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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권의 책

서학, 조선의 성리학 유일체제를 강타하다!

정민 교수의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깐깐한 고전학자의 눈으로 본 천주교의 초기 역사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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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정민 지음, 김영사 펴냄

오래간만에 ‘벽돌책’을 하나 격파했다. ‘우리 시대의 고전학자’인 정민 한양대 교수의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는 주(註)와 참고도서 목록, 색인을 제외하고도 778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이다.

책의 제목처럼 서학(西學)의 도래는 주자학유일사상체제 아래 있는 조선을 관통한 일대 사변(事變)이었다. 실학자 성호 이익의 맥을 잇는 남인(南人) 학자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유통되던 서학은 이벽의 등장과 이승훈의 세례를 계기로 신앙으로 수용된다. 이미 체제 말기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던 조선 사회에서 서학은 그야말로 새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복음(福音)’이 되어 정권으로부터 소외받고 있던 남인 양반, 여성, 중인, 상민, 천인 등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지방으로까지 번져나간다. 심지어 (몰락하긴 했으나) 왕실의 여인이나 집권 노론가의 자제까지 이를 받아들인다. 진산사건이나 추조적발사건 등 몇 차례 ‘교난(敎難)’에도 불구하고 서학은 중국인 주문모 신부의 입국 등에 힘입어 서울과 지방에 나름대로 견고한 조직을 구축한다. 하지만 주자학유일사상체체 아래서 서학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고, 결국 1801년 신유박해라는 참사로 이어진다. 이 책은 바로 이 시기, 즉 1770년대 중반 서학의 태동기부터 1801년 신유박해에 이르는 초기 천주교회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가톨릭 신자가 쓴 이 나라 가톨릭의 초기 역사지만,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떠나서도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서학이라고 하는 ‘이단(異端)’의 사상, 특히 천주(天主)의 존재, 천당과 지옥, 예수의 강생(降生)과 같은 생소한 주장들을 초기 성리학자, 실학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나 하는 것이 눈길을 끈다. 서학을 둘러싼 성호학파의 분열과 갈등, 서학을 향해 달려가는 후학(後學)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안정복의 이야기 등은 ‘서학의 지적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흥미롭다. 조선 말기를 풍미했던 《정감록》 사상이 서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이 책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서학을 하나의 학문이 아닌 신앙으로 수용하는 것은 엄청난 결단이었다.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가치관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서 500년 묵은 사회질서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위대함과 나약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진산사건의 윤지충, 권일신 등을 비롯해서 1400대의 곤장을 견뎌낸 박취득, 온갖 잔혹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천국(天國)가는 즐거움’으로 순교(殉敎)의 길을 택한 장삼이사(張三李四)들도 있지만, ‘최초의 영세자’로 지금까지도 추앙받고 있는 이승훈과 그의 동생은 ‘신앙인이 그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의 추태를 보인다. 

존경받는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경우는 더 복잡하다. 초기 ‘가(假)성직제도’ 아래서 서학의 핵심 인물로서 주문모 신부에 대한 고발이 들어오자 급히 달려가 그를 탈출시키기까지 했던 정약용은 신유박해 당시에는 ‘정치적 생존’을 위해 배교(背敎)한다. 18년간의 유배 생활에서 돌아온 후에도 그는 정치적으로 재기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속에서 천주교에 얽힌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흔적을 지워 내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말년을 앞두고 그는 자신이 간여했던 서학의 역사, 즉 《조선복음전래사》를 집필한다.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이 책을 바탕으로 조선천주교의 초기 역사를 정리한 다블뤼나 달레 같은 프랑스 신부들은 정약용이 말년에 이르러 다시 천주교로 돌아왔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유박해 때 순교한 정약종의 가족을 맏형인 정약현을 비롯한 다른 형제의 가족들(정약용의 가족을 포함해서)이 몹시 구박했다는 이야기는, 체제 안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인간들의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내포 지역에 천주교를 뿌리내리게 한 주역이면서도 탄압이 가해지면 바로 배교했다가 풀려나면 다시 선교와 신앙공동체의 재건에 힘쓰던 끝에 처형당한 이존창이나, 나무랄 데 없는 신앙인이었지만 신앙의 자유를 위해 서양세력의 무력개입을 호소했던 ‘백서(帛書)’를 중국으로 보내려다가 대역부도(大逆不道)로 능지처참된 황사영의 경우는 또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한 인간의 삶도 이렇게 일도양단할 수 없는데, 역사를 일도양단하는 것은 얼마나 교만한 짓일까?

 

정조가 남인 채재공을 중용하자, 80여년 만에 정계 복귀의 길이 열린 남인들이 이내 대채(大蔡)와 소채(小蔡), 채당(蔡黨)과 홍당(洪黨), 공서파(攻西派)와 신서파(信西派)로 나뉘어 ‘과부들의 싸움’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씁쓸하다.

책을 읽는 내내 한 가지 안타까웠던 것은 서학이 던진 충격이 지적 자극이나 신앙의 발아(發芽)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조선 체제의 근본적 쇄신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북학파인 박제가의 경우 서양인들을 초빙해 ‘특구(特區)’에 거주하게 하면서 건축, 광산 채굴, 유리 제조, 화포 제작, 관개, 수레 제조, 선박 건조 등을 맡기자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학을 신앙이나 이념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이용후생의 관점에서 수용했다면, 이 나라의 역사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고전을 통해 조선시대 지성사를 탐구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크고 작은 책들을 많이 써온 저자는 이 책에서 학문하는 사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가톨릭 신자인 저자는 전체적으로 ‘신자’이기보다는 ‘학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써 내려간다. 저자는 가톨릭계 내부의 기록들을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그리고 당시의 수사‧재판기록인 《추안급국안》 《추국일기》 같은 공식 기록,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송담유록》(김세정 지음), 《눌암기략》(이재기 지음) 같은 개인문집, 족보 등과 꼼꼼하게 대조하면서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바로잡고,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냈다. 

저자는 특히 가톨릭계가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의 배교 사실을 애써 덮으려 하는 것이나, 최초의 가톨릭 신자 이벽의 저작으로 존중되어 온 《성교요지》가 실은 이벽 사후 80여년 후 중국에서 활동한 개신교 선교사 윌리엄 마틴 목사의 《인자신법 상자쌍전》을 그대로 베낀 1920년대의 위작(僞作)이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이를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가톨릭계의 위선과 태만을 매섭게 비판한다. ‘진영(陣營) 논리’에 따라 흰 것을 검다고 하다고 검은 것을 희다고 우기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참 상쾌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입력 : 202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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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lt;박정희 바로보기gt;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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