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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한국프로야구 출범 40주년 40장면 ] <23> 가을야구 끝내기 역전 홈런의 역사

호세, 김선진, 마해영, 나지완, 김강민…심정수, 유두열, 한유섬....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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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99년 10월 19일 자 기사 〈LG, 혈투 끝에 첫승〉이다.

끝내기 홈런 만큼 야구에서 짜릿한 장면이 또 있을까.

 

그 홈런이, 혈투를 마무리짓는 홈런이 가을야구(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에서 나왔다면, 그것도 연장전에서 나왔다면, 심지어 대타 끝내기 홈런이라면 그 기쁨은 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① 1999년 롯데 자이언츠 외국인 타자 호세의 끝내기 홈런은 포스트 시즌 사상 첫 역전 끝내기 홈런으로 야구사에 적혀 있다. 이 홈런은 플레이오프 5차전 9회말에 나왔다.

②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터져 나온 LG 트윈스 김선진의 홈런은, 교체 멤버(7회 대주자)로 나와 사상 첫 연장전 끝내기 홈런을 친 주역으로 기록된다.

③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9회말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마해영의 연속 홈런은 역대 최초의 ‘백 투 백(Back to Back)’ 끝내기 홈런으로 경기를 끝낸 케이스다.

④ KIA 타이거즈 나지완은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9회말에 끝내기 홈런을 쳤다. 마지막 7차전, 9회말 끝내기의 주인공이었다. 정말 마지막 순간에 터져나온 극적인 ‘한 방’이었다.

⑤ 2022년 SSG 랜더스 김강민의 끝내기 홈런은 대타(代打) 끝내기 홈런으로 40년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5차전, 9회말에 홈런이 나왔다.


잊히지 않는 ‘가을야구 끝내기 홈런’ 역사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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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99년 10월 18일자 기사 <호세 끝내기 3점포>


호세, 1999 플레이오프 5차전 끝내기 홈런

 

먼저 19991017일 열린 플레이오프 5차전 삼성-롯데 전에서 9회말 터져나온 롯데 호세의 3점 끝내기 홈런이 떠오른다. 6-5 역전승이었다.

호세로서는 1999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쳤고, 7차전에서 홈런을 치고 관중에게 오물 세례를 받은 후 방망이를 관중석에 던졌다. 비록 퇴장 당했으나 롯데는 우여곡절 끝에 역전승을 거두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다.

 

6차전으로 가는 역전의 한 방은 마지막 순간에 터져 나왔다. 9회말 3-5로 뒤져 패색이 짙어진 롯데의 마지막 공격. 선두 타자 김대익이 좌전안타로 2루까지 진루하며 기회를 만들었다.

박정태도 무려 5차례나 파울을 친 뒤 볼넷을 골랐다. 4번 타자 마해영이 삼진으로 물러나 11, 2. 이어 호세가 등장했다.

 

투수는 임창용. 7회부터 공을 던졌다. 볼카운트 2스트라이크 2볼 직후 144km의 몸쪽 공을 호세는 끝내기 홈런으로 만들었다. 포스트 시즌 사상 역전 끝내기 홈런으론 첫번째이자 통산 5번째 기록된 끝내기 홈런포였다. 당시 삼성 감독은 서정환, 롯데 감독은 김명성이었다.


롯데는 극적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한화 이글스에게 41패로 지고 말았다. 당시 한화는 정민철 구대성 송진우 이상목으로 이어진 4’ 투수진이 있었고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던 장종훈과 외국인 타자 데이비스와 로마이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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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99년 10월 19일 자에 실린 LG 김선진이 홈런 후 손을 번쩍 들고 있다. 교체멤버로 출전에 연장전 끝내기 홈런을 쳤다. 


김선진, 1994 한국시리즈 1차전 끝내기 홈런

 

LG 팬이라면 1994년을 잊지 못한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4승 전승으로 태평양 돌핀스를 누르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LG는 이후 우승 경험이 없다. 그래서 94년 기억이 소중하다.

 

그해 서울 잠실에서 열린 1차전에서 LG는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김선진의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했다. 그것도 교체 멤버로 나와, 연장전 끝내기 홈런이었다.

 

연장 11회말. 유지현(직전 LG 감독)이 범타로 물러가고 7회 대주자로 나왔던 김선진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1990년에 LG에 입단해 줄곧 1루 백업 겸 지명대타로 출장했다. 당시 1루는 김상훈, 서용빈이 버티고 있어 자리를 잡기 어려웠다.

김선진은 초구를 노려 태평양 투수 김홍집의 공을 왼쪽 담장으로 넘겨 버렸다. 대형 홈런이었다.

김선진의 홈런으로 3시간 40여분의 긴 승부를 마감할 수 있었고 이후 4승 전승으로 한국시리즈를 제패할 수 있었다.

 

LG 팬들에게 김선진은 알토란 같은 선수였다. 가끔 한대화, 서용빈을 대신해 장타를 날려주었고 1루수였음에도 빠른 발로 대주자 역할을 맡기도 했다. LG에서만 11년 현역으로 뛴 뒤 LGKIA에서 타격코치로 활약하다 지금은 동원대학교 야구부 코치를 맡고 있다.

 

이날 한국시리즈 1차전의 시구는 김영삼 대통령이 맡았다. 오후 559분쯤 도착한 YS 내외는 관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등장했다. 웃옷을 벗은 YS는 시구를 한 뒤 태평양 타자 김성갑 등과 악수를 나눴다. 때마침 비둘기가 하늘을 날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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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2년 11월 11일 자 1면에 실린 환호하는 마해영 모습이다.


마해영, 2002 한국시리즈 6차전 끝내기 홈런

 

LG에게는 한국시리즈 끝내기 패배의 아픔도 있다. 2002년 정규리그에서 LG4위로 간신히 준플레이오프에 나갔지만 현대 유니콘스를 누르고, 플레이오프에서는 KIA 타이거즈를 누르고 삼성 라이온즈와 만났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탓에 일정이 밀려 한국시리즈 1차전은 113일 열렸다. 삼성 김독은 김응용, LG 감독은 야신(野神)이라 불리던 김성근이었다.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다. 5차전까지 결과는 23, LG가 불리한 상황이었다.

 

6차전 승부를 가리기 위해 대구로 내려갔다.

1110일 대구 시민야구장에서 열린 6차전 8회초만 하더라도 LG의 낙승이 예상되었다. 9-5. 경기 후반에 4점을 극복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8회말 김한수(훗날 삼성 감독 역임)가 희생플라이로 1점을 만회해 9-6.

8회말 2사부터 LG는 마무리 이상훈을 올렸다. LG로서는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였다. 9회말, 삼성의 첫 타자는 9번 김재걸이었다. 종종 가을 야구 때 '미치는' 선수였지만, 그가 한방을 날릴 줄은 예상치 못했다. 대형 2루타를 날렸다. 1번 강동우가 삼진으로 물러나고 2번 브리또는 이상훈을 괴롭히며 볼넷을 얻었다. 11, 2. 그리고 이승엽이 등장했다. 한국시리즈 내내 침묵을 지키던 홈런왕이었다. 이날도 빈타에 그쳤었다. 이승엽은 이상훈의 2구째 밋밋한 슬라이더를 받아쳤고 공은 우중간 펜스를 넘어가고 말았다. 9-9 동점. 대구구장은 열기로 끓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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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P로 선정된 후 마해영이 샴페인 세례를 받고 있다.


다음은 이마양(이승엽-마해영-양준혁) 트리오의 정점이자 4번 타자인 마해영. LG가 급히 이상훈 투수를 내리고 최원호를 올렸다. 그가 소방수 역할을 해주길 바랐지만 마해영 역시 우측 펜스를 넘기는 끝내기 홈런을 치고 말았다. 거짓말 같은 끝내기 홈런이 터져나온 것이었다. 한국시리즈 MVP엔 끝내기 홈런을 친 마해영이 ‘사상 처음’ 만장일치로 선정돼 상금 1000만원을 받았다.

 

한국시리즈와 인연이 없던 삼성은 이날 끝내기 홈런으로 불운을 날려 버렸다. 지긋지긋한 한국시리즈 패배의 역사를 접고, 2000년대 최고의 구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승엽-마해영의 백 투 백홈런이 2000년대 삼성을 승승장구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반면 LG2002년 준우승 이후 ‘20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실패를 기록 중이다. 1994년에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28년 연속 무관(無冠)’을 기록 중이다.

 

김은식이 쓴 《한국프로야구 결정적 30장면》(2011)에는 이날 승부가 두 구단 10년의 운명을 갈랐다고 적었다.

 

<그해의 한국시리즈는 2000년대 초반의 대표적 강팀 삼성과 약팀 LG를 가른 분수령이 되기도 했다. 우승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구단과 우승하고 싶다는 마음만 앞세운 채 허둥거리다 얻은 성과마저 날려버린 구단의 차이였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성과를 내는 일보다, 그것을 챙겨 쌓아올리는 일이라는 점을 우리는 몇 해를 두고 지나서야 할게 되곤 한다.>(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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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9년 10월 26일 자 기사 <나지완 9회말 ‘끝내기 한방’>


나지완, 2009 한국시리즈 7차전 끝내기 홈런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나온 KIA 타이거즈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도 잊을 수 없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나지완은 15시즌 동안 227개의 홈런(타이거즈 출신 최다 홈런)을 쳤지만 가장 짜릿한 홈런은 2009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때린 끝내기 2점 홈런일 것이다.

 

그해 10255-5 동점이던 9회말 1. 타석에 선 KIA 나지완 앞엔 SK8번째 투수 채병용이 버티고 있었다. 앞서 4차전에서 나지완은 채병용에게 3타수 무안타(2삼진)로 약했다.

 

이날도 볼카운트 2-2로 몰렸다. 채병용의 6구째 공이 몸쪽 약간 높게 날아들었다. 143km 직구. 딱 소리와 함께 타구는 좌중간 펜스 상단에 꽂혔다. 대형 홈런이었다. 6-5 경기 끝. 나지완은 한국시리즈 MVP에 뽑혀 2500만원 상당의 승용차와 상금 300만원을 받았다. KIA의 최고참인 이종범(39)12년만의 우승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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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1월 8일자에 실린 SSG 김강민의 끝내기 홈런 직후의 모습이다. '대타 끝내기 홈런'은 역대 한국시리즈를 통틀어 처음으로 나왔다.

 

김강민, 2022 한국시리즈 5차전 끝내기 홈런

 

올 한국시리즈 SSG 랜더스와 키움 히어로즈와의 5차전도 끝내기 홈런이 극적으로 나왔다. 주인공은 40세 베테랑 김강민. 그것도 ‘대타 끝내기 홈런'’은 역대 한국시리즈를 통틀어 처음으로 나왔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SSG 김강민은 117일 키움과 벌인 한국시리즈 인천 홈 5차전에서 2-4로 뒤지던 9회말 무사 1·3루 기회에서 8번 타순의 대타로 나섰다. 상대 마무리투수는 4차전에서 세이브를 올렸던 최원태였다.

 

2스트라이크에 몰렸던 김강민은 3구째로 시속 144짜리 슬라이더가 높게 들어오자 강하게 받아쳤다. 타구는 115m를 날아가 왼쪽 담장에 꽂혔다. 54 승리를 결정짓는 한 방이었다.

 

김강민은 1111차전에서 9회 대타로 동점 솔로포를 터뜨려 역대 포스트 시즌 최고령 홈런의 주인공이 되더니, 엿새 만에 자신이 가진 기록을 401개월 25일로 갈아치우며 극적인 승리의 주역이 됐다.

 

이번에는 ‘가을야구 역전 결승 홈런’의 사례를 더듬어 보자.

 

① 2000년 플레이오프 4~6차전에서 두산의 심정수가 친 3경기 연속 결승 홈런은 한국야구사에 소중한 추억이다. 특히 6차전 홈런은 11회초 터져나온 역전 결승 홈런이었다.

② 롯데가 최동원을 앞세워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1984년을 기억한다. 최동원의 호투 만큼이나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유두열의 3점 뒤집기 홈런을 잊을 수 없다. 

③ 2018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두산에 뒤지던 SK가 9회초 최정의 동점 홈런, 13회초 한유섬의 연장전 역전 결승 홈런으로 시리즈를 종식시킨 기억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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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레전드 40인에 선정된 심정수

 

심정수, 2000년 플레이오프 4~6차전 연속 결승 홈런


2000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두산의 플레이오프 최종 6차전도 역전 홈런 기억이 남아 있다. 특히 두산 심정수는 플레이오프 4~6차전 연속 결승 홈런의 주인공이었다. 심정수는 OB 베어스에 입단해 2001년 현대 유니콘스, 2004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하다 2008년 은퇴했다.


2000년 플레이오프 6차전 당시 선발 투수는 두산 파머, LG 안병원이었다. 

8회말까지 4-3으로 두산이 끌려가고 있었다. 이날 28번째 포스트시즌 등판으로 김정수를 넘어 포스트시즌 최다등판 기록을 세운 김용수가 9회초 2사까지 잘 던지고 있었다. 이광은 LG 감독은 김용수를 갑자기 내리고 장문석을 등판시켰다. 한국야구사에 ‘이해할 수 없는 등판’이라는 이야기가 아직 나온다.


어쨌든 9회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기 위해 장문석을 올렸지만 안경현에게 동점 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경기는 4-4. 그리고 연장 11회초. 심정수가 장문석에게 결승 솔로 홈런을 기록했다. 그는 3게임 연속 결승 홈런을 쳤다.

 

심정수는 4차전에서 1회말 3점 홈런으로 5-1 승리의 주인공이었고, 5차전에서 역시 장문석을 상대로 8회말 2점 역전 홈런을 쏘아올려 승부를 뒤집었다. 심정수는 앞선 4타석에서 모두 범타로 물러났었다. 점수는 3-1, 두산의 승리였다.


플레이오프 6차전에서 이광은 감독이 심정수 타석에서 장문석을 올려 ‘리턴 매치’를 성사시킨 것은, 5차전 역전 홈런을 설욕하라는 주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심정수는 또다시 홈런을 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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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84년 10월 10일 자 기사 <유두열, 홈런 한발에 대역전극>


유두열, 1984 한국시리즈 7차전 역전 쓰리런 홈런


1984년 롯데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타온 역전 3점 홈런도 끝내기는 아닐지라도 끝내기 이상의 강력한 임팩트로 기억 속에 살아 있다.

 

유두열은 4-3으로 뒤지던 8회초. 1사 후 3번 롯데 김용희가 중전안타, 4번 김용철 역시 중전안타로 1, 3루를 만들었다. 이날의 히어로 유두열이 김일융의 3구째를 강타, 좌측 폴대 안쪽을 훌쩍 넘기는 역전 쓰리런 홈런으로 경기를 4-6으로 뒤집었다. 

 

당시 조선일보 1984년 10월 10일자 기사에 따르면 "(유두열이) 좌월 역전 홈런을 터뜨리며 게임을 뒤집어 엎자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박수, 잠실은 함성으로 진동했다"고 적고 있다.

라이온즈는 믿었던 투수 김일융이 홈런 한 방을 맞고 무너지자 황규봉을 내세웠으나 이미 때는늦었다.

야구 팬들은 최동원의 ‘헌신(獻身)’과 더불어, 비록 9회말 떠져나온 끝내기는 아니지만, 끝내기와 다름 없는 유두열의 역전 결승 홈런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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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섬, 2018 한국시리즈 6차전 연장전 역전 결승 홈런


2018년 11월 1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 간의 한국시리즈 6차전 경기에서 두산은 이용찬, SK는 켈리가 선발 등판했다. 켈리는 한국시리즈 우승 후 미국 MLB로 떠났고 이용찬은 FA(자유계약선수)로 NC 다이노스에 둥지를 틀었다.


9회초 SK 최정은 이전 타석까지 6푼의 타율로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었다. 점수는 3-4. 두산의 투수는 그해 최고의 피칭을 선보인 MLB 출신 린드블럼이었다. 최정은 2볼  2스트라이크에서 린드블럼의 포크볼을 쳐서 믿기지 않는 홈런을 만들었다. 극적인 동점 홈런이었다. 


그리고 13회초, 두산은 그해 10승 투수 유희관을 내세웠다. 두산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게 야구 전문가의 중론이다.

SK 김성현을 2루수 뜬공으로, 김강민을 유격수 땅볼로 잡아내며 2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한유섬이 등장했다. 한유섬은 유희관의 초구를 쳐서 우중간 홈런을 만들었다. 5-4 역전. SK는 9회말 에이스 김광현을 내세워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한국시리즈 MVP는 한유섬에게 돌아갔다.

입력 : 202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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