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출범 40주년 40장면] 〈32〉 라이벌 우완 투수들

선동열과 최동원, 박찬호와 김병현, 정민철과 정민태, 박철순과 장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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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태양, 선동열과 최동원. 사진=조선DB

투수(投手), 공을 던지는 사람.

 

포수가 손가락 몇 개를 내밀자 투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수류탄을 던지듯 삼진을 잡기 위해 공을 던진다.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도려내듯 꽂힌다. 혹은 아리랑 춤사위처럼 낙차 큰 변화구가 된다.

그 공을 치기 위해 타자는 굵은 방망이를 든다.

우리는 보았다. 저 멀리서도 보였다. 투수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짜장면의 면발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는 것을. 그리고 터져 나오는 환호.

한쪽에서 들리는 탄식. 마치 부정투표를 외치는 이들의 절규, 함성처럼 처절했다.


두 개의 태양, 선동열과 최동원

 

최동원. 1983~1990년까지 8년간의 프로생활은 짧고 굵었다.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 그리고 한국시리즈 4승 투수.

또한 그해 기록한 223탈삼진은 2021년 두산의 외국인 투수 미란다가 225탈삼진(2022년 키움 안우진이 224탈삼진을 기록했다.)을 하기까지 39년간 깨지지 않았다.

불세출의 스타인 그가 말년에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어 쓸쓸이 그라운드를 떠난 것은 비극이다. 그러나 끝내 이기고야 마는민주주의처럼 비록 떠났어도 최동원이라는 이름 석 자는 영원히 지울 수 없다.

 

선동열. 1986, 87, 92, 93, 95년에 0점대 방어율(0.99, 0.89, 0.28, 0.78, 0.49. 1992년은 11번 밖에 출장하지 못했다.)을 기록한 국보급 투수. 무등산 폭격기. 그의 이름은 타자들에게 악몽이었지만 호남 팬들에게 그는 눈시울을 붉게 만드는 존재였다. 짜장면 위에 얹은 오이채처럼 거대한 침샘 같았다. 그가 입은 검빨 유니폼은 짜장면에 뿌린 고춧가루만큼이나 야구가 지구상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기억할 수밖에 없다. 1985~95년까지 해태에서, 1996~99년까지 일본 주니치에서 던졌다.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그는 그라운드의 수호신이었다. 물론 한쪽에선 악몽이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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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병현과 박찬호. 사진=스포츠조선


해외파, 박찬호와 김병현

 

박찬호. 1994112일 한국야구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날이었다. 미국 LA다저스에 입단한 그는 계약금 120만 달러를 받았다. 1996년 빅리그 풀타임 첫 해, 48경기에 나와 55패 방어율 3.64를 기록, ‘영 건의 기록치고는 준수했다. 2010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유니폼을 입고 아시아 투수 통산 최다승인 124승을 기록한 뒤 유니폼을 벗었다. 아시아 다승 순위는 박찬호 다음으로 노모 히데오 123, 구로다 히로키 79, 다나카 마사히로 78, 류현진 75승 순이다.

2011130일 이승엽과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에 나란히 입단하기도 했다.

IMF로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그의 강속구는 국민의 희망이었다. 그의 새하얀 치아는 기쁨이었다. 야구 경기가 끝나도 그의 다이내믹한 투구 폼은 잔영으로 남아 꿈속에 등장했다.

 

김병현. 박찬호에 이어 한국인으로 두 번째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핵잠수함. BK(Born to K, 탈삼진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 언더핸드 스로 투수로 평균 140km(최고 158km)에 육박하는 직구를 던지거나 뱀처럼 흐르는 슬라이더와 떠오르는 업슛’을 자랑했다. 무지막지한 탈삼진을 기록하며 1이닝 93탈삼진(무결점 이닝)도 해낸 대단한 투수였다.

그의 경력에서 하이라이트는 2001년 월드시리즈.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는 명문구단 뉴욕 양키즈를 꺾고 처음으로 우승했지만 4, 5차전에서 다 이겨 놓은 경기를 마무리로 나온 김병현이 9회 홈런을 허용하여 애리조나 팬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당시 경기를 중계한 허구연(KBO 총재)의 말. “5차전 9회말 스캇 브로셔스가 친 타구가 양키 스타디움 좌측 폴 쪽의 우리 중계 석으로 날아오던 순간은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당시 나는 멍해지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월드시리즈 역사상 팀의 마무리 투수가 이틀 연속 9회에 결정적인 홈런을 허용할 확률은 제로에 가까운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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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정민태와 정민철. 사진=스포츠조선


90년대의 영웅, 정민철과 정민태

 

1990년대는 정민철과 정민태가 주름잡던 시절이었다.

 

정민철 투수가 은퇴식 날 한 말(2009912)이다. “드라마처럼, 마치 짜인 각본대로 야구 인생이 풀린 기분이다. 정말 꿈같은 프로 18년이었다.”

1992년 빙그레에 입단, 첫 해 14승 투수가 되었다. 99년까지 8년 연속 10승 이상(1992, 94, 97년 각각 14, 9918)을 올렸다. 이듬해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2002년 돌아왔고, 200311, 2005년 9승, 200712승을 거뒀다.

150km의 강속구와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 피치 스타일이지만 구위가 워낙 빼어났다. 그의 등번호 23번은 영구결번이 되었다. 16시즌 통산 1611281661탈삼진, 누적 ERA 3.51, WAR59.71이었다. (현재 KBO리그 다승 기록은 송진우 210, 양현종 159, 이강철 152, 김광현 149승이다. 정민철은 역대 다승 2위다.)

 

정민태. 무엇보다 2003년 선발로만 21연승이란 대기록을 세웠다. 미국 MLB의 로저 클레멘스(20연승), 일본 사이토 가즈미(16연승)을 뛰어넘는 세계 최고 기록이었다. 그러니까 2000730일부터 2003831일까지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2000년 7월30일 두산전부터 7연승 후 일본으로 건너가 활약하다 2003년 복귀했다.)

2003KIA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선발 3승을 이뤘다. 최동원이 19844(선발 3, 구원 1)과 비견되는 기록이었다. 게다가 KS 7차전을 완봉승으로 장식한 선수는 현재까지 처음이자 마지막. 그리고 두 번이나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1992년 태평양에서 데뷔해 현대를 거쳐 2008KIA에서 옷을 벗었다. 96년부터 햇수로 6년(96~2000년, 일본 진출 후 2003년 복귀)간 10승 이상(199920, 200018)을 달성했다. 통산 15시즌 12496(1831.0이닝) ERA3.48, WAR45.29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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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박철순과 장명부. 사진=조선DB


불사조와 괴수 너구리, 박철순과 장명부

 

박철순. 불사조. 투수 개인 최다 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82년 기록한 22연승. 이 연승에는 7차례 구원승이 포함돼 있다. (정민태는 오로지 선발 21연승이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410부터 같은 해 918일까지 한 번도 패전을 기록하지 않았다. 당시 박철순은 2447세이브 평균자책점 1.84.

프로야구 원년의 화려한 성적 이후 부침이 많았다. 그를 괴롭혔던 허리 부상 때문이었는데 그럼에도 불사조처럼 이겨내며 재기에 성공했다. 베어스의 맏형으로 1995년 OB(현 두산)의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참여한 후 이듬해 은퇴했다.

96년까지 무려 통산 13년간 활약하며 765320세이브를 기록했다. 통산 ERA2.95, WAR28.49였다.

 

장명부. 박민규의 장편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이 너구리투수를 이렇게 설명한다. ‘철완 너구리 장명부. 홀연히 현해탄을 건너와 고요한 한국의 강호에 <라면은 농심 너구리, 오락은 폼포코 너구리, 야구는 철완 너구리>라는 풍문을 흩뿌리며 숱한 야구해설가들을 아연실색케 했던 그는한국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진정한 초인(超人)이요, 마인(魔人)이었다.’ ‘박철순이 핸섬한 외무와 젠틀한 매너로 타자들을 압도했다면 장명부는 우랄알타이한 외모와 너굴틱한 매너로 타자들을 농락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아직 빈 볼이 무엇인지 모르던 국내 팬들에게 진정한 빈 볼의 의미를 일깨워주었고, 어디 그뿐인가. 빈 볼에 놀라 넘어진 타자에게 그의 전매특허인 너구리 미소를 던져주곤 했다.’

여기서 너굴틱한이란 의미는 너구리와 닮은정도로 해석된다.

1983년 장명부의 선발 30(16, 5완봉, 36완투, ERA 2.34)는 불멸의 기록이다. 30승은 한국프로야구 40년사에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2위는 최동원 27[1984], 김시진과 김일융 25[1985], 박철순 24[1982], 선동열 24[1986])

장명부는 30승 이후 혹사 때문인지 8413, 8511, 861승으로 빛을 잃어 갔지만 83년 그해는 너구리가 아니라 진정한 괴수(怪獸)’와 같았다.

통산 4시즌 5579541탈삼진, ERA 3.55, WAR 20.0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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