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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과거 딛고 법무부 장관 지명된 박범계 의원

과거 《대전일보》 인터뷰에서 “나는 좌파 아니다... 재벌도 인정"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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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30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임에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내정했다.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박범계 장관 후보자에 대해 “판사 출신 3선 국회의원으로, 제20대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간사, 민주당 생활적폐청산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우리 사회 각종 부조리 해결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해왔다”고 평가했다. 이어 “법원, 정부, 국회 등에서 활동하며 쌓은 식견과 법률적 전문성, 강한 의지력과 개혁 마인드를 바탕으로 검찰·법무개혁을 완결하고 인권과 민생 중심의 공정한 사회 구현을 실현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박범계 후보자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박 후보자는 1963년 4월 충북 영동군 심천면 약목리에서 농사일을 하던 집안의 5남매 중 셋째(맏아들)로 태어났다. 박 후보자의 부모는 장애인이었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 《어머니의 손발이 되어》는 장애를 가진 부모를 둔 정치인 아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급 장애인이었던 부친은 어린 시절 홀연히 집을 떠나 소식이 끊겼다. 1급 장애인이었던 모친이 홀로 자녀들을 키우다가 2005년 세상을 떴다. 박 후보자는 홀어머니의 희생이 현재의 자신을 있게 했다고 믿고 있다. 


박 후보자는 2007년 초 《대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빈부격차 등 사회 의식이 생겼을 정도”라고 회고했다. 그는 “어머니는 여성인데다가 장애인이었고, 남편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가 국가의 1차적 책무”라며 “그것이 해결된 후 복지나 경제 등을 논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시절 고향을 떠나 서울 봉천동 두 칸 짜리 방에서 힘겨운 달동네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영등포중 2학년 시절부터 남강고 시절까지 반항하던 학생이었다. 고교 시절에는 술과 담배까지 피우며 ‘갈매기 조나단’이라는 음성 서클(?) 일원이 됐는가 하면 3학년 진학 직전 무렵 집단 패싸움을 하다가 퇴학 위기에 처했고, 결국 자퇴를 선택했다.


박 후보자는 대입 검정고시로 고교를 졸업했으나, 이후 3년여 동안 방황했다. 방위병 복무 중 아버지 역할을 했던 할아버지의 끊임없는 애원과 정성으로 군 복무와 학업을 병행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1985년 동갑내기 보다 3-4년 늦게 연세대 법학과에 입학한 것이다.


하지만 대학 생활도 방황의 연속이었다. 민주화 투쟁이 절정을 이루던 당시 운동권으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며 학업과는 거리를 뒀다. 박 후보자는 1987년 민주화 진영의 대선 패배를 지켜보며 사법고시에 도전키로 결심을 굳힌다. 도전 4년여 만인 1991년 제33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사로 임용됐다.


박 후보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사법연수원 시절 연수생 자치회에서 발간하는 연수지 편집장이 돼 ‘연수생이 뽑은 존경하는 법조인’ 1위 노무현 변호사를 인터뷰를 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첫 인연을 가졌다. 


박 후보자의 정계 입문도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이뤄졌다. 16대 대선을 앞둔 2002년 중순 ‘운동권 선배’였던 김민석 당시 새천년민주당 의원이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에 반기를 들고 정몽준 후보가 이끌던 ‘국민통합 21’에 합류하기 위해 탈당했다.


박 후보자는 김민석 의원의 탈당을 ‘대의명분에 위배된 행위’라며 9년여 동안 몸담았던 법관 생활을 접은 채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한 뒤 캠프에 합류했다. 그는 캠프 합류 후 법률특보와 국민참여운동본부 부본부장을 맡아 전국을 돌며 지원에 나섰고, 대선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박 후보자는 대선 승리 후 유일하게 법조인 출신으로서 대통령직 인수위에 몸담게 됐고 최연소 인수위원으로 정무분과위에서 권력기관 개혁 방향과 제도 개혁 방안을 연구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대통령 비서실 민정 2비서관, 법무비서관 등 요직을 거쳤다.


노무현 정부가 막을 내린 후에는 법무법인 정민 대표 변호사로 있다가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대전 서구을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생활적폐청산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박 변호사는 《대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좌파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방식도 있는 자들 것을 빼앗아 돕는 게 아니다. 있는 자들을 대접해주고 그들 스스로 약자를 돕게 해야 한다. 난 재벌도 인정한다. 좋은 기업을 만들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고 그 반대 급부로 없는 자들에게 풀어주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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