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위치한 성묘성당(聖墓聖堂)이 폐쇄된 가운데, 2026년 3월 4일 한 에티오피아계 그리스도교 신자가 굳게 닫힌 성당 문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작전 이후 미사일 위협이 고조되자 안전을 이유로 성묘성당을 비롯한 주요 성지와 상점을 전면 폐쇄했다. 사진은 OSV News 보도를 캡처한 것으로, Debbie Hill이 촬영했다. OSV News는 미국 가톨릭 매체(OSV·Our Sunday Visitor)가 운영하는 국제 뉴스 서비스다.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격화되면서 중동의 종교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묘성당(聖墓聖堂)을 비롯한 주요 성지(聖地)가 전면 폐쇄되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졌다. 가톨릭신문과 바티칸 뉴스 등 국내외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이번 조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약 5년 만이자, 전쟁 상황으로 성지가 광범위하게 통제된 드문 사례다.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당국은 미사일 공격 등 안전 우려를 이유로 예루살렘 구시가지와 성묘성당, 통곡의 벽 등 주요 종교 시설을 폐쇄했다. 이번 조치는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 이후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면서 시행된 예방적 조치다.
성묘성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과 매장, 부활이 이뤄진 장소로, 전 세계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성지다. 이곳이 일반 신자들에게 닫힌 것은 코로나19 시기 이후 처음이다. 중동 분쟁으로 접근이 제한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성주간(聖週間)을 앞두고 성당 자체가 전면 폐쇄된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대표적으로 제2차 인티파다 당시에도 성지 접근이 크게 제한된 바 있다.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 점령에 맞서 벌인 민중 봉기로, 제2차 인티파다는 2000년부터 약 5년간 이어지며 자살폭탄 공격과 군사 충돌이 반복됐던 시기다. 당시에도 예루살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됐지만, 이번처럼 성묘성당이 장기간 전면 폐쇄되는 경우는 드물었다는 점에서 상황의 심각성이 부각된다.
이번 조치로 3월 말 시작되는 성주간(聖週間)과 부활 대축일(復活大祝日) 전례(典禮) 역시 정상적으로 거행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교회 측은 성직자 중심의 제한적 전례만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성묘성당은 가톨릭교회와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등 여러 교파가 ‘현상 유지(現狀維持, Status Quo)’ 협정에 따라 공동 관리하는 공간으로, 폐쇄 자체가 종교적·외교적 긴장을 동시에 자극할 수 있는 사안이다.
라마단 기간 무슬림의 예루살렘 출입까지 제한되면서 종교 간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지도자들은 성지 접근 제한에 대해 일제히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이란 전쟁 이전 순례자들로 붐비던 예루살렘 성묘성당 외관. 현재는 이스라엘 당국의 폐쇄 조치로 일반 신자와 순례자의 출입이 전면 금지된 상태다. 사진=Wikimedia Commons / Berthold Werner (CC BY-SA 3.0)
한편 레오 14세 교황은 3월 15일 성 베드로 광장 주일 삼종기도(三鐘祈禱)에서 중동 전쟁을 “잔인한 폭력”으로 규정하고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다. 이 호소는 레바논에서 벌어진 비극과 무관하지 않다. 이스라엘 탱크의 포격을 받은 레바논 남부 클라야 마을에 달려가 신자들을 보호하다 부상을 입고 9일 선종한 마로나이트교회 피에르 알라히 신부 사건이 교황 발언의 직접적 배경이 됐다. 교황은 “폭력은 결코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며 “대화의 길을 다시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예수성심성당을 방문한 자리에서 교황은 “하느님의 이름을 죽음을 불러오는 어두운 목적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며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은 언제나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성지 폐쇄가 단순한 안전 조치를 넘어 복합적인 파장을 낳고 있다고 분석한다. 성주간(聖週間)과 부활절 전례 축소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상징적 충격을 주고, 성지 접근권 제한은 종교 간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순례 중단에 따른 지역 경제 위축과 중동 정세 불안 심화도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그럼에도 성지 기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회 성지보호관구는 3월 21일 성명에서 “수도자들이 순례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매일 전례와 행렬, 기도를 중단 없이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수도자들은 지금의 상황을 ‘시련의 시간’이라 부르면서도 “대화와 외교만이 앞으로 나아갈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성지는 닫혔지만, 전 세계 신자들의 평화를 위한 기도는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