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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국민의힘과 민주당에 ‘대선 빨간불’... 위기 타개할 후보 나올까?

서봉대  정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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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1997년 11월 6일 낮 국회 귀빈식당에서 자민련 김종필 총재, 박태준 의원을 만나 오찬회동을 갖고 DJP 연합을 박태준 의원까지 포함시킨 DJT연합으로 확대, 민정계를 포함한 구여권 및 재계인사 등에게 문호를 개방키로 했다. 사진=조선일보DB

국민의힘에는 당을 주도하는 계파가 없다는 게 이번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친유(친 유승민)와 친홍(친 홍준표)에다 친박(친 박근혜), 친이(친 이명박)까지 다시 거론되고는 있지만 당내 계파 파워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계파에 대해 ‘제 식구 챙기기’ 등 비판들도 많지만 긍정적인 측면들도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떠받들고 있는 게 정당인 것처럼 정당 내부의 계파도 순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처럼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 정치판에도 계파란 게 있다.


대선 정국에서 당을 주도하는 계파가 있을 땐 구심력을 갖고 선거전을 이끌 수 있었다. 고만고만한 계파들이 난립하거나, 주도 계파가 있어도 대선후보 측과 갈등을 빚게 될 경우엔 내분 상황을 초래했고 대권에서 멀어지기 일쑤였다. 역대 대선들이 그랬다.

 

이런 측면에서 국민의힘에는 비상등이 켜져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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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22일 집권 민정당과 제2, 제3 야당인 통일민주당, 공화당 3당이 합당을 전격 발표했다. 현정 사상 유례없는 이 합당으로 '공룡 여당' 민주자유당이 탄생됐다. 사진=조선일보DB

 

# 1997년 대선에서 DJ(김대중)가 JP(김종필)와 DJP 연대를 성사시킬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측근세력인 동교동계가 새정치국민회의를 주도하는 계파였기 때문이다. 이런 계파가 있었기에 "유신 잔당(자민련)과의 야합"이라는 등 DJ를 겨냥한 당 안팎의 거센 비난에 맞서 연대를 추진할 수 있었고 결국 대권을 차지했다.

 

3당 합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2년 후인 1992년 대선을 앞두고 YS(김영삼)는 당내 역학구도에서 밀렸으나 김윤환 의원을 비롯해 노태우 대통령 세력인 민정계와 JP의 공화계 인사들을 자신 편으로 설득하는 데 잇따라 성공, 대권을 거머쥐었다. YS는 측근세력인 상도동계를 기반으로 대선국면에서 자신을 지지했던 민정계와 공화계 일부 인사들(이들은 신민주계로 지칭)까지 망라한 세력화에 성공함으로써 당 주도권을 잡게 됐고 후보자리까지 꿰찼던 것이다. 민정계와 공화계 인사들 중 일부가 YS에 맞서다가 대선 정국에서 탈당했으나, 이 때문에 당내 반발세력은 오히려 약화됐던 셈이다. 


앞서 YS가 신군부 및 JP 세력과 함께 3당 합당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통일민주당에 주도 계파가 있었고 그게 자신의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과의 야합" "변절자" 등의 비난들이 야권에서 잇따랐지만 상도동계가 통일민주당을 주도하고 있었기에 합당이 가능했던 것.

 

2007년 대선의 이명박 후보와  2012년 대선의 박근혜 후보 역시 DJ, YS의 경우와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세력인 친이, 친박계가  당내 주도세력으로 선거전을 이끌었다. 이명박 후보가 BBK 주가조작 의혹 등 대형 악재들에도 불구, 흔들리지 않고 대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건 친이계라는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7년 대선때 문재인 후보도 친문(친 문재인)이란 지지세력을 당내 최대 계파로 갖고 있었기에 대권 재도전이 가능했고 당선까지 이어졌다. 호남지역의 반(反)문재인 정서때문에 안철수 후보와 접전양상을 보이기도 했으나, 탄탄한 당 조직력을 토대로 선거전 막판 이 지역 표심을 돌릴 수 있었다.

 

이들 다섯 사람은 모두 당을 주도하는 계파의 보스였고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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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11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창당대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축하 메시지를 대독하는 동안 화면에 자료그림이 나오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의 경우 국민경선을 통해 후보로 당선됐으나 당내에선 비주류였다는 점에서 대선가도는 순탄할 수 없었다. 대선에 앞서 치러졌던 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이 참패한 것을 계기로 노 후보 지지율도 급락, 이회창 후보는 물론 정몽준 후보에게도 밀렸던 것. 당내 주류인 반노(반 노무현) 혹은 비노 세력들이 후보교체론을 제기하며 그를 흔들기 시작했다. 투표일도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고 월드컵 붐에 편승한 정 후보는 상승세를 타고 있었던 만큼 노 후보로선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다행히 정 후보와의 단일화 추진이란 승부수를 던졌던 게 주효, 극적으로 단일후보가 됨으로써 대권을 차지하게 됐다. 노 후보가 대통령 취임 후 새천년민주당을 탈당,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던 것도 이같은 당내 상황과도 맞물려 있었다.

 

# 1997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도 당내 경선에서 대통령 YS 측 세력인 민주계를 누르고 집권당 후보로 선출됐다. 그러나 아들 병역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민주계인 이인제 후보가 탈당해 출마했고 후보교체론에도 시달렸다. 선거전 막판 이인제 후보를 누르고 선두 DJ를 추격했으나 판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2007년 대선 때 정동영의 경우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 선출됐으나 당내 계파 난립으로 선거전에서 세력을 결속시키는 데 한계를 보였다. 이명박 후보가 BBK 주가조작 의혹에 휩쓸렸고 이회창 후보는 무소속 출마를 강행, 보수진영이 분열했음에도 무기력했던 것. 

 

# 국민의힘은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각 계파를 아우르거나, 당내 주도세력을 확보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당 밖에 있는 인사들과 후보단일화를 추진한다고 해도, 어느 쪽이 단일후보가 되든 당을 주도해 나갈 수 있을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당내 주도세력인 친문 측의 후보들이 선두주자인 이재명 후보와 맞서 있는 상황이란 점에서 국민의힘 처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이 후보를 겨냥해 후보들간 연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친문 측이 당내 경선에서 판세를 뒤집을 수 있을지, 아니면 이 후보가 경선에서 이긴 후 친문 세력의 반발을 무마하거나 각개격파해 당내 결속을 다질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양당이 이번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대권 향배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입력 : 202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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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jisang3@daum.net 경북 청송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국민일보에 입사한 이후 2020년 뉴스 1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30년 언론인생활을 마무리했다. 정치부장, 정치선임기자 등으로 여의도 정치권과 청와대, 총리실 등을 취재하고 후배 기사를 데스킹하는 데 20여년을 보냈다. 현재 민간연구원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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