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 마련된 '덴바람 마파람' 행사장. 사진=월간조선
평양에 거주하던 향이네 가족. 어느 날 이웃의 공개 처형 장면을 목격한 향이 아버지는 친구에게 북한 정권의 잔인함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며칠 뒤 보위부 관계자가 향이네 집으로 들이닥친다. 이들은 향이 아버지를 끌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향이와 향이 어머니 또한 영문도 모른 채 함경북도 무산으로 강제 이주돼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단칸방에서 살아간다. 결국, 향이와 향이 어머니는 압록강을 넘어 탈북을 결심하는데...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진행 중인 '덴바람 마파람' 행사의 방탈출 게임 속 이야기다. 방 탈출 게임은 방에 갇힌 채 내부 소품과 지시문 속 단서를 추리해 문제를 풀고, 그 방에서 탈출하는 게임을 뜻한다. 이번 행사 참가자는 직접 향이가 되어 약 20개의 문제를 풀고 북한을 탈출해야 한다.
'덴바람 마파람'은 통일부 '북한인권 증진활동 지원사업'의 하나로 개최됐다. 서울시와 북한인권시민연합이 공동으로 주관한다. 이번 행사는 인천(9.21~10.12), 대구(10.15~25), 부산(10.28~11.5)을 거쳐 서울(11.7~19)에서 마무리될 예정이다.
'덴바람 마파람'은 각각 '북쪽에서 부는 바람'과 '남쪽에서 부는 바람'을 뜻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남북이 마음을 모아서 함께 자유와 인권의 바람을 만들자는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11일 오후 찾은 청계광장에는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가 설치돼 있었다. 이 안에서 게임이 진행된다. 내부에서 잠시 기다린 뒤 시간이 되면 게임장으로 입장할 수 있다. 온라인 예약으로 참가할 수 있는 이 게임은 신청 기간이 되자마자 전 타임 매진됐다. 특히 젊은 층으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만난 양경석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는 "인권은 이념에 따라 좌우될 문제가 아닌 인류 보편의 가치"라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북한 인권 실상에 관심을 갖게 될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흥미에만 중점을 둔 행사가 아니냐는 질문에 양 이사는 "북한 인권 실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시민이 대다수"라며 "실상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선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소통의 도구(방탈출 게임)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덴바람 마파람'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북한 가정집으로 재현된 방을 탈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자 역시 이날 게임에 참가했다. 게임 설명을 마친 현장 관계자가 휴대전화 1개를 손에 쥐여준다. 이 휴대전화로 게임 힌트를 볼 수 있고, 필요한 경우 운영 본부와 통신을 주고 받을 수 있다. 제한 시간은 60분이다. 개인 소지품은 모두 물품 보관함에 맡겨 놓고 입장해야 한다.
첫 번째 게임은 향이네 집에서 시작된다. 방탈출 게임을 처음 해본 기자였지만, 초반 문제를 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를 맞추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문이 열린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 나오는 보위부 관계자와 향이 어머니의 목소리는 게임 몰입도를 더욱 높여준다.
문제 난이도는 갈수록 올라간다. 노동 교화소 단계에 도착한 12번째 문제에서 결국 첫 힌트를 봐야 했다. 힌트를 보니 '아, 이 생각을 왜 못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어 볼풀장으로 연출된 압록강을 건넌다. 강을 건너는 동안에도 문제풀이는 계속된다. 등 뒤의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는 북한 군인들의 총소리가 기자를 재촉한다.
우여곡절 끝에 강을 건넜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중국을 거쳐 라오스와 태국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계속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윽고, 마지막 문제를 맞추니 주태국한국대사관의 문이 열렸다. 제한 시간에 딱 맞춰 탈출에 성공했다.
직접 게임에 참가해보니 '덴바람 마파람'은 단순히 흥미에만 초점을 맞춘 행사가 아니었다. 탈북 과정의 스토리텔링이 무척 탄탄했고, 북한 가정집·노동교화소·열차 등 게임 공간 또한 생생하게 재현됐다.
기자와 한 팀을 이뤄 게임에 참가한 유민하씨는 "재미도 재미지만, 탈북 과정을 생생하게 간접체험할 수 있어 게임하는 내내 북한 인권 문제를 곱씹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이 게임에 참여한 409명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한 결과, 북한인권에 대해 '매우 관심 있다' 혹은 '관심 있다'고 답한 비율은 게임 참가 전 36.7%에서 참가 후 85.8%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북한인권 증진활동 지원사업'을 "철 지난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이라며 비판했다.
김상희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1일 "윤석열 정부는 통일부 곳곳에서 '평화통일'을 지우고 있다"면서 "북한 형무소 방탈출 게임과 북한 주민이 구타당하는 연극 등으로 철 지난 반공 교육을 연상케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겨레》 역시 지난달 11일자 <[단독] ‘북한 형무소 방탈출 게임’ 제작에 쓰인 북 인권증진 예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인권 증진활동 지원사업’ 예산 가운데 다수가 북한 인권상황을 희화화하거나 북한 정권의 폭압을 노골적으로 부각하는 반공 사업에 쓰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한편, 정상훈 서울시 행정국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자유를 향한 염원으로 한국으로 온 북한이탈주민의 입장을 공감하길 바란다"면서 "북한이탈주민을 '나와 상관없는 존재'가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라는 존재로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글=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