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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 웅장한 사운드와 ‘우주적 록’의 출현!

[阿Q의 ‘비밥바 룰라’] 《록의 시대》를 통해 본 로큰롤 선구자 10명 ⑦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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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로 나온 《록의 시대-저항과 실험의 카타르시스》는 프랑스 작가 알랭 디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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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로 나온 《록의 시대-저항과 실험의 카타르시스》(1996)
르(Alain Dister)가 썼다. 1996년 국내 번역되었다. 록이 어떻게 등장해서 변천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역자는 음악 평론가인 성기완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로큰롤 선구자 10명을 소개한다. (계속)
 
7. 핑크 플로이드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월 오브 사운드’(인터넷 음악사이트)가 금세기 최고 앨범을 조사했더니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최고 앨범 1위는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년), 2위는 U2의 《The Joshua Tree》(1987년), 3위 역시 비틀스의 《Abbey Road》(1969년)였다. 놀랍게도 4위가 핑크 플로이드의 1973년 10월에 발매된 8번째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이었다.
 
이 앨범은 15년, 그러니까 741주 동안이나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랭크라는 엄청난 대기록을 세웠다. 일상의 삶에서 오는 갈등과 욕망, 압박과 스트레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로 인한 광기 등을 다룬 컨셉트 앨범으로 제작되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에 삽입된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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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에 발매된 8번째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 시드 배릿의 탈퇴 후 꾸준한 실험을 통해 변화하고 진보해온 핑크 플로이드는 이전까지  밴드가 행한 모든 시도가 이 앨범을 향한 발걸음이었다는 말이 강한 설득력을 지닐 정도로 완벽한 예술적 결과를 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는 언제나 황홀경에 빠져 지내던 멋쟁이 리더 시드 배릿(Syd Barret, 1946~2006)과 건축학교 학생이었던 3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새소리, 기계소음과 눈부신 조명쇼를 도입했다.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볼거리도 충족시켰다.
 
그들의 첫 정규 앨범은 1967년에 발매된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이다. 시드 배릿이 중심이었던 당시의 핑크 플로이드는 착란과 몽상의 이미지들을 뒤섞어 음악적 실험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작업했다
 
정신질환 때문에 배릿이 그룹을 떠나자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아가 가세하면서 리처드 라이트(키보드), 닉 메이슨(드럼), 로저 워터스(베이스)를 중심으로 일정한 주제를 지향하는 콘셉트 음악을 선보였다. 특히 로저 워터스가 밴드를 이끌면서 자본주의의 착취와 소외, 인간 실존과 타자성에 대한 고찰을 하나의 견고한 음악적 콘셉트 아래 배치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 세계는 1970년대 초중반 융성했던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의 사전적 뜻은 ‘진보적’.
60년대 후반 상업적 조잡함을 탈피한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다. 그중 ‘프로그레시브 록’은 ‘예술음악’을 접목한 록음악 장르로 ‘아트록’으로 불렸다. 간혹 클래식록, 심포닉록이라 불렸던 이유는 교향곡이나 조곡(組曲)의 요소를 많이 차용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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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발매된 핑크 플로이드의 더블앨범 《The Wall》 역시 4500만장이 팔리며 전설로 남아 있다.
이들의 음악은 클래식음악 전통이 강한 영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Yes, Genesis, King Crimson 같은 밴드가 선구자였고 사이키델릭 록의 전자음향 실험을 발전시킨 ‘핑크 플로이드’에 이르러 프로그레시브 록은 비로소 활짝 만개했다.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당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거리를 걸어가는 미녀와 같은 음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평가도 나온다.
 
“깊고 너른 공간감을 지닌 우주적 사운드 스케이프, 겹겹이 그러나 정교하나 섬세하게 쌓여 풍성한 다채로운 소리 향연, 은은하고 매끈한 블루지한 기타, 신비로움을 머금은 웅장하고 서사적인 신시사이저와 키보드, 복잡하고 역동적인 그리고 여유를 지닌 리듬, 강력하고 부드러우며 몽롱하지만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보컬, 극적이고 시적인 감흥을 주는 사운드 효과…”
-《Wish You Were Here: 핑크 플로이드의 빛과 그림자》 중에서
 
핑크 플로이드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서구 대중문화의 근간이 뿌리내리고 있는 현대적 삶의 어두운 면을 정치사회적, 철학적 맥락에서 광범위하게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 안에는 소외의 본질과 이유, 존재의 형이상학, 부조리, 인지, 정체성 그리고 예술적, 상업적인 진정성의 본질이 담겨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광기도 있다. 
 
또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특정 장르의 밴드로 한정시킬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대중예술의 선도자로서 서구 문화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듣는 이를 불안과 불편으로 밀어 넣는 그들의 음악이 어떻게 압도적인 숭고미를 성취하는지, 그 답은 단순히 ‘들리는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음악적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사유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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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의 앨범들.

밴드의 리더인 로저 워터스가 1983년 《The Final Cut》을 끝으로 탈퇴했다. 기타리스트 데이빗 길모어를 주축으로 한 나머지 3명은 88년 《A Momentary Lapse Of Reason》으로 컴백한 후 《The Division Bell》《The Endless River》 등을 발매하며 최근까지도 곡 작업과 투어를 계속해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10여년 전 리처드 라이트는 지난 2008년 세상을 떠났고 어느덧 70대 중반의 할아버지가 됐다. 로큰롤을 사랑하는 팬들은 그러나 여전히 이들의 전성기 시절 곡들을 맹렬히 탐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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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88년 1월 15일자 10면에 ‘핑크 플로이드 콘서트 최대 관중 동원’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조선일보》는 1988년 1월 15일자 10면에 ‘핑크 플로이드 콘서트 최대 관중 동원’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소개하면 이렇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기수 핑크 플로이드가 지난 한 해 동안 단일 콘서트투어로 최다 관중동원과 최고 티켓 판매수익을 올린 아티스트로 선정되었다.
 
빌보드 「탑 박스스코어」 연말결산 결과, 핑크 플로이드는 지난해 9월 21~23일 토론토 콘서트에서 283만 달러의 총수입을 올려 1위, 그 직전인 16~17일 오하이오 콘서트에서 257만 달러로 2위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3위는 제네시스와 폴영의 뉴저지 조인트 콘서트(230만달러), 4위는 빌리 조엘의 뉴저지 콘서트(221만달 러)가 각각 차지했다.
 
1. 엘비스 프레슬리
 
 
2. 척 베리
 
 
3. 비틀스
 
 
4. 롤링 스톤스
 
 
5. 아레사 프랭클린
 
 
 
8. 지미 헨드릭스
9. 레드 제플린
10. 섹스 피스톨스

입력 :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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