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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스, ‘최강 밴드’ 자리 놓고 비틀스와 한판!

[阿Q의 ‘비밥바 룰라’] 《록의 시대-저항과 실험의 카타르시스》를 통해 본 로큰롤 선구자 10명 ④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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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로 나온 《록의 시대-저항과 실험의 카타르시스》는 프랑스 작가 알랭 디스테르(Alain Dister)가 썼다. 1996년 국내 번역되었다. 역자는 음악 평론가인 성기완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로큰롤 선구자 10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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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로 나온 《록의 시대-저항과 실험의 카타르시스》(1996)
1. 엘비스 프레슬리
 
 
2. 척 베리
 
 
3. 비틀스
 
 
4. 롤링 스톤스
 
1950년대 불 같이 일었던 로큰롤은 60년대 접어들면서 휴식기에 들어갔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입대를 해야 했고, 척 베리는 매춘 혐의로 구속되었다. 리틀 리처드는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고 제이 리 루이스(피아노 로큰롤)는 14살 사촌누이와 결혼해 물의를 빚었다. 심지어 리치 발렌스와 버디 홀리는 같은 비행기를 탔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틈으로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 영국 침공)이 이뤄졌다. 진주만 공습보다 더 무시무시한 침공이었다. 선봉대는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였다.
 
롤링 스톤스는 1965년에 등장했다. 비틀스와 마찬가지로 흑인 음악에 영감을 받았다. 리듬 앤 블루스를 연주하는 백인 밴드였다. 리더 믹 재거의 ‘섹스 어필’을 앞세운 5인조는 ‘I can't get no satisfaction’로 차트 정상에 올라 비틀스를 위협했다. 이후 롤링 스톤스는 ‘최강 밴드’자리를 놓고 비틀스와 한치 양보 없이 치열한 ‘대권경쟁’을 벌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밴드가 대조를 이뤘다는 점이다. 비틀스는 노동자 출신의 히피들로 무대 뒤에선 늘 양복을 입었다. 그러나 롤링 스톤스는 모두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였지만 ‘자유분방한’(달리 표현하자면 불량스럽게)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었다. 음악도 둘 다 로큰롤을 연주했지만 비틀스는 소녀 취향적, 롤링 스톤스는 퇴폐적이란 점에서 성인 취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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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6월 16일자 《조선일보》 43면에 게재된 ‘사진으로 읽는 록의 역사 - 롤링 스톤스’

다음은 1997년 6월 16일자 《조선일보》 43면 기사 일부다. 글은 팝칼럼니스트 임진모씨가 썼다.
 
롤링 스톤스의 성공 비결은 그러나 비틀스식 호감과 친화력이 아니었다. 초기에 비틀스처럼 정장을 하다 된서리를 맛보고는 와신상담,정반대로 「불량과 퇴폐」로 단장해 승부를 걸었다. 그것이 거리 음악인 록의 코드와 딱 맞아 떨어졌다.
 
록의 반항성을 신봉하는 모든 젊은이들이 롤링 스톤스 곁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성인음악」으로 변해가는 비틀스와 인연을 끊었다. 적어도 록에 관한 한 「1등 그룹」은 롤링 스톤스였다.
 
밝은 비틀스 음악과 달리 그들은 끈적끈적한 블루스에 기초했다.롤링 스톤스는 철저한 기타리듬으로 「록의 형식미」를 완성하는 한편,록의 뿌리가 흑인 블루스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일조한다. 비틀스가 록의 시대를 일궈냈다면 그들은 「록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공적을 남겼다. <임진모·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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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스는 1963년 싱글 ‘Come On’로 데뷔했다. 이후 수 많은 앨범을 발표했다.

첫번째 앨범에서 롤링 스톤스는 자신들에게 영향을 준 사람, 특히 척 베리에게 눈에 띄는 경의를 표했고(앨범 제목 《Around and Around》), 그들 덕에 척 베리는 감옥(베리는 1957년 클럽과 식당을 세인트루이스에 열었다. 2년 뒤 그는 다른 주에 사는 14살 소녀를 데려와 클럽에 고용한 혐의로 체포됐다. 베리가 흑인이라 형이 과하다는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으나 항소심에서도 유죄판결을 받았다. 베리가 감옥에서 20개월을 보냈다. )에서 풀려난 뒤 다시 관객을 모을 수 있었다. 롤링 스톤스의 갑작스런 성공은 영국에 리듬 앤 블루스의 열풍을 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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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스는 '구르는 돌'이라는 팀명답게 시대에 따라 항상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머디 워터스는 1977년 영국 음악잡지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비틀스, 롤링스톤스로 대표되는 ‘브리티시 인베이전’ 그룹들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이처럼 설명했다.
 
“비틀스는 척 베리를 많이 따라했고, 롤링스톤스는 나를 조금 따라했다. 그게 내 모국, 미국 사람들을 일깨웠다. 이전에는 부모가 아이에게 ‘니거(흑인을 낮춰 부르는 말) 음악을 집에서 틀지 말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구르는 돌’이라는 이름의 롤링 스톤스는 시대에 안주하지 않고 대중의 흐름 속으로 뛰어 들었다. 70년대에는 디스코, 80년대에는 팝 스타일과 일렉트로닉, 90년대에는 현대적인 록 사운드를 흡수하며 변신을 거듭해 갔다.
 
롤링 스톤스는 1962년 리더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존스를 중심으로 보컬인 믹 재거,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 베이스 빌 와이먼, 드럼 찰리 와츠 등 5명의 멤버로 결성됐다. 이후 브라이언 존스가 팀을 떠나고 이어 믹 테일러→론 우드가 영입됐다.
 
1994년에는 원년 멤버였던 빌 와이먼이 탈퇴한다. 현재 정규 멤버는 믹 재거, 키스 리처즈, '론 우드, 찰리 와츠 등 4인 체제로 구성되어있다.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에 버금가는 작곡 콤비로도 유명하다.

 
5. 아레사 프랭클린
6. 밥 딜런
7. 핑크 프로이드
8. 지미 헨드릭스
9. 레드 제플린
10. 섹스 피스톨스

입력 : 202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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