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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클래식 리뷰] 피아니스트 이은지의 귀국 연주회 ‘감미로움과 슬픔이 동시에’

바흐, 베토벤, 슈만, 라벨 등 학구적 열정 담아 난곡(難曲) 연주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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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이은지의 귀국 독주회가 2월 4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 홀에서 열렸다.

2월 4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 홀에서 피아니스트 이은지(李恩知·32)씨의 귀국 독주회가 열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객석은 다소 허전하였으나 열기만은 타올랐다. 피아노가 검게 그을렸다고 해도 불편한(?) 과장은 아닐 것이다.

뜨거웠다. 4곡의 연주만으로 귀국 인사는 충분했다고 할까. 학구적 열정을 담은 난곡(難曲)으로 프로그램을 채웠고 각기 색채가 선명한 선율로 연주를 완성했다.

어떤 이들은 사실 겨울밤에 어울리는 시벨리우스 같은 북구적 선율을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전람회 그림처럼 다채로운 음악의 색채로 코로나에 지친 겨울밤을 일순 녹일 수 있었다.


피아니스트 이은지는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고 재학 중 도불(渡佛)하여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 수석으로 입학하여 학사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동시에 실내악 과정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한다. 이후 이화여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혜전, 오윤주, 김대진, 김정은, 자크 루비에(Jacques Rouvier) 등에게 사사하였고 국내에서 음악춘추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한국일보 콩쿠르 1위, 국민일보·한세대 콩쿠르 1위, 이화·경향 콩쿠르 2위, 해외 Concours National de Piano de Lagny sur Marne(Excellence 부문) 1위 등 국내외 콩쿠르를 석권하며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견고히 다졌다.


이날 피아니스트 이은지가 내놓은 곡들은 음악의 발전상을 한눈에 보여준다. ‘귀국’ 스타일로 “이만큼 배우고 왔습니다” 하는 것을 알리는 무대였다고 할까. 결코 쉬어 갈만한 쉬운 곡이 없다고 느껴졌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바흐(1685~1750), 고전주의 황제 베토벤(1770~1827), 낭만파 슈만(1810~1856)의 최고의 피아노 걸작, 그리고 드뷔시의 계승자라는 라벨(1875~1937)을 택했다. 17세기에서 20세기까지 피아노 역사를 축약시킨 연대기적 흐름을 귀로 느끼고 배울 수 있게 고안(考案)했다고 할까.


 ①바흐 :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 D단조

 ②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31번 

 ③슈만 : 크라이슬레리아나 작품 16번

 ④라벨 : 라 발스


무대에 등장한 이은지는 불필요한 말이나 동작 없이 바로 피아노에 앉아 ‘바흐’를 연주했다. 긴장 때문일까. 약간 표정이 경직돼 보였지만 이내 오른손을 끊임없이 움직이며 물 흐르듯 선율을 길어 올리며 편안함을 찾아갔다.

몸 동작을 크게 하지 않았으나 활기찬 느낌이 때로 들었고 정확한 터치와 음색으로 숨죽인 객석의 사람들을 어디론가 끌고 갔다. 마음 한곳이 물감처럼 번져오는 것이 있었다.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31번>은 감미로움과 슬픔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이 곡은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에서 작곡해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표현이 돋보인다. 고전음악은 까다로워 많이 알아야 듣고 이해할 수 있다지만 베토벤은 지식의 도움 없이도 인간의 위대함과 동시에 겸허함을 보여준다. 이은지의 <31번>을 들으며 음악으로 순화된 슬픔은 심리적 기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게 들리더라도 결국 그 슬픔을 정화시켜 주니까….


두 곡을 연주하고 파스텔톤 연주복 대신 파란색 드레스(바지였던 것 같다!)로 갈아입었을 때, 이상하게도 슈만과 라벨의 곡들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만의 최고 걸작 피아노 작품 중 하나인 <크라이슬레리아나 작품 16번>은 음악으로 된 중편 소설을 듣는 듯 했다. 모두 8곡으로 이뤄진 <크라이슬레리아나>는 크게 제2, 4, 6곡은 B♭장조로, 그러나 제3, 5, 8곡은 g단조를 이뤄져 있어 상반된 곡 이미지가 교차한다.

정말이지 귀가 정신없이 왔다갔다, 감정의 고저가 들쑥날쑥했다. 격렬하게 움직이다가 정성을 다하는 듯 정적이며, 다시 몰아세우듯 결렬하다가 아주 느리게, 그러다 아주 빠르게 건반을 끌고 다녔다. 종지부는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분위기를 연출하여 소설처럼 모호한 마무리로 마쳤다. 한편의 잘 짜인 소설을 오디오북으로 듣는 듯 했다. 아주 인상적이었다.


독특한 인상주의적 감성이 두드러지는 라벨의 <라 발스>를 마지막에 배치한 것은 미국이 아닌 유럽, 그것도 프랑스 파리로 피아노 유학을 떠난 이유를 알게 했다. 이은지는 발레를 하듯, 무수한 발로 지상을 딛고 서듯, 풍부한 색채로 검고 흰 건반을 눌렀다. 심지어 주먹으로 건반을 “꽝!”하고 내려쳤고 손바닥으로 건반을 여러 차례 쓸었다.

프랑스 시인의 파격적인 시작(詩作)처럼 다양한 피아노 기법들이 동원된 듯 기교적으로 변화무쌍하며 풍부한 색채의 음악 ‘시작’을 느낄 수 있었다. 왈츠 리듬에 기반을 둔 엄청난 스피드가 느껴졌을 때 객석의 가슴은 절정에 달했고, 바로 그 순간 연주가 끝나 버렸다. 또 끝남과 동시에 박수가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왔다.


아쉬웠던지 이은지는 쇼팽의 <녹턴>을 앙코르 곡으로 연주했다. 객석은 그제야 한껏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이 감미로운 겨울밤을 완성할 수 있었다.

앞으로 동양적인 간결함과 부드러움, 서양적인 힘과 날카로움을 모두 갖춘 연주자로 성장하길 기원한다.


한편, 피아니스트 이은지에게 사전에 이메일로 ‘왜 이 4곡을 연주곡으로 택했느냐’고 물었고 이런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이번 독주회에서 바로크, 고전, 낭만, 근대 순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고자 하였고 각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들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번 연주에서는 각 작곡가들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귀국 독주회인 만큼 학구적이며 난이도가 높은 작품들로 구성하였습니다. 17세기~20세기 음악의 변화 과정에 중점을 두고 감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바흐의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 D단조>는 바흐의 작품들 중에서 굉장히 화려하고 규모가 큰 편이고 다음 시대의 음악을 예견할 수 있을 만큼 작품의 길이도 길고 풍부한 화성과 자유로운 형식에서 오는 화려함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1번>은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 베토벤의 후기 작품으로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잃었을 때 작곡이 되었으며 지난 삶에 대한 회상, 그리움과 더불어 고독, 쓸쓸함 등을 감정적으로 접근하여 표현할 예정입니다. 베토벤 자신이 지난 세월 동안 느껴 온 많은 역경들에 대한 감정이 많이 느껴지는 작품이라 들을수록 애정이 가는 작품입니다.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 작품 16번>은 슈만의 이중적인 두 개의 자아가 굉장히 잘 드러난 작품 중 하나이고 크라이슬러 소설을 바탕으로 작곡된 총 30분의 매우 길고 다양한 스토리를 가진 작품입니다. 슈만 특유의 판타지(Fantasy)적인 요소와 조울증과 집착 증세를 나타내는 대조적인 캐릭터들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하여 선택하였습니다. 


라벨의 <라 발스>는 비엔나 왈츠를 라벨이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왈츠(Valse)로 3박자의 리듬 위에 펼쳐지는 라벨의 독창적인 선율, 신비로운 화성들은 화려하고 변화무쌍하며 열정적인 왈츠로 표현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라벨의 피아노 작품들은 거의 모두 공부하였으며 연주회 때마다 라벨의 작품은 항상 마지막에 주로 연주하곤 합니다.”

입력 : 2021.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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