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장경순 전 국회부의장

5.16혁명 주체로 '최장수 국회부의장', '최장수 유도회장'....자유수호국민운동 만들어 우파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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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 시절의 장경순 전 국회부의장 (1922~2022).

장경순(張坰淳) 전 국회부의장이 7월 18일 타계(他界)했다. 향년 100세. 

1922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고인은 배재중을 나와 일본 도요(東洋)대 척식과를 졸업했다. 일제말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귀국한 후, 전북중학교 체육교사로 교편을 잡았다가 1948년 7기 특별반(7특)으로 육사를 졸업했다. 육사 참모장‧육군정보학교장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몇 안 되는 장성 출신 5‧16군사혁명 주체이다. 당시 육군준장으로 육군본부 작전교육처장으로 있던 그는 박정희 소장이 육군작전참모부장으로 있었을 적에 함께 근무했다. 시국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기는 했지만 거사 모의 단계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거사 전날인 5월 15일 박정희 소장으로부터 “내일이 D-데이”라는 말을 들은 고인은 주저 없이 “제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라면서 거사에 가담했다. 5‧16 아침에는 육군정보학교장 한웅진 준장과 함께 신당동에 있는 박정희 장군 자택으로 가서 영등포에 있는 제6관구사령부까지 박 장군을 수행했고, 이어 김포(현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제1공수전투단으로 가서 부대 출동을 독려했다.

 20년 전 기자가 5‧16혁명 40주년 기념 기사를 쓰면서 장경순 전 부의장과 전화인터뷰를 했다. 고인은 4·19 후의 혼란, 특히 대학생들의 남북학생회담 추진을 지적하면서 “5·16 직전 거사 계획이 이미 노출되어 있었음에도 거사가 결국 성공한 것은 ‘국운(國運)’이었다”고 말했다. 그 한 마디에 5·16에 대한 고인의 자부심이 녹아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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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본부 작전교육처장 시절의 고인

 

군사혁명정부에서는 고인은 국가재건최고위원과 농림부 장관 등을 지냈다. 농림부 장관 재직 시에는 농어촌고리채 정리, 농협과 농업은행 통합 등의 업적을 남겼다.

1963년 민정(民政)이양과 함께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고인은 전북 정읍-김제에서 6대부터 10대까지 내리 다섯 번 국회의원을 지냈다. 공화당 사무총장·국회부의장·무임소 장관 등을 역임했는데, 특히 1963년부터 1973년까지 10년간 국회부의장을 지내 ‘최장수 국회부의장’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1980년대 이후에는 사업가로 변신, (주) 코리아 내추럴 워터스‧삼호실업 등을 경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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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국회부의장 시절의 고인(왼쪽). 오른쪽은 김성곤 의원.

 

고인은 유도인(柔道人)으로도 유명하다. 배재중학교 시절 고인은 조선연무관에서 유도를 수련하면서 관장 이경석 선생으로부터 “우리나라는 조선조(朝鮮朝) 500년 동안 문약(文弱)했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개인과 나라 모두 문무(文武)를 겸비해야 하는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철칙이다”라는 가르침을 받고 평생 유도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고인이 해방 후 전북중 체육교사로 있다가 군인이 된 것도 1948년 당시 송호성(宋虎聲) 국방경비대 사령관으로부터 “군(軍)에 들어와 육사 생도들에게 유도를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고인은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부임하는 부대마다 유도 도장을 만들어 유도를 보급했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10년간 제11~17대 대한유도회장을 지내 최장수 유도회장 기록을 세웠다. 재임 중이던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여의도에 있는 2400평 대지에 중앙도장을 세웠다. 유도원(柔道院) 이사장, 세계유도연맹 부회장, 한국유도고단자회 명예회장을 지냈고, 2004년 9월 ‘10단’으로 승단했다.

 

고인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여든 살이 넘은 나이에 ‘애국운동’에 앞장섰다. 2003년에는 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헌정회 회장을 맡아 기회 있을 때마다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과 안보태세 이완을 비판했다.  2002년에는 예비역 장성 200여 명, 전직 의원 50여 명, 전직 장·차관 50여 명, 예비역 영관급 장교 100여 명 등 500여 명을 모아 자유수호국민운동을 결성, 상임의장을 맡았다. 당시 고인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이도 있고 해서 양로원에나 들어가려던 참인데, 잘못하면 좌익들에게 나라가 넘어가게 생겼더라구. 올 연말 대선 때까지만이라도 마지막으로 몸을 던져 볼 생각이야. 정부 기관에 근무하는 아들이나, 모(某) 기업 고문으로 있는 동생에게 누가 될까 싶어 의논했더니 ‘뭔 일 있으면 그만두면 그만이죠. 하시려는 일을 하세요’라며 흔쾌히 지지해 줬어요.”

군인으로, 정치인으로, 기업인으로, 유도인으로 100년을 꽉 차게 살다간 인생이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은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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