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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대구 토박이 청년의 ‘전남 목포’ 출마기(記)

21대 총선 당시 목포에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 “도전하고 부러져도”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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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청년 황시혁.

전례(前例)가 없었다면 선례(先例)를 만들겠다!”

 

한 달 전 서울 양천구의 식당에서 대구 청년 황시혁을 만났다. 1982년생 개띠. 대화를 나누자마자 깜짝 놀랐다.

대구 출신 천하람이 21대 총선 당시 전남 순천에서 출마해 화제가 됐던 기억 때문이었다.

그런데 황시혁이라는,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청년이 21대 총선 당시 전남 목포에 출마했다는 사실이다.

 

대구 청년이 "정권교체의 호남 교두보 마련"이라는 구호로 김대중 대통령의 성지(聖地)인 전남 목포에, 그것도 미래통합당 후보로 나섰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왜 천아람만 주목을 받았을까. 과문한 탓이겠지만 이 청년의 도전기가 궁금했다.

 

그리고 몇 주 뒤 기자의 책상 위에 책 한 권이 도착했다. 젊고 당당한 미래보수 황시혁()이란 책에 그 청년의 얼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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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 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문장을 이렇게 갈무리해 보았다.

 

<사실 정치의 시작엔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었어요. (중략) 지금의 정치가 우리의 삶과는 너무 삶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가 첫 번째 생각이었고, 두 번째는 '정권교체'라는 큰 목표가 있었습니다. 국민 삶에서 무조건 평등이 아닌 형평을 생각 하는 정부가 저에겐 대한민국 보수 정권이라 생각했던 것이죠. 그래서 21대 총선에서 첫 선거 출마를 계획했었습니다.>(65)

 

<제가 제일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으로 정했어요. 호남에서 공천신청 1번으로 목포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포는 제가 매년 100여 번 출장을 간 장소이기도 하고, 풍부한 관광자원을 가진 지역이었어요. 바다를 끼고 있어서 해양 산업에 유리하고, 중국이랑 가까워 관광객 유입의 편리성도 지니고 있으며, 해남 완도, 진도 등지의 관광지와 연계되는 교통 중앙지역으로 일제강점기 시대 등의 역사 건물도 많이 남아 있기에 전남 관광 중심 지역으로 만들 목표가 있었습니다.>(66~67)

 

청년 황시혁은 대구 사투리를 쓰는 목포의 미래통합당 후보로 나섰다. 김밥 집에서 김밥 한 줄 사서 길거리에서 뜯어 먹으며 선거운동을 했다. 소통능력, 공감능력에 자신이 있었다.

같은 회사 직원(IT 소프트웨어회사) 13명이 함께 목포에 내려갔다. 소위 '13인의 죄수들'이라 부르며 서로를 다독였다. “사람들이 저랑 커피 마시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있었다고 했다. 목포 지역에서는 ()이념적 사람이었으니까.

 

<제일 힘들었던 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몰랐다는 점이에요. 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선거가 정치인의 특별함이라고 생각해요.>(77)

 

<기억에 남았던 기쁜 일은 당시 목포시 당협에는 마이클 조던의 등 번호와 같은 23명의 책임당원이 있었습니다. (중략) 몰래 오셔서 박카스 딱 놓고 가셨는데, 누군지는 모르겠어요. 얼굴을 보면 안 된대요. 그러면서 후다닥 도망가셨어요. 한 서너 분 정도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79)

 

23명의 책임당원조차 그와 편하게 커피를 마신 분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한테는 그저 정치일 뿐이었지만 그들 삶에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었으니까.

 

황시혁의 선거공약은 사통팔달이었다. 영호남 진보와 보수가 함께 어울려 왕래할 수 있는 길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첫 번째로는 고속도로 사통팔달이었다. 고속도로의 끝이 목포다. 목포대교에서 바로 해남으로 연결해 교통의 요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두 번째 사통팔달은 외부로서의 자금유입, 돈의 흐름을 바랐다. 목포는 공무원 사회의 인맥 관계가 강한 동네다. 특별한 자생산업이 없다. 기업을 유치해 외부 투자를 만들어 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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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사통팔달의 확장 버전으로 총선 공약은 아니었지만, 대선 때 제가 주장한 공약도 있어요. 목포는 가로로 21km 세로로 23km 정도의 작은 도시입니다. 거의 주먹처럼 생겼는데, 거기에서 목포시 전역을 '면세화 구역'으로 지정해서 관광 쇼핑의 메카로 만들 생각이었어요. 교통의 요충지로 만들어 사람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머무를 수 있는 매력도를 만들어 내면 홍콩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기에, 외부인과 잦은 왕래를 통하여 '지역주의'를 타파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통팔달을 많이 주장했습니다.> (83)

 

총선 결과는 어땠을까.

 

2554표였다. 득표율 2%였다. 더불어민주당 후보(김원이)48.8%에 비해 초라한 완패였다. 그러나 낙담하지 않았다.

 

몇 명이나 저를 찍어주실 것인지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지지해 준 목포시민이 2554명이 정도 되는 것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했고, 이제 저를 지지해 준 목포시민들을 찾아가겠다. 이분들이 '나의 미래를 마들어줄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었죠.

도전하고 부러지고, 도전하고 상처받고, 도전하고 생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흘렀다. 청년 황시혁은 낯선 목포에서 겪은 경험 위에 고향인 대구에서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미래보수라는 단어를 많은 사람에 인식시켜주고 싶습니다. 미래보수는 '현재 보수가 깨진 틀을 깨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뜻입니다. 미래보수에는 뭐가 있을까요? 함께하는 따뜻한 시장경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꿈과 희망, 도전과 열정이 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사람들에게 꼭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미래보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입력 :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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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워팜 (2024-01-15)

    항상 응원합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정치. 함께 잘사는 우리 고향 만들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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