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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이해하려면 ‘이병철 컬렉션’을 알아야!

이건희 회장 선친 이병철 회장, 33세부터 미술품에 심취… 代 이은 미술품 사랑, 그리고 애국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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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10주기 추모식에 유가족 대표로 참석해 추모사를 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컬렉션이 화제가 되고 있다. 대다수 언론은 이건희 회장 미술품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정작 그의 선친인 이병철(1910~1987) 삼성그룹 창업 회장에 관한 이야기는 다루지 않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에 관한 심미안(審美眼)은 선친 영향을 받았다는 게 정설이다. 이병철 회장은 미술품을 보는 안목이 높았다. 일설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부인이자 며느리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에게 기십 만원을 쥐어주고 미술품을 사오도록 시켰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은 1986년 발간한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자신의 ‘미술 편력(遍歷)’을 자세히 기록했다. 자서전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은 33세 때부터 미술품 수집을 시작했다. 책과 회화는 물론 신라토기, 조선백자, 고려청자까지 두루 모았다. 이 밖에 불상, 철물, 석물, 조각, 금동상에도 심취했다. 그렇게 모은 미술품이 2000여 점이며, 이중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게 50여 점이었다. 


이병철 회장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은 ‘청자진사연표형주자(靑磁辰砂蓮瓢形注子·국보133호)’와 ‘청자상감운학모란국문매병(靑磁象嵌雲鶴牡丹菊紋梅甁·국보 68호)’이다. 《호암자전》의 일부다.


<표형주자는 동자(童子)와 연꽃잎의 정교함, 진사채유(辰砂彩釉)의 넘치는 기품, 뛰어난 기형(器形)의 조화미, 그것들이 혼연히 일체가 되어 풍겨내는 분위기는 뭐라고 형용하기 어렵다…. 이 세계 최고 명품 의 주자는 일본에 밀반출되었던 것을 파격적인 거금을 주고 사들인 것이다. 그 당시 가격으로 일본에서는 1백만 불로 평가되었다. 임금을 네 번이나 바꾼 고려조의 절대적인 권신(權臣) 최충헌의 손자인 최항의 강화도 무덤에서 묘지와 함께 출토된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매병(梅甁)에 대해선 이렇게 평가했다. 


<매병은 상감이나 문양이나 비취색을 띤 유약의 빛이 비길 데 없이 밝고 부드러워, 우아한 기품과 안정감을 자아낸다. 미국이나 일본 등지로 흘러나간 것까지 함께 생각하더라도 고려청자로서는 최고의 일품일 것이다. 고려청자는 송나라 자기(磁器)와 동시대의 것이지만, 그 제조 방법은 다르다. 북송(北宋) 자기는 800도로 구웠으나, 고려청자는 1200도의 고온으로 처리했다. 그러므로 고려자기의 일품은 5000개나 1만 개중에서 한 개 나올까 말까할 정도로 희귀한 것이다.>


그가 매병에 상당한 식견을 갖추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어지는 이병철 회장의 설명이다.


<국보·보물은 이 두 점 외에도 용두보당(龍頭寶幢), 가야금관, 청동검, 청동은입사합(白銅銀入絲盒), 평저주형토기(平底舟形土器), 토이(土履), 태환이식(太環耳飾), 단원(檀園)의 군선도(群仙圖) 등이 있다.>


절에서 행사가 있을 때 그 입구에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둔다. 장대 모양의 이 당 꼭대기에 용의 머리모양이 장식되어 있어 용두보당이라 불린다. 청동은입사합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뚜껑이 있는 그릇(합)이다. 고려시대에 유행한 은을 박아 장식(은입사)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한 그릇이다. 평저주형토기는 배 모양을 본 뜬 토기이며, 토이는 신발 모양의 토기를 말한다. 태환이식은 금으로 만든 귀고리다. 단원의 군선도는 조선 3대 화가 중 한 명인 단원 김홍도(1745~?)가 그린 그림이다.


이병철 회장은 이 컬렉션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희사하기로 결심했다. 그 이유에 대해 “비록 개인의 소장품이라고는 하나 이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것을 영구히 보존하여 널리 국민 누구나가 쉽게 볼 수 있게 전시하는 방법으로는 미술관을 세워서 문화재단의 사업으로 공영화하는 것이 최상책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1982년 경기도 용인에 이병철의 호(號)를 딴 호암미술관이 설립됐다. 이병철 회장이 모은 미술품 상당수는 현재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위치한 리움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이병철-이건희 부자(父子)는 미술품 애호가였다. 그들은 그것을 사유화하지 않고 국민에게 환원함으로써 문화발전에 보탬이 되는 길을 택했다. 대(代)를 이은 미술품 사랑을, 대를 이어 애국으로 승화시킨 셈이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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