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출범 40주년 40장면] <25> 역대 최고의 감독은…

김응용, 김성근, 류중일, 김인식, 김재박, 김태형, 선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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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용 감독과 김성근 감독. 사진=조선DB

한국프로야구 40년 역사에 수많은 감독이 명멸했다팬들로부터 명장(名匠)으로 칭송 받은 감독, 야통(야구 대통령) 야신(야구의 신)이란 별칭을 받은 감독, 단명했던 불운의 감독 등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승수를 쌓은 감독은 김응용 감독이다. 모두 1567. 다음으로 김성근 감독 1384, 김인식 감독 980, 김재박 감독 936, 강병철 감독 914승 순으로 승리경험이 많다


먼저 해태(KIA) 타이거즈 하면 김응용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 하면 선동열 감독과 류중일 감독이 떠오른다. 물론 삼성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안긴 이는 김응용 감독이다.

 

김응용은 해태와 삼성, 한화 감독을 역임한 뒤 삼성구단 사장(2004~2010년)도 맡았다. 해태 왕조의 주역으로 해태의 한국시리즈 9회 진출 및 9회 우승을 모두 이뤄냈다. 명장이란 수식어가 부족하다. 감독 통산 최다승 1, 최다 우승(해태 9차례, 삼성 1차례)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 감독(2013, 2014)을 맡은 것이 야구 인생 말년의 옥의 티라고 할까.

 

김응용 감독은 《월간조선》 2015년 6월호 인터뷰에서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요즘 야구감독 사이에 형님 리더십이 유행이더군요. 형님처럼 선수 챙기고 친절하게 대한다고. 

김응룡 감독에 대한 주위 야구인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원체 말이 없는 분이라 무척 어려웠다거나 무서웠다”고 평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소심하고 꼼꼼하다”고 하는 이도 있다. 

“나는 리더십의 ‘리’자도 몰라. 우리는 선수생활 많이 해봤잖아. 여러 감독을 모셨는데 잔소리 심하고 운동장 위에서 자나 깨나 (군림하는 감독이) 싫더라고. 그때 운동장 밖에선 절대 선수들에게 간섭 안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약속했어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풉니까. 

“스트레스 받으면 덕아웃 벽을 팍~ 쳐서 주먹이 다 나간 적이 많았지. 여기 봐. (주먹을 내보이며) 다 내려 앉았잖아.”

 

―감정조절을 못 하나 봅니다. 

“(스트레스가) 확 올라오면 주먹으로 팍. 하하하. 그런데 덩치 큰 놈 치고 강한 놈 없어. 큰 놈이 마음이 약해. 조그만 사람이 오히려 독종이잖아.”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죠?

“야~ 스트레스, 진짜, 미국에서 나온 직업별 수명(壽命)통계를 봤더니 프로야구 감독 수명이 제일 짧더만. 그다음이 작가, 기자 순이야. 제일 오래 사는 거이, 신부·수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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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감독과 선동열 감독. 사진=조선DB


선동열은 김응용 감독이 삼성 사장이 되자 감독 자리를 물려받았다. 2005년부터 6년 동안 한국시리즈 2회 우승(2005, 2006), 1회 준우승(2010), 4(2007, 2008), 5(2009)를 했다. 누가 뭐래도 2010년대 삼성 왕조’ 서막의 주춧돌을 깐 명장이다.

잠시 공백기를 갖던 선동열 감독은 2011년 고향팀인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타이거즈를 이끌었으나 성적이 좋지 못했다. 5-8-8위였다.

삼성 감독 당시 417승 340패 13무, 승률 0.541이었고, KIA 감독 때는 167승 213패 9무, 승률 0.429였다. 삼성 KIA 감독 통산 1159경기 584승 553패 22무, 승률 0.504였다.

고향팀에 돌아가 전성기 해태의 부활을 기대한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지만 "2군과 재활시설의 투자, 성공적인 신인발굴과 육성으로 리빌딩의 토대를 닦아 17년 우승에 일조한 면"도 있던 감독이었다.


류중일은 선동열에 뒤이어 삼성 사령탑에 올라 2011~2014년까지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모두 우승하는 KBO 최초 4연속 통합 우승을 이루었다. 2015년에는 정규시즌 우승을 달성해 KBO 리그 최초 5년 연속 패넌트레이스 우승 달성했으나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져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뜻하지 않게 도박사건이 터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기획 폭로 의혹이 제기됐으나 어쩔 수 없었다. 삼성 감독시절 승률은 0.583(46533312)였다.

2016년 최악의 성적(9)으로 물러난 뒤 2018LG 감독으로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3시즌 동안 8-4-4위에 그쳐 2020년 자진사퇴했다. 그러나 역대 LG 감독 중 승률 2위였다고 한다. 두 차례 가을야구를 경험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2020년 퇴임 후 통산 승률은 0.531(226200, 6)로 다소 내려갔다.

삼성과 LG 감독 승수를 모두 더하면 1242경기 691승 533패 18무, 승률 0.565였다.


삼성은 2022년 시즌 도중 성적이 부진하자 허삼영 감독을 경질했다. 시즌 중 감독대행이 투입된 경우는 5차례나 있다. 1983년 이충남 감독대행, 1986년 정동진 감독대행, 1997년 조창수 감독대행, 2000년 장효조 감독대행, 2022년 박진만 감독대행이 있었다. 성적 부진으로 감독이 바뀐 케이스는 1983년과 202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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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덕 감독. 사진=스포츠조선


두산 베어스하면 수많은 감독, 예컨대 김영덕 감독, 김인식 감독, 김경문 감독, 김태형 감독이 가장 인상에 남아 있다.


프로야구 원년 우승 감독인 김영덕 감독이 떠오른다. 재일교포 출신 스타감독으로 OB 베어스 감독으로 시작해 삼성(1984~1986년)과 한화(1987~1993년)에서 감독을 역임했다.

투수 박철순, 타자 윤동균, 김우열의 활약으로 1982년 원년 우승을 차지했다. 1985년 삼성이 전후기 통합 우승으로 한국시리즈를 지워버렸던 기억도 난다. 프로야구 감독 중 가장 먼저 700승(통산 717승)을 달성했다. 

빙그레(한화) 감독 시절에도 돌풍을 일으키며 6시즌 동안 4차례(1988, 1989, 1991, 1992년)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러나 번번히 우승 문턱에서 멈추고 말았다. 

김영덕은 자신의 지휘 스타일을 ‘애정’이라고 말한다. 2007년 8월 4일 자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코치와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대하려 노력했고요.”

 

한화(빙그레) 시절 6시즌 동안 통산 726경기 415승 294패 17무로 승률 0.585였다.

허구연 KBO 총재는 저서 《허구연의 야구》(2008)에서 이렇게 말했다.


<필자(허구연)는 우리 야구계에 김영덕, 김성근 감독에 대한 평가가 그분들이 남긴 성적과 기여도에 비하면 아직도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김영덕 감독은 가장 먼저 700승(통산 717승)을 돌파한 감독이자 원년 우승을, 김성근 감독은 프로, 아마 야구를 가리지 않고 후배들을 지도하면서 많은 제자를 두고 있는 것은 단순히 감독으로서의 승리 횟수보다 한국 야구에 끼친 공이 더 크다고 본다.

그러면 왜 많은 재일동포 야구인들이 고국을 떠나 일본으로 다시 회귀하거나, 국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까. 난 재일동포 야구인들이 국내에서 반일본인 같은 대접을 받기도 했으며, 배타적인 우리 사회 분위기에 제대로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본다. (중략)

한국 야구는 재일동포 야구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중요한 것이고, 후배들은 우리 야구에 대한 역사는 제대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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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감독. 사진=조선DB

 

김태형KBO리그 최초로 7년 연속(2015~2021)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탄탄한 두산 왕조시대를 열어 2015, 2016, 201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4회 준우승을 달성했다. 팀내 주축 선수들이 모두 떠나 올 시즌 최악의 9(60822)에 머물렀다. 그의 정규리그 통산 성적은 1149경기 64519485, 승률 0.561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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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 감독. 사진=조선DB


김경문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야구종목 금메달을 안긴 감독으로 기억된다. 두산 감독시절, 화수분 야구’, ‘뚝심의 야구로 젊은 명장 반열에 들었다. 매의 눈을 가진 스카우트 팀과 선진화된 2군 운영 시스템과 결합해 두산의 성장을 이끌었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8시즌 동안 51243216무로 승률 0.542를 기록했다. 3-2-5-2-2-3-3위였고 2011613일 시즌 도중 사퇴했다.

비록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지만 김경문이 명감독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믿을 수 없는 전승 금메달을 땄었다.


SK 와이번스 와이번스는 카리스마 가득한 김성근 감독, 이만수 감독이 생각난다.

 

김성근은 여러 팀을 옮겨가며 지휘했다. 1984~1988년까지 OB 베어스 감독을 맡은 뒤 태평양 돌핀스(1989~1990), 삼성(1991~1992), 쌍방울 레이더스(1996~1999), LG 트윈스(2001~2002), SK 와이번스(2007~2011), 한화 이글스(2015~2017)까지 무려 7개 팀을 이끌었다. LG에서의 2년 중 2001년은 대행 신분이었다. 구단주가 누구든 그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OB와 태평양-삼성-쌍방울 시절에는 우승 경험이 없다. OB 시절, 3-4-5위를 했다. 태평양 시절에는 3-5, 삼성 시절에는 3-4, 쌍방울 시절에는 3-6-6, LG 시절에는 6, 준우승(2002)을 차지했다. SK 시절, 가장 놀랄만한 성적을 거뒀다. 5년 동안 3차례 우승, 1차례 준우승했다. 한화 시절에는 6-7-9위였다. 통2646경기 중 1384120260무로 승률은 0.523이었다.

 

김성근의 별명은 ‘잠자리 눈깔’이다. ‘관중석에서도 투수들 그립이 보인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그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봐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월간조선》 2022년 3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문일답이다.


<― 좋은 감독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사명감을 가지고 좋은 결과를 내고, 선수에게 대가를 돌려주는 감독입니다. 한계를 넘어서면 선수 자신이 그걸 가장 먼저 압니다. ‘나를 위해서 감독, 코치가 도와주시는구나’라는 느낌이 생기죠. 사명감이라는 건, 저하고 만났던 선수들이 20년, 30년 후에 과거를 돌아봤을 때 ‘얻어온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 좋은 선수는 어떻게 만드나요.

“스스로 한계를 넘어서도록 도와줍니다. 한계를 못 넘으면 어느 시점에서 더 올라가지 못해요. 한계를 넘으면 그 프로세스가 자기 것이 됩니다. 어렵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앞길이 없는 거죠. ‘힘들다’는 건 아직 그 세계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뜻이에요. 관리 속에 자율(自律)이 있고 자율 속에 관리가 있는데, 자율은 어느 정도 정상에 올라간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 평소에 즐겨 말씀하신다는 ‘일구이무(一球二無)’는 어떤 뜻입니까.

“야구도 인생도 3번 정도 찬스가 옵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온 걸 모르거나 기회를 못 잡아요. ‘지금 이 공을 놓치면 끝’입니다. 이 공을 놓치면 두 번째는 없어요.

인생이나 야구나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 식이 아닌, ‘왜 졌나, 왜 안 풀렸나’를 연구하면 해결책이 보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단서들이 흘러가고, 관심이 있으면 답이 보이지 않나 싶어요. 갈림길에선 어려운 쪽을 택하세요. 그것이 투쟁이고 새로운 길을 만듭니다.”>


LG 트윈스(MBC 청룡)하면 너무 많은 감독이 거쳐 가서 갑자기 멍해진다.

 

감독들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손가락으로 꼽아 보자. 백인천, 유백만, 한동화(대행), 어우흥, 배성서, 이광한, 천보성, 이광은, 김성근, 이순철, 양승호(대행), 김재박, 박종훈, 김기태, 조계현, 양상문, 류중일, 류지현 감독에 이어 지금의 염경엽 감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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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환 감독. 사진=조선DB

 

그중에서 백인천 감독과 자율야구를 표방한 이광환 감독이 생각난다. 다음은 정범준이 쓴 이광환 야구 이야기의 한 문장이다.

 

<“기본과 기초는 오직 하나다. 미국식이 다르고 일본식이 다를 수가 없다. 아마추어가 다르고 프로야구가 다를 수도 없다.

'자율''방임'으로 오해 받던 시절, 선수가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발전과 보완의 포인트를 찾는 훈련방식을 도입했다. 그것이 이광환의 '책임야구'이다.”>

 

이광환 감독은 1989OB 감독으로 사령탑에 데뷔했고, 1992년부터는 LG를 맡았다. 2001년 한화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해 2002년까지 팀을 이끌었다. 2003년엔 다시 LG 사령탑에 올랐지만, 다시 한 시즌 만에 결별하고 2009년엔 우리 히어로즈의 창단 감독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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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천 감독. 사진=조선DB

 

1982MBC 청룡을 맡았던 백인천 감독은 1990MBC를 인수해 재창단한 LG 사령탑으로 두 시즌을 보냈다. 1990신바람 야구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시즌 내내 1위 빙그레를 추격하다 극적인 9회말 끝내기 승리로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고 한국시리즈에 진출, 삼성을 4전 전승으로 압도하며 창단 첫 해 감격의 우승을 일궜다. 그런데 이듬해 19916위로 추락한 뒤 LG를 떠났다. 두 시즌 동안 1241211, 승률 0.504였다.

백인천은 1996~1997년은 삼성, 2002~2003년은 롯데를 지휘했다.


롯데 자이언츠는 강병철 감독과 제리 로이스터 감독, 한화(빙그레) 이글스는 김인식 감독과 이희수 감독이 생각난다. NC 다이노스는 김경문 감독, 넥센(키움) 히어로즈는 김시진 감독, 염경엽 감독, KT 위즈는 이강철 감독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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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감독. 사진=조선DB


김인식 감독은 김성근, 김응용 감독과 함께 한국 야구 '3'으로 꼽히는 장수 사령탑이다. 대한민국 야구팀 감독으로 활약했다.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두 시즌(1991~1992)을 보낸 김인식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9시즌 동안 두산(전신 OB 포함)을 이끌어 두 번의 우승을 달성했다.

김인식 감독은 세 번째 팀인 한화에서도 6시즌(2004~2009)을 함께했다. 2006년 한국시리즈 당시 우승 문턱에서 좌절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54, 20073, 20085, 20098위였다.

김인식 감독 하면 ‘믿음의 야구’가 생각난다. 당장 부진해도 꾸준히 기용해 잭팟을 터뜨리도록 유도한다. 쌍방울 감독 시절, 신인 김기태를 4번 타자에 기용한 것이나 괴력 심정수, 근성있는 정수근의 숨은 재능을 한껏 끌어내는데 일조했다. 투수 쪽으로는 현재 SSG 랜더스 감독을 맡고 있는 김원형이 대표적인 케이스. 한편으론 재활공장 공장장이란 별명처럼 노장을 데려다가 전력을 누수를 막고 즉시전력으로 팀을 이끌었다.


김인식 감독은 《월간조선》 2016년 3월호 인터뷰에서 믿음의 야구라고 불리는 자신의 스타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 ‘김인식 리더십은 부작용이 적고 효과는 지속적’이란 말이 따라다닌다. 김응룡식(式) 공포의 카리스마나 ‘아끼고 아껴서 칭찬 한마디를 하는’ 김성근식 리더십과 판이하다. 그의 수평 리더십은 가는 곳마다 팀워크를 단단하게 하고 실패한 선수를 일으켜 세운다는 평가다.

 

―김인식 리더십에는 부작용이 적다는 말, 어떻게 생각하세요?

“과찬의 말…”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믿음의 야구란, 거꾸로 불신의 야구와 동전 양면처럼 닿아 있다. 기용되지 않는 선수 입장에선 감독의 불신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김인식의 야구는 ‘선수 기용 스펙트럼이 좁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 뛰는 선수 입장에선 그렇게 볼 수 있죠. 1군 선수가 28~30명 정도인데 베스트 멤버는 10명이죠. 보통 한 경기에 기용되는 선수는 대략 17~18명입니다. 선수 입장에선 자신이 (경기에) 나가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감독 입장에선 그렇지 않죠.

 

믿음의 야구… 그게 뭔지 저도 모르겠어요. 몇 개월 계속 내보내면 괜찮을 것 같아 기용하다 보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어요. 계속 삼진을 먹거나 결정적일 때 못 칠 수 있지만,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시기가 온다고 봅니다. 투수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때까지 믿음을 보여주면 선수들도 ‘나를 이렇게 믿어주는구나’고 생각하게 되죠. 그렇게 해서 성공한 선수들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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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 감독과 로이스터 감독. 사진=조선DB

 

강병철은 롯데 감독을 3차례나 할 정도로 롯데와 인연이 깊다. 또 1984년 롯데 감독에 부임한 첫 해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해 한국 시리즈 7차전 당시 강병철 감독과 최동원이 나눈 대화는 전설로 남아 있다. “동원아, 우짜노 이까지 왔는데.” “, 알겠심더. 함 해보입시더.” 롯데가 거둔 743패 가운데 최동원이 선발 4승을 거두었다.

 

86년 시즌이 끝나고 롯데 감독에서 물러난 뒤 1991년 다시 롯데 감독에 복귀했고 이듬해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구단과의 갈등으로 1994년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3-6-4-7위 후에 1998년 성적부진으로 중도 사퇴했다. 한화 시절 성적인 2702917, 승률 0.481이었다.

 

이후 SK 와이번스 초대 감독(2000~2002)을 거쳐 다시 롯데 감독(2006~2007)을 맡았다. KBO 리그 역사상 한 팀에서 세 번이나 감독직을 맡은 사례는 현재까지도 강병철이 전무후무한 사례라고 한다.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초의 외국인 감독인 로이스터 감독은 통산 392경기 2041853무로 승률이 5할을 넘어 0.524이었다. 역대 롯데 감독 중 승률 5할이 넘는 감독으로는 성기영 감독(0.524), 양승호 감독(0.537), 조원우 감독(0.500) 4명이다.

 

로이스터는 2008~2010년까지 3시즌 롯데를 지휘했다. 포스터 시즌에 모두 진출했고 3-4-4위를 기록했다. 야구계의 중흥기를 이루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다.

"선발 중심 야구,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는 과감함, 프로로서 자율적인 훈련과 자기관리, 팬에 대한 서비스" 등 단순한 진리들을 실천하며 사직구장으로 골수 부산 팬을 다시 불러 모았다.

 

물론 단기전에선 전술 부족 등으로 뒷목을 잡게 하는 등 원성을 들었으나 롯데 선수와 팬들은 아직도 그를 못잊어 그리워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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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박 감독. 사진=조선DB


지금은 사라진 태평양 돌핀스 하면 정동진 감독,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하면 김성근 감독, 현대 유니콘스 하면 떠오르는 유격수 레전드 김재박 감독이 생각난다.

 

김재박 감독은 현대 유니콘스 시절인 11시즌 동안 4회 우승(1998, 2000, 2003, 2004)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감독을 맡은 첫 해인 19962위를 해서 깜짝 놀라게 했다. 역대 감독 최단기간 승수 기록을 세웠다. 플레이오프에 못 나간 해가 겨우 3(1997, 1999, 2005)에 불과하다. 최연소 통산 900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2007년부터 3년간 LG트윈스 감독을 맡았으나 과거 화려했던 명성에는 한참이나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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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 감독과 염경엽 감독. 사진=조선DB

  

정동진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와 태평양 돌핀스에서 지휘했다. 팬들은 태평양 시절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말한다. 1992년 6위, 1993년 꼴찌였으나 1994년 절치부심,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다. 인천팀으로서는 처음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당시 구도(球都) 인천이 들끓었다. 이광환 감독이 이끄는 LG에게 4연패로 무너지고 말았지만, 전년도 꼴찌팀의 이유있는 반란에 박사룰 보냈다.


삼성 감독시절 두 시즌(1989~1990년)을 보냈는데 1990년 정규시즌 4위에 올라 가을야구를 경험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빙그레에 2연승, 플레이오프에서 숙적 해태에 3연승을 거두며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부풀었으나 재계 라이벌 LG에 맥없이 4연패 당하자 경질되고 말았다.

 

정동진 감독은 부상 투수들을 과감히 수술시키고 재활군을 설치해 체계적인 재활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평가다. 예컨대 태평양 감독 시절, 정명원 최창호 박정현 등 팀내 주축 투수가 부상을 겪고 신인 정민태마저 몸상태가 좋지 않자 성적을 포기, 이들의 재활을 도왔다. 결국 꼴찌팀에서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도, "투수들의 선수생명을 연장시키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삼국지 제갈량의 별명을 가진 ‘염갈량’ 염경엽 감독은 넥센 히어로즈(2013~2016년)와 SK 와이번즈(2019~2020년)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이미 현대 유니콘스와 LG 트윈스에서 프런트와 코치 경험을 두루 쌓아 야구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다는 평가다. 1군 주전과 백업을 미리 나눠 철저히 준비시키되 철저한 성과주의로 팀을 운용했다. 

 

넥센 시절 3-2-4-3위를 차지했다.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에게는 LPG(이택근 박병호 강정호) + 타격왕 서건창이 있었다. 창단 5년만에 만년 하위권 히어로즈를 상위팀으로 변신시켰다는 평가다. 2014년 시즌이 가장 우승에 근접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2승 4패로 삼성에 지고 만 것이 가장 아쉬우리라. (역대 가을야구 성적을 보면 밴 헤켄 투수가 나올 때만 이겼다는 말이 나온다. 단기전에 약하다는 뜻이다.)

 

넥센 시절 염경엽 감독은 544전 305승 6무 253패로 승률 0.561을 기록했다. 히어로즈 역대 감독 중 가장 높은 승률을 자랑한다. 

SK 시절인 2019년 정규시즌 2위(9경기차 1위에서 후반기 연패를 겪어 0게임차 2위)를 달성했지만 플레이오프 탈락과 포스트시즌 스웹패를 당하고 말았다. 2020시즌은 성적 부진과 극심한 스트레스로 실신하고 말았다. 현장 복귀 후 건강 상의 이유로 자진 사퇴하고 말았다.

 

2022년 시즌 종료 후 LG 감독으로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LG는 드디어 우승의 한을 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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