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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제플린, 세상에서 가장 헤비한 밴드… 전설이 되다

[阿Q의 ‘비밥바 룰라’] 《록의 시대》를 통해 본 로큰롤 선구자 10명 ⑨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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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헤비 메탈 밴드 레드 제플린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로 나온 《록의 시대-저항과 실험의 카타르시스》는 프랑스 작가 알랭 디스테르(Alain Dister)가 썼다. 1996년 국내 번역되었다. 록이 어떻게 등장해서 변천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역자는 음악 평론가인 성기완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로큰롤 선구자 10명을 소개한다. (계속)
 
9. 레드 제플린
 
《조선일보》에 영국 헤비메탈 밴드 ‘레드 제플린’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 때는 언제일까.
1988년 6월 9일자 16면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내용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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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앨범 인기상승
 
〇…로버트 플랜트,지미페이지,존 폴 존스,존 보냄 등 황금의 멤버들이 모여 구성했던 전설적인 록그룹 레드 제플린이 해산된 지 8년이 흐른 요즘,이 가운데 금세기 최고의 보컬리스트라 불리는 로버트 플랜트가 솔로앨범 《Now and Zen》을 내고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실 그가 발표한 솔로앨범은 이번이 4번째인데,레드 제플린 시절의 후광을 강하게 거부한 85년의 3집앨범이 별 반응을 얻지 못했던 반면,레드 제플린 시절의 음악요소를 적당히 가미하고 옛 동료인 천재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를 기용한 이번 앨범은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단숨에 빌보드 차트 10위권에 진입하는 호응을 얻고 있다.
 
광포한 사자처럼 보였던 그의 음악세계도 불혹에 접어든 탓인지 무척 원숙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이다.
 
그 다음에 레드 제플린이란 이름이 등장한 것은 무려 8년 뒤인 1995년 3월 15일자 17면에 실렸다. 1970년대 히트 팝송이 미국에서 부활했다는 내용이었다.

시카고,로드 스튜어트,CCR,이글스,산타나,플리트우드 맥 등 70년대 스타들의 인기 팝송이 전파 매체를 수 놓고 있으며 그들의 앨범 또한 레코드 시장에서 다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었다. 팝칼럼니스트 임진모씨가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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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10대 라디오 방송국 가운데 무려 9군데가 주요 청취시간대에 70년대 팝송을 내보내는 프로그램을 편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플로리다주 탐파 지역과 LA 일대 방송국들이 이를 주도해 이미 지난해 머라이어 캐리의 최신 히트곡 방송에서 흘러간 팝송 위주의 방송으로 전환했다.
 
심지어 X세대 음반소비자를 창출한 얼터너티브 록의 산실 시애틀에서도 일부 라디오는 분위기 재현을 위해 70년대 당시에 근무했던 방송 담당자들을 다시 채용했을 정도. 이에 따라 짐 크로치 ‘Time in a Bottle’ 계열의 발라드. 레드 제플린 ‘Rock and roll’류의 하드록. 비지스의 ‘Night Fever’와 같은 디스코 등 그 무렵 인기 장르의 팝송들이 펄 잼의 얼터너티브록을 제치고 청취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
 
최신 팝송에서도 70년대로의 회귀 경향이 목격되고 있다. 그래미상 3개 부문을 석권한 Sheryl Crow나 차트를 강타 중인 Hootie&the Blowfish의 노래들은 70년대 록의 분위기가 가득한 실정. 이러한 복고 추세가 라디오의 70년대 팝송 프로 편성열풍을 부채질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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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제플린의 초창기 시절 모습이다.

1.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세상에서 가장 헤비한 사운드를 구사한 밴드. 미국 블루스 록과 영국 포크가 제플린 사운드의 양축이었지만 장르를 가지리 않는 그들의 왕성한 음악적 식욕은 단순한 록의 범주를 넘어섰다.
 
2. 그들의 음반에는 동양적 선율, 서정적인 포크(컨트리) 편곡, 미국 서부 사이키델릭, 펑키 비트 및 레게 리듬, 나아가 재즈적인 즉흥음악까지 확인할 수 있다. 레드 제플린의 음반 판매고는 전 세계적으로 2억 장 내지 3억 장으로 추산된다. 1억 장 이상이 미국음반산업협회(IAA) 판매 인증을 받아 제플린은 미국에서 2번째로 음반을 많이 판 밴드가 됐다.
 
3. 1944년 영국 미들섹스 주 헤스턴에서 태어난 지미 페이지(Jimmy Page)는 열두 살 무렵 스코티 무어(Scotty Moore)가 기타를 연주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Baby Let's Play House’를 듣고 감동받아 처음 기타를 잡았다. 열네 살 때 스키플 밴드의 멤버가 되었다.
 
한때 아트 스쿨에서 미술을 공부하기도 했던 그가 1963년~65년 중에 영국의 록음악 계에서 최고의 스튜디오 기타리스트 세션맨으로 인정받게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더 후(The Who), 킹크스(Kinks),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 밴 모리슨(Van Morrison), 마리안느 페이스풀(Marianne Faithfull), 톰 존스(Tom Jones), 도노반(Donovan) 등의 앨범에 기타 연주자로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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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당시에 그는 디스토션과 피드백 테크닉 및 빠른 운지법 등을 심도있게 실험하고 연구하면서 자신만의 예술적인 기타 사운드를 확립해가는 중이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이 당시 지미의 왕성한 활약상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고 지미 자신도 당시의 추억을 입 밖으로 거의 내지 않아, 이 시기는 ‘지미의 수수께끼 시대’라고 불림).
 
 5.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채롭게 명암이 섞인 기타 사운드로 스튜디오의 프로듀서들이 가장 선호하는 세션 기타리스트가 된 그는, 1965년 말에 (소위 영국의 3대 기타리스트인 Eric Clapton, Jeff Beck, Jimmy Page가 몸담게 되는) 블루스 록그룹 야드버즈(Yardbirds)에 에릭 클랩튼의 후임으로 가입할 것을 매니저 조르지오 고멜스키(Giorgio Gomelsky)에 의해 제안 받았으나, 세션맨으로 잘 나가던 이 때에는 일단 건강상 이유를 들어 거절하고 대신 어릴 적 친구인 제프 벡을 그 자리에 천거했다.
 
6. 그러나 다음 해 6월에 결국 야드버즈에 폴 사무엘 스미스(Paul Samuel Smith)의 후임 베이시스트로 임시 가입하게 된다. 이후에야 원년 멤버로서 리듬 기타를 치던 크리스 드레자(Chris Dreja)가 베이스로 옮겨오면서 지미는 다시 기타리스트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로써 록 역사상 처음으로 제프 벡-지미 페이지의 강력하고 화려한 트윈 리드 기타 라인업이 출현하게 되었다.
 
참신한 사운드로 야드버즈는 코카콜라 광고에 출연하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 감독의 영화에 등장할 정도로 폭넓은 인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66년 9월 롤링 스톤즈와의 미국 투어 이후 제프 벡이 건강 문제 등 일신상 사유로 야드버즈를 떠났으며 이후 4인조로 활동하며 지쳐가던 야드버즈는 결국 68년 7월 7일 런던의 루톤 공대(Luton College of Technology) 공연을 마지막 활동으로 해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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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제플린의 앨범들.
 
7. 야드버즈의 해산 후, 밴드의 잔존 멤버로서, 소울과 블루스의 융합이라는 야드버즈의 음악적 이상을 더 모험적이고 다이나믹하게 확장하고자 했던 페이지가 밴드의 이름에 대한 권리 및 계약 의무를 인수하였는데, 당시에 여전히 야드버즈의 이름으로 스칸디나비아의 나라들에서 연주 여행을 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남아있는 상태였다.
 
지미가 68년 가을에 자신이 리더가 되어 새 밴드를 결성하려고 했으며, 야드버즈의 마지막 매니저로서 일해오던 듬직한, 거구의 친구 피터 그랜트(Peter Grant)가 그의 뒤를 봐주었다. 지미 페이지가 새 밴드를 구상한다는 《 Disc & Music Echo》지의 광고를 보고 밴드에 처음으로 가담하려 한 이는 역시 당대에 잘 나가던 동료 세션 맨이던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Y" Jones, 이하 존스)였다.
 
전에도 페이지와 함께 녹음 세션을 한 바 있던 그는 정규 클래식 음악 교육을 제대로 받고, 베이스뿐만 아니라 피아노, 키보드 오르간 등 뭐든지 손에 쥐기만 하면 명연주를 펼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인물이었으며 동시에 오르간의 저음부에 천착하던 일류 편곡자였다.
 
8. 반면 그 이후에 접촉하여 가입한 미드랜드(Midlands) 출신인 보컬리스트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와 드러머 존 본햄(John Bonham)은 둘 다 업계에서 상대적으로 무명들이었는데, 페이지가 현명하게 그들의 재능 및 열정을 판단하였다. 애초에 지미 페이지는 보컬리스트로 테리 리드(Terry Reid)를 유력 후보로 염두에 뒀는데 솔로 지향적인 테리가 대신에 로버트 플랜트를 추천하였단다.
 
9.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이름을 딴 밴드 홉스트위들(Hobbstweedle) 출신의 엘비스 록큰롤 매니아인 플랜트의 야생적인 고음역 샤우팅에 첫눈에 반해 페이지가 그를 보컬리스트로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드러머로, 지미 페이지는 윌슨(B. J. Wilson)을 영입하고자 했는데, 페이지에 의해 발탁된 플랜트는 전에 밴드 오브 조이(The Band Of Joy)에서 같이 활동했었던 존 본햄을 드러머로 강력하게 밀었다. 팀 로즈(Tim Rose)의 밴드에서 활동 중이던 그의 천부적인 극강의 드러밍 또한 페이지의 맘에 한눈에 들어 본햄도 스카우트되었다.
 
10. 68년 8월에 본조가 가입함으로써 결국에 최종 라인업을 확정한 슈퍼세션급 테크니션 4인들이 여러 갈래의 이질적인 음악적 개성을 바탕으로 한 제각기 독특하고 쟁쟁한 최고의 음악적 기량들을 가지고 8월 15일 제라드 가(Gerrard Street)에서의 첫 리허설을 거쳐 의기투합하게 되었다(이들의 구성에 대해 후에 왕년의 비틀즈 4인 구성과의 비교가 따르기도 함).
 
또한, 이들에게는 밴드라는 하나의 덩어리 안에서 이런 차이점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지혜로운 노하우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양보와 조율의계속적 반복을 밴드로서의 통일된 사운드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11. 그 각각의 개성이 조화롭게 균형된 사운드가 제플린 특유의, 전례 없는 야성미와 리듬감을 낳았다.
짜릿하게 고압전류에 연결된 듯 야성적인 블루스록 리프를 감칠 맛나게 선보이는 페이지의 기타 및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을 연상케 하며 거친 여성의 목소리 톤으로 내지르는 날카로운 금속 질감의 플랜트의 강력한 보컬이 앞장서지만, 섬세한 편곡자 존스의 풍성하고 밀도높게 감싸는 지원 사운드 및 마치 코끼리가 발걸음을 내딛는 듯한 본햄의 강력하고 묵직한 해머 드러밍 비트가 공간감을 창출하며 사운드를 적절하고도 안정적으로 받쳐줘, 전체로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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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이미지에서 검색되는 레드 제플린 멤버들의 근황 모습이다.

12. 밴드는 멤버 변화 없이, 커다란 불화도 없이 10년 넘게 유지되며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여 음악적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네 명이 밴드명을, 야드버즈를 계승해 뉴 야드버즈(New Yardbirds)로 했는데 그것은 야드버즈에 대한 대단한 애착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주위의 흥행사들이 새로운 이름을 지어 출범할 경우 공연 홍보에 위험이 따른다는 의견이 있어, 흥행사들의 셈법을 신중하게 보수적으로 따르기로 한 것일 뿐이었다.
 
13. 뉴 야드버즈가 곧바로 68년 9월의 2주 동안에, 이미 계약된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에서 공연 의무를 성공적으로 이행하였다. 이들은 몇 곡의 오래된 야드버즈 넘버 및 ‘Communication Breakdown’, ‘I Can't Quit You Baby’, ‘You Shook Me’, ‘Babe I'm Gonna Leave You’, ‘How Many More Times’ 같은 신곡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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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석이 쓴 《레드 제플린 디스코그래피》
14. 영국으로 돌아온 뒤 68년 9월 말에, 밴드가 서부 런던의 올림픽 스튜디오로 들어가 데뷔 앨범 제작에 착수했고 그 와중에 드레자의 밴드명 사용 중지 경고 서한(cease and desist letter)을 받은 페이지가 밴드명을, 미친 개(Mad Dogs) 같은 걸 후보로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으로 개명하였다.
 
참고 : 레드 제플린의 밴드 이름은 공중 폭발로 기억에 남아 있는 1937년 제플린 항공사의 야심작 히덴부르크(Hidenburg) LZ 129호와 관련이 있다.
 
대서양을 건너 미국 뉴저지를 향해 가던 이 비행선은 뉴저지에 착륙하던 도중 대폭발로 승객 35명이 사망했다. 이 이미지가 밴드명 그 자체의 기원과 직결되었다고 한다.
지미 페이지가 야드버즈에 가입하기 전인 66년 5월 즉, 페이지와 공동 작곡으로 제프 백과 ‘Beck's Bolero’를 녹음할 당시 백, 페이지, 더 후(The Who)의 키스 문과 존 엔트위슬 등이 모여 그룹 결성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키스 문이 "그런 밴드가 결성되더라도 납 풍선처럼 추락할 것"이라고 농담을 건네자 엔트위슬은 ‘a lead zeppelin(납 제플린)!’호라고 대꾸했다.
 
이 이름은 아이언 버터플라이(Iron Butterfly)만큼 역설적이게 느껴졌다. 미국인들이 lead(납)를 ‘레드’로 발음하지 않고 ‘인도한다’는 뜻의 ‘리드’로 잘못 발음할까봐 a를 뺀 led zeppelin으로 변형되었다고 전한다.
-정유석이 쓴 《레드 제플린 디스코그래피》에서 인용.
 
15. 이후 그 밴드의 명의로 발표된 10장의 앨범들 모두가 록의 역사 그 자체가 되고 결국에 전설이 되었다. 레드 제플린의 음반 판매고는 전 세계적으로 2억 장 내지 3억 장으로 추산된다. 모든 앨범들이 빌보드 탑10에 올려놓았다. 그중 6장은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정유석이 쓴 《레드 제플린 디스코그래피》에서 인용. 더 자세한 내용은 책으로 확인하세요.)
 
1. 엘비스 프레슬리
 
 
2. 척 베리
 
 
3. 비틀스
 
 
4. 롤링 스톤스
 
 
5. 아레사 프랭클린
 
 
 
7. 핑크 플로이드
 

8. 지미 헨드릭스
 
 
10. 섹스 피스톨스

입력 : 20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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