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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사이다 〈5〉 베리만의 영화 〈겨울 빛〉

신(神)의 침묵과 박근혜 탄핵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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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겨울 빛〉은 종교와 신의 문제를 진지하게 탐색
⊙ 유무죄를 둘러싼 두 동강 난 민심의 격류 … ‘기도 없이 절대로 불의를 쳐다보아선 안 된다’
목사 토마스가 고통받는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광장의 아우성으로 치닫던 2월말,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 1918~2007) 감독의 1963년작 영화 〈겨울 빛〉을 보았다. 적막한 표정의 낯선 배우들과 음영으로 뒤엉킨 흑백필름의 영상, 싸늘한 겨울 숲과 성긴 눈발, 텅 빈 교회와 귀를 자극하는 종소리, 그리고 시종 무거운 대사들로 가득 찬 영화였다. 애매모호한 줄거리 속 감독 베리만은 신(神)의 침묵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목사 토마스는 이렇게 말한다.
 
  “죽는 게 두렵지 않다. 살아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다.”
 
  어느 날, 자살 충동으로 괴로워하는 어부(漁夫) 요나스가 토마스를 찾아온다. 토마스는 가혹하리만큼 냉정하게 말한다.
 
  “나는 비현실적인 주님의 세상에서 신념을 가지고 살았던 거야. 내가 저지른 끔찍한 실수가 뭔지 아는가? 무식하고 상처받은 자가 무능한 성직자가 됐다는 것이네. 주님은 추하고 흉한 모습으로 나타났어. 만약에 신이 없더라도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비현실적인 주님의 세상에서 신념을 가지고 살았다”는 토마스의 말은 오래 여운이 남는 대사다. 심지어 토마스는 이렇게 말한다.
 
  “삶이란 이해하기 쉽다네. 얼마나 편한가. 죽음이 삶의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어. 고통은 끝이 없는 것, 설명이 필요 없단 말이지. 조물주는 없네. 생명의 주관자는 없어. 예정이라는 것도 없어.”
 
영화 〈겨울 빛〉(1963년작) 포스터.
  어부 요나스는 말없이 교회를 빠져나가 자살을 택한다. 얼마 후 자살 소식을 전해 들은 목사는 현장을 찾아간다. 눈 덮인 빙판길, 철사처럼 뾰족한 침엽수림의 날 선 숲속에 누워 있는 요나스.
 
  그리고 무표정하게 고통스러워하는 토마스. 그를 통해 답답한 신의 침묵이 느껴진다. 토마스는 요나스의 아내 카린을 찾아가 남편의 죽음을 전한다. 만삭인 카린은 목조 계단에 주저앉지만 눈물을 보이진 않는다.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 아내는 어린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부재를 알린다.
 
  목사의 교회는 신자가 거의 없다. 텅 빈 예배당에 투명한 오르간 소리만 가득하다.
 
  그런 목사를 사랑하는 여교사 마르타는 그를 증오하면서 연민하고, 연민하면서도 증오한다. 그리고 토마스에게 자신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마르타는 토마스에게 사랑을 받아 달라고 간청하지만 토마스는 냉담하게 거절한다.
 
  교회에서 마르타는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카메라는 그녀가 기도하는 모습과 창으로 비치는 빛(겨울 빛)을 오버랩시킨다. 그녀의 기도는 가정문이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다면, 그래서 서로를 위해 줄 수만 있다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진실이 있다면,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
 
  베리만 감독은 시종 어둡고 지루하며, 천사도 악마도 아닌, 지독히도 불행한 시대를 사는 인간 군상을 이처럼 쓸쓸하게 그린 이유는 무얼까. 그리고 영화제목이 왜 ‘겨울 빛’일까.
 
 
  “하느님께서는 나를 용서하소서!”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영화 〈겨울 빛〉은 프랑스 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정영란 옮김, 민음사刊, 2009년)를 떠올리게 했다. ‘20세기 종교문학의 정수’라고 불리는 이 소설은 작가가 마흔여덟 되던 1936년에 쓰였다.
 
  줄거리는 이렇다. 프랑스의 어느 시골 본당에 젊은 신부가 부임한다. 그는 일상적 고통과 허기, 분노와 용서, 나태가 뒤엉킨 마을을 경험하고 절망한다. 그리고 ‘신의 침묵’과 맞서기 위해, ‘악’과 타협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외친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용서하소서!”
 
  그리고 젊은 사제는 고통스런 일기를 써 내려간다. 이 일기를 통해 방황하는 영혼들을 차례로 응시한다. 또 자신의 고독과 자기 연민까지 깊숙이 들여다본다. 하지만 잘 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스스로는 결코 해명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한 원로 신부는 그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 하지만 내가 자네에게 이르는 말, 잊지 말게. 절대 후방으로 이송당해선 안 되네. 한 번 병실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할 거야. 자네는 소모전에 적합하거든. 끝까지 전진하게, 그리고 언젠가 참호 속에서 배낭을 짊어진 채 조용히 인생을 끝마치도록 하게. (중략) 그리고 기도 없이 절대로 불의를 쳐다보아서는 안 되네. …”(p90~91)
 
목사를 사랑하는 여교사 마르타는 토마스에게 자신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기도 없이 절대로 불의를 쳐다보아선 안 된다”, “자네는 소모전에 적합하거든”이라는 말이 울림으로 다가왔다. 젊은 사제는 이렇게 자문자답한다.
 
  … 확실히 인간은 저 자신의 원수다. 저 자신의 비밀스럽고도 은밀한 적이다. 아무 데나 뿌려도 악의 씨는 거의 틀림없이 싹을 틔운다. 반대로 정말 어쩌다 갖게 되는 작으나마 선의 씨가 짓눌려 죽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대단한 행운, 비상한 천운이 따라야 한다. … (p146)
 
  … 그러나 나는 내 기도가 낯설다. 예전 기도는 고집스러운 탄원 같았다. 예를 들어 성무일 도중 어떤 교훈의 말씀이 내 주의를 끌 때도 나는 때로는 호소하고 때로는 조르며 강압하는, 하느님과의 말 겨루기를 속으로 계속 이어가는 듯 느끼곤 했다. 그렇다. 나는 그분에게서 당신의 자비를 앗아 내고 억지를 써서라도 그분의 자애를 받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떤 것이든 소망한다는 것이 어렵게 됐다. 마을처럼 내 기도도 하중을 잃고 위로 떠오른다. …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모를 일이다. … (p320~321)

 
  작가 베르나노스는 너무나 나약하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고결한 인간 본성을 소설을 통해 그려내려 하지만 행간은 짜증이 날 정도로 무겁다. 그 무거움은 신을 찾는 마음이 없다면, 신의 침묵을 이해하려는 투지가 없다면 견뎌내기 어렵다. 인간의 신앙이란 신의 침묵과 맞서야 하는 운명이니까.
 
 
  역사는 박근혜 대통령을 훗날 어떻게 평가할까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 1918~2007).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나라가 두 동강이 났다. 국정 농단과 적폐 청산을 둘러싸고 유죄를 주장하는 쪽과 무죄를 주장하는 쪽이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인간의 심판에 대해 신은 시종 침묵하고 있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신은 누구 편일까.
 
  박 대통령은 자신의 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까. 정말 억울하다고 생각할까. 죄는 지었어도 탄핵당할 정도의 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박영수 특검팀은 정의롭고 공평무사했을까.
 
  몇 해 전 법무법인 충정의 이우근 대표변호사를 만난 적이 있다. 평북 용천 출신인 그는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서울장로회신학교를 다녔다. 그가 건네준 《톨레랑스가 필요한 기독교》(포이에마 刊, 2009)를 읽다가 이 구절에 눈길이 갔다.
 
  … 죄는 취소되지 않습니다. 다만 용서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은폐된 죄는 용서받을 수도 없습니다. 거짓말로 변명하는 죄는 더욱 그렇습니다. 몸으로 지은 죄보다 그것을 회개하지 않는 죄가 더 무겁고, 거짓말로 변명하는 죄는 가장 무거운 죄입니다. … (p35)
 
  … 무릇 인격체란, 불확실성의 광야를, 갈등과 의혹의 골짜기를 두루 방황하는 모순의 실체이며, 그 일상적 삶 또한 공과(功過)와 정오(正誤)가 늘 얽히고설키기 마련인 모순투성이라는 것을. 그래서 한 인격과 그 생애를 통전적으로 조감하지 않은 채 개개의 모순되는 행적들마다 토막토막 끊어내서 단편적으로 심사, 분별, 시상시벌(施賞施罰)하는 일이 항상 옳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 (p302)

 
  역사는 탄핵의 단두대에 선 박 대통령을 훗날 어떻게 평가할까. 신은 당신의 침묵 속에, 두 동강 난 민심의 세찬 격류를 통해 무얼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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