역자들이지 결코 이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유공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이 나라의 주인은 저들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들처럼 자유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자유를 생명처럼 소중히 생각하고 국민으로서의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며 소박한 삶을 꾸려가는 보통의 국민들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살펴볼 때 이것이 과연 한 나라인가 하는 짙은 회의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시듯 국가의 구성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입니다.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①건전한 가족 집단의 기초 위에 ②한 나라라고 하는 공동체 의식 속에 하나로 발현된 사상과 관습과 전통과 문화 즉 역사 속에서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여야 하며 ③모두가 공감하고 승복할 수 있는 상식과 공통 선에 기초한 건전한 법적 체계 가 있어 이에 따라 각 개인과 집단들이 권리와 의무, 권한과 책임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상호 보완적으로 서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한목 표로 노력을 통합하여 나갈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생존과 번영을 유지할 수 있는 건전한 나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특히 각 개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기능인 법의 기본개념은 모두가 공감하는 상식선에서의 공정하고 동일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국가의 기반이 되는 가족 개념마저 심하게 흔들리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좌파들에 의한 학생인권조례 탓인지는 몰라도 어린 시절부터 권리와 권한은 가르치는데 의무와 책임은 가르치지 않는 이상한 교육을 해놓아 기존의 모든 질서와 가치가 무시되고, 오직 나만 있을 뿐 가족도 사회도 나라도 없는 이기적인 인간을 양산하여 부모 자식 들이 서로를 죽이는 일들이 드물지 않게 되었고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마저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이러다 가는 가족이 해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결과 나라마저도 동질적인 집단의식과 집단 목표 그리고 동일한 가치 기준이 존재하여야 하나 우리의 오늘은 서로 충돌하는 두 집단 간의 혼거에 불과한 형태로 변질된 지 오래입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오월동주라는 말은 불구대천지원수인 오나라 월나라 사람들조차도 배가 풍랑을 만나 위험에 처했을 때 힘을 합하여 함께 위험에 대처하고 활로를 찾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마치 우리 속에 상반되는 이질적인 집단들이 존재하는 것 같아서, 북한의 비인도적 만행이나 군사적 도발이 있을 때마다, 러 등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이 규탄하는 데도 이를 규탄하기보다는 번번이 우리가 그러한 빌미를 제공하였으므로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이라거나, 북의 소행이 아니라 우리의 자작극이라는 주장을 내 새우며, 우리의 정당한 대처조차도 비난하고 있어 과연 “적의 적은 동지”라는 냉엄한 국제 정치의 논리가 진실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의 적은 누구이고 동지는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데 생각이 머물 때면 밤잠이 오지 않습니다.


법치 또한 실종된 지 오래입니다. 법의 기본은 동일한 가치 기준에 의한 같은 잣대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법의 잣대가 나를 잴 때와 상대를 잴 때 자의 눈금의 크기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바늘이 +와-의 반대 방향을 오갑니다. 바꾸어 말하면 네가 하면 죄악인데 똑같은 행위를 내가 하는 것은 선이 됩니다.


여러분 그러한 우리나라에서 지금 과연 국민이 공감하는 정의가 있습니까. 정의는 죽은 지 이미 오래이며, 있는 것은 정의냐 불의냐, 선이나 악이냐가 아니고 오직 내 편이냐 아니냐 하는 것만이 있을 뿐이며 이것이 진실입니다. 이것이 나라입니까? 아니면 한 지역에 오월동주만도 못한 두 적대적 집단이 섞여 사는 것입니까. 과연 이런 나라에 미래가 있겠습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좌파들에 의한 용어의 왜곡과 역사의 왜곡으로 인하여 잘못 형성된 가치관에 있습니다. 이 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 사례만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대표적인 용어의 왜곡입니다.


많은 사람이 아주 당연한 듯 진보는 미래 지향적인 좋은 것, 보수는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현실에 안주하여 꼼짝달싹도 하지 않는 수구 꼴통이라고 이야기하고들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여러분 사람의 몸속에서도 하루에 330억 개의 세포 들이 나고 죽습니다. 이와 같이 생명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은 그것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아니면 사회 환경이든 사람으로 이루어진 나라든 모든 것이 변화되지 않고는 도태되거나 사멸될 뿐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진보와 보수 모두 변화를 지향하고 있으며 더욱이 보수와 수구는 전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다른 용어입니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변화를 추구하느냐 아니면 변화를 거부하느냐가 아니라 변화하면서 급진적 혁명에 의한 변화냐 아니면 점진적 개혁에 의한 변화냐 하는 변화 방법상의 차이일 뿐입니다.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주의자들은 과거를 전면 부인하며 급격한 혁명을 추구하는 데 반하여 보수주의자들은 과거 선대들이 쌓아놓은 토대 위에서 점진적 개혁을 추구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일찍이 인류의 역사에서 문명과 문화를 발전 시켜온 대부분은 개혁을 통한 문명의 진화이었지 혁명이 아니었다는 역사적 진실입니다.


그리고 수구란 보수와는 전혀 상관없이 변화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굳이 말한다면, 이미 지난 구 소련 70년 세월을 통하여 1억 명 이상의 사람을 죽여 가며 완전한 실패로 끝난 공산주의 사상을, 그리고 우리의 드라마를 보았다고 공개 처형하는 북의 현실을 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여전히 공산주의 사상의 변종인 주체사상이나 체제를 칭송하며 지상낙원을 외치는 미친 자들이야말로 수구 꼴통 중의 꼴통입니다. 수구라는 단어는 지킬 수 옛 구 즉 옛것을 지킨다는 의미인데 오늘 집에 돌아가시면서 곰곰이 따져 보십시오. 도대체 누가 어느 편이 수구이고 꼴통인지를!


다음은 현대사에서 왜곡된 부분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간첩 신영복을 제일 존경한다는 문재인에 의해서 왜곡된 김원봉의 진실입니다.


명색이 군의 통수권자라는 자가 지난 2019년 이 나라를 지키다 순국하신 선열들을 기리를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되면서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라고 하면서,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이 불굴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라고 말함으로써 듣기에는 마치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국군 창설과 한미동맹의 주역인 듯 들릴 수도 있는 언사를 당당하게 입 밖에 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실상으로써 정작 김원봉은 귀국 후 월북하여 북의 내각 검열상이 되어 6‧25전쟁 당시 군사위원회 평안북도 전권 대표로서 북괴군의 군수 지원을 담당하였고 그 공로로 노력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광복군이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이란 광복군 지대와 미 OSS와의 연합 작전으로 이는 1945년 4월 이후의 일인데, 이때는 김원봉 등이 이끌던 조선의용대는 이 훨씬 전인 1941년 3월  해채 되어 대원 300여 명 중 250여 명은 광복군에서 이탈, 중국공산당의 화북 팔로군, 제1로군에 편입되었다가 이들을 주축으로, 조선인으로 구성된 165, 166, 167의 3개 사단을 편성하였다가 후에 북괴 제5, 6, 7사단으로 전환하였고 그중 일부는 북괴군 제1, 4사단으로 편성됨으로써 조선인민군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광복군에 잔류하였던 수십 명만이 광복 후 월남하여 국군 창설 시 -미군정청이 사상을 불문함에 따라- 우리 군에 입대하여 잠복하고 있다가 1948년 여수지역에 주둔하던 국군 제4연대 및 14연대와 대구에 주둔 중인 국군 제6연대를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켜 많은 양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등 국군의 뿌리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국군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었습니다.


그리고 한미동맹은 휴전 직전 거제도 반공 포로를 석방하는 등 미국이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도록 이끌어간 이승만 대통령의 탁월한 외교적 역량의 산물로서 김원봉이나 조선의용대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음에도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국군이란 나라의 군대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국군은 우리의 대한민국 국군이 아니라 북의 인민군이며 그러므로 이 사람의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조선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일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해방군과 점령군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치소에서 나는 이 나라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이 “소련군은 해방군이고 미국은 점령군”이라고 발언했다는 기사를 보고 아연했는데 왜냐하면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탈린은 전쟁 중에도 전후 세계에서 ‘일국 사회주의를 통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한 단계로써 유럽에서는 동구권의 공산화와 극동에서는 한반도의 공산화를 구상하여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를 간파한 처칠은 작전상 어려움이 일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발칸반도에 상륙하여 불가리아-루마니아-헝가리-폴란드-베를린 방향으로 진격, 소련의 동구권 진입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처칠의 원대한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작전 실시의 어려움을 들어 이를 일축하고는 조기의 군사적 승리에 집착하여 베를린을 향한 가장 빠른 코스(수직 단거리 접근로)를 따라 진격하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연합군은 노르망디에 상륙, 베를린으로 직진하였습니다. 그 사이 소련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비스툴라 강 대안에서 전진을 멈춘 후 폴란드 애국지사들의 봉기를 유도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방치함으로써 나치에 의하여 집단 학살당하도록 하는 한편, 일부 부대의 공격 방향을 좌선회하여 동구권을 손쉽게 석권하였습니다. 그 후 미군이 발찌 전투를 마치고 라인강을 도하, 베를린으로 진격하자 서둘러 공격을 재개하여 베를린의 동부를 점령하였고 이에 히틀러가 자살함으로써 유럽 전선은 1945년 5월 4일 종전을 맞이한 것이며 그 결과 동구권이 출현하였고 동서 냉전의 역사가 전개된 것입니다. 


이때 태평양 전역에서는 미국이 1㎢당 1200여 명의 전‧사상자를 내면서 유황도를 점령한 데 이어 필리핀을 거쳐 불과 1km 전진에 약 500명의 전‧사상자, 특히 ‘슈거 로프(Sugar Loaf)’라고 명명된 조그만 고지에서는 1야드(90cm) 전진에 1,000명의 손실을 당하는 격렬한 전투를 치르며 오키나와에서 전투 중이었습니다. 그때까지 태평양 전쟁 중 미국이 입은 인명 손실은 전‧사상자 17만여 명에 이르렀고 이에 미국의 루스벨트는 계속 소련의 참전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바실렙프스키 휘하에 치스챠코프의 25군 등 3개 군을 만주 일대에 이동시켜 놓고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루스벨트 사망 후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8월 9일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어 누구나의 눈으로도 일본의 패망이 확실해지자 서둘러 일‧소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8월 8일 대일 선전 포고와 동시 8월 11일 곧바로 한반도의 웅기, 나진 등을 공격, 8월 24일 에는 평양을 점령하였고 계속 남하하여 9월 3일에는 파주까지 진출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당황한 미국은 소련군의 계속 남하를 방지할 궁여지책으로 미 합참의 본스틸 대령을 시켜 38선을 경계로 하고 그 이북의 일본군은 소련이 무장 해제하고, 그 이남은 미군이 무장 해제하자는 안을 마련하여 소련에 이를 긴급 제의하였고 스탈린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데 만족하여 이 제의를 수락하였던 것으로 한반도에서 소련의 역할은 전무하며 만주에서 관동군과의 교전 시 입은 3만 3천여 명의 손실로 미군 17만여 명이 죽어가며 얻은 피의 승리를 한반도 북쪽에서 가로챘을 뿐인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이 이런데도 그들의 선전대로 소련군을 해방군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공산주의 군대의 전술 용어를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자 그 수단”이며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공산주의 군대는 소련이라는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소련공산당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써 소련공산당의 군대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군사적 결과를 정치적 용어로 표현하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점령을 ‘해방’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소련군이 점령함으로써 봉건 제국주의 또는 부르주아지(bourgeoisie:유산시민 즉 자본가 계급) 들의 압제에서 인민대중을 해방해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프롤레타리아 공산 독재 정권을 세웠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동구권 국가들을 점령, 공산화하여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든 것을 해방이라고 역사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방군을 자처하는 소련군은 범죄자 대대를 선두로 하여 북한에 진주한 후, 부녀자 강간과 살해를 일삼았을 뿐 아니라 병사들은 북한 사람들의 재산을 약탈하였고 소련 정부는 이에 더하여 해방자임을 내세워 소련의 전후 복구를 위해 북한 내 모든 공장의 기계들과 심지어는 철로까지를 뜯어 갔습니다. 또 점령 지역 내의 민족주의자 내지 자유 민주주의자들을 일망타진할 목적으로 조만식 선생을 내세워 민족주의자나 우익 인사들을 모이게 한 후 단번에 숙청함으로 손쉽게 김일성(金日成)을 내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1945년 10월 평양의 환영대회에 모였던 시민들은 그들이 고대하던 60대의 머리 희끗희끗한 백마 탄 김일성 장군은 볼 수 없었고 단지 소련이 양성한 33세의 소련군 소좌로 진급시킨 김일성(金日成, 본명 김성주‧金聖柱)를 볼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진실에도 불구하고 만약 소련이 북한을 거의 무혈점령하여 자원을 약탈하면서 공산 정권을 수립한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공산주의자의 역사적 관점에서라면 소련군을 해방군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소련이 자칭 해방자라 선전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누구를, 누구로부터, 어떻게 해방시켰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새겨본다면 그 해방의 실체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해 방자가 해방한 그 나라는 45년 당시 우리보다 훨씬 더 자라는 수준이었음에도 지금 이 시대 지구상에서 최빈국이 되었고 점령군에게 점령당한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으로부터 세계 10위권의 국가로 성장한 결과를 가지고 보았을 때, 해방이 더 좋은 것인지 아니면 점령당한 것이 더 좋은 것인지 헷갈리지 않을는지요.


셋째로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들에 의한 미제 식민지, 북은 독립 운동 지사들이 주축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대한민국 초대의정부 주요 삼부 요인들은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시영, 국회의장 신익희, 대법원장 김병로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 이범석, 무임소장관 이청천 장군 등 22명 중 14명이 독립운동 지사지만, 북은 본명 김성주인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는 일본 헌병보조원, 김일성의 외삼촌인 인민 위 상임위장 강 양욱은 일본 총독부 산하의 도의원, 부수상 홍명희는 소위 일본의 대동아전쟁지원을 위한 임전대책위원, 노동당 서열 2위인 이승엽은 일본군 식량을 지원하기 위하여 조선 백성들로부터 강제로 식량을 공출하기 위하여 설립된 식량 영단 이사 등으로 그들의 소위 정부 및 군 주요 직위 중 17명이 친일 부역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우리 사회에서 걸핏하면 친일 프레임을 씌우는 이상한 사람들이 득세하고 있는데 이들은 미사일과 드론으로 싸우는 이 시대에 죽창 들고 애국을 외치는 것도 모자라 시대 변화의 흐름도 외면한 채 현재를 과거에 꼭꼭 매어놓아 미래를 향하여 한 발짝도 꼼짝 못 하도록 함으로써 나라의 앞날을 그르치고 있습니다. 과거 일본은 개화 초기 사쓰마번이 영국함대와 싸워 처절히 패하자 바로 영국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그들을 따라잡으려 노력한 결과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만큼 나라의 현대화에 성공하였습니다. 이렇듯 싸워서 졌다면 그들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배워서 따라잡아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입니다. 과거 일본의 막부가 쇄국을 버리고 개국하였을 때 우리들은 쇄국을 고집한 수구적 자세가 결국 망국을 초래한 것인데 이를 반복하려는 이 시대 우리의 수구 꼴통 좌파들의 시대착오적인 목소리가 우리를 주도한다면 또다시 망국의 전철을 밟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일본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일본을 이롭게 하고 우리를 해롭게 한 것을 친일이라 한다면 북의 김씨 일가와 이와 보조를 함께하는 이 땅의 좌파들이야말로 친일 중의 골수 친일파들입니다. 왜냐하면 1945년 일본의 항복 후 서양의 경제학자들은 일본이 다시 정상적인 국가의 국력을 갖추기 위하여는  최소 50년이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의 불법 기습남침으로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자 우리는 전 국토의 80%가 잿더미로 화하고 100만여 명의 인명 손실과 300만 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이 태평양을 횡단하여 군수물자를 수송하는데 한 달 이상이 소요되자 아예 군수물자 생산시설을 일본에 옮겨 건설함으로써 일본은 불일 듯 경제를 재건하고 선진 기술을 배우며, 기술자를 대량으로 양성하여 순식간에 잿더미에서 털고 일어나 선진 경제 대국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나쁜 친일파들이 있으면 이야기해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군을 갖지 못 하게 되어있던 일본의 족쇄를 시원히 풀어주고 거리낌 없이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에 군사 대국화의 길로 힘껏 달려 나갈 수 있도록 한 일등 공신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반미 반일을 부르짖는 사람들일수록 하나같이 그들의 자식은 미국이나 일본으로 보내지 절대 북한이나 중공으로 보내지 않는다는 이해 안 되는 이상한 원칙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내 나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셋째 6‧25는 북침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후 서둘러 일‧소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대일 선전 포고와 함께 태평양 전쟁에 뛰어든 스탈린은 관동군 무장 해제 후 제2차 세계대전 참전국이었던 중국 장제스[蔣介石]에게 만주와 관동군으로부터 회수한 무기들을 인계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중국을 남북으로 양분, 마오쩌둥[毛澤東]을 소련의 영향력 아래 묶어두려는 목적으로 “양쯔강을 넘지 않는다.”라는 조건을 붙여 만주와 200만 명을 무장시킬 수 있는 관동군의 무기 모두를 마오쩌둥에게 인계하였습니다. 스탈린의 구상은 양쯔강 이북은 마오쩌둥이, 양쯔강 이남은 장제스가 장악하도록 함으로써 중국을 분단시켜 강력한 중국의 탄생을 저지하고 마오쩌둥을 계속 소련의 영향력 아래 두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오쩌둥은 장제스를 몰아내자, 이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양쯔강을 넘어 중국 전토를 석권하였고 이어서 타이완까지도 점령하려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마오쩌둥의 영향력이 비대해질 것을 우려한 스탈린은 김일성의 적화 통일 야욕을 활용하여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켜 미국을 끌어들이고, 중공과 싸우게 하려는 속셈에서 마오쩌둥의 참전 약속을 받아내는 조건으로 김일성의 거듭되던 남침 요청을 승인하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미국과 중공의 국력을 소진하는 동시에 유럽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중공이 소련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스탈린은 UN 주재 소련 대사 말리크의 안보리 불참을 지시하여 미국 주도하에 UN군을 창설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미군이 참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보장하고자 북괴군의 한강 이남 진출을 통제하기 위하여 북괴군의 유류 및 탄약을 제한 보급함으로써 탄약과 유류가 고갈된 북괴군은 한강 선에서 사흘간 정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흐루쇼프의 비밀 문건 해제 시 스탈린과 체코의 고트발트 대통령 간 전문 내용에 의하면 “적(미군과 중공군)들이 한반도에서 국력을 소진할 수 있도록 마음껏 싸우게 하기 위하여 UN사를 창설하고 미군의 한반도 개입 시간을 보장하고자 소련 대사 말리크의 UN안보리 불참을 지시”하는 한편, 김일성에게 한강까지만 진격할 수 있는 탱크와 장갑차의 연료를 주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김일성 회고록에도 김일성이 6‧25를 회고하면서 “탄약과 연료 재보급을 위하여 한강에서 지체한 것을 통한으로 여겨 4대 군사 노선을 추진하게 되었다”라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의 사실임이 입증되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스탈린은 미군과 중공군이 한반도에서 서로 발을 빼지 못하도록 하여 장기간 국력을 소진하며 싸우게 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김일성의 남침 요청을 활용하여 실행한 것인데 이 전쟁이 바로 6‧25전쟁입니다. 따라서 전쟁의 속도를 늦추어 가급적 장기전이 되도록 하려는 스탈린의 각본에 따라 1951년 초 소련 외무 장관이 휴전협정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휴전 회담은 전쟁 중 중공군의 전력이 약화되었을 때마다, 미군의 진격과 공세를 제한하고 중공군이 전력을 보충하여 다시 전투할 수 있도록 하는 제어 장치로 활용되어, 충분히 그 전략적 효용을 입증하였습니다. 그 후 스탈린이 1953년 3월 사망한 다음에야 비로소 회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7월 27일 휴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상에서 말씀드렸듯 스탈린의 동북아 전략 과 루스벨트의 스탈린에 대한 잘못된 판단 그리고 김일성의 적화 야욕이 6‧25의 원인이며 의문의 여지 없이 소련이 작성한 남침 작전계획이 공개된 바와 같이 남침이지 북침이 아닙니다.


넷째 4.19와 5.16은 시간 관계상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1960년 4월 19일 나는 배재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듯 이승만 대통령은 배제 선배이시고 우리 배재 출신들은 이를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당시 나는 지금 경복궁 앞의 중학동에 살고 있었는데 선생님들은 우리들이 데모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도록 담을 둘러싸고 지키고 계셨고 일부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눈초리를 피하여 담을 넘어 데모대에 합류하기도 하였습니다. 학교가 휴학하게 되어 집으로 가던 나는 광화문네거리에서 반공청년단 건물이 불타오르고 엎어진 소방차가 불붙는 길을 건너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는데 그 당시 학생들이 부르짖던 구호는 3‧15부정선거 다시 하라, 이승만 대통령 하야하라였지 이승만 독재 물러가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3‧15 정·부통령 선거 에서 대통령은 야당의 조병옥 박사가 급서한 상태여서 이승만 대통령은 이미 확정된 것이었고 이기붕 부통령 선출을 위한 선거였습니다. 여기서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은 그 당시의 부정선거는 후보들이 자신의 재산을 헐어 후보 개인 돈으로 고무신 사서 돌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선거는 아예 국민의 세금을 제 돈 처 럼 뿌려가면서 금권선거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더욱더 부패한 부정선거가 아닌지?, 여러분 영어로 인민당을 Populist Party라고 하는데 populism의 그 끝이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 집으로 가시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다음 해인 61년 5월 16일은 2학년의 중간고사 시험이 시작되는 날 이었습니다. 시험공부라고 책하나 보지 않다가 막상 시험 날짜가 되자 은근히 걱정되었는데 어머님께서 오늘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셔서 처음에는 놀리시는 줄 알았는데 라디오를 듣고는 군사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무척 신나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시험 걱정 끝이니 말입니다.


5‧16 군사혁명은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한 혁명사례로서 우리 역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결해 주고 무기력했던 이 땅의 백성들에게 세계로, 미래로 마음껏 떨쳐 나가도록 활력을 불러일으킴으로써 6‧25 전쟁 후인 55년도 1인당 GDP 65달러, 국가 GDP는 13.6억 달러이었던 것이 2014년에는 1인당 GDP는 2만8336달러로 435배, 국가 GDP는 1조 4495억 달러로 1065배 증가함으로써 그 짧은 기간에 아무런 자원도 없는 그 가난했던 나라를 그렇게 발전시켜 인류 역사에 다시 없을 기념비를 새겼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국민을 먹여 살린 박정희 17년 독재는 그렇게 이를 가는 사람들이 왜 전쟁을 일으켜 전 국토를 회진하고 수백만의 목숨을 앗은 것도 부족하여 300만 명 이상을 굶겨 죽이고 그리고 고모부와 이복형을 포함하여 남한의 드라마를 본다고 철없는 고등학생까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처형해 버리는 70년에 걸친 3대 세습 독재는 왜 그렇게 비난하기는커녕 두둔하며 감싸고 나서는지, 800만 이상을 죽인 모택동은 왜 존경까지 하는지? 서글픈 미친 세월의 한 단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잘못된 사상으로 그 진실을 반드시 들어내어야 합니다.


다섯째. 전시작전통제권에 대하여


한미 상호 방위조약에는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자동 개입 조항이 없이 미 의회의 동의를 거쳐야 전쟁에 개입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①이러한 불안전한 조건을 해결하고 신속히 미군의 자동 개입을 보장하는 외에 ②미국의 막대한 정보자산을 최대로 활용하여 전쟁 억제와 기습을 방지하고 ③만약 전쟁이 발발한다면 초전에 미국의 전략자산을 최대로 투입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전쟁을 조기에 종결하기 위하여 연합사를 창설한 것이며 이는 박정희 대통령의 전쟁 억지 및 전쟁 발발 시 피해 최소화와 조기 승리를 동시에 보장하고자 하는 신의 한 수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서 전작권을 미국에 넘겨준 것은 국가적 자존심에 관한 문제라 하여 전작권을 환수토록 결정한 후속 작업이 현재 진행 중입니다.


그렇지만 미국이 전작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시 작전권은 미국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미 양국, 이 공동으로 행사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리면 국가 통수 기구인 한미 안보 회의에서 한미 양국의 대통령들에 의하여 협의되고 동의된 전쟁 수행 및 정책 관련 지령을 하달하면 양국 장관들이 전략 지침에 따라 한미 양국의 합참의장이 전략 지시를 연합사령관에게 하달하고, 작전 수행은 연합사령관 지휘 아래 해‧공군은 미군 장군이, 지상군은 한국군 장군이 사령관이 되어 작전을 시행합니다. 결론적으로, 한반도 전쟁 시 작전 지휘는 한미 양국의 국가 통수 기구 즉 양국 대통령의 합의로 수행되는, ‘미국 단독’이 아닌 ‘한미 양국의 공동 지휘’에 의하여 시행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존망이 걸린 국가 방위 문제는 국익에 기초하여 판단하여야지 이념적 사고에 경도된 감정으로 평가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인데 미군이 사령관이라 하여 한국인의 자존심이 상하고 한국군 또한 미군에 종속된 미제 식민지 군대라고 한다면 유럽의 방위를 위하여 구성된 군사 동맹체인 NATO는 사령관이 미국군 장군이므로 이에 속한 모든 나라 즉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의 서구 각국은 미국 식민지며 이들 군대는 미제 식민지의 군대인지? 그리고 전시 증원되는 미 지상군 약 OO여만 명은 한국군 장군인 내 지휘 하에 전투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미 육군은 한국의 식민지 군대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현대전에 있어서 정보 획득과 제공권 및 제해권의 장악은 전승의 필수 요건인데 현재 우리의 국력과 정치적‧경제적 여건을 고려할 때 과연 독자적으로 군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정보 자산과 공중 및 해상 전력을 확보할 수 있겠는지 현실적으로 판단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감정의 세계가 아니라 극히 냉엄한 현실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지구촌의 급변하는 안보 정세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하마스, 대만과 중동의 문제는 결코 먼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이 급속도로 미국과 군사적 연대를 강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도 미일 연대에 일정 부분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며, 북이 이미 러시아의 전쟁을 지원하고 러시아가 북에 군사적 신기술을 이전하여 우리 안보를 심각히 위협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여 우리도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물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일어날지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하고, 전작권 전환은 남북 통일시까지 무기 연기 하여야 합니다.


현재의 세계 안보 정세로 보아 이제는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식의 어중간한 양다리 걸치기가 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따라서 안보에 있어서 여지 것까지의 수구적 자세가 아닌 동맹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진보적 자세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시대적 상황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가 끝나가고 새로운 세계질서가 태동하던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상황과 유사하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체제와 질서가 이에 도전하는 세력들에 의하여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전혀 새로운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과거에 안주하여 이기적인 정책만을 고집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습니다. 


얼마 전 거대 야당을 이끌어 간다는 이재명 대표가 “왜 대만 문제에 간여하느냐 세세 하면 되는 것이지” 하는 것을 TV에서 보았습니다.

나는 왜 우리가 중공에 감사해야 하는 것 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데 그들은 우리가 통일을 목전에 두었을 때 중공군을 대거 투입하여 이 땅의 젊은이들을 무참히 살육하고 단숨에 압록강으로부터 38선까지 아군을 밀어붙여 우리나라를 두 동강이 내주었을 뿐 아니라 사사건건 우리의 적인 북한을 편들고 있습니다. 중공에 감사해야 할 나라는 우리가 아니라 북한 김정은 집단입니다. 그리고 중공이라는 나라의 소위 전랑 외교라고 표현되는 외교적 행태가 비단 근래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지역의 패자가 되어 주변국들을 복속시키는 천자의 나라와 속국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들의 외교적 행태는 주변국을 이간으로 분열시키고 약한 쪽을 부추겨 싸우게 한 후 쌍방이 모두가 약해지면 점령하여 복속시키는 패턴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의 현대적 실천 전략이 공자학원을 앞세워 시작된 초한전으로 표현되는 중국의 무제한 전쟁이지만 우리는 이에 완전 무방비 상태입니다. 이러고서야 우리가, 우리 후손들이 과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 이 땅에서 대를 이어 번창할 수 있을 것인지 밤잠이 오지 않습니다.


만일 한반도가 북한에 의하여 통일된다면 그 즉시 중공은 북한을 짓밟아 한민족은 중공의 소수민족으로 한반도는 그들의 동북 4성으로 전락하여 5000년 세월을 면면히 이어온 우리의 역사는 지구상에서 소멸할 것입니다. 중공은 이러한 구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이 작업에 착수하여 지금은 동북공정을 거의 완성한 단계로 북경 근방의 산해 관까지 구축되어 있던 만리장성이 그들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평양의 동쪽을 돌아 예성강까지 이어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에서는 불행하게도 상황이 조금만 심각해 지기라도 한다면 당장 싸우자는 이야기냐, 불안전한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 상대를 자극해서 국민을 전쟁으로 몰아가자는 것이냐 하고 언성들을 높이는 무리 들이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왜 친일 매국노를 그렇게 증오하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한말 을사오적이라고 불리는 친일 매국노들이야말로 일본제국을 자극하지 않고 전쟁보다는 불안전한 평화를 택함으로써 비록 나라는 망했지만, 백성들을 전쟁의 참화로부터 구한 노련한 정치인들로서 그들의 롤 모델이 아닐 런지요? 여러분 거저 주어진 공짜 평화는 노예의 증서일 뿐입니다.

 

이제 북한은 벼랑 끝까지 가서 더 갈 데가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 5000년 역사에서 민족의 사멸이냐 대조선의 부활이냐를 가름할 가장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시기에 와 있습니다.


현대에서 국가의 질과 수준은 국가 지도자의 질과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며 지도자의 질과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질과 수준에 따라 결정됩니다. 따라서 현대 국가에서는 올바른 국가 지도자의 선출이 국가의 흥망을 좌우합니다. 국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생존과 번영이며 따라서 국가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하며, 그래서 나와 우리가 아니라 미래의 우리 자식과 후손들의 앞날을 그리고 내 나라 안이 아니라 세계를 그려가며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①思無邪 생각하면서 사사로움이나 치우침 간교함이 없어야 함과 ②言行一致입니다. 생각에 오직 개인적 이익을 탐할 뿐이며 이에 더하여 말 따로 행동 따로 의 의지박약한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이거나 말이 행동이 따르지 않는 사기꾼들을 국가 지도자로 뽑아서야 나라의 앞날이 있겠습니다. 공자님도 살아생전 사람을 죽이셨는데 오늘의 검찰총장인 대사구가 되자마자 제일 처음 한 일이 그 시대 최고의 표풀리스트인 소 정묘를 처형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공자님이 오늘 한국에 살아나셔서 검찰총장으로 취임하신다면 과연 누구를 참형에 처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국가 지도자는 자신이 일하는 실무자가 아니라 지천명(知天命), 역사적 시대의 흐름을 보아 도달해야 할 올바른 목표를 선택하여 일을 정하고 지인(知人), 그 일을 할 사람을 뽑아서 자리를 주고는 용인(庸人), 이들에게 권한과 신임과 자원을 보장해 주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기능이란 오늘로부터 내일, 현재로부터 미래에 이르는 가교의 인프라를 필요한 인재와 기술 그리고 자원을 보장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국가 지도자는 머리로는 인류 만년의 역사를 통찰하는 데 더하여 미래로 이끌어갈 철학이 있어야 하며, 가슴으로는 지구를 통째로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닌 우리 자식들과 후손을 위하여, 오늘이 아니라 내일과 먼 내일 즉 미래를 향하여 그리고 이 비좁은 나라 안에서가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경쟁대열에 뛰어들고자 하는 그러한 지도자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여러분 가장 짙은 어둠 뒤에 곧 동트는 새벽이 오듯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지금이 이제 새로운 역사를 위하여 비상할 때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만이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아버님 세대는 피 흘려 나라를 구하셨고 우리 세대는 아버님 세대를 도와 열사의 사막에서 독일의 지하 막장에서 피 같은 땀을 흘리고, 월남의 정글에서 피를 흘려가며 이 나라를 이만큼 가꾸고 지켜 오면서 우리의 소임을 다하고자 노력하였으나, 그러나 이 땅의 젊은이들이 저마다의 능력에 따라 꿈에 도전하고 인내와 노력으로 이를 극복함으로써 마침내 꿈을 이루는 희망찬 세상을 물려주지 못한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이 시대 이 나라의 주인은 바로 여러분들이며, 따라서 우리 세대들의 배턴을 이어받아 앞으로 자랑스럽게 쓰일 우리의 역사를 이끌어갈 책임 또한 여러분들의 어깨에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을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자신과 후손들 그리고 이 땅에서 영원할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위하여 오늘의 이 사악한 악에 물든 거짓의 모래성에 과감히 도전하십시오. 그래서 정의와 진실의 횃불로 이 땅을 환히 밝힘으로써 가슴에 넘치는 자신감과 희망으로 미래에 힘차게 도전할 때 우리는 옛 조선의 영광을 다시 이 땅에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어서십시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앞으로 달려 나가십시오. 여러분들은 할 수 있으며 거기에 영광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입력 : 202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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