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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방역독재' 논란을 보며 정치범들을 정신병원에 집어넣었던 소련을 생각한다

'치료' 빙자한 고문 자행한 정신과 의사들, 독재권력과 유착한 대가로 해외여행-고액 월급 등 특혜 누려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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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나 미국에서 코로나19(우한폐렴)로 인한 사망자가 수만 명대를 기록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100~200명대에 머무르고 있을 때, 정부는 K-방역을 자랑했다. 관내 확진자의 동선(動線)을 문자 메시지로 국민들에게 알려주는 시스템도 등장했는데, 이는 신용카드나 교통카드 사용내역, CCTV 추적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경고도 일찌감치 나오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문명 비평가인 기 소르망 전 파리정치대학 교수는 4월 27일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코로나 대응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국이 휴대전화 정보를 이용해 감염자를 추적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국인들은 이를 받아들인다. 매우 감시받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상 모든 독재 체제가 ‘비상상태’의 규정에 따라 확보된 비상권력에서 비롯됐다”면서 ‘의료 복지’를 빙자한 ‘의료 전체주의’ 또는 ‘위생 독재’, 더 나아가 ‘메디컬 파시즘’의 등장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런 경고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8‧15 광화문집회 당시 정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렸던 민노총 집회는 제쳐두고 보수세력이 연 집회만을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9월 28일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광화문 집회 인근 체류자 전수조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광화문집회 관련자들의 확진율(0.81%)은 전국 확진율(1.47%)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전국 확진자(5073명) 가운데 광화문 관련 확진자(82명)가 차지하는 비중도 1.61%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10월 3일 보수단체들이 준비하고 있는 광화문집회는 물론 드라이브 스루(차량)집회도 금지하고 있다. 법원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8‧15광화문 집회 관련자들은 구속되었고,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총리 등은 개천절 집회를 앞두고 연일 “공권력이 살아있음을 보여 주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이나 중앙안전대책본부(중대본) 관계자들이 그때마다 조연(助演)으로 등장하곤 한다.

이런 상황에 대해 ‘방역독재’니 ‘코로나 파시즘’이니 하는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의사들이 독재체제, 혹은 전체주의 정권을 위해 봉사하는 일들은 곧잘 있어왔다.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했던 나치 독일의 요제프 멩겔레나, ‘마루타’라고 불리던 수감자들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했던 일본 관동군731부대장 이시이 시로가 대표적인 예다. 731부대의 정식명칭이 ‘관동군 검역급수부 본부(關東軍 檢疫給水部 本部)’였던 것은 의미심장하다. 731부대는 히로히토 일본 천황이 칙령(勅令)으로 설치한 부대였다.
나치독일이나 군국주의 일본이 의학을 ‘생체실험’에 동원했다면, 소련은 의학을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탄압수단으로 사용했다. 반체제인사(정치범)들을 ‘정신병자’로 몰아서 감옥이 아니라 정신병원으로 집어넣었던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영국의 역사저술가 폴 존슨의 지적처럼 소련 당국은 언제나 반대 의견을 ‘일종의 정신병’으로 취급했기 때문이었다. 반체제세력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했던 흐루쇼프(흐루시초프)조차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그들의 정신상태는 분명히 비정상적이다”라고 공언했다.

반체제인사들을 정신병자로 몰아 정신병원에 가두는 일은 볼셰비키혁명 초기부터 등장했다. 사회혁명당 지도자 마리아 스피리도노바는 1919년 모스크바혁명재판소에서 요양소 수감형을 선고받았다. 반체제인사가 정신병원에 갇힌 최초의 사례였다.
1930년대 말 소련 비밀경찰인 내무인민위원회(NKBD‧KGB의 전신)는 카잔에 400개의 병상(病床)을 갖춘 특별형무소(정신병원)를 세웠다. 1940년대 말에는 범죄심리학 교육 및 연구를 담당하는 세르프스키연구소 내에 ‘정치범’을 담당하는 특별부서를 설치했다. 1950년대 초에는 적어도 세 개의 기관이 정치범 ‘치료’를 담당했다.
정신병원에 수감된 사람들 중에는 반공산주의자, 반스탈린주의 트로츠키주의자, 소련에 강제병합된 라트비아나 폴란드인, 소련 내 소수(少數)민족 출신 민족주의자들은 물론 소련 공산당의 공식적인 도그마에 반대하는 이설(異說)을 주장하는 생물학자, 작가, 화가, 음악가들도 있었다.
1965년 발레리 타르시스의 <제7병동>이 출간되면서 이러한 실태가 서방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뜻있는 서방의 정신의학자들은 이러한 실태를 파헤쳐보려 했지만, 철의 장막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인지라 한계가 있었다. 소련을 방문해 실상을 직접 살펴보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소련 당국은 이를 교묘하게 은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5~75년 사이에 210가지 사례에 대한 상세한 자료가 서방세계에 알려졌다.
1960~1970년대에 앞에서 말한 카잔의 정신병원 외에 최소한 13개의 특수정신병원, 즉 정치범들을 수용하는 정신병원이 문을 열었다. 이 정신병원들은 보건부가 아니라 내무부 관할이었고, 군이나 비밀경찰의 장교들이 운영했다. 이들 병원에서는 나치 수용소에서 자행되었던 것과 유사한 생체실험도 자행되었다.

경악스러운 일은 이러한 만행에 ‘의사’들이 앞장섰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생체실험 말고도 여러 가지 다양한 ‘치료’행위들을 실시했는데, 이는 사실상 ‘치료’를 빙자한 잔혹한 고문(拷問)이었다. 그 중에는 ‘젖은 천으로 말기’라는 고문이 있었다. 수감자들을 젖은 천으로 감싸면 천이 마르면서 오그라들었고, 수감자들은 극심한 고통 때문에 실신하곤 했다. 이 고문방법을 개발한 사람은 엘리자베타 라비츠카야 박사라는 여성 의사였다. 
1972년 미 상원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는 안드레이 스네즈넵스키 교수, 루벤 나자로프 교수, 게오르기 모로조프교수, 다니엘 룬츠 교수 등을 특히 악명 높은 의사들로 고발했다. 
스네즈넵스키 교수는 의료과학아카데미 부속 정신의학연구소장으로 반체제 인사들을 ‘정신분열증 환자’로 모는 데 앞장선 자였다. 나자로프 교수는 정신의학연구소 부소장이었고, 모로조프 교수는 앞에서 언급한 세르프스키연구소 소장이었다. 룬츠 교수는 KGB(소련 국가보안위원회‧비밀경찰)대령, 혹은 내무부 소장 등의 직함을 달고 활동했다.
이렇게 공산독재체제에 부역(附逆)하는 대가로 이들은 남다른 특권을 누렸다. 이들은 소련 정신의학계를 대표해 외국을 여행하고, 다른 정신과 의사들보다 세 배나 많은 봉급을 받았다. 당시 KGB의장으로 이들을 열성적으로 후원하면서 정신의학을 반체제운동 탄압에 체계적으로 동원했던 사람이 바로 1982~1983년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유리 안드로포프였다.

소련의 사례는 의학과 권력이 유착하고, 의학이 독재권력을 위해 봉사할 때,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국민들이 코로나 방역 노력에 협조하는 것은 자신과 이웃의 목숨을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방역독재’나 ‘메디컬 파시즘’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고 감시하는 것 또한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입력 : 202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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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lt;박정희 바로보기gt; 등이 있습니다.
댓글달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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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수정 (2020-10-02)

    훌륭한 기사를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자유란 말을 노상 입에 달고 살면서도 그게 어떤 자유인지 또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지 이런 논의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공공의 이익과 안녕이란 미명하에 우리 신체의 자유를 저당잡히지만 정작 그 공공의 이익과 안녕도 각자의 자유를 보장해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을요. 방역정치 방역독재를 보면서 우리가 중국공산당과 뭐가 다른가 회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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