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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전두환 비석 밟기' 하면서 '산부인과는 일제 잔재' 주장하는 것은 모순

'전두환 비석 밟기'로 정치성향 판단...기독교도 색출 위해 예수상 밟게 했던 일본의 후미에(踏み絵) 연상케 해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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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후보는 지난 10월 22일 광주 5.18 묘지를 방문했을 때에 보란듯이 ‘전두환 비석’을 밟았다. 사진=TV조선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11월 22일 “산부인과는 여성을 부인이라고 불렀던 일제(日帝) 잔재”라면서 “여성건강의학과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그런 이재명 후보는 지난 10월 22일 광주 5.18 묘지를 방문했을 때에 ‘전두환 비석’을 밟았다. 그는 “올 때마다 잊지 않고 꼭 밟고 지나간다”며 “(오늘도) 그걸 피해 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후 보란 듯이 기념비에 한 발씩 천천히 발을 올린 뒤 두 발로 눌렀다. 그는 “윤석열 후보도 지나갔어? 존경하는 분이면 밟기가 어려웠을 텐데”라고 씩 웃기까지 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는 광주 5.18묘지에 갔을 때 ‘전두환 비석’을 밟으냐 밟지 않느냐를 보고, 5.18에 대한 인식 내지 정치성향을 재는 괴상한 풍습이 생겼다. 

‘전두환 비석’은 1982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 부부가 전남 담양군 고서면 성산마을에서 민박 한 것을 기념해 세워진 비석이었다. 광주·전남민주동지회라는 단체가 1989년 이 비석을 부순 후 광주 망월동묘지 5.18 묘역(구묘역) 입구 바닥에 파묻어 ‘전두환에 대한 분노’를 상징하는 장치로 만들었다.

이재명 후보 뿐만 아니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동연 전 부총리,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전두환 비석’을 밟았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5.18묘지에 가서도 ‘전두환 비석’이 있는 구묘역은 찾지 않았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전두환 비석’을 밟지 않았다.

‘전두환 비석 밟기’를 보면서 생각나는 게 있다. 바로 후미에(踏み絵)다. 후미에는 일본 도쿠가와 막부가 기독교를 탄압하면서 기독교 신자(기리시탄)을 색출해내기 위해 백성들에게 예수나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목판이나 금속판을 밟도록 한 것을 말한다. 이를 거부하거나 머뭇거리는 자는 기독교 신자로 몰려 투옥, 처형당했다. 투옥이나 처형에 이르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질 때까지 모진 고생을 해야 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누군가의 사상을 검증한다든지, 어떤 집단 내에서 반대의견을 가진 자를 색출하기 위한 장치나 행위들을 ‘후미에’라고 한다. 

‘전두환 비석’ 밟기는 5.18에 대한 인식이나 정치성향을 따져보려는 ‘한국판 후미에’다. ‘후미에’가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라 그 이전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나온 것이니, ‘일제’ 잔재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일본’ 잔재인 것은 분명하다.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도 지나갔어? 존경하는 분이면 밟기가 어려웠을 텐데”라고 말했던 것은 ‘전두환 비석 밟기’의 성격이 ‘후미에’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5.18을 기리건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건 간에, 그것을 하필이면 낡고 저질스럽고 파쇼적인 일본의 유산인 ‘후미에’라는 방식으로 해야 할까? 그런 일을 서슴없이 행하면서 산부인과를 ‘일제 잔재’니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남의 돌잔치 사진에 보이는 지폐를 가지고 “일본 엔화”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입력 : 20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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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lt;박정희 바로보기gt;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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