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李東官前 청와대 홍보수석이 말하는 MB정부 뒷얘기 : 월간조선

“From now on, I will give you information(이제부터 정보를 주겠다).”

이동관(李東官) 전(前) 청와대 홍보수석은 깜짝 놀랐다. 한미(韓美)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부시 미(美) 대통령은 지난 2008년 4월, 첫 해외 순방길로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李明博) 전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노무현(盧武鉉) 정권 때 북한의 핵정보를 한국에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준 정보가 얼마 뒤 북한으로 흘러 들어간다고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노 정권 때 당시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우리 국회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이 한국을 충분히 신뢰하지 않고 있기에 일본도 한국과의 정보공유 협력에 신중한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대북(對北)정보의 90%를 미국에 의존하는 상황입니다. 우리 안보현실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입에서 ‘이제부터 정보를 주겠다’는 말이 직접 나왔으니 놀랄 밖에요.”

이동관 전 수석은 이날의 일을 여전히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언론인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에 대통령 대변인, 홍보수석, 언론특보를 지냈던 이동관 현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이 《도전의 날들-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 2007-2013》이라는 책을 냈다. 지난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시절, 이명박 캠프에 합류한 그는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광우병 파동, 세종시 수정논란, 4대강, 대운하 등 이명박 정부의 굵직한 현안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언론인 출신답게 책의 내용은 사실 위주로 명쾌하다.

—부시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한미동맹 복원의 신호탄 발언이었지만 외교적으로 큰 파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변인 입장에서 우리 언론에 알려야 할지 고민 끝에 이 발언을 브리핑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미국과의 관계가 그토록 불편했다는 방증이군요.

“전문가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로 ‘10년의 서먹함을 풀었다’고 했습니다. 한미FTA가 급물살을 탄 계기가 됐고, 한미 양국이 전통적 우호관계에서 전략적 동맹관계로 발전하는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미국 쇠고기 재협상 발표 두고 청와대 정책 vs. 정무 엇박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8년 3월 1일, 청와대에서 이동관 대변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미국과 일본 순방은 순조로웠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떠나기 전 수행기자단과의 조찬간담회에서 방미 직전에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해 얘기했다. 정확한 워딩(wording)은 이랬다.

“쇠고기 협상은 질(質) 좋은 고기를 들여와서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를 먹자는 겁니다. 미국 쇠고기를 강제로 수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민들이 덜 사 먹으면 되는 거예요.”

이 대통령은 CEO(최고경영자) 출신답게 지극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설명했다. 이동관 전 수석 역시 기자들에게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브리핑했다. 당시 청와대 내에서 이 문제가 정국을 뒤흔드는 뇌관이 될 것으로 생각한 이는 없었다. 물론 ‘쇠고기 사건’ 이전에도 이명박 정부의 인사문제가 언론의 도마에 오른 적은 있었다. 통합민주당은 이명박 정부가 선임한 첫 국무총리, 국무위원 후보자를 두고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부자)라고 맹비난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 인사들은 우여곡절 끝에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는 등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사태는 사안이 완전히 달랐다. 이동관 전 수석은 “이명박 대통령은 상대 후보를 531만 표로 누르고 10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압도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정권퇴진’ 구호를 외치는 대규모 시위에 당황스러웠다”고 기억했다.

1기 청와대 참모진의 일괄 사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8년 5월 22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과정에서 국민의 이해를 구하지 못한데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광우병 집회가 계속되는 가운데, 한미 쇠고기협상의 재협상 문제가 쟁점이 됐다. 결국 양국은 지난 2008년 6월 초, ‘미국의 쇠고기 수출업자들이 월령 30개월 이상된 쇠고기를 자율적으로 한국에 수출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에 잠정 합의했다. 이에 대한 이행은 미국 정부가 보장키로 했다.

그런데 이 내용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방법을 두고, 청와대 내부에서 엇박자가 났다. 정책 라인은 “기존의 협상을 부인하는 재협상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무 라인은 “국민들의 요구가 강하고 사실상 재협상과 다를 바 없으니 재협상이라는 말을 쓰자”고 주장했다. 참모들의 회의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논쟁이 길어지자 청와대 비서진 사이에서는 “꼭 봉숭아학당을 보는 것 같다”는 자조 섞인 얘기까지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단호했다. 이 대통령은 “국가 간의 관계야말로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사실상 ‘재협상’ 단어를 쓰지 않는 데 힘을 실었다. 청와대는 ‘추가협상’이라는 단어로 국민들에게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이 문제를 매듭짓고, 2008년 6월 19일 대국민담화에 나섰다. 이 대통령의 회견문 사과 수위를 놓고서도 청와대 내부에서 진통이 있었다고 한다. 비서진 대다수는 “감성적인 표현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동관 전 수석의 생각은 달랐다. 이 전 수석은 이 대통령에게 “어려운 상황일수록 오히려 꿋꿋하게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감성적인 표현을 대폭 줄였는데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시위대 함성과 함께 (이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랫소리를 들었다’는 대목이 들어갔습니다.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하게 모시지 못한 점을 자책했다고 했습니다.”

—초안은 어땠습니까.

“감성적인 사과내용이 상당히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대의견도 많아 최종적으로 ‘아침이슬’을 내용에 넣고 감성적인 부분은 줄이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던 때, 류우익(柳佑益) 대통령실장 및 1기 청와대 참모진은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이 대통령은 이동관 전 수석을 제외한 7명의 수석비서관을 모두 교체했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지 불과 6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1기 참모진’의 교체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에 수석비서관들을 소개하면서 “제 입장에서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로 뽑았다.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면 실제로 일하면서 ‘두잉 베스트(doing best)’를 하면 된다”고 말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광우병 파동으로 인한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 이명박 정부는 집안 내부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친이계 공천자 55명은 지난 2008년 3월 23일, 여의도 당사에 모여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李相得) 전 국회부의장의 총선 불출마를 요구했다. 항명을 주도한 정두언(鄭斗彦) 의원은 “이상득 의원의 총선 불출마만이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위한 길이다”고 주장했다. 이동관 전 수석은 《도전의 날들》에서 이상득 전 부의장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공과(功過)를 논하면서 이상득 전 부의장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한때 ‘만사형통’(萬事兄通·모든 일은 형님을 통해 이뤄진다)이라고 했고, 훗날 이명박 정부의 실세 라인인 ‘영포라인’의 핵심이 아니던가. 이 전 수석은 말을 아끼고 또 아꼈다.

“영화 〈사도세자〉에 보면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너는 존재 자체가 역모다’라는 장면이 나온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형이라는 위치는 존재 자체가 정권에 부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SD는 청와대 비서진 사이에서 금기어”

이명박 대통령에게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은 아킬레스건이었다. 이상득 전 부의장(왼쪽)과 와타나베 고조 한일의원연맹 일본측 회장(오른쪽). 사진=조선일보

—친이계 55명이 집단으로 얘기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언했습니까.

“당시 청와대 내부에서 영포라인에 가까운 사람들조차 읍참마속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얘기를 이 대통령에게 직접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냉철한 분이지만 형 문제만큼은 조금 달랐습니다.”

—‘55인 항명’ 때 직접 얘기한 참모는 없었군요.

“SD(이상득 전 부의장 지칭)를 주저앉혀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차마 드러내 놓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참모진도 잘 못했습니다. 청와내 내부에서 SD는 일종의 금기어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셈이죠. SD 문제와 관련해 유일하게 조언할 수 있는 분이 김재정(이명박 대통령의 처남, 2010년 2월 투병 중 사망)씨였습니다. 그 양반이 살아 계셨으면 조금 나았으리라고 봅니다. 몇몇이 직접 이상득 전 부의장께 찾아갔는데 ‘내가 이명박이 때문에 국회의원 한 사람이냐’고 하는데 말릴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왜 형이라면 그렇게 꼼짝을 못했을까요.

“저도 10살 위의 형님이 계신데 사실 아버지 같은 존재입니다. 이상득 전 부의장은 집안의 기둥이었습니다. 대통령에게도 까마득하고 존경스러운 분이었을 겁니다. 어렸을 때 형성된 자아는 나이가 들어서도 쉽게 바뀌지 않잖습니까. 유독 형제애도 좋았습니다. 권력의 논리에 비춰 보자면 좀 더 냉혹했어야 했겠지만, 그래서 아킬레스건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상득 전 부의장이 인수위 시절부터 좌지우지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한나라당 대선 선대위를 꾸린 것은 전적으로 정두언 의원이었고, 인수위 얼개도 그가 짰습니다. 이경숙(李慶淑) 인수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발탁했습니다. 이상득 부의장이 중진의원이고, 정권의 후견인으로 행동한 것은 맞지만 인수위를 좌지우지한 것은 아닙니다.”

—정두언 의원은 왜 이명박 대통령과 결별한 겁니까.

“인수위 캠프에 정 의원 동기들이 몇 명 있다 보니 ‘정두언이 차기를 준비한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정 의원이 때마침 대통령에게 ‘공천권 30%를 달라’고 요구했다는 얘기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 ‘비서실 인선에서 손 떼라’고 했고, 거기서부터 어깃장이 난 겁니다.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신이 주역이 돼 만든 새 정부가 중도개혁적 궤도에서 멀어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안타까웠을 수 있습니다. 저는 참모로서 소임을 다했는데 결국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보면서 정치가 인간관계를 참 황폐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천안함 피격 직후 백령도를 방문한 이유

2008년 8월 8·15 경축사 독회 도중 박태환의 베이징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우승 소식에 환호하는 이 대통령과 참모들. 이런 자연스러움이 배어 나오는 사진이 어떤 연출보다 호소력 있는 장면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연스러운 포즈로 유독 신문에 많이 실렸다.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박태환 선수가 자유형 400m에서 우승했을 때 이 대통령이 환호하는 모습, 해장국집에서 식사하는 모습, 가락시장에서 무시래기를 파는 할머니의 손을 잡은 사진 등은 그가 평범한, 서민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줬다. 사실 이는 이동관 전 수석의 노련한 전략의 결과였다. 그는 청와대 2기 조직 출범 전부터 ‘대통령 드라마 만들기’에 몰두했다.

이동관 전 수석은 지난 2009년 6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한 참모가 그에게 “우리는 매일 백악관에서 ‘오바마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얘기인즉 공개된 행사를 제외하고는 백악관 내부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촬영할 수 있는 사람은 전속 사진사뿐이라고 했다. 기자단을 대표하는 풀기자단이 대통령 사진을 자유롭게 찍는 우리 문화와 사뭇 달랐다. 그 참모는 백악관 집무실을 걸어가는 오바마의 뒷모습, 회의실 구석에서 참모들과 함께 빈 라덴 제거작전을 바라보는 광경 등 우리가 외신에서 접했던 오바마 대통령 사진은 모두 기획과 연출을 거쳐 탄생한 ‘정치적 메시지’라고 했단다. 간혹 사진 한 장이 백마디 말보다 위력이 있는 법이다.

훌륭한 미디어 정치의 성공모델로 평가받는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

이 전 수석은 대통령에게 ‘스핀닥터’(spin doctor·정부정책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키는 역할을 하는 정치 전문가) 역할을 하는 홍보수석실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다. 방송기자 출신인 박선규(朴先圭) 언론2비서관, 김은혜(金恩慧) 부대변인을 ‘투톱’으로 포진시킨 홍보수석실은 비서관 6명, 직원 80여 명에 달하는 청와대 내 최대 비서관실이 됐다. 청와대 언론비서관실은 매일 ‘일일 브리핑’을 작성했다. 언론보도와 언론동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뒤 대통령의 당일 메시지나 행보를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정무적 판단을 돕는 1~2페이지 분량의 짧은 보고서다. 이동관 전 수석은 “일일 브리핑은 이 대통령이 매일 아침마다 반드시 찾는 청와대 핵심보고서 중 하나였다”고 했다.

북한의 천안함 피격이 발생한 지 불과 나흘 만인 지난 2010년 3월 30일, 이 대통령이 천안함 실종자 구조작업이 진행 중이던 백령도를 전격 방문한 것도 일일 브리핑을 통한 건의가 받아들여진 경우다. 백령도는 북한의 지대함 유도탄과 해안포가 집중 배치돼 있는 장산곶에서 불과 13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역대 대통령들도 이곳 방문은 피했다. 당시 국방부와 청와대 내부에서 대통령의 안전 문제를 거론하며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천안함 폭침 직후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멤버 중 이 대통령을 포함해 절반이 병역 미필자라는 비판이 만만치 않던 터였다.

“비판여론을 잠재우고, 국민들의 안보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군 통수권자의 과감한 행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백령도 방문 계획은 당일 출동명령을 받은 최근접 경호원 10여 명에게만 구두로 전달됐습니다. 보안을 위해 작전명도 정하지 않은 ‘비공식 수행’으로 처리했습니다.”

정운찬 총리 지명자의 느닷없는 세종시 발언

이명박 정부 집권 2년차에 들어선 지난 2009년 6월 22일.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렸다. 이날의 주제는 양극화와 서민경제 회복이었다. 거시경제 지표는 개선되고 있지만, 서민들은 여전히 경제위기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토론 중에 홍보기획관실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하며 “대선(大選)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중도보수 성향의 국민들이 이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론은 ‘집토끼’(고정 지지층)를 다시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좌다, 우다, 진보다, 보수다 하는 이념적 구분을 하고 있다. 사회통합은 구호로만 되는 게 아니다. 좌의 정책이건 우의 정책이건 국민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가져다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관 전 수석은 곧바로 회의장을 나와 기자실을 찾았다.

“‘중도강화론’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때부터 표명했던 중도실용의 국정철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발언 중에서 ‘좌우 이념에 관계없이’라는 부분은 뺐습니다.”

—왜 뺐습니까.

“보수진영 일각에서 이 대통령에 대해 ‘이념적 지향점이 불분명하다’고 비판을 하던 때였습니다. 자칫 이 발언이 알려질 경우에 ‘통치철학의 부재’라는 비판을 받을까 우려스러웠습니다.”

이 대통령이 중도강화론을 내세운 이후 각 부처들은 앞다퉈 친(親)서민 대책을 내놨다. ‘햇살론’ ‘새희망홀씨’ ‘보금자리주택’ 등이 잇따라 나왔다. 친서민 중도실용은 이후에 동반성장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이즈음, 이명박 정부의 또 다른 핵으로 떠오른 ‘세종시 수정’ 논란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청와대는 지난 2009년 9월 2일, 정운찬(鄭雲燦) 전 서울대 총장을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했다. 정 총리 내정자는 이튿날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세종시 원안이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고, 청와대 참모진도 많이 놀랐다. 이동관 전 수석의 얘기다.

“세종시 수정안 추진 문제가 이전부터 청와대 내부에서 논의됐지만 정운찬 총리를 통해 공론화할 계획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정 총리가 세종시 문제를 ‘정공법’으로 돌파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이때 세종시에 대한 대안은 있었습니까.

“충청권을 설득할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세종시 원안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우려는 무척 컸습니다. 정권 출범 초반에 터진 ‘55인 공천항명 파동’이 친이계 내부분열을 촉발시켰다면, 세종시 문제는 ‘현재의 권력’인 이 대통령과 ‘미래의 권력’인 박 전 대표 간의 정면충돌을 초래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우려는 사실이 됐다. 정운찬 총리가 취임한 지 한 달 만에 곧바로 논란이 붙었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지난 10월 23일 “세종시 건설은 원안에 플러스알파를 해야 한다”며 세종시 수정 논의를 일축했다. 정치권이 세종시 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충청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대선 당시 약속을 어겼다”며 거세게 비난했다.

이명박 대통령 머릿속에 ‘세종시 국민투표’는 없었다

청와대와 정부는 충청권 민심을 설득할 수 있는 수정안 마련 작업을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직접 방송에 출연키로 결심했다. 발언문, 예상 질의응답 등을 놓고 비서진 사이에서 토론이 이어졌다. 일부 참모들은 “차라리 그때는 제가 표에 눈이 멀어서 그렇게 약속했다고 화끈하게 사과하자”는 농반진반의 주장을 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 프로그램에 출연해 “저 하나가 욕먹고 정치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이것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 세종시를 생산력 있고 소득 있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자족도시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1월 11일, 2개월여 작업을 거친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가 세종시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는 수정안을 평가절하하며, 이 대통령과의 회동마저 거부했다.

“여권 내부의 갈등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저는 문제의 성패는 궁극적으로 청와대와 박 전 대표와의 기싸움에 달려 있다고 봤습니다. 박 전 대표를 포용하거나 제압해야만 세종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요즘은 말을 바꾸었지만 김종필(金鍾泌) 전 총재가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과 했던 담판 얘기 있지 않습니까. 박 전 대통령이 3선개헌에 나서면서 ‘임자, 한 번만 도와줘. 내가 사심이 있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어’라고 김 전 총재에게 말씀했다는 거 말입니다. 저는 그 정도의 극적 담판이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세종시 수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대통령께 말씀드렸습니까.

“저는 직접 진언하지 않았지만 정운찬 총리는 직접 ‘국민투표’ 얘기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내에 약간의 낙관모드가 있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수정안은 합리적인 안(案)이니까 설명하고, 설득하고, 여론을 우군화한다면 우리 뜻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당시 김무성 원내대표가 세종시 원안 수정으로 입장을 바꾼 상황이어서, ‘잘되겠지’라는 분위기가 청와대 내에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판단 미스였을까요.

“당시에는 정치인보다는 CEO식(式)의 사고가 지배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합리적이니까 국민여론을 설득하고, 정상적으로 하면 된다고 믿은 겁니다. 한국 정치는 일종의 ‘치킨게임’입니다.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항상 그대로 반영되는 판이 아닌데, 이명박 대통령은 합리를 믿은 겁니다.”

이명박 vs. 박근혜의 ‘강도론’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2010년 6월 28일,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반대의견을 표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그리고 이즈음, 여태까지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강도론’이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충청북도를 방문해 정우택 도지사로부터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치고 다시 싸운다. 강도가 왔는데 너 죽고 나 살자 하면 둘 다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튿날, 모 일간지가 1면 머리기사에 ‘이 대통령의 (강도) 발언은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는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이후 박 전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집안의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해 강도로 돌변하면 그때는 또 어떡해야 하느냐”고 맞받아쳤다. 이명박 대통령을 사실상 ‘강도’로 지목한 것이다. 이동관 전 수석의 얘기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조직의 단합을 강조할 때 ‘강도론’을 이전부터 즐겨 썼습니다. 한나라당 경선 직후에도,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다 썼습니다. 때문에 이 대통령의 발언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이해한다면 박 전 대표 측에서도 해명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까지 박 전 대표 측에서 아무런 해명이 없었습니다.”

이동관 전 수석은 이튿날 출근하는 대통령을 따라 집무실에 들어가 “무언가 대응이 필요하다.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 전 수석은 곧장 기자실로 찾아가 “국정에 몰두하고 있는 대통령을 폄하하는 발언을 하고 해명조차 않는 것은 온당치 않다. 박 의원은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대통령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동관 전 수석의 브리핑은 친박 진영을 들끓게 했고, 한 친박계 의원은 이동관 전 수석의 사퇴를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6월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당초 발언 순서에도 없었던 박 전 대표가 ‘수정안 첫 번째 반대토론자’로 나섰다. 세종시 수정안 찬성 105명, 반대 164명, 기권 6명. 세종시 수정안은 부결됐고, 10개월의 논쟁은 끝났다.

—측근으로서 보기에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사이였을까요.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현대그룹 CEO로 활약할 때 청와대를 드나들면서 영애인 박근혜 대통령을 봤습니다. 영애이기는 하지만 어린 모습에서 그때의 잔상이 남아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반대로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숱하게 드나드는 기업인 중 한 명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찌 됐든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나오리라고 생각한 참모는 없었습니다. 그건 순전히 박근혜 대통령의 순발력과 돌파력, 정치적 감각에서 나온 걸 겁니다. 지금도 세종시 수정안을 타결시키는 것은 국민투표뿐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된 직후, 이동관 전 수석은 정정길(鄭正佶) 대통령 실장과 함께 청와대를 떠났다. 하지만 5개월 뒤, 그는 언론특별보좌관으로 다시 청와대로 출근했다.

“딸네서 짜장면 시켜 먹으며 행복해한 김윤옥 여사”

얘기가 지나치게 민감한 쪽으로 흘러 분위기를 바꿨다. 이동관 전 수석은 사실상 이명박 정부 시절의 대부분을 청와대에서 보냈기에, 누구보다 김윤옥 여사와 접할 기회가 많았다. 이 전 수석은 김 여사에 대해 “소탈했다”고 기억했다.

“과거 영부인들이 청와대 내에서 옷 매무새 등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들었습니다. 김윤옥 여사는 편하게 8부바지를 입고 돌아다니곤 하셨습니다. 가끔 해외에서 대통령께 보고를 드리려고 호텔방으로 찾아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샤워 가운 입고 머리에 타월을 둘둘 말고 지나가시면서 ‘잘하세요’ 그러십니다. 친한 친구들을 불러서 사무실에서 격의없이 차를 드시고, 가끔 딸네 집에 놀러가서 짜장면 시켜 드시고요. 종종 ‘어차피 내려가야 할 곳은 저기인데, 여기(청와대)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한 번은 수석 장관들과 부부동반 식사 자리에서 ‘나도 내가 대통령 부인이 될 줄은 몰랐다. 그냥 애들 키우고 살다 보니 이리 됐는데, 수석 장관 부인들도 각자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소탈함 자체가 이명박 대통령을 내조한 것이라고 봅니다.”

“UAE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안 먹을 수 없지 않느냐”

이명박 정부의 경제 코드는 몇 가지 화두를 남겼다. ‘4대강’ ‘녹색성장’ ‘자원외교’ 등이다. 이동관 전 수석은 ‘UAE(아랍에미리트) 원전수주는 39일간의 대역전 드라마’라고 표현했다. 아부다비는 지난 2009년, UAE 원자력발전소를 짓기로 하고, 해외 업체들의 제안서를 받았다. 우리는 한국전력과 국내 대형건설사 등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주가 유력한 곳은 프랑스였다. 이때, 이 대통령은 치열한 수주 전쟁의 분위기를 조끔씩 바꿔 갔다.

“대통령은 민간기업에서 일하던 시절에 한국의 원전 1호기를 만드는 데 직접 참여했다며 본인의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또 원전의 우수성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고, 우리와 아부다비가 ‘형제국가의 관계’라고 계속 말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부다비 왕세자의 마음이 우리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수주발표를 위해 UAE에 갔을 때 만찬장에 양고기가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습니다. 우리를 위한 배려였겠지만, 우리쪽 사람들이 특유의 냄새 때문에 조금밖에 먹지 못했습니다. 이 대통령만이 접시를 깨끗이 비웠습니다. 나중에 ‘양고기 맛이 좋아서 다 드셨냐’고 물었는데, 대통령은 ‘UAE 측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데 안 먹을 수 없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대통령의 수주의지가 그 정도였습니다.”

—4대강은 정권 내내 회자됐습니다.

“최근 충청도 지역 및 중부 지역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면서 4대강 공사의 유효성이 입증됐습니다. 비판론자들이 여러 이유를 붙여서 무조건 반대하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무조건 반대하는 DNA가 유전자에 각인돼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 대통령은 임기 내에 이루지 못한 가장 아쉬운 것으로 무엇을 꼽을까요.

“한반도 대운하 포기일 겁니다. 운하 전문가인 박재광 미 위스콘신대 환경공학과 교수가 대운하의 정당성을 발품팔아 가며 입증했습니다. 미국은 물론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에서도 내륙운송보다는 운하가 주요 운송수단입니다. 저는 여전히 물관리, 국토개발, 환경친화적인 운송수단 등 3박자가 대운하 사업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촛불정국의 여파로 첫 삽조차 뜨지 못한 것이 아쉽고, 대통령도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녹색성장은 우리가 선점한 어젠다였고, 이번 파리기후협약에서 충분히 써먹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녹색성장’이라는 단어는 사실 전(全) 세계에서 우리가 처음 썼습니다. 전 세계를 이끌고 갈 수 있는 이슈를 선점한 겁니다. 파리기후변화 총회 때 장황하게 이산화탄소 감축계획을 얘기하기보다, ‘녹색성장을 기조로 내걸었던 대한민국 입장에서’라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기후변화 이슈를 순수하게 대한민국 어젠다로 끌고 갈 수 있는 기회였다고 봅니다.”

—이 정부가 알면서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다고 보십니까.

“국정운영의 80%는 지난 정권과의 연속선상에서 이뤄집니다. 자기 브랜드, 그 정권의 브랜드는 20%뿐입니다. 과거 정부의 공적이라고 해서 현(現) 정부가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녹색성장, 원전수주 등이 이 정부에서 금기어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군, “북 잠수함이 공격하는 것은 不可能”(천안함 폭침 첫날)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10년 4월 29일, 故천안함 46용사 합동영결식에 참석했다. 사진=조선일보

지난 2010년 3월 26일 밤 10시, 이동관 전 수석은 김희중 청와대 부속실장으로부터 긴급호출을 받았다.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가 소집됐으니 지하별관 벙커로 오라’는 것이었다. 청와대 지하별관에는 일명 ‘워룸(war room)’으로 불리는 위기관리센터가 있다.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경계작전 임무를 수행하던 천안함이 침몰 중이라는 보고가 올라오고 있었다. 시시각각 상황보고가 이어졌다. 회의 참석자들을 가장 혼란스럽게 한 것은 ‘침몰원인’이었다.

“합동참모본부와 해군에서 함정이 원인 미상으로 좌초 중이라고 보고를 했습니다. ‘좌초’라는 표현이 문제였습니다. 암초에 걸려 배가 침몰했다는 뉘앙스가 강했습니다.”

—북한 소행이라는 얘기는 없었습니까.

“일부에서 북한 잠수정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군에서는 천안함이 수심 20m 내외 지점에서 침몰했기 때문에 잠수함이 사고 해역까지 침입해 공격하기 힘들다고 보고했습니다. ‘워룸’ 회의실은 한마디로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천안함 침몰 원인은 이튿날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북한의 소행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진보 진영이 제기한 ‘음모론’으로 변질됐다. 만약 사고 해역에서 증거물 수거 작업을 벌이던 쌍끌이 어선이 ‘어뢰 추진체’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혼란은 더 커졌을는지 모른다. ‘어뢰 추진체’를 망망대해에서 찾는다는 것은 마치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에 비유될 만큼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당시 청와대 수석 비서관 몇몇은 ‘하늘이 우리를 돕는구나’라고 흥분했을 정도다.

그리고 잇달아 북한군이 연평도를 포격(지난 2010년 11월 23일)했다. 북한군이 민간인 지역에 포격을 가한 것은 휴전 이후 처음이었다. 여태까지 많은 국민은 이때 청와대에서 발표한 ‘확전(擴戰) 자제’ 반응을 기억한다.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북한에 대한 강력 대응을 표명한 청와대가 불과 몇 달 뒤에 벌어진 북한의 도발에 ‘전쟁 자제’를 말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어서다. 이동관 전 수석이 말한 풀 스토리는 이렇다.

“사건 후에 기자들이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장을 빨리 밝혀 달라고 재촉했습니다. 당시 김희정(金姬廷) 대변인이 독촉에 못 이겨 ‘벙커회의’를 공식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한 참석자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 참석자가 ‘확전자제’라는 말을 했고, 이것이 청와대 의견인 양 전달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대통령이 그 발언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대형 사안이 발생했을 때 초기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운 사건이었습니다. 대통령이 그런 메시지를 전한 적이 없고, 청와대에서 잘못 흘러 나갔다고 설명했지만, 언론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대통령이 비슷한 발언을 했으니 적어도 그런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하다못해 다음 날 대변인을 경질했다면 언론에서 해명을 믿었을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이 대변인을 경질한 것은 사고가 난 지 6개월 뒤였습니다. 이는 대통령의 인사관과 연관 있습니다.”

—인사관이 어떤데요.

“이 대통령은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주면 다음 번에 더 잘할 것이라는 인사관을 갖고 있습니다. 마음이 약해요. 비서진의 잘못으로 유약하다는 이미지가 띄워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실제로 이동관 전 수석의 실수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덮어 준(?) 사례도 있었다. 이동관 전 수석은 지난 2009년 1월 초, 출입기자들과 전화를 하다가 ‘대형사고’를 쳤다. 연말부터 여의도를 중심으로 개각설이 퍼지던 와중이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확정된 바 없다”는 판에 박힌 답변을 되풀이하던 이동관 전 수석은 한 기자와의 통화에서 “설 전에 개각은 없다”고 해 버렸다. 이 전 수석의 발언은 곧장 기사화됐다. 그런데 정작 청와대는 2~3일 뒤에 개각발표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기사가 나간 후에 정정길 당시 대통령실장이 경위를 물었고, 이 전 수석은 “도저히 같은 말만 반복할 수 없어 이야기해 버렸다”고 자수를 했단다.

“대통령에게 ‘예정대로 개각발표를 하고 난 다음에 기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대변인 말이 신뢰를 잃어서야 되겠느냐’며 개각발표를 늦췄습니다. 대통령의 뜻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정권 말기의 공직사회 풍경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현직 때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이명박 대통령 4년차 때까지 청와대에 근무했던 이동관 전 수석은 임기 말의 공직사회 풍경에 대해서도 경험했다. 임기 후반에 나타나는 고위 공무원들의 승진기피 현상도 직접 봤다. 이 전 수석은 “친분이 있는 한 부처 차관보가 ‘정권 말기인데 차관 승진을 원치 않는다. 지금 차관으로 승진하면 다음 정권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솔직히 속내를 드러내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오는 4월 총선에 서울 서초을 출마를 준비 중이다.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을 재구축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 사회의 좌편향을 시정하기 위해서 10년 전에 ‘뉴라이트(new right)’ 운동에 나섰습니다. 한국 정치는 언제부터인가 ‘우리편이 말하면 무조건 옳고 상대편이 말하면 무조건 틀렸다’는 식의 극단적 진영논리에 빠졌습니다. 무한 정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을 재구축하기 위한 정치개혁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뉴라이트 운동을 시작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한국 정치의 제자리 찾기에 한몫을 담당하고 싶습니다.”⊙