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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의 정치학, 윤석열은 왜 박관현을 참배했을까?

김형석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대한민국역사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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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역의 모습이다. 사진=조선일보DB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7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이날 윤석열은 5.18 민주묘지 입구인 ‘민주의 문’에서 방명록을 작성한 후, 참배단 앞에 헌화하고 분향하며 묵념하면서 오월 영령의 넋을 위로했다. 이어 발걸음을 묘역으로 돌려 박관현·홍남순·김태홍 열사의 묘비를 차례로 어루만졌다.

 

윤석열의 5.18 묘역 참배가 주목을 받는 것은 두 말할 나위없이 그가 현재 대선 국면에서 선두를 달리는 주자이면서, 동시에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5.18 묘역 참배는 진보진영 정치인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지난해 8월 19일 김종인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의 참배 이후 보수진영 정치인들에게도 호남 공략을 위한 필수적인 방문 코스가 되고 있다.

 

당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5.18 민주묘지 참배단 앞에 무릎을 꿇고 참배하는 모습은 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유대인 추념비’ 앞에 무릎 꿇은 모습을 연상시키면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이 같은 김종인의 행동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호남인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올 4월 서울특별시장 보궐 선거를 압승한 요인의 하나로 분석되기도 한다.


‘2015년 인구주택센서스’에 따르면, 서울 인구를 출생지별로 분류할 때 서울 출신이 48%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호남(15%), 영남(13%)의 순이다. 그러나 부모나 조부모의 출신지를 감안하면 호남 출신의 비율이 더욱 높아져서 수도권 인구의 30%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보수 정치인이 전국적인 정치 지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5.18 문제에 대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임에는 틀림이 없다.

 

정치인들이 5.18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그들의 생각은 누구를 참배하는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대통령 퇴임 후 2007년 5월 22일 5.18 묘역을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은 홍남순(1912~2006) 변호사의 묘를 찾았다. 대통령 재임 시절 망월동 묘역을 국립묘지로 승격시키고, 5.18 특별법을 제정한 김영삼은 그날 "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두고 살아온 만큼 5.18 희생자와 동지들을 누구보다 존경한다. 그 뜻을 함께 하겠다"라고 말했다. 민주주의 신봉자 김영삼과 홍남순 변호사와의 인연을 내세우면서 5.18의 성격을 민주화운동으로 정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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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2일 처음으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헌화분향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한편 2018년 10월 17일 보수정당의 대표로서는 김종인에 앞서 5.18 묘역을 찾은 김병준 자유한국당('국민의 힘'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은 김의기의 묘소를 참배했다. 1959년 경북 영주에서 출생한 김의기는 1980년 당시 서강대 무역학과 학생으로서, 5월 30일 종로5가 기독교방송국 6층에서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뿌린 뒤에 떨어져 사망했다. 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5.18 비하 발언'으로 곤란을 겪던 김병준은 김의기를 참배함으로써, 5.18이 광주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항변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5.18은 단순한 민주화운동이 아니다. 4.19 이후 발생한 다른 민주화운동과는 분명히 다른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비록 엿새동안이었지만 대한민국 공권력으로부터 이탈하여 ‘해방구’가 되는 미증유의 사태를 경험하였고, 그 과정에서 193명(민간인 166명, 군인 23명, 경찰 4명)의 사망자와 부상자 3,139명이 발생한 사실상의 내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5.18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폭동’ ‘내란’ ‘민중항쟁’ ‘민주화운동’ 등으로 성격 규정이 바뀌어 왔다.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역사의 진실을 놓고 진상규명조사와 재판이 진행 중인 미완의 사건이다. 1980년 5월로 돌아가보자. 계엄군이 물러난 광주의 진로를 놓고 강경파(항쟁파)와 온건파(투항파) 간에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다. 시민들의 입장도 계엄군의 강경 진압에 맞서 싸우는데는 일치하였지만, 방법론을 두고서는 ‘최후의 1인까지 싸워서 광주공화국을 건설하자’는 강경파와 ‘비 폭력 투쟁과 무기 반납’을 주장하는 온건파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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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0일 광주민주화운동 사흘째 날의 긴장감 도는 광주 금남로 모습이다. 사진=조선일보DB

 

17일 윤석열의 일정은 고도로 정제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는 이날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의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서 참배한 후에 곧장 옛 망월동 묘역인 민족민주열사 묘역으로 이동해서 이한열 열사의 묘를 참배했다. 그리고 북구 대촌동의 인공지능 사관학교를 방문한 후에 5·18 민주화 운동 최후 항쟁지인 동구 금남로의 옛 전남도청 앞에서 참배한 뒤 충장로 일대에서 광주 시민들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이 윤석열의 광주 방문 일정은 철저히 5.18을 중심으로 짜여졌다. 국립 5.18 민주묘지 - 망월동 묘역 - 금남로 전남도청 앞 광장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5.18의 가장 핵심적인 순례의 길이다. 그 가운데 박관현 - 홍남순 - 김태홍 - 이한열로 이어지는 참배 순서 또한 그날 윤석열이 던진 메시지와 맛물려서 이미지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이날 윤석열의 일정에서 가장 주목되는 인물이 박관현(1953~1982)이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 여당 인사들은 5.18묘역을 방문할 때면 의례히 윤상원의 묘소를 참배했다. 5.18의 마지막 순간까지 항전한 인물로 추앙받으며 노동운동가 박기순과의 영혼 결혼으로 유명세를 치루는 윤상원을 찾아가서 이들 (가상)부부를 기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이 5.18 순례의 클라이막스로 여겨졌다. 정부의 5.18 기념식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야당 인사조차 5.18 묘역을 방문할 때는 윤상원의 묘소를 찾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날 윤석열의 선택은 윤상원이 아니라 박관현이었다. 박관현은 5.18 당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동안 전남 도청 앞 광장에서 ‘광주지역 10개 대학 연합 민족·민주화 대성회’를 주도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분수대의 영웅’ ‘광주의 넋’으로 남아있다. 특히 그가 16일 밤에 안병하 전남 도경국장과의 협의 하에 벌인 횃불 대행진은 평화적인 시위로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점에 자리한다.

 

다음 날 5.17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자 뛰어난 대중 연설과 지도력으로 ‘광주의 아들’로까지 불린 박관현은 총학생회 간부 2, 3명과 함께 예비검속을 피해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광주항쟁이 남긴 좌절만큼이나 큰 고통 속에 여수 돌산을 거쳐, 서울의 공장지대를 전전하면서 도피 생활하던 중 1982년 4월에 체포되었다. 이후 광주지방법원에서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로 징역 5년형을 선고 받고  광주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에 40일 간의 단식 투쟁을 벌이다가 1982년 10월 12일 사망하였다.


여기에서 윤상원과 박관현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박관현은 대한민국의 국가 체제와 법 질서 하에서 민주화를 주장한 인물이었다. 그에 비해 윤상원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민중혁명을 주장하면서 시민군을 통한 결사 항전을 부르짖었다. 박관현이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라면, 윤상원은 민중 항쟁의 상징이다. 윤석열이 뒤이어 찾아간 홍남순 변호사 역시 5월 22일 결성된 5.18 수습대책위원회 멤버로서 정시채 부지사와 목사·신부·변호사 등이 모여 ‘더 이상의 사태 악화 방지’를 목표로 계엄군과 협상하고 시민을 설득하는데 앞장 섰던 온건파 지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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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조선일보DB

 

이렇게 5.18 순례를 마친 윤석열은 ‘광주의 한’을 자유민주주의 가치로 승화시키고 경제 번영으로 이어지게 할 것을 강조했다. “국민과 후대를 위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토대로 광주와 전남이 이제 고도 산업화를 통해 경제 산업화의 기지가 되고 발전하는 모습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는 메시지는 국민 대통합을 강조하는 윤석열이 광주를 향해 외친 미래의 비전이었다. 이때  윤석열이 발언 중 눈시울을 붉히면서 울먹이자 지지자들은 한 목소리로 “울지마”라고 외쳤다. 현장에 있던 시민들과 이심진심으로 교감하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그날의 보도를 접하면서 대선 주자 윤석열의 첫 번째 광주 방문은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모름지기 정치 지도자는 민심을 쫓아 유랑하기보다 국가의 장래를 위한 비전으로 승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5.18 정신을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민주화 운동으로 정의하고, 국민 대통합을 위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 윤석열의 퍼포먼스는 바람직한 행보였다. 그래서 이번 윤석열의 5.18 묘역 참배가 향후 호남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이 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을 앞둔 정치인들의 행보도 바빠질 것이다.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도약을 노리는 보수진영 정치인들의 광주행도 이어질 것이다. 과연 그들은 누구를 찾아 참배하고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는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같은 정치인들의 메시지가 하나되는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어야지, 또 다른 분열을 야기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필자가 지난 17일 윤석열의 광주 방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이다.

입력 : 202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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