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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989년 12월 31일 국회 ‘전두환 청문회’

5공 특위 간사 장경우 전 의원의 회고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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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31일 국회 5공-광주특위 연석회의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 야당 의원들이 단상으로 몰려가 불성실한 답변을 중단하라고 고함 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기자는 최근 장경우 전 의원을 만났다. 그는 ‘한국캠핑캐라바닝연맹’을 설립한 후 27년째 ‘총재’ 직함을 놓지 않고 있다.

 

장 전 의원은 민정당 전국구로 11대 국회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12대 국회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으나 13대 경기 안산·옹진 지역구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3당 합당으로 당적이 민자당으로 바뀐 뒤 199214대 총선에서 다시 당선됐다.

 

그는 1989123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회 5공 비리 특위에 증인으로 섰을 때 여당인 민정당의 특위 간사이자 당 원내 부총무였다. 당시 총무는 이한동(작고)씨.

장 전 의원은 월간조선12월호와 인터뷰를 가졌다. 지면이 부족해 싣지 못했던 전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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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우 전 의원(한국캠핑캐라바닝연맹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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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231일 드디어 백담사가 국회에 도착했다.


민정당 장경우 의원은 동료 이민섭 의원과 함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있는 국회 의사당 2층 귀빈실로 들어갔다.

들어서니, 양쪽으로 경호원들이 쫙 서있고, 과거 민정당의 고참 의원들이 옆에 앉아있고, 언제 그렇게들 왔는지 여기저기 의원들이 잔뜩 긴장한 채 서 있는 게 아닌가!

 

특히 과거에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각별한 애정을 확인받았던 사람들이 모두 와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데 완전히 대통령의 국회방문을 방불케 했다.

막상 대면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백담사에 오래 있은 탓인지 유난히 하얀 피부가 더 하얀 게 그 분위기 속에서 묘하게 압박감을 주었다.


저는 5공 특위를 담당하고 있는 장경우 의원입니다.”


!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앉으세요!”


이제 곧 청문회가 시작됩니다. 문은 이 쪽에 나있고, 가서 이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이 자리에는 위원장이 있고 그 밑으로 보조하는 사무처 직원이 있으며 그 밑으로는 증인을 보호해줄 수 있는 변호사 석이 있습니다. 이양우 변호사가 앉을 장소입니다. 방청석은 이쪽으로 쭉 있습니다.”


이어 국회 청문회 선서 이야기를 했다.

(이 대목에선 약간의 보충설명이 필요하다. 당시 국회 ‘광주 특위’ 위원장은 재야 운동가로 활동하다 13대 국회의원이 된 문동환 의원이었다. 5공 인사들에게 ‘재야 운동권’은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 있었고, 그가 아무리 특위위원장이라고 해도 그 앞에선 결코 선서를 할 수 없다는 강경 입장이었다. 장경우 의원이 고민 끝에 해법을 찾았다. ‘위원장’이 아닌 ‘국민’을 향해 선서하는 식으로….)


들어가시면 위원장이 ‘증인 올라오시오’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그러면 올라가셔서 위원장 쪽으로 서시지 말고, 방청석, 그러니까 국민을 향해 오른손을 들고 준비한 선서문을 읽으셔야 합니다.”


순간 가만히 듣고 있던 전 전 대통령이 장 의원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리고는 옆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원래 그런 것 안 하기로 했잖아?


이 말에 갑자기 모든 사람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듯 한결같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할 수 없었다. 어차피 그에게 맡겨진 십자가였다. 장 의원의 말이다.


웬만하면 우리도 증인 선서만은 없게 해보려고 바로 오늘 아침 이 순간까지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결론이 나질 않았습니다. 결국 선서를 하긴 하되, 국민을 향해서 한다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긴 설명을 마치고 나니, 전 전 대통령은 체념한 듯 알았어요!” 한 마디를 내던지고는 자세를 조금 고쳐 앉는 듯 하더니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 고생들 하시는구먼!내가 장경우 의원 열심히 잘 하신다는 얘기 들었소, 그리고 이민섭 의원도 오랜만이구먼. 그런데 두 분 말이요. 내가 이거 한 가지만 얘기하겠소전투에는 이기고 전쟁에는 지는 법이 군대에서는 있소내 오늘 이 한 가지만 말하고 싶소. 그것을 잊지 마십시오.”


알았습니다.”


장 의원은 일단 방을 나와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한 마지막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 실컷 전투에서 잘 싸워놓고 막상 전쟁에서 지는 일이 없게 하라는 말일 터인데, 그 상황에서 그 말은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을까?


큰 전쟁에서 이기려면 내가 이 정도의 수모는 얼마든지 당할 수 있다는 자기위안이었을까?

아니면 지금까지 여소야대 정국에서 잘 버텨와 놓고는 이제 와서 나를 청문회에 세우는 것은 당신들이 전쟁에 진 것과 같다는 말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한 사람의 정치인에게 던져보는 훈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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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31일 국회 5공-광주특위 연석회의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마침내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담사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고함과 정회, 다시 고함소리, 정회가 반복되었다.


그러나 ‘백담사 청문회’는 어차피 단 하루만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고 밤 12시를 기해 모든 것은 끝나는 상황이었다.


드디어 분침이 자정 12시를 향하고 있는가 싶은 순간!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막 혼자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원고를 다 읽자 지체없이 대기실로 향했다. 그리곤 12시 정각을 기해 기자들을 불러 못다 한 얘기를 마저 읽어내려가고는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그리곤 끝이었다. 그날, 1989년 마지막을 불꽃처럼 장식했던 ‘백담사 청문회’는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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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31일 백담사에서 머무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회 5공-광주특위 연석회의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을 마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입력 :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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