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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윤석열, 정치세력화에 성공할까

서봉대  정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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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통합문제를 다시 논의하기 위해 1988년 2월 23일 오후 서울 가든호텔에서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김영삼 전 민주당 총재가 4개월 만에 만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승부수가 먹혀들면 판세를 뒤집을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할 땐 패착으로 귀결된다. 승부처를 제대로 찾아 공략해야 하는 것이다.


바둑뿐아니라 정치에서도 그렇다. 승부수라고 던졌지만 정치적 운명은 엇갈렸다. 

 

# 1987년 12월 대선을 앞둔 5월에는 김대중(DJ)과 김영삼(YS)이 통일민주당을 창당, 주춤했던 대통령직선제 열기를 다시 고조시켜 개헌으로 이끌었다.

 

직선제개헌 투쟁을 해왔던 두 사람은 창당 몇 달 전만해도 정치적으로 비상상황에 내몰렸다. 정치활동 규제에 묶였던 자신들을 대신해 신민당을 이끌었던 이민우 총재가 조건부로 내각제 수용가능성을 언급, 당내 논란을 확산시켰고 뒤이어 정부측 호헌조치까지 발표됐던 것이다.

 

하지만 동교동계(DJ 정치계보)와 상도동계(YS 정치계보)라는 정치세력이 있었기에 상황 반전을 위한 승부수를 던질 수 있었다. 계파 의원들을 신민당에서 탈당시켜 제1 야당인 통일민주당을 창당, 개헌의 고삐를 다시 당겼고 6월 민주화 항쟁에 힘입어 직선제를 관철시켰던 것이다.

 

1995년 6월 지방선거는 DJ가 정치권으로 복귀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됐다. 

 

3년전 대선 패배로 정계를 은퇴했던 DJ는 활로를 모색하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적극 지원, 호남의 압도적인 지지는 물론 서울에서도 승리함으로써 정계복귀 결심을 굳히게 됐던 것이다. 선거 직후 정계복귀를 공식 선언했고, 민주당의 비(非)동교동계 측이 거세게 반발하자 자신의 세력을 끌어내 제1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으며 2년 뒤 대선정국에서 충청권 맹주였던 김종필(JP)과 연대, 대권을 차지하게 됐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013년 말 새정치에 대한 국민 열망을 등에 업고 정치세력화에 나섰으나 전, 현직 의원 몇몇이 합류한 가운데 중도 포기하고 민주당과 통합했던 게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 의원 수에서 민주당 측이 115명나 됐던 반면 안철수 측은 4명밖에 되지않았던 만큼 당을 주도하기보다는 끌려가기 십상인 처지였다. 게다가 당내 의원 대부분이 친노, 친문 세력으로 뭉쳐있던 상황이었다.

 

같은 해 4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던 그가 2016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독자적인 창당을 추진했을 때만 해도 한껏 상승세를 탔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제1 야당인 민주당을 앞질렀고 집권당인 새누리당을 바짝 추격했을 정도였다. 

 

이때문에 과신했던 것일까. 그는 정치세력화를 제대로 못한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창당작업을 접고 민주당과 함께 이듬해 3월 새정치민주연합 창당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신당 공동대표를 맡아 치렀던 재보선에서 참패한 이후 당내 갈등이 본격화되자, 세력경쟁에서 결국 밀렸고 탈당하게 됐다.

 

# 정치판 승부수의 핵심에는 사람(세력)이 있었다. DJ와 YS가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시킬 수 있었던 것도 내각제 추진이나 개헌 백지화를 저지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계를 은퇴했던 DJ가 거센 비난여론속에도 정치권으로 복귀, 대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새 정치를 기치로 내세웠으나 정치세력화를 중도 포기했던 안철수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내 세력경쟁에서 밀리자 당을 떠나는 등 기세를 잃어가게 됐다.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정치권 진입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세력화에 나섰을 것이다. 합당이나 입당 등 어떤 방식을 통해 대선에 뛰어들더라도 정치세력화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서 우위에 있었다 해도, 자기 편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다면 도루묵이 돼버렸던 게 정치판이었다. 고건 전 총리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등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윤 전 총장은 세력화에 성공할 수 있을까? 내년 3월로 예정된 대선일정을 감안할 경우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대권 경쟁에 나서려면 늦어도 6월까지 입장표명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입력 : 202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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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sang3@daum.net 경북 청송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국민일보에 입사한 이후 2020년 뉴스 1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30년 언론인생활을 마무리했다. 정치부장, 정치선임기자 등으로 여의도 정치권과 청와대, 총리실 등을 취재하고 후배 기사를 데스킹하는 데 20여년을 보냈다. 현재 민간연구원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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