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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위안스카이와 2023년 싱하이밍

윤석열 대통령 "싱하이밍, 스물 몇 살 때 위안스카이와 비슷"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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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스카이와 싱하이밍. 사진=조선DB.

1882년 청나라 군대가 서울에 진입해 임오군란 배후라며 대원군을 납치해 갔다. 반항하던 대원군을 억지로 가마에 태운 게 스물세 살 위안스카이(袁世凱)라고 한다. 그는 조선 군대를 진압한 공로로 ‘총독’이 됐다. 


그는 식민지 수준의 내정간섭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를 철저하게 봉쇄했다. 1882년부터 1894년까지 12년 간의 마지막 ‘홀로서기’ 기회를 좌절시킨 장본인이다. 


박정양(朴定陽·1841∼1905)은 1887~1888년 조선의 첫 전권공사로 미국에 파견돼 조선을 계속 속국으로 두려는 청의 강한 압박 속에서도 자주 외교의 길을 걸으려 했다. 


당시 청은 조선의 외교사절 파견을 인정하는 대신 ‘주재국에 도착하면 바로 청나라 공사관에 보고하고 부임 인사 또한 청 관리와 동행한다’는 등의 조건을 내세웠다. 조선 왕실은 이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박정양은 워싱턴DC 도착 직후부터 독자적인 외교 활동을 시작했다. 청의 동행 없이 당시 미국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 


이때 위안스카이는 조선 왕실에 박정양을 징계하라는 압박을 끊임 없이 가했다. 1887년 일이었다. 이 때문에 박정양은 10개월 만에 귀국했다.


이때의 위안스카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앉혀 놓고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이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고 베팅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며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한 주한 중국대사 싱하이밍은 묘하게 오버랩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의 최근 공개 발언과 관련해 13일 “싱 대사의 태도를 보면 외교관으로서 상호 존중과 우호 증진, 공동 이익 추구의 태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싱 대사의 언행이 구한말 조선 총독 행세를 한 청나라의 위안스카이(袁世凱)를 떠올리게 한다는 시중 분위기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중에는 ‘스물 몇 살 때 위안스카이와 비슷한 행태가 떠오른다’는 말이 있다”는 취지로도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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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suk@chosun.com
댓글달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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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론다 (2023-06-16)

    비교 불가임. 위안스카이는 차기 왕이 된 자이고, 씽하이밍은 그저 잘 되봤자 내시 밖에 안되는 천민임. 그래서 더 열받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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