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완성되지 않는다. 아니, 완성되는 방식이 우리가 기대하던 것과 다르다.
신원경의 첫 시집 《축소모형》(문학과지성사)은 그 서로 다름을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응시한다. 202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첫 시집에서 연애시라는 오래된 형식을 빌려오되, 그 안에 든 것들을 슬며시 바꿔치기한다. 달콤한 고백도, 극적인 이별도 없다. 대신 쓰러져가는 나무, 무너지는 육교, 처음 보는 새, 비어 있는 공원이 있다. 그것들이 모여 사랑의 축소모형을 이룬다.
시집을 관통하는 정서는 어긋남이다. 문학평론가 전승민은 이 시집에서 ‘일인칭을 포함한 모든 인칭은 각자가 지닌 시선의 빛이 서로의 내면을 굴절하여 만든 불완전한 세계상만을 경험한다’고 짚는다. ‘나’는 ‘너’를 완전히 알지 못하고, ‘너’ 또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같은 나무 위에 서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것을 본다. 그 불일치가 이 시집의 출발점이자 동력이다. 신원경은 그 어긋남을 봉합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긋난 채로 함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의 실제 형태라고 말하는 듯하다. ‘같은 방향으로 서로를 향해 걸어오기만 한다면 육교의 거리는 소용없’다.
우리는 쓰러져가는 나무 위에서
제대로 서 있는 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깨를 감싸 쥔 검은 손은 처음부터 놓여 있었다
쉽게 뭉치고 잘 풀어지지 않는다
자라난 우리는 같이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함께 자는 사이가 된다
문을 잠그고 사랑을 하거나 서로의 습관을 이해하지 못해도 여전히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믿어?
한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 사람은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
새끼손가락이 어디까지 구부러지는지 알아보자고 장난 치다가
결국 부러져 응급실에 다녀온 날
붕대에 감긴 손가락은 혼자서도 움직일 줄 안다
너는 자꾸 우리 말고도 누가 있다고 잠꼬대를 하고
이제 우리 집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침에 일어나
전속력으로 달리는데
갈 수 있는 곳은 더 빠르게 사라져
정원용 가위는 오래도록 무너져
아무것도 다듬을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있다
귀가한 뒤 마주 본 얼굴에는
너도 나도 모르는 표정이 붙어 있다
떼어내려 손을 뻔을 때
우리는 다시 오래전
동네에서 가장 커다란 나무 위에 올라서 있고
구부러진 나무가 더욱 구부러지는 것을 느끼며
이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알아
이제 얹어져 있는 손은
내게 없는 것
언제 올 수 있겠어? 물으면
금방 갈게 답하지
한쪽 손이 사라지면 다른 손이 되돌아오던
나무가 아닌 것에도
네가 앉아 있다
-‘가드닝’ 전문
시 ‘가드닝’은 그 형태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쓰러져가는 나무 위에서 제대로 서 있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뭉친 어깨가 잘 풀어지지 않아 긴장하지만 우리는 문을 잠그고 사랑을 나누는 습관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한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한 사람은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일지라도,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갈 수 있는 곳을 향해 달린다. 비록 무뎌진 슬픔을 다듬을 수 없고 때로 서로가 모르는 표정이 얼굴에 묻어 있을지라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 올 수 있겠어?" 물으면 "금방 갈게" 답하는 사이다.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결국 이런 일이다. 무뎌진 가위를 들고, 기울어진 나무 위에서, 계속 손을 뻗는 일이다.
오늘 같은 날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지. 미세먼지가 가득해도 날이 좋아 보여. 오늘은 오늘과 어울린다. 파쇄와 훼손은 다른 행위. 너를 만나러 육교를 건너가던 중에. 끝나지 않을 것처럼 오르막으로 연결되던 계단이 예고 없이 끝나면 잠시 멈추지. 새는 육교 아래를 바라보다 몸을 던진다. 어김없는 착지. 멀리서 들려오던 울음소리는 증발해 있고. 같은 방향으로 서로를 향해 걸어오기만 한다면 육교의 거리는 소용없어 지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적 있지. 결국 스스로와 포옹할 때. 혼자가 될 때. 내게 남은 생을 누군가 배속으로 넘겨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지. 거침없이 무심하게. 몇 장면쯤은 보지 않아도 좋다며 커서를 찍어주었으면 하고 바란 적 있지.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외출한 사이에도 누군가 침입한 흔적은 없고. 신발을 신고 집 안에 들어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사물들이 잠시 정지되어 있다. 어떤 버퍼링 없이 떨림 없이. 먼 곳에서 육교 무너지는 소리가 난다. 내 몸은 곧 증발한다.
-‘육교’ 전문
‘육교’는 산문시의 형식으로 같은 진실에 다른 방향에서 도달한다. 우리는 오작교를 건너듯 육교에서 만난다.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 육교에 오르는 연인. 오르막으로 연결되던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새가 몸을 던지는 것을 보지만 '너'를 만날 즐거움 때문에 슬픔은 저절로 사라진다. 서로를 향해 걸어오기만 한다면 육교의 거리는 소용이 없다. 그렇게 사랑을 하겠다고 마음먹지만 때로 혼자가 되고, 때로 스스로와 포옹할 때도 있다. 그렇더라도 남은 생을 누군가의 배속으로 넘겨주고 싶다. 사랑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을지 모른다. 외출한 사이에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없고, 신발을 신고 집 안에 들어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를 향해 다가서는 그 순간, 세상이 잠시 정지되고 떨림이 없으며, 그렇게 육교가 무너지고 내 몸이 증발되는 경험을 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하고 정지시키며 무너뜨리고 증발시키다가 모든 것을 완성한다. 무너짐이 파국이 아니라 용해이고, 증발이 소멸이 아니라 합일이다.
우리가 서로 동시에 실망해서 다행이라고 느낀 적 있지
그럼에도 자고 일어나면 모르는 아침이 이어졌다
그다음은 네가 혼잣말을 되풀이하던 오전이 그다음은
풀밭에 앉아 있으면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 우리를 마중 나온다 그런 말들은 실제보다 더 크게 들린다
그날의 소란스러움은 처음으로 몸을 맞대본 연인 같지 겹쳐 들리는 문장은 오랜만에 재회한 친구에게 애칭으로 불린 아이처럼 상기되어 있지
작은 소란은 모르는 사람에게 손을 잘못 흔들었을 때 되돌아오는 인사 같아서
노래하고 싶어지지
나와 다른 용도로 손을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
서로의 약점을 바꿔 갖고 오늘을 기점으로 십 년 후의 미래가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봐 나눠 낀 반지가 여전히 빛나는지
-‘아침 ( )’ 부분
‘아침 ( )’은 괄호 안을 비워둔 채 제목부터 여백을 만든다. 동시에 서로에게 실망한 날의 아침은 '모르는 아침'일지 모른다. 혼잣말을 되풀이하던 오전, 다른 사람의 말들이 그날따라 크게 들린다. 소란스럽기도 한 여러 말들이, 문장들이 겹쳐져 때로 상기된 볼처럼, 잘못 흔든 손처럼 무안해져서 노래를 부르고 싶고, 그로 말미암아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지도 궁금해진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가 고장나면 걸어 올라가면 되듯이, 얼마 후면 깨끗이 수리된 에스컬레이터가 다시 올라가거나 내려갈 것이다.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가자고 말하는 사람 곁의 또 다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그렇게 다시 낯선 모르는 아침이 이어진다고 해도 빗속에 섞이기를 선택한다, 네가 되기 위해. 괄호 안은 비어 있지만, 그 빈자리가 오히려 가득하다.
바다에 빠진 사람은 픽셀을 삼백 개 이상 지니고 있고
우리는 그 사람이
무너져 내리는 풍경을 지켜볼 수 있다
산사태처럼
구조 요청 하는
무너진 진흙 덩어리 형태로 허우적댄다
그는 너의 친구 가까운 삼촌 오랫동안 증오했던 동생이 될 줄 안다
그를 구해야만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
....
해가 질 때에는 음악이 들려온다
조도가 낮아지면 너는 체력 부족으로 정신을 잃고
집 안에 들어서 있다
두 갈래의 모습으로 갈라져
밝은 곳에서 만나자고 말 건네는 사람의 등장
너는 그 얼굴을
잘 알고 있다
-‘밝은 곳에서 만나’ 부분
‘밝은 곳에서 만나’에서 삶은 난이도 높은 게임처럼 펼쳐진다. 바다에 빠진 사람, 무너져 내리는 풍경, 산사태, 무너진 진흙덩어리, 증오. 사는 게 다 어려움이다. 그러나 지나치지 않고 우리는 그를, 서로를 구해야만 한다. 모르는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고, 좁은 계단 아래 아주 넓은 계단 한 칸을 놓아 쉬어갈 수 있어야 한다. 한 사람에게 익숙한 여러 개의 그림자에서 들리는 음악을 생각하며, 먼저 말을 건넨다. 밝은 곳에서 만나자고. 그 얼굴을 너는 잘 알고 있다. 낯선 얼굴이 아니다. 오래 알아온 얼굴이다.
우리는 산을 오르기 위해 만났다. 손에는 모이가 든 작은 컵을 들고. 산을 오르기 전 스트레칭을 하다가 오래된 참나무를 바라봤다. 이건 삼백 년 넘게 살았네. 네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어제밤 삶아둔 밤을 생각했다. 단맛이 없던 밤. 잘못 사 왔다고 중얼거리며 다 먹은 밤. 이미 삶아버린 밤이라도 땅어 묻어 정성껏 가꾼다면 다시 밤나무가 되어 저기 있는 참나무보다 더 오래 살아갈지도 모르지. 나무 앞에서 만나 함께 학교로 걸어가는 초등학생들을 지켜보면서. 혹은 나무의 가장 굵은 가지에 목을 맬 결심을 하기 위해 공원을 빙 도는 청년을 지켜보면서.
너는 참나무 가지 사이에 지어진 새 집을 보고 있었다. 마음이 슬픈 사람들이었다. 슬픈 사람들이 새를 보러 가는 모임에서 서로를 발견해 이제 새는 그만 보러 다니고 대신 산을 오르자고 제안해서 만들어진 하루였다. 너와 나는 이제 새 대신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 슬퍼하기 위해 산을 오르기로 했는데 우리는 계속 무언가를 지켜보며 슬픔에 잠겨 있었다. 모이를 들고 있어도 다가오는 새는 없고. 함께 탐조를 다녀도 오늘 본 새들은 전부 처음 보는 새였다.
우리는 달리기 혹은 뜀뛰기를 하듯이 일을 한 뒤 내일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동안에도 우리가 함께 본 산은 그대로 있고 새는 방향을 바꾸며 날아갈 것이었다.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생물의 본질은 동일해. 새가 새를 지켜보듯. 산이 산을 지켜보듯. 우리는 서로를 지켜보기도 하는데. 차가운 물이 담긴 컵이 새로운 물기를 만드는 것처럼 슬픔이 만드는 또 다른 슬픔으로 산도 새도 계속 살아 있을 주 있었다.
너와 나의 손바닥이 어제의 산과 새를 감싸는 동안 탐조를 하러 나온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제는 못 본 사람들이었다.
이름을 아는 새의 그림자가 보였다. 네가 새의 이름을 발음하려는 순간.
-‘탐조’ 전문
‘탐조’는 이 시집에서 가장 긴 호흡의 산문시다. 산을 오르기 위해 우리는 만난다. 만남은 산을 오르며 서로를 탐조하는 행위 내지 과정일지 모른다. 어젯밤 삶아둔 단맛 없는 밤을 땅에 묻어 정성껏 가꾼다면 다시 밤나무가 되어 저기 있는 참나무보다 더 오래 살아갈지 모른다. 나무 앞에서 만난 초등학생들, 공원을 빙 도는 청년, 너, 그리고 참나무 가지 사이에 지어진 새집. 나무를 중심으로 마음이 슬픈 사람들이 있다. 이제는 나무를 보는 대신, 나무에 깃든 새를 보는 대신, 울창한 숲을 보고 산을 본다. 우리가 함께 본 먼산은 그대로 있지만, 산이 산을 지켜보듯 우리는 서로를 지켜보면 산도 새로운 산이 될지 모를 일이다. 어제는 산의 진면목을 못 보더라도 오늘 새로운 산을 발견할지 모른다. 오늘 본 새들은 전부 처음 보는 새였지만, 처음 본 새들이 오늘은, 이름을 아는 새의 그림자로 변한다. 네가 새의 이름을 발음하려는 순간, 시는 거기서 멈춘다. 그 발음되지 않은 이름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일어나지 않은 일로 가득 찬 들판은
잠시 느리게 회전하고
그때의 너는 정말 용감해 보여
내가 선택하지 않은 너와
선택한 너는
이제 완전히 나누어져 다른 곳에 몸을 누이고 잠들어 있다
초대된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든다 잘 모르는 사이라도 손을 들어 호응한다 빰과 빰을 맞대며 인사할 때의 나는
너조차도 사랑할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하지
새롭게 설계된 너와 사랑에 빠지려는 순간
한참을 기다려도 나를 발견하지 못하는 너
꿈에서는 자꾸 너와 모르고 지낸 날짜로 돌아간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며
아직 정해지지 않은 저녁 네 신발 없이 비어 있는 현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셔츠
나는 당신이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걸 첫눈에 알아봤어
사랑은 햇빛이 드는 곳이면
어디서든 자라날 수 있다
비어 있는 공원에 간다
택시기사는 되묻지않고 나를 그곳에 데려다준다
-‘청혼’ 부분
‘청혼’은 이 시집의 끝자리에서 사랑의 의지를 가장 정면으로 응시한다. 청혼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까지 사랑해보기로 하는 행위다. 가본 적 없고 전혀 닮지 않은 가족들과 만나야 하는 게 결혼이다. 너와 나, 우리가 토끼풀을 짓이기는 방식으로 살지라도 새로 태어날 아이에게 줄무늬 탱탱볼을 도로 던져주기 위해 비틀거리며 바닥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그렇게 일어선 들판은 일어나지 않은 일로 가득할지 모른다. 선택한 일과 선택하지 않은 일들이 일상을 간섭할지도 모른다. 결혼식에서 만나게 될 하객들의 인사가 두렵게 느껴질지(흉측할지) 모르지만, 무엇이 달라졌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한다고 해도, 우리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셔츠가 됨을 안다. 서로에게 있던 이기적인 사랑의 방식을 발견해 소스라친다고 해도, 햇빛이 드는 곳이라면 사랑은 어디서든 자라날 수 있음을 안다. 사랑이 자랄 수 있는 공원은 우리를 위해 비어 있고, 택시기사는 되묻지 않고 우리 둘이 머물 수 있는 그곳으로 데려다준다.
신원경의 시는 호흡이 길다. 시들 대부분이 길고, 더러는 아주 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길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 걸어야 닿는 곳이 있듯이, 이 긴 호흡이 있어야만 전달되는 감각이 있다. 관계가 시간 속에서 천천히 변형되는 감각, 어느 순간 돌아보면 이미 멀리 와 있다는 감각, 그리고 그 거리만큼 서로가 깊어졌다는 감각. 그것은 짧은 시에서 얻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 시집이 제안하는 연애의 상상력은 세계를 크게 바꾸지 않는다. 나무는 여전히 기울어져 있고, 가위는 여전히 무뎌져 있으며, 에스컬레이터는 때때로 고장난다. 그러나 그 기울어짐 위에서 대화를 나누고, 그 무뎌짐으로도 손을 뻗고, 걸어서라도 올라가는 일—그것이 세계를 부드럽게 변형시킨다. 토끼풀을 짓이기며 살더라도 아이에게 탱탱볼을 다시 던져주기 위해 바닥을 짚고 일어서는 것처럼, 신원경의 연애시는 그 일어섬의 상상력을 독자에게 건넨다.
읽고 나면 세계가 조금 달라 보인다. 쓰러져가는 나무가 더 이상 두렵지 않고, 처음 보는 새가 낯설지 않으며, 비어 있는 공원이 오히려 다정하게 느껴진다. 어긋난 채로도 함께할 수 있다는 것, 빗속에 섞는 것을 선택해서라도 네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믿음이 세상을 조용히, 그러나 끝까지 변형시킨다. 첫 시집으로 그것을 해냈다는 것이, 이 시인의 가장 큰 성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