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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참패’를 참패라 못했던 민주당… 2002년 대선 데자뷔

서봉대  정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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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새벽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확정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분명 참패라고 자인했어야 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후보 측은 2022년 대선에서 진 것을 두고 “석패(惜敗)”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강변했다.

 

지지율 수치로 보면 0.73%(24만7000여 표)밖에 뒤지지 않아 박빙의 승부였다고 할 수 있지만 정치판 역학구도를 되짚어보면 이 같은 주장은 궁색하다.

 

대선 정국에서 국민의힘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조직력을 갖고 있으면서 5년 만에 정권을 뺏겼기 때문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이후 10년 주기로 여야가 교체돼 왔던 전통을 깨버렸다. 20년 이상 집권할 정권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인사는 유구무언이다.

민주당은 무엇보다 국회와 지방정부·의회를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었던 만큼 대선을 앞두고 조직력에서 국민의힘에 비해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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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오후 대선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한 뒤 당사를 떠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2020년 국회의원 총선에서 민주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더불어시민당)를 포함해 총 300석 중 60%인 180석을 차지했다. 여기에다 열린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 성향 의원들까지 포함하면 개헌선인 200석에 육박할 정도였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밀어붙일 수 있는, 그래서 ‘공룡정당’이란 말까지 회자됐다.


반면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비례대표(미래한국당)를 포함해 전체 의석의 34%인 103석에 그쳤다. 개헌 저지선(101석)을 겨우 지킬 수 있었을 뿐이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압승했다.


17개 광역지자체 단체장 선거결과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 선거에서만 이겼던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호남과 수도권 충청권 호남권 등 14곳을 차지하는 압승을 기록했다. 제주도에선 무소속 원희룡 후보가 당선됐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67%인 151곳에서, 한국당은 23%인 53곳에서 이겼던 것.

광역 및 기초 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652명(79%)과 1639명(56%), 한국당은 137명(17%)과 1009명(34%)을 당선시켰다.


민주당은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잇따라 압승, 당의 조직력이 한껏 강화됐던 만큼 국민의힘에는 질래야 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선후보군도 국민의힘과는 비교될 정도로 넉넉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후보가 입당하기 전까지 대선에 내세울 인물난에 허덕여야 하는 처지였던 것.


때문에 대선 정국 직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이 이길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이런 상황들을 감안하면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졌던 건 참패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를 애써 외면하며 산술적인 득표율 차이만을 부각시키며 박빙이라고 강변했던 저변에는 대선 직후 치러질 지방선거를 대선 연장전으로 규정, 지지세력 결집을 통해 세 반전을 꾀하려는 의도도 깔려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했다. 17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12곳에서 이겼던 반면, 민주당은 5곳에 그쳤다.

국민의힘은 또 기초단체장 선거 145명(64%), 광역의원 선거 541명(62%), 기초의원 선거 1435명(48%)을 당선시켰다. 

결국 문재인 정권의 실정에 등을 돌린 정권교체 열기가 대선정국 막판까지 고조되면서 민주당의 막강한 조직력을 눌렀으며 지방선거로 까지 이어졌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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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18일 열린 한나라당 지방선거 당선자대회서 이회창 후보와 서청원 대표가 광역단체장 당선자들과 손을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이와 비슷한 상황은 2002년 대선에서도 연출됐다.


대선 직전 치러졌던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대승을 거뒀다. 광역단체장 선거 16곳 중 수도권 3곳을 포함해 11곳을 차지했던 반면 새천년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은 호남권과 제주도 등 4곳을 이기는 데 그쳤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60%인 140곳, 민주당은 19%인 44석을 차지했다. 

광역 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467명(68%)나 당선됐으나 민주당은 21%인 143명에 그쳤던 것. 기초의원 선거는 당시 무공천이었다.

대선정국에서의 지방선거 참패였던 만큼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후보교체론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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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14일 민주당 노무현 대선후보가 대국민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당시 지방선거 참패와 관련, “부패 사건들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뼈저리게 느꼈다”며 후보직 재신임을 물을 뜻을 밝혔다. 사진=조선일보DB

 

반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일찌감치 대세론을 구가, 대선승리는 거의 따논 당상처럼 비쳐졌다. 


앞서 2000년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은 전체 273석 중 49%인 133석을 차지, 제 1 당이 됐다. 집권당이었던 민주당은 42%인 115석, 자민련은 6%인 17석에 그쳤다. 선거를 사흘 앞두고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이 전해지면서 집권당인 민주당이 상승세를 타기도 했으나 판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자민련은 당시만 해도 DJP 공동정부의 한 축이었으나 2년 뒤 대선을 앞두고 국민회의와 갈라섰다. 


한나라당과 이 후보로선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승리한 데 따른 조직력이 큰 버팀목이 됐고 대세론을 이어갔다. 집권을 전제로 차기 정부 각료 인선 얘기까지 들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후보 아들 병역비리 의혹이 재점화되면서 새 정치에 대한 젊은층 열망이 노 후보 쪽으로 대거 쏠리기 시작했고, 노 후보는 대선 막판 정몽준 후보와 극적인 단일화를 성사시킨 것을 계기로 승기를 잡았고 결국 이 후보는 졌다.


대선결과 노 후보와 이 후보의 지지율 차이는 2.3%에 불과했지만 당의 조직력을 감안할 경우 참패했다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이 대선 이후 노 후보 당선무효 소송을 제기, 재검표까지 했다는 것은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시 한나라당도 “석패”라고 했다.


선거판에서 조직은 바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2002년과 2022년 대선에선 딱 들어맞았던 셈이다.

입력 : 202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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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jisang3@daum.net 경북 청송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국민일보에 입사한 이후 2020년 뉴스 1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30년 언론인생활을 마무리했다. 정치부장, 정치선임기자 등으로 여의도 정치권과 청와대, 총리실 등을 취재하고 후배 기사를 데스킹하는 데 20여년을 보냈다. 현재 민간연구원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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