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이 20년 전 구출해 온 납북어부 김병도씨 별세

1973년 납북, 2003년 귀환....국내외에서 납북자 실태 알리기 위해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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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2003년 6월호에 실린 김병도(오른쪽)씨 사진. 왼쪽은 김씨의 국내 송환을 도운 최성용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 사진=월간조선

1973년 서해에서 납북됐다 2003년 귀환한 김병도(70)씨가 28일 숨졌다.


28일 경남경찰과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김씨는 자택이 있는 경남 통영의 아파트 화단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김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에 의해 병원에 이송돼 치료받았으나 결국 숨졌다.


김씨는 지난 1973년 11월 피조개 잡이를 위해 어선 대영호를 타고 서해로 조업을 나갔다가 납북됐다. 당시 김씨에게는 아내와 생후 100일이 채 안 된 딸이 있던 상태였다.


김씨는 북한 농장 등에서 강제 노역하며 고초를 겪다 지난 2003년 납북자 가족 단체 등의 도움으로 북한을 탈출해 귀국했다. 이후 고향인 통영에 거주했다.


1979년 북한에서도 가족을 이룬 김씨는 귀환 후 북한에 남겨둔 아내와 자녀들을 그리워했다. 김씨는 납북 귀환자들도 이산가족에 포함돼 상봉·왕래가 이뤄져야 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통일부에 건의해왔다.


최성용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은 본지 통화에서 "김씨는 납북자 문제의 실태를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면서 "최근에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서울사무소 등을 통해 납북자, 억류자 문제에 관해 진술했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지난 2003년 중국의 옌지(延吉), 선양(瀋陽), 베이징을 거쳐 김씨의 탈북을 도왔다. 당시 《월간조선》 김연광 기자(월간조선 편집장 역임)은 최 이사장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김씨의 국내 송환 과정을 동행 취재한 바 있다. (관련기사 [납북어부 김병도, 사스가 창궐하는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귀환하다] https://url.kr/t1f2vu)

 

송환 과정을 취재한 김연광 《월간조선》 전 편집장은 본지 통화에서 "당시 송환 과정은 마치 첩보 영화를 방불케할 만큼 상황이 순간순간 바뀌었다"면서 "우리 공관과 최 이사장의 노력으로 김씨를 무사히 데리고 올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한편, 최 이사장은 정부를 향한 아쉬움도 표했다. 최 이사장은 "현 정부들어 통일부 내에 납북자 문제를 다루는 전담 부서가 생겼지만, 정부의 관심은 예전만 못 한것 같다"면서 "납북자 문제를 정치적 계산에 따라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의 빈소는 경남 통영시 통영전문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30일이다. 


전후 납북자 중 탈북해 귀한한 인원은 9명이다. 그 중 3명이 별세했다. 현재까지 정부가 파악한 미귀한 전후 납북자는 총 516명이다.


글=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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