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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라도 한국인이 되고 싶었던 ‘아사카와 다쿠미’ 90주기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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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카와 다쿠미(淺川 巧·1891년 1월 15일 ~ 1931년 4월 2일)라는 일본인은 한국 식민지 시절 한국문화와 한국인을 사랑한 인물이다. 

90주기 추모식이 4월 2일 오전 10시 그가 묻힌 서울 망우리공원에서 열린다.

 

다쿠미는 일본 야마나시 현(山梨縣) 출생, 1914년 경성(서울)에 건너와 조선총독부 산림과에 근무하며 한국의 산과 민예(民藝) 미술을 사랑하였다. 조선의 소반》(1929),《조선도자명고》(1931)등의 저서를 남겼다.

 

서울대 김병종 명예교수는 다쿠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꿈에라도 조선인이 되고 싶었던 일본인.그래서 끝내 돌아가지 않고 이땅에 묻힌 사람. 죽어서 비로소 조선인의 꿈을 이룬,이제 그 살과 뼈 썩어 한줌 흙이 된 사람.평생의 화두가 조선의 아름다움(美)이었던 사람.···>

 

시인 정종배(鄭鍾培) 선생이 아사카와 다쿠미의 90주기 추모제 소식을 전해왔다. 정종배(전 서울 신현고 교사) 시인은 망우역사문화공원 자문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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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정종배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의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은


1891년 1월 15일 야마나시현 호쿠도시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기독교인으로 정동제일교회를 다녔다


1914~1931년 17년 한국에 살며 한글 사용 한국식 생활 주변인들과 어울리고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는 디아스포라적 삶을 살다


식목일 준비로 과로하여 급성 폐렴으로1931년 4월 2일 40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문동 사람들이 엄청난 봄비 속에서도 상여를 서로 메겠다고 하여 몇 개 조로 나눠 이문동 고개 공동묘지에 묻혔다 1942년 망우리공동묘지로 이장했다


총독부 산림임업시험장 고원과 기사로 홍릉 및 광릉 수목원 기틀을 다졌다


대한민국 인공림 37%를 차지하는 잣나무 씨앗 발아법인 ‘노천매장법’을 한국인 노동자들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온실에서 2년만에 발아하던 것을 노천에서 1년만에 발아시켜 한반도 산림녹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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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정종배

 

사방공사 속성수인 싸리나무 다섯 종류 이름을 지었고

한반도 ‘조선노거수명목지’를 공동으로 파악 책으로 묶어 천연기념물 지정의 토대를 마련했다


<폐허> 동인 염상섭 번영로 남궁벽 김유방 일엽스님 등과 교류하며 정릉천변과 홍릉수목원을 거닐고 청량리 청량사에서 차를 마시는 피서가 당시 한여름밤 최고의 풍정이었다


한국의 민예와 도자기를 사랑하여 그림을 그리고 명칭을 써 놓았다


한국의도요지 700곳을 답사 정리하여 도자기업계에서 중시조로 여기고 있다

이때 전국을 다니며 농악 연희 등을 보고, 야나기 무네요시가 한국의 미를 한의 미라 했지만 다쿠미 선생은 해학미 멋 풍류라 파악했다


‘조선도자기의 신’이라 일컫는 형님 노리다카는 해방 후 미군정 부탁으로 옛 중앙청 지하 수장고에 도자기를 정리하고 1년 늦게 귀국했다


두 형제는 당시 한 몫 잡으려고 조선에 오는 이와 달리

형은 조각을 전공하여 남대문소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했다

다쿠미 선생은 유고로 《조선도자명고》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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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정종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백자 분청사기 가치와 분석은

두 형제가 주춧돌을 놓았다


경복궁 집경당에 조선민족미술관을 건립할 때 민족이란 말을 끝까지 고집했다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참혹한 한국인이 당한 제노사이드 만행을 일기 속에

절대로 한국인 민족성은 유언비어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고 만약 동경에 있다면 변호사를 대 구하고 싶다고 적었다

 

(한편, 관동조선인학살 기록영화를 제작 중인 오충공 감독은 망우리공원 두 번 방문 촬영하여 세 번째 영화 <제노사이드93>을 제작 중이다

망우리공원 인물 중 관동대지진 당시 유학생은 조봉암 송석하 김영랑 최신복 등이고

방정환 오기만은 진상 조사반 활동 및 후원금 전달을 하였다)

 

지금도 일본 보수쪽에서는 식민지 관료로서 배반하였다고 배척당하고 있다

《한국을 사랑한 일본인》 책 편집할 때 원고 청탁 응하고는 끝내 보내지 않는 다쿠미 선생 연구 박사학위 수여자는 강사 자리를 유지 하려니 이해하여 주기를 바랄 정도였다


명저인 《조선의 소반》에서 한국의 온돌과 구조에서 조형성 예술성 실용성에서 동양 3국에서 최고의 민예품이라 상찬하고 특히 만든 이가 아닌 쓰는 이에 의해 쓰면 쓸수록 빛이 나는

뛰어난 한국인의 미 의식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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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정종배

 

이 책 서문에 조선의 해방을 암시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수집한 민예와 도자기 3,000여 점을 그대로 두고 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 있다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인간의 가치’라는 제목으로 다쿠미 선생의 인간애의 실천을 15년 동안 수록 가르쳤다


재일한국인 하정웅 광주 및 영암 하정웅미술관 명예관장은 2006년부터 다쿠미 고향에서 청리은하숙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다쿠미 선생을 추모하며 한일민간교류 역할을 하고 있다


수림문화재단 후원으로 청리은하숙 세계시민학교 운영도 한국에서 이뤄졌다


사진작가 후지모토 다쿠미는 화구상 아버지가 아들이 다쿠미 선생만큼 살기를 바라며 아들 이름을 다쿠미라 지었다. 다쿠미 작가는 1970년부터 한국에 드나들며 농어촌 및 도시 개발 전 모습과 사람들을 찍어 귀중한 자료를 작업하고 있다. 일본에서 한일 성신교류 50년전을 순회전시 중이다.

작품을 모두 민속박물관에 기증하고 있다


2001년 다쿠미 고향에 <노리다카 다쿠미 형제관>이 건립됐다


2012년 다쿠미 일생을 담은 영화 <백자의 사람>이 상영됐다

 

D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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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올해는 특히 ‘아사카와 다쿠미 탄생130주년, 서거 90주년’의 의미있는 해입니다.

현창회원 모두 함께 하여 진정한 한·일선린의 만남의 장을 빛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시 : 4월 2일 오전 10시 30분

장소 : 망우리추모공원 아사카와 다쿠미 묘역

주최 : 아사카와 노리다카 다쿠미 형제 추모회

참여단체 : 중랑문화재단, 한국내셔널 트러스트 망우분과, 망우본동 마을과 아이들

 

현재 일본 《마이니치신문》 호리야마 지국장과 함께 일본문화공사, 서울 일본인 교회 등 여러 일본 분들이 참석을 알려 왔네요.

입력 :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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