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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 입양한 최재형 감사원장 "입양, 진열대에 있는 아이들을 물건 고르듯 고르는 게 아니다"

《월간조선》이 심층 보도한 최재형 원장 부부의 '감동 입양스토리' “내가 받은 상처 많아 아들을 일반 학교에 넣고 싶지 않았다”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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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꿈을 또 꾸었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딸 두 명의 엄마라 할 때, 제 맘속에는 항상 딸들뿐 아니라 아들들이 내게 있을 거 같은 그 당시로는 이상한 확신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알 수도 없었던 소망을 주께서 주셨던 거 같아요. 우리 막내 ○○가 중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손목이 부러지기 전까지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의 마음을 만지셨습니다. ○○가 어릴 적 엄마를 쳐다보던 그 눈길에서 저는 주님이 날 보시면 이리 사랑스런 눈으로 보실 거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아들을 보내려니 허전합니다. 날개를 달고 넓은 곳으로 비상하려는 우리 아들 축복해주며 웃으며 보내주렵니다.〉 (최재형 감사원장의 부인 이소연씨가 페이스북에 쓴 글)

문재인 대통령의 '입양 취소 또는 입양아 교체'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최재형 감사원장의 입양 관련 발언이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 

  

아내와의 사이에서 딸 둘을 낳은 최재형 원장은 판사 시절이던 2000년과 2006년 작은 아들과 큰 아들을 차례로 입양했다. 입양 당시 갓난아기와 11살이었다. 최재형 원장은 2011년 《법률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입양과 관련한 소신을 밝힌 적이 있다.

  

당시 인터뷰에서 최 원장은 “입양은 진열대에 있는 아이들을 물건 고르듯이 고르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상태가 어떻든 간에 아이에게 무언가를 기대해서 입양을 해서는 안된다. 입양은 말 그대로 아이에게 사랑과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아무런 조건없이 제공하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아이들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랑이라는 웅덩이에 풍덩 빠져서 자라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이 고아원같은 시설이나 위탁 부모에 의해 육아되는 것보다는 완전한 가정의 소속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입양이 권장돼야 한다”고도 했다.

  

《월간조선》(2020년 10월호)은 최재형 감사원장을 심층 분석한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장문의 기사에서 입양 관련 대목을 발췌해 옮긴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심층탐구

 

‘인간 최재형 감사원장’, 그 삶의 궤적 (기사 전문)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2010100012&page=1

 

 

 

(전략) ...두 아들의 ‘입양’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재형 감사원장의 오랜 친구인 강명훈 변호사는 기자에게 “최재형 원장을 말할 때 기독교와 관련해 꼭 얘기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는데, 그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입양’이었다.
 
  최재형 원장 부부에게는 두 딸이 있고, 그 밑으로 아들 둘을 각각 2000년(차남)과 2006년(장남) 입양했다. 흔히 ‘가슴으로 낳아 기른다’고 표현하지만, 이는 쉬운 게 아니다. 게다가 최재형 원장 부부는 한 명이 아닌 둘을 자녀로 받아들였다. 여기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최재형 원장의 부친 최영섭 대령이 말하는 ‘입양 스토리’다.
 
  “며느리(이소연씨)가 서울 동대문 근처에 있던 고아(孤兒)들을 기르는 기관에서 봉사를 했어요. 거기서 핏덩어리를 맡아 1년 정도 봉사 차원에서 키웠는데, 그때 정이 많이 들었나 봐요. 그래서 결심을 한 거죠. 그렇게 받아들인 아이가 지금의 둘째 아들이에요. 내가 재형이한테 그랬어요. ‘네 나이가 이제 50줄에 접어드는데 괜찮겠냐’고요. 재형이 부부는 이미 결심을 굳힌 것 같더라고요.”
 
  최영섭 대령은 손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재형이 첫째 아들이 나처럼 해군에 입대했잖아요. 근데 이 녀석이 사격에서 1등을 했다고 그러더라고. 나중에 갑판병으로 배정될 때에도 10등 이내로 들어갔다고 하대요. 손자 두 놈이 나를 좋아해요.(웃음) 그중 큰놈이 나한테 ‘할아버지 제가 군대에서 배운 게 있어요’ 그러대. ‘뭐냐’고 물었더니 ‘인생을 사는 데 노력한 만큼, 땀 흘린 만큼 리워드(reward·보상)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대요. 큰놈은 손재주가 있어서 지금 패션 디자인 계통에서 일하고 있어요. 재형이 부부가 두 아들을 살뜰하게 키웠어요. 그건 내가 너무 잘 알지.”
 
  최재형 감사원장 부부가 ‘가슴으로 낳은’ 두 아들에게 지극정성이었다는 건 여러 계통으로 확인이 된다. 과거 최재형 원장 부부와 서울 목동 아파트에서 함께 살았던 한 법조인의 회고다.
 
  “최재형 원장은 제가 살던 아파트 바로 아래층에 사셨어요. 막내아들이 초등학생 때인가, 아마 그랬을 거예요. 하루는 막내아들이 등교하면서 준비물을 두고 집을 나섰나 봐요. 그랬더니 (최재형) 원장님 부부가 집 밖에까지 나와 챙겨주더라고요. 모르는 사람들이 봤으면 그저 ‘친아들 챙겨주고 있겠거니…’ 했을 거예요. 최재형 원장 부부는 아들들에게 헌신, 그 자체였습니다. 아마 ‘가슴으로 낳았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아들을 보내려니 허전합니다”
 
  최재형 원장의 차남은 지난 8월 17일 육군에 입대했다. 그래서일까. 최재형 원장 카카오톡 계정에는 ‘○○야 힘내라’라고 써 있다. 여기서 ‘○○’(이)가 바로 최 원장 차남이다. 극진한 ‘아들 사랑’은 아내 이소연씨의 페이스북에서도 확인된다. 2014년 2월 25일 이소연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중 한 대목이다.
 
  〈즐거운 꿈을 또 꾸었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딸 두 명의 엄마라 할 때, 제 맘속에는 항상 딸들뿐 아니라 아들들이 내게 있을 거 같은 그 당시로는 이상한 확신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알 수도 없었던 소망을 주께서 주셨던 거 같아요. 우리 막내 ○○가 중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손목이 부러지기 전까지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의 마음을 만지셨습니다. ○○가 어릴 적 엄마를 쳐다보던 그 눈길에서 저는 주님이 날 보시면 이리 사랑스런 눈으로 보실 거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아들을 보내려니 허전합니다. 날개를 달고 넓은 곳으로 비상하려는 우리 아들 축복해주며 웃으며 보내주렵니다.〉
 
 
  “내가 받은 상처 많아 아들들을 일반 학교에 넣고 싶지 않았다”
 
  차남은 2014년 중국 하얼빈(哈爾濱)에 있는 기독교 계열 학교로 진학했다. 이소연씨는 차남을 이 학교에 입학시킨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14년 2월14일자 페이스북 글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들은 늘 ‘멀기만 한 당신’이셨다. 고등학교 때는 특히 힘들었다. 잔디를 아이들이 모르고 밟으면 잔디에 백 번씩 절하라는 학교, 조회시간에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불려 나가 전교생 앞에서 뺨 맞는 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눈 마주치면, 지난 시간에 배운 거 물어봐서 모르면 교실 끝에 밀려가도록 때리던 선생님….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고 두려움이 생기곤 했다. 내가 받은 상처가 많아서인지, 나는 내 아들들을 일반 학교에 넣고 싶지 않았다…. 자존감이 낮은 우리 아이들이 받는 대우를 미리부터 너무 겁먹었던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참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차남)가 6년을 다니던 학교를 떠나 하얼빈이라는 먼 곳에 있는 만방학교로 간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는데, 하나님이 새로운 길을 여셨다. 오늘 종업식으로 드림학교, 이 정든 아름다운 학교를 떠난다.
 
  교장 선생님, 선생님들의 퇴임식이 아이들과 선생님, 엄마들의 눈물 바다가 되었다. 배고파하는 아이들을 위해 늘 간식 준비해놓고 기다리시는 선생님들, 내가 엄마인지 선생님이 헷갈릴 정도로 아이를 이해해주시던 선생님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늘 장점으로 격려해주시던 분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편지 써주시는 교장 선생님. 아이들이 어떻게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을까 늘 기도하시는 우리 사랑스러운 선생님들. 고마워요. 당신들의 사랑의 수고로 우리 아들들, 아니 저까지 치유받고 떠납니다. 사랑해요. 감사해요.〉
 
  이소연씨가 2012년 3월 7일 남긴 글에서도 두 아들에 대한 사랑이 듬뿍 배어 나온다.
 
  〈○○(장남)이가 두레자연학교에 입학을 했다. 자기는 안 춥다고 고집부리며 이불도 안 가져간 아들이 추워진 날씨 때문에 걱정스럽다. 에구 옷이라도 입고 자겠지…. ○○(차남)는 지각할까 봐 노심초사 5시 반에 일어나 준비하고 7시면 나간다. 오늘도 8시에 도착했다고 기쁜 목소리로 전화 왔다. 학교가 멀지만 씩씩하게 다니는 ○○가 고맙다.〉

 

(후략)
 

 

 

입력 : 202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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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edjh123@naver.com (2021-01-19)

    감사원장님, 누가 와서 인터뷰를 요청하더라도 지금 문죄인이가 이번 건으로 욕을 싫컷 처먹고 있는 마당에 비록 감사원장의 입양이 엄연한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냥 조용히 계시면 더 좋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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