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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사 프랭클린, 인종의 벽 넘어 ‘솔의 여왕’에 등극하다!

[阿Q의 ‘비밥바 룰라’] 《록의 시대》를 통해 본 로큰롤 선구자 10명 ⑤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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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로 나온 《록의 시대-저항과 실험의 카타르시스》는 프랑스 작가 알랭 디스테르(Alain Dister)가 썼다. 1996년 국내 번역되었다. 역자는 음악 평론가인 성기완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로큰롤 선구자 10명을 소개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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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로 나온 《록의 시대-저항과 실험의 카타르시스》(1996)
5. 아레사 프랭클린
 
아레사 루이즈 프랭클린(Aretha Louise Franklin, 1942년 3월 25일 ~ 2018년 8월 16일)은 미국의 가수, 작곡가, 피아니스트, 시민권 운동가였다. 프랭클린은 아버지 C. L. 프랭클린이 목사로 있던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의 뉴 베델 침례교회에서 복음을 노래하는 아이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8살 때  컬럼비아 레코드의 녹음 예술가로 세속적인 음악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프랭클린의 경력이 눈에 띄지는 않았으나 1966년 애틀랜틱 레코드와 계약한 후 갈채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 ‘Respect’,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Chain of Fools’, ‘Think’, ‘I Say a Little Prayer’ 등의 히트곡들이 그녀의 과거 음악적 동료들을 자극했다. 1960년대 말까지 아레사 프랭클린은 ‘솔의 여왕(Queen of Soul)’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의 등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 미국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962년 미국 아칸소 주지사 포버스는 5년에 걸친 연방정부와의 싸움 끝에 패소했지만 옥스퍼드의 미시시피 관습을 위배한 흑인 학생 제임스 메러디스를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야만 했다.
 
이듬해 11월 인권정책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케네디 대통령이 사망했다. 1963년 앨라배마의 버밍햄에서는 개학하자마자 유혈사태가 벌어졌고 1964년 필라델피아의 로체스터 할렘가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급진적 흑인 해방운동을 이끌던 말콤X가 살해되었다. 1965년 캘리포니아의 와츠, 1966년 뉴욕, 디트로이트, 시카고에서도 폭동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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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사 프랭클린. 그녀의 노래는 인종의 벽을 넘어 백인 청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상처받고 박해받으며 가끔 분노에 몸을 떨던 흑인들이 권리주장을 위해 ‘대장정’을 시도하기도 했다.
 
몇몇 뮤지션들은 미국의 문화 엘리트에 맞서기보다 단순하고 감각적 효과의 재즈, 즉 리듬 앤 블루스, 또는 그 변형 중 하나인 힘에 넘치는 로큰롤을 계속하며 흑인 노동자들을 자신의 대화 상대로 삼았다. 흑인들만을 위한 이 대중예술이 인종의 벽을 넘어 백인 청중에 의해 히트 퍼레이드에 오른 적도 없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 아레사 프랭클린이 있었다.
 
프랭클린은 자신이 태어난 멤피스나 그녀가 데뷔한 디트로이트에서 스타가 될 수 있었으나 운명은 그녀를 다른 길로 인도했다. 그녀는 뉴욕의 ‘애틀란틱’ 그룹의 일원이 된 것이다. 침례교 목사의 딸인 아레사는 레이 찰스처럼 리듬 앤 블루스의 가스펠 송을 섞어 노래했다. 가는 곳마다 노래와 춤, 음악과 볼거리를 선사한 그녀의 그룹은 레이 찰스 그룹과 마찬가지로 125번가의 전통, 아폴로 극장과 할렘가의 전통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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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남성 위주의 팝 뮤직에서 거부했던 여성 가수의 중심적 위치가 아프리카 음악이나 리듬 앤 블루스에서는 허용되었던 것이다. (루시엥 말송이 쓴 《재즈의 역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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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97년 8월 4일자 39면에 실린 아레사 프랭클린에 대한 글 ‘사진으로 읽는 록의 역사 ⑪ 솔(Soul)의 태동
다음은 《조선일보》 1997년 8월 4일자 39면에 실린 아레사 프랭클린에 대한 글이다. 임진모씨가 글을 썼다.
 
사진으로 읽는 록의 역사 ⑪ 솔(Soul)의 태동
흑인들 분노-자긍심 담아내
 
60년대 인권운동 바람속에 미국 흑인들은 자기네가 받아온 부당한 대우에 저항한다. 분노한 흑인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인종평등」을 외친다. 65년 LA에서 일어난 와츠폭동에 이어 67년 디트로이트 폭동이 불붙는다.
 
월남전 못잖게 존슨 행정부를 위기로 몰고 간 사건이었다. 백인들 구미 맞추기에 급급하던 흑인음악도 분노의 정서를 반영해 강성으로 급선회했다. 솔(Soul)음악이 태동한 시대 배경이다.
 
목청을 돋우는 샤우트 창법이 특징인 솔은 흑인들의 강한 자긍심을 담아냈다. 새 음악은 순식간에 리듬 앤드 블루스(R&B)를 대체하며 흑인음악 주도권을 장악했다. 디트로이트 폭동을 기점으로 「솔의 맏형」 제임스 브라운,「솔의 왕」 오티스 레딩,「솔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 같은「솔 전위대들」이 잇따라 인기 차트를 점령했다.
 
보컬이 폭발적인 아레사 프랭클린은 특히 절대적 인기와 영향력을 누렸다. 디트로이트 폭동에서 시위대는 그의 히트곡 「존경(Respect)」을 합창하며 백인들에게 존경을 요구했다. 이듬해 디트로이트 시장 제롬 카바다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날」을 선포했다. 드디어 미국 백인사회가 혹인 음악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록과 솔은 그렇게 어깨를 겨뤘다. <임진모·팝칼럼니스트>

1. 엘비스 프레슬리
2. 척 베리
3. 비틀스
4. 롤링 스톤스
 
6. 밥 딜런
7. 핑크 프로이드
8. 지미 헨드릭스
9. 레드 제플린
10. 섹스 피스톨스

입력 :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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