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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 핏대 수석 이원종이 마지막으로 박근혜 안철수에게 한 말은?

이원종 전 정무수석 31일 지병으로 별세...향년 82세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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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종 전 정무수석. 조선DB.

42년 동안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31일 별세했다. 향년 82세.


고인은 1939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 경복고와 고려대를 졸업했다. 1960년 4·19 학생의거에 참여했고, 1973년부터 신민당과 인연을 맺었다. YS의 비서실장이었던 경복고 후배 김덕룡 전 의원 권유로 YS의 공보 비서를 맡았다. 1993년 YS 취임 후 공보처 차관을 거쳐 1997년 2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다.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 ‘혈죽(血竹·핏대) 수석’으로 불릴 정도의 다혈질이었다. 이후 정치권과 거리를 둬 왔다. 


그래도 할 말은 했다. 이 전 수석은 생전 기자의 핵심 취재원 중 한 명이었는데, 만날 때 마다 정치권 현안에 대해 쓴소리를 하곤 했다. 


'신뢰의 정치'를 한다는 명분 아래 작은 것에 연연, 전투에서는 승리하지만 전쟁에서 패배할 수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판한 게 대표적이다.


“1992년 대통령 선거 때였습니다. 민자당 대통령 후보였던 YS는 ‘대통령이 되면 절대 쌀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보니 국익을 위해서는 쌀 수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쌀을 개방했지요. 국익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국민과의 약속을 깰 수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신뢰를 정치지도자의 최고 덕목으로 생각하는 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지도자가 되려면 융통성 있게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세종시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무조건 ‘국민과의 약속이니 원안대로 가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보다는 융통성을 발휘, 우선 수정안이 국민의 편의에 정녕 부합되는지 검토해 볼 필요도 있다고 했다면 지도자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YS는 1992년 대선 때 “대통령직을 걸고 쌀 개방을 막겠다”고 공약한다. 표를 얻기 위해서였지 농업의 장래에 대한 비전은 없었다. 그러나 1993년 11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첫 발제 연설에 나선 그는 쌀 등 농산물을 포함한 ‘예외 없는 개방’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고인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었다. 2016년 3월 경이었다. 


"본인이 강철수가 됐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못 느끼겠던데요. 본인이 무엇 때문에 정치를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저는 안철수 대표가 잘해주기를 기대한 사람인데….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고인의 생전 휴대전화 번호 뒷자리는 ‘0003’이다. 1986년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으로 이사하면서 바꾼 집 전화번호의 뒷자리였다. 그 뒤 청와대 사무실에서 쓰던 전화번호도 ‘0003’이었다. 주변에선 ‘YS 사람의 징표’라고 했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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